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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화

나는 아스모데우스의 목에 날붙이를 가져다 대고, 협박을 시작했다.

“벨제붑의 위치를 말해라.”

생각보다 강단이 있는 놈이다.

총 세 번의 기회를 주었는데도 녀석은 입을 열지 않았다.

첫 번째로 말의 목을 베어냈고,

-히이이이잉!

두 번째로 염소의 목을 베어냈으며,

-메에에에!

“대답할 생각이 없나?”

“죽여라.”

“…… 알았다. 그럼, 여기까지 하도록 하지.”

세 번째로 사자의 목을 베어 냈다.

샥-

가볍게 곡선을 그린 일격에, 아스모데우스의 목이 날아갔다.

빌어먹을 자식이 절대로 말하지 않았다.

‘…… 뭐.’

벨제붑의 행방은 이미 알고 있다.

다만 그를 지키고 있는 루시퍼의 부하가 누군지 알고 싶었다. 그것만 알게 된다면 이번 라운드의 공략이 훨씬 쉬워지니 말이다.

앞서 상대한 메카니아의 거인들보다도 더욱더 쉽게 이길 수 있었다.

그 누구보다 이곳의 몬스터들을 잘 알고 있는 내게는 너무나도 쉬운 일이었다.

떨어진 세 개의 머리에 생명이 남아있는 듯 움찔거렸다.

남아있는 생명력 게이지를 확인한 나는 녀석의 심장을 향해 마지막 일격을 가했다.

[심판의 낫]

콰직!

날붙이가 가슴에 박힘과 동시에 녀석의 몸에서 검은 피가 뿜어져 나왔다.

몸이 기울어지며 지면을 향해 쓰러졌다.

쿵!

[일곱 번째 라운드의 첫 번째 보스, ‘아스모데우스’ 처리 임무에 성공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이번 라운드에 참여하신 모든 플레이어에게 대량의 경험치를 지급하도록 하겠습니다.]

내 머리 위로 황금빛이 한 바퀴 돌았다.

[이번 게임의 MVP인 ‘김천재’ 플레이어에게는 특전인 ‘갈색 스크롤’이 지급됩니다.]

일본 플레이어들이 승리의 함성을 질렀다. 보스 사냥을 마치자 녀석의 부하들이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성전의 다른 방향에서도 환호성이 들려왔다.

-이겼다! 이겼어! 정말 큰 싸움도 없이 간단히 이기다니!

-와…. 우리 진짜 일곱 번째 라운드를 이렇게 쉽게 끝내는 건가?

-고인물…. 정말 녀석만 따라가면 이 게임에서 나갈 수 있을 것 같아.

내 눈앞에 홀로그램이 번쩍이더니 갈색 스크롤 하나가 빙글빙글 돌았다.

[‘갈색 스크롤’은 부작용이 심한 물건이니 사용 시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부작용이 심한 물건이라.

설명이 참 친절하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그대로 잡아 펼쳤다.

촤르르륵.

스크롤 안에 있는 글자들이 허공에 날아오르더니 내 머릿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크윽.”

머리가 깨질 것 같이 아팠다.

갑자기 미칠 듯이 무언가가 먹고 싶었다. 입에서 침이 줄줄 흐를 만큼 식욕이 돋았다.

침을 꿀꺽 삼키자 이번에는 소변과 대변이 급하게 마려웠다.

나는 앞뒤로 힘을 빡 주어 참아냈다.

‘역시.’

부풀어 올랐던 배가 가라앉나 싶더니 눈이 천천히 감기며 급격히 졸음이 몰려왔다.

나는 손바닥을 펼쳐 뺨을 툭툭 쳤다.

정욕의 악마인 ‘아스모데우스’의 스크롤이 주는 욕구의 시련.

이어 송곳으로 엉덩이를 찌르는 듯한 느낌이 잠시 들더니 수 초 후 잠잠해졌다.

게임 내에서 보았던 설명과 똑같았다. 잠시의 고통 후에 찾아오는 악마의 능력.

[‘갈색 스크롤’ 흡수에 성공했습니다.]

[욕구를 참아 낼 수 있는 인내심을 갖게 됩니다.]

[모든 상태 이상 저향력 30% 증가.]

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좋아….’

상황이 정리되기 무섭게 한조가 나를 향해 달려왔다.

아주 화가 난 얼굴로 말이다.

“무슨 짓이냐!”

“뭐?”

“갈색 스크롤은 우리 쪽에서 회수하기로 한 물건이 아닌가? 그걸 왜 네가 습득한 거지?”

