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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화

김연희가 상처를 입으로 빨며 말했다.

“이제 됐지?”

“그래, 진짜였구나.”

“그럼 가짜겠어?”

“네가 나한테 친근하게 대할 줄 몰랐거든.”

“…… 영기 아저씨 일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잖아. 나도 어른이야, 그 정도는 이해할 수 있어.”

고등학생 주제에 꽤 강한 척을 한다. 나는 그녀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준 후 계단 앞에 앉았다.

“그래서, 저쪽은 아무 문제없고?”

“어. 정우 아저씨만 열심히 도끼질하고 있던데?”

“다른 플레이어는?”

“뭐 악마들을 상대하고 있기는 한데, 솔직히 하급 악마들만 찾아오니깐 막 다 같이 나서서 싸우거나 하지는 않고 있어.”

“문제없다는 거지?”

“그렇지.”

다행이다.

세계수를 넘어뜨리는 일은 신전을 지키는 것만큼 중요하다. 단순히 일곱 번째 라운드를 끝내는 것이 아니라 단숨에 열 번째 라운드로 넘어갈 수 있는 길이 열리니 말이다.

쿠웅!

지면이 흔들렸다.

보스 몬스터가 나올 시간도 되지 않았고, 악마들의 큰 저항이 없는 상태에서 이 정도 위력은 정우의 도끼질밖에 없었다.

나는 세계수를 바라보며 담배를 태웠다.

후-.

“혹시 모르니 너를 보냈다는 거지?”

“응. 두 번째 보스는 중국 쪽에서 막기 힘들 수도 있다면서 도와주라고 했어.”

“…… 맞는 말이긴 한데. 네가 어떻게 도우려고?”

“어떻게? 그냥 악마 녀석을 이 검으로 확! 찔러 죽이는 거지.”

나는 김연희의 손을 잡아끌었다. 아까 전 내 공명파를 가볍게 막아낸 단검을 보기 위해서였다.

김연희가 화들짝 놀라며 내 손을 뿌리쳤다.

“뭐, 뭐야?!”

“그 검 좀 보려고.”

“아…. 그럼 그렇게 말을 해야지. 놀랐잖아.”

“놀랄 게 있나?”

내가 눈썹을 찌푸리자 그녀가 검을 넘겨주었다.

“내 검은 왜?”

“아까 내 공격을 막아내길래. 얼마나 대단한가 싶어서.”

“아! 그건 내 스킬이야. 이 검이 막은 게 아니라.”

“스킬?”

“어, 메카니아에서 여섯 번째 라운드를 클리어했을 때 다 같이 특전 받았잖아. 그때 받은 스킬이야.”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스킬인데?”

“으음…. 말해도 되나?”

“그럼 안 하려고?”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말해봐. 어차피 같은 편이잖아.”

김연희는 내게 말하고 싶지 않았는지 시선을 돌렸다. 시체 폭발을 가볍게 막아 낼 정도면 보통 스킬이 아닐 텐데.

대체 무엇일까?

나는 낫으로 그녀의 어깨를 툭! 치며 말을 이었다.

“말해보라고.”

“…… 어택 브레이커.”

“어택…. 브레이커? 그걸 네가 가지고 있다고?”

“으응.”

어택 브레이커.

그 어떤 공격이라도 타이밍만 맞추면 막아 낼 수 있는 최상급 스킬 중 하나다.

서버 내에서도 한 명밖에 구하지 못했다는 전설의 능력을 저 여자가 가지고 있다니.

내가 놀라움에 입을 떡 하고 벌렸다.

“굉장한데?”

“그런가?”

“당연하지. 어택 브레이커라면 최상급 방어 기술 중 하나잖아.”

“…… 그래?”

반응이 미적지근한 걸 보니 어택 브레이커에 대해 잘 모르는 게 분명했다.

“사용법은 알고 있고?”

“당연하지! 알고 있으니깐 아까 사용했지.”

“…… 그렇지. 근데 내가 묻는 건 그 스킬을 잘 사용할 수 있겠냐 없겠냐를 물은 거야.”

김연희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나를 쏘아보았다.

“잘 할 수 있거든?”

저 말이 사실이면 좋겠다.

어택 브레이커를 가지고 있고,

그 능력을 잘만 활용할 수 있다면 이 게임 후반부 최강 빌런이 될 확률이 있으니 말이다.

나는 기분 좋게 웃은 후 그녀에게 담배를 한 대 건네어 주었다.

“한 대 피울래?”

“나 고등학생이야.”

