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화
아스모데우스.
정욕의 왕이자 일곱 번째 라운드의 첫 번째 게임을 담당하는 보스.
녀석이 모습을 드러냈다.
세 가지 동물의 머리를 가지고 있는 악마. 헤비급 보디빌더처럼 근육질인 녀석은 모든 악마 중에서 제일 힘이 강하다고 설명되어 있다.
악력이 너무 강하여 같은 대악마도 한 번 잡히면 빠져나갈 수 없다는 힘의 상징.
그의 목 위로 달린 말, 사자, 염소의 머리가 사방을 경계했다.
“정말 성전에 미카엘 녀석이 있는 건가?”
아스모데우스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의 음성이 들리자 근방에 있는 악마들이 잠시 주춤거렸다.
-예! 분명 사탄 녀석이 대천사와 여는 자가 저기 있다고 했습니다.
“빌어먹을 자식들. 여기가 어디라고….”
쿠웅!
놈이 걸을 때마다 땅이 울렸다.
어찌나 몸집이 컸는지 거인이 떠오를 정도였다. 그렇다고 타이탄만큼의 덩치는 아니었다.
내가 아는 선에서 표현하자면 일반적인 4층 빌라의 높이 정도.
성전을 지키는 모두가 긴장에 얼어붙었다.
물론 나를 제외한 다른 플레이어 말이다.
남쪽의 보스인 리바이어던은 이미 처리했으니 이쪽으로 올 일이 없었다.
“…… 역시.”
일본 플레이어가 있는 방향으로 녀석이 몸을 틀었다.
나는 몰려오는 동물형 악마들을 상대하며 아스모데우스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아스모데우스’가 지진 공명파를 준비합니다.]
“…… 전원 바닥에 몸을 바짝 엎드려라!”
내 명령에 모든 소환수가 몸을 바닥에 붙였다. 나 또한 납작이 엎드려 지진 공명파를 기다렸다.
우우우우우웅.
태풍이 몰아치듯 강력한 바람이 아스모데우스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이어 녀석이 두 주먹으로 땅을 치자,
콰광!
지면이 갈라지며 엄청난 공명이 일었다. 성전뿐만 아니라 지옥 전체가 흔들린다고 할 만큼 강력한 진동이었다.
바람이 칼날처럼 흩날려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을 찢어내기 시작했다.
성전을 향해 날아오던 악마들마저 종이처럼 찢겼다.
아스모데우스가 껄껄 웃으며 자신의 이마를 툭 하고 쳤다.
“허허허허!”
그의 부하들이 겁에 떨었다. 자신의 욕구를 위해서라면 적군 아군 가리지 않고 죽이는 정신 나간 캐릭터.
쿠궁.
지면의 흔들림이 멈췄다.
나는 빠르게 몸을 일으켜 세워 명령했다.
“전원 눈앞에 보이는 모든 악마를 빠르게 처리해라!”
내 수하에 있는 모든 생명체가 달렸다. 보스가 나타났다면 이곳에 소환되는 악마들의 숫자는 제한된다.
그 말은 즉,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악마들을 전부 처리하면 더는 나타나지 않는다는 뜻.
스켈레톤 병사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악마들을 상대했다.
과거 이 게임을 했던 플레이어라면, 일곱 번째 라운드까지 왔었던 자라면 모두 알 것이다.
범위 공격을 사용하는 아스모데우스 앞에서 네크로맨서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을.
지진 공명파 한 방에 지금까지 쌓아 놓은 모든 소환수가 무너질 수 있으니 말이다.
보스는 최대한 조심해야 한다.
남쪽을 찾아온 악마는 적어도 천 마리 이상이었다. 그에 비해 우리는 오 분의 일 정도밖에 안 되는 숫자였다.
캉!
돼지 악마의 삼지창이 스켈레톤 병사의 갑주에 막혔다.
스켈레톤 전사가 도끼를 휘둘러 놈의 손목을 베어냈다.
콰직!
다시 한 번 휘두른 도끼가 돼지를 두 갈래로 만들었다.
부웅-
팍!
상대가 되지 않았다.
내 병사들이 수적 열세를 극복하고 놈들을 전부 처리하는 데 걸린 시간은 삼십 분이 채 되지 않았다.
나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낫에 묻은 피를 닦아냈다.
‘여기까지.’
나는 조용해진 전장을 보았다.
눈에 보이는 놈들을 전부 처리하니, 역시나 새로운 녀석들이 오지 않았다.
휴식 시간.
다음 보스가 나타날 때까지 부대를 정비하며 쉴 수 있도록 만든 시스템 장치다.