나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아니지. 너희는 그냥 아스모데우스를 잡기로 했었지, 스크롤을 가져가기로 하지는 않았어.”

“뭐? 사냥에는 암묵적인 룰이 있지 않은가! 전리품은 맡은 방향의 국가에서 가져가기로!”

“사냥에 실패해놓고 그런 말이 나와? 아스모데우스는 결국 내가 잡았잖아?”

틀린 말은 없었다.

한조의 그룹은 사냥에 실패해 녀석들에게 당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내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모두가 전멸했을 것.

그런데도 한조가 성을 내며 말을 이었다.

“무슨! 전부 계획에 있던 일이다!”

“…… 뭐라는 거야. 다 죽어가던 놈이 고맙다고는 못 할망정.”

“빌어먹을 조센징. 이래서 믿지 못하는-”

나는 손바닥을 뻗어 녀석을 조준했다. 악마의 시체가 들썩이자 한조가 대화를 멈추고 뒤로 물러났다.

그가 굳어있는 내 표정을 보더니 은근슬쩍 손을 허리춤에 올려 검의 손잡이를 잡았다.

“다시 한 번만 더 조센징이라는 말 해봐. 시대가 어느 때인데 그딴 말을 하고 있어.”

“……”

“그리고 잊지 마. 우리는 이번 라운드를 끝낼 때까지만 동맹 관계야.”

나는 이 대화를 끝으로 성전의 남쪽으로 돌아왔다.

한조 녀석과 그의 부하들이 억울해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내 말에 틀린 점은 없었다.

오히려 녀석들이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했을 뿐.

“…… 역시 죽여야 하나.”

일곱 번째 라운드 이후에는 녀석들과 얽힐 일도 없는데다가 딱히 친하지도 않다.

오히려 악감정만 남아있는 상대.

이번 라운드가 끝나면 녀석들도 전부 처리해야겠다.

녀석들은 오로지 이번 라운드를 클리어하기 위한 하나의 매개체일 뿐이니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그저 하나의 도구.

* * * * *

[남은 시간: 09:56:00]

첫 번째 보스를 물리치고 십 분쯤 흘렀을까? 악마들이 다시 성전을 향해 쳐들어오기 시작했다.

임프와 헬하운드 따위의 기본 몬스터였다.

나는 가웨인과 박규환에게 녀석들을 맡기고 잠시 생각했다.

분명 게임 속에서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면, 루시퍼에 의해 감금되어 고문당하고 있는 벨제붑은 얼마나 달라져 있을까?

나는 세계수를 바라보았다.

다들 일을 제대로 진행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계속해서 땅이 흔들리는 것으로 보아 도끼질은 멈추지 않는 것 같은데.

“…… 뭐 알아서 하겠지.”

플레이어가 한둘도 아니고 스무 명 가까이 있는데 하급 악마도 못 막아내겠나?

담배를 피우려 갑주에 꽂아놓은 라이터를 찾고 있는데,

스으으윽.

내 목에 차가운 칼날이 들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나를 죽이려 했다면 진즉에 검날이 목을 그었을 텐데 누굴까.

기척을 감추는 솜씨가 보통이 아닌데 말이다.

“…… 누구냐.”

내가 고개를 돌리려 하자 여자아이의 웃음소리와 함께 등에 묵직함이 느껴졌다.

“나야, 나!”

“김연희?”

“어!”

“네가 왜 여기 있어? 세계수는 어떻게 하고?”

김연희가 검을 거두더니 내게 엉겨 붙었다. 고양이가 친근함을 표시하듯 뺨을 내게 비비댔다.

“거긴 일이 너무 잘 풀리고 있어서. 나 보고 성전 확인 좀 하고 오래.”

“오, 다행이네.”

“여기는 아무 문제없고?”

나는 싱긋 웃어 보였다.

“있어 보여?”

“아니. 굉장하네, 악마들이 장난감처럼 박살이 나잖아?”

“…… 김연희.”

“응?”

“또 장난질이냐?”

부웅-

김연희가 높이 뛰어올라 내 낫을 피했다. 나는 주위에 있는 시체 하나를 그녀에게 던졌다.

[‘시체 폭발’을 시전 합니다.]

시체 위로 숫자 ‘5’가 나타나더니, 카운트하듯 숫자가 하나씩 줄어들었다.

4.

3.

2.

1.

쾅!

김연희가 단검을 빠르게 휘둘러 폭발을 막아냈다. 원소 공격에 가까운 시체 폭발을 겨우 저런 단검으로?

“하아- 김천재! 뭐 하는 짓이야?!”