“뭐 어때, 법이 없는 세계인데.”

“…… 됐어.”

김연희가 내 손을 밀었다.

나는 하얀 담배 연기를 그녀의 얼굴에 뿜었다. 김연희가 콜록거리며 손을 휘저었다.

“뭐야!”

“뭐긴, 어른의 맛이지.”

“어른의 맛은 염병! 간접흡연은 범죄야.”

“예예, 신고하세요. 지옥에 경찰이 있으려나 모르겠네.”

“이런 나쁜…….”

대화를 나누던 내 손이 굳었다.

갑자기 오래전 일이 하나 떠올랐다.

그저 무심코 뱉은 단어.

지옥과 경찰이라는 말 때문이었다.

“잠깐만.”

“응?”

“생각해보니 왜 그 녀석이 안 보이지? 지옥의 경찰이라고 불리는 놈.”

김연희가 주위를 둘러보며 머리를 긁적이더니 내게 말했다.

“지옥의 경찰?”

“켈베로스. 그 녀석이 보이지를 않는데.”

분명 켈베로스가 지옥을 배회하고 있어야 하는데, 그 밑 등급인 헬하운드만 계속해서 보였다.

벨제붑의 걸작이라 불리는 ‘켈베로스’. 놈이 대체 어디로 사라진 걸까?

김연희가 행방을 알고 있다는 듯 밝은 표정을 지었다.

“켈베로스, 그 머리 세 개 달린 개새끼 말하는 거지?”

“맞아.”

“그 녀석 지금 세계수 근처에 있어.”

“…… 응?”

“플레이어 중 한 명이 데리고 다니던데? 자신이 테이밍에 성공했다면서.”

테이밍.

드루이드만이 사용할 수 있는 고유 능력이다. 정령의 힘으로 동물들을 자신의 밑으로 데려오는 힘.

“켈베로스를 테이밍했다고?”

“응. 확실해, 내가 두 눈으로 직접 봤으니깐.”

악마를 테이밍 할 수 있다는 말은 처음 들어보는데, 가능하다면 대체 누가 그런 짓을 한 거지?

‘…… 그런 건가.’

악마 테이밍 또한 시스템이 숨겨 놓은 일종의 이스터 에그인가 보다.

나는 헛웃음을 뱉었다.

내 작전의 핵심 중 하나인 놈을 같은 편이 데려갔다니, 부정적인 요인은 아니지만 아쉬웠다.

* * * * *

내 수하에 있는 놈들은 자동으로 악마를 사냥하는데다가, 성전 안은 김연희가 지켜주어 안전했다.

덕분에 내가 두 눈을 감고 잠시 졸 수 있었다.

얼마나 피곤했는지 눈꺼풀이 잠기는 동시에 꿈속으로 들어왔다.

한참 동안 어둠 속을 헤맸다.

과거 내가 플레이했던 PC 버전 ‘멸망의 땅’이 보였다.

지금의 내 심리를 대변하듯 그 안에서는 무궁무진한 활약을 했다.

일곱 번째 라운드의 모든 보스를 간단히 제압하고, 게임의 마지막이라 불리는 열다섯 번째까지 순식간에 도달했다.

그것도 나 혼자서 말이다.

마지막 라운드에 도착한 나는 무적이라 불리는 루시퍼와 다시 싸우게 되었다.

이번에는 그 전의 싸움과 달랐다.

녀석의 공격 패턴을 모두 외운데다가 마지막 녀석의 행동인 자폭까지 알고 있어 간단히 피할 수 있었다.

멸망 이후의 세계.

나는 그곳을 바라보며 게임의 끝을 맞이했다.

그저 꿈이지만 말이다.

새하얀 도화지 위에 열심히 그림을 그린 후, 다음 장으로 넘어가는 기분이었다.

새로운 시작.

-김천재, 김천재, 김천재!

김연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천천히 눈을 뜨니 내 앞에 홀로그램 시스템 메시지가 떠 있었다.

[나태의 상징인 대악마, ‘벨페고르’가 성전을 향해 다가오고 있습니다.]

[일곱 번째 라운드에 참여하신 플레이어 전원 본격적인 전투를 준비해주시기 바랍니다.]

[남은 시간: 07:59:58]

‘…… 벌써?’

잠시 눈을 감았다 떴는데 두 시간이 흘러 있었다. 김연희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김천재! 괜찮아?”

“…… 괜찮아. 잠시 졸았어.”

“근데 왜 비명을 질러?”

“비명? 내가 비명을 질렀나?”