나는 코에 박힌 비릿한 냄새를 지우기 위해 담배를 한 대 물었다.
쓰읍. 푸후-
“가웨인, 잠시 자리를 비울 테니 스켈레톤 병사들을 지휘하도록.”
“알겠습니다.”
“혹시나 사탄이 다시 나타난다면 바로 베어버려도 돼.”
“…… 옙. 어디로 가시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 북쪽. 그냥 주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그쪽 보상도 내가 가져야겠다.”
* * * * *
<북쪽 성전>
아스모데우스와 그의 부하들이 일본 측 플레이어와 충돌했다.
한조를 제외한 모두가 사무라이 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마치 이날을 위해 맞춰 입은듯한 복장이었다.
그들이 손에 수리검을 들고 동시에 주문을 외웠다.
[바람의 노래]
휘리릭-
투명한 수리검 수백 개가 바람에 흩날리더니 전방을 향해 날아갔다.
화살 세례처럼 쏟아진 수리검이 악마 무리를 덮쳤다.
파바바바박!
-키에에에엑!
일본 플레이어들이 수리검에 연결된 실에 불을 붙였다. 포탄의 심지처럼 빠르게 타들어 간 실이 수리검의 끝부분에 열을 올렸다.
쾅!
수리검이 터졌다.
두꺼운 날붙이 속에 화약이 들어있었나 보다.
이어 사무라이 복장의 일본 플레이어들이 두 손을 맞잡고 자신과 똑같은 모습의 나무 인형들을 수십, 수백 개를 만들어 냈다.
[그림자 분신술]
닌자의 몸에서 빠져나온 그림자가 나무 인형 속으로 들어갔다. 전투 준비를 마친 나무 인형들이 악마들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갔다.
악마와 인간들이 뒤엉켜 싸웠다.
다들 아스모데우스가 성전 바로 앞에 올 때까지 앞으로 나가지 않았다.
그저 멀리서 놈의 부하들만 견제할 뿐.
쿠웅!
지면이 흔들렸다.
성전을 향해 다가오는 아스모데우스의 발걸음이었다.
“겨우 이 정도 숫자로 나를 막으려 한 것인가? 나약한 인간 주제에.”
한조가 놈을 향해 검지를 까딱거렸다.
“오너라.”
“가소로운 놈.”
[‘아스모데우스’가 호르몬을 분출해 독가스를 뿜어내기 시작합니다.]
[그의 몸에서 나오는 초록 연기는 맹독이니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일본 플레이어들이 기다렸다는 듯 커다란 부채를 꺼내어 아스모데우스를 향해 흔들었다.
초록 연기가 성전 반대 방향으로 날아가 다른 악마들에게 퍼져갔다.
가스에 스친 동물형 악마들이 한둘씩 쓰러졌다.
-키에에엑!
-아, 아스모데우스 님 제발!
-가스를 멈춰주세요!
“…… 그대로 진격한다.”
가스는 멈추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부하들이 쓰러지든지 말든지 신경 쓰지 않았다.
사무라이들이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들 중 대장급으로 보이는 자가 한조에게 달려와 물었다.
“하, 한조 님. 어떻게 합니까?”
“…… 글쎄다. 원래대로라면 녀석이 어쩔 수 없이 가스를 멈추어야 하는데 말이야.”
“빨리 대응책을 알려 주십쇼!”
한조가 미간을 찌푸리더니 다른 플레이어들에게 명령했다.
“모두 화술(火術)을 준비하도록 해라. 성전 앞을 불바다로 만들어.”
“…… 예?”
“저 가스는 불에 취약하다. 모두 태워버리도록 해.”
“저 악마들은 불에 내성이 있는 놈들인데요?”
“내가 놈들을 태우라고 했나? 가스를 태우라고 했지.”
“…… 아!”
사무라이들이 성전 앞에 일렬로 줄을 섰다. 그리곤 입에 손바닥을 살짝 가져다 대고 크게 공기를 들이마시더니,
쓰읍-.
전방을 향해 크게 내뿜었다.
[화염방사]
푸후!
서른 명에 가까운 플레이어가 동시에 화염을 뿜어대자, 주위가 불길에 휩싸였다.
지면을 뚫고 흘러나오는 지옥의 불길과는 다르게,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순간이었다.
아스모데우스의 가스에 불길이 붙으며 크게 터졌다.
쾅!
불기둥이 치솟아 올랐다.
닌자 중 한 명이 독백했다.
“성공인가….”
모두가 숨을 죽이고 불기둥을 쳐다보았다.
아스모데우스의 생사를 확인하던 한조가 검을 뽑아 들더니 크게 소리쳤다.