“뭐 하긴, 빌어먹을 악마 녀석을 상대하는 중이지.”

“…… 뭐?”

“사탄, 왜 자꾸 내 근처에서 얼쩡거리는 거지?”

김연희가 천천히 뒤로 물러나며 내게 소리쳤다.

“무, 무슨 미친 소리야!”

“김연희는 내게 얼굴을 부빌 정도로 친하지 않아.”

“그건 반가워서 그런 거고.”

“반가워서? 그녀와 나는 그럴만한 상황이 아니야.”

조영기 사건으로 인해 나와의 관계가 굉장히 나쁜 이 시점에서 김연희의 몸으로 변하다니.

멍청한 놈.

“김! 천! 재! 이 나쁜 새끼. 대체 왜 나를 공격하는 건데? 그리고 나는 사탄이 아니라고!”

“아니라는 증거를 보여라.”

“…… 뭐?”

“사탄이 아니라면 그 검으로 손가락을 살짝 그어봐. 네가 진짜 김연희라면 붉은 피가 나올 테니.”

“피를 보여 달라는 거야?”

“그래.”

피 확인은 악마와 인간을 구별하는 제일 확실한 방법이다.

김연희가 토라진 듯한 표정으로 단검에 손가락을 살짝 그었다.

“…… 응?”

“봐! 보라고! 빨간 피지?”

사탄인 줄 알았던 그녀의 몸에서 새빨간 핏방울이 흘러내렸다. 나는 믿을 수 없어 눈을 부볐다.

다시 보아도 붉었다.

나는 그녀를 내려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 네가 진짜 김연희라고?”

* * * * *

크게 휘둘러진 황금 도끼가 세계수의 밑동을 크게 쳤다.

쿠웅!

세계수의 머리가 조금씩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정우 씨, 연희 씨는 어떻게 하죠?”

유소라가 안절부절못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 알아서 하겠죠. 저희랑 같이하고 싶지 않다는데 뭐, 주사나 주시겠어요?”

“…… 알겠습니다. 이번에도 붉은색인가요?”

“아뇨. 이번에는 노란색으로 줘보세요. 속도를 높이는 편이 더 잘 들어가는지 봐야겠어요.”

“옙.”

노란색 주사기가 꽂히자 마정우의 머리 위로 삼장의 모습이 잠깐 비쳤다.

유소라의 성장한 능력이 만들어낸 하나의 환영이었다.

[일곱 번째 라운드의 첫 번째 보스, ‘아스모데우스’ 처리 임무에 성공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마정우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다행이네.”

[MVP 플레이어로 ‘김천재’ 님이 선정되었습니다.]

[모두 축하해주시기 바랍니다.]

“MVP…. 김천재? 천재가 왜 첫 번째 보스를 잡은 거지?”

유소라가 방긋 웃으며 대답했다.

“여유가 있어서 도와준 것 아닐까요?”

“…… 가능하긴 한데 너무 위험한 행동이라서.”

“천재 씨는 원래 위험한 거 좋아하잖아요?”

마정우가 잠시 도끼를 내려놓고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아뇨, 천재는 위험한 플레이를 좋아하지 않아요. 후우- 그래서 게임 내에서도 직접 싸우지 않는 네크로맨서를 선택했던 거고.”

“…… 예?”

“다들 착각하는 게 하나 있는데, 천재는 저보다 이기적이고 남들 생각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놈입니다.”

유소라는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럴 만도 했다.

지금까지 김천재가 보여준 행동에서는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천재 씨가요? 제가 아는 천재 씨는 같은 그룹원들을 잘 챙겨주는-”

“…… 녀석이 무슨 바람이 불어서 지금 이곳에 있는 사람들을 다 같이 ‘라운드 점프’를 시켜주려는지 모르겠지만.”

마정우가 잠시 대화를 멈추었다.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입술을 오물거리더니 고개를 저으며 이야기를 그만두었다.

유소라는 그에게 마저 못한 이야기를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와! 진짜로 첫 번째 보스를 순식간에 잡았네?

-몇 분 걸렸지? 십…. 십오 분? 미친!

-확실하게 고인물은 뭔가 다르네. 나도 옛날에는 랭커였는데….

마정우는 술렁이는 플레이어들을 보며 기분 좋은 표정을 짓더니 다시 도끼를 들었다.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오라가 날붙이를 휘감았다.

야만 전사만이 가능한 야수 형태의 오라 중 사자의 모습이 그의 뒤로 보였다.

건곤일척(乾坤一擲)

“가자!”

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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