“응!”

그럴 리가, 분명히 기분 좋은 꿈이었는데 말이다.

나는 고개를 꺾어 목에서 뼈소리를 낸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라고 비명을 지르디?”

“그냥 ‘악!’이라고만 했어.”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놀라게 해서 미안하군.”

“…… 괜찮은 거 맞지?”

“맞아.”

그녀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시선을 회피하며 전방에서 싸우고 있는 내 소환수들을 보았다.

단 한 마리의 병사도 쓰러지지 않았다.

“스켈레톤 병사, 전원 성전 앞으로 집합.”

내 명령에 스켈레톤 병사들이 줄지어서 모였다.

나는 스켈레톤 병사의 숫자를 세어 본 후 순서대로 놈들의 머리를 쳤다.

툭. 툭. 툭. 툭.

놈들의 머리 위로 V자 모양 선택 표시가 나타났다. 모든 스켈레톤 병사를 친 나는 조용히 독백했다.

“올 인원 조합.”

모든 스켈레톤 병사들의 뼈가 분리되어 한 곳으로 모여들었다.

타다다닥 소리와 함께 서로 맞붙기 시작한 뼛조각들이 하나의 거대한 물체가 되었다.

※ 신규 영입: 스켈레톤 킹 (83%)

레벨: 83

생명력: 10000/10000

마나: 0/0

체력: 55 공격: 55

방어: 55 속도: 55

▶왕의 힘 (마나 소모: 0)

-스켈레톤 마스터의 특별한 오오라가 전방 300M 안에 퍼집니다.

(적을 약화하고 아군을 강화합니다.)

▶만능 뼈 조합 (마나 소모: 0)

-신체 일부분을 사용하여 상황에 맞는 무기를 만듭니다.

(만들어진 무기의 강도는 방어력에 비례합니다.)

여든이 넘는 수의 스켈레톤 병사들이 하나가 되었다.

정확하게 따지자면 총 83마리.

스켈레톤 마스터의 완성도가 83%인 덕분에 알기 쉬웠다.

마스터의 발밑으로 번개 모양 붉은 오라가 지면을 기었다.

그의 오오라 범위를 나타내는 하나의 장치였다.

-키에에에엑!

스켈레톤 마스터가 자신의 옆구리에서 뼈 세 개를 빼내어 하나의 긴 막대기로 조립했다.

[스켈레톤 킹이 ‘강철 뼈 스피어’를 생성합니다.]

‘…… 좋아.’

녀석이 전투 준비를 마쳤다.

김연희가 내 스켈레톤 마스터를 보며 ‘우와!’ 하고 소리 냈다.

“기, 김천재. 이건 또 뭐야? 처음 보는 놈인데.”

“나도 몇 번 소환해보지 않은 녀석이야. 스켈레톤 마스터, 모든 해골 병사의 주인이지.”

“해골 병사의 주인?”

“어. 두 번째 라운드는 그놈이 나올 테니까 준비한 거야.”

김연희는 일곱 번째 라운드의 경험자여서 그런지, 내 말을 단숨에 이해했다.

“…… 아! 이제 나올 악마들 때문에 만든 거구나.”

“그렇지. 화력만 보자면 조합을 하지 않는 편이 낫긴 한데. 이번 전투는 이 녀석 효율이 제일 좋으니까.”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성전을 향해 달려오는 악마들의 모습이 바뀌었다.

임프와 헬하운드 따위의 하급 악마가 아니라 중세시대 기사처럼 완벽하게 무장을 하고 있는 중급 악마들.

이성이 없는 단순한 좀비와 스켈레톤 수준이 아닌, 공성 병기와 전략적 움직임이 가능한 언데드 군단이었다.

[시스템 메시지]

[나태의 벨페고르가 성전 인근까지 도착했습니다.]

[강력한 악마의 기운이 대지를 흔들기 시작합니다.]

성전을 향해 몰려오는 언데드 악마들이 보였다.

“김천재, 저기 저 여자 보여?”

“…… 보여.”

그들의 선봉을 지키는 고풍스러운 드레스를 입고 있는 젊은 여성.

지옥 불에 그을린 새하얀 드레스에 시들어 버린 꽃으로 만들어진 부케를 들고 있었다.

“…… 리치.”

불사의 몸을 가진 마녀.

벨페고르의 선봉장이다.

그녀가 축제를 즐기는 듯한 기쁜 얼굴로 성전을 향해 걸어오고 있다.

“캬하하하! 오랜만에 인간의 피를 맛볼 수 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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