“온다!”
쿠구구구궁.
불길에 휩싸인 아스모데우스가 분노한 얼굴로 성전을 향해 달려왔다.
[야수의 돌진]
“까부는구나!”
모두가 놀라서 뒤로 물러날 때,
한조 혼자 앞으로 뛰었다.
“모두 뒤로 물러나라!”
한조가 한쪽 손의 붕대를 풀었다. 그의 손목 위로 이 게임 내에 금지된 문장이 보였다.
[01633EDB]
운영진들만이 알고 있는 치트키.
‘무한의 마력’
전체공개라고 말해도 될 정도로 웬만한 플레이어들은 전부 알고 있는 코드다.
근데,
과거에는 아무도 사용하지 않았다.
무한한 마력을 얻는 대신 캐릭터의 생명력이 지속해서 깎여 내려가는 ‘저주받은 몸’을 얻게 되니깐.
[그림자 봉인]
한조의 몸에서 빠져나온 그림자가 검날 속으로 들어갔다.
상대방에게 강제로 그림자를 주입해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스킬.
일본 플레이어 중 오직 한조만이 터득했다는 비기다.
쉬익-
크게 휘두른 한조의 검날이 아스모데우스의 사자머리 미간을 찔렀다.
팍!
가죽을 뚫지 못했다.
[공격 실패로 인해 한조 플레이어의 ‘그림자 봉인’ 스킬이 취소됩니다.]
“뭐?!”
아스모데우스의 말 머리와 염소 머리가 고개를 들어 한조의 위치를 확인했다.
“잡았다, 요놈.”
피해보려 했지만 아스모데우스의 염소 머리가 혀를 내밀어 몸을 묶었다.
말 머리가 묶인 한조를 보더니 기분 좋게 웃었다.
-히이이잉!
아스모데우스는 근육질의 거대한 두 팔을 머리 위로 올려 한조를 강하게 잡았다.
그 압력으로 한조가 비명을 질렀다.
“크하아악! 제, 제길!”
사무라이들이 표창을 날려 아스모데우스의 손가락을 공격해 보았다. 아무런 상처도 주지 못했다. 한조가 온 힘을 다해 발버둥 쳐보았지만 벗어나기에는 무리였다.
그는 이 지옥에서 제일 강력한 아귀힘을 가진 존재였으니까.
아스모데우스의 세 머리가 크게 웃었다.
“크하하하하! 이 생쥐 같은 녀석.”
사자 머리가 입을 크게 벌렸다. 말 머리와 염소 머리가 군침이 돌았는지 입맛을 다셨다.
한조가 사자 입에 들어가기 직전.
쉬이이이이익.
바람 가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콰직!
아스모데우스의 손가락이 잘려 나갔다.
“카학!”
* * * * *
손가락이 떨어지는 동시에 한조 녀석이 주문을 외웠다.
‘펑!’ 소리와 함께 통나무가 튀어나오며 한조가 사라졌다.
눈 깜짝할 새에 그가 성전 앞으로 이동해 있었다.
“…… 김천재.”
내가 아스모데우스의 염소 머리 뿔을 잡고 환하게 웃어 보였다.
“어이, 맡겨 달라더니 이게 뭐야?”
“어떻게 왔지?”
“어떻게 오긴. 전부 쓸어버리고 왔지.”
“…… 남쪽을 비워둔 건가?”
나는 검지를 좌우로 흔들었다.
“노, 남쪽은 내 부하들이 잘 지키고 있어.”
내가 주먹을 높이 치켜올리자 박규환이 내 수하에 있는 악마 병사들을 이끌고 왔다.
데몬을 타고 날고 있는 놈의 모습이 위풍당당했다.
“시작해도 되겠습니까?”
“그래. 전부 쓸어버려.”
“…… 옙.”
탕!
총신이 울렸다.
탄에 맞은 악마들이 한둘 쓰러졌다.
-키에에엑!
검은 피부의 악마와 붉은 피부의 악마가 뒤엉켜 싸웠다. 똑같은 수준의 악마 병사라면, 내 밑에서 싸우는 놈이 더욱 강했다.
심판의 낫이 뿜어내는 동료 강화 오라를 받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눈치를 보던 일본 측 플레이어들이 기세를 이어 전장에 참가했다.
삼십여 명 정도밖에 되지 않았던 그들이 분신술을 사용해 몸을 몇 배로 불려 냈다.
대격전의 시작.
나는 아스모데우스의 목에 낫을 들이밀고 조용히 속삭였다.
“아스모데우스, 벨제붑을 불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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