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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화

박규환과 가웨인이 검을 거두지 않았다. 나는 그들의 움직임을 살피며 주위를 살폈다.

다행히도 다른 소환수들은 제정신이었다.

“…… 그래서, 너희 둘 중에 사탄이 있다는 말이지?”

둘이 동시에 대답했다.

-예.

사탄이 나를 갑자기 공격할 이유가 없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분명 리바이어던을 처리하기 위해서 나와 손을 잡는다고 했었는데, 설마 놈이 사라진 것을 눈치 챈 건가?

아니지.

흔적조차 없는데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내가 리바이어던을 혼자 소멸시킨 것도 모를 텐데 말이다.

나는 둘의 눈을 쳐다보았다.

‘사탄이라….’

그리곤 명령을 소환창을 확인하며 명령을 내렸다.

“둘 다 한 걸음씩 뒤로 물러나도록 해라.”

가웨인이 먼저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뒤이어 박규환이 천천히 뒤로 발을 뻗었다.

소환창에는 둘 다 명령 대기 중으로 표시되는 것으로 보아 아무 문제가 없는데.

어찌하여 서로를 사탄이라고 하는 것인가.

“…… 박규환, 너와 내가 어디서부터 동행했지?”

그가 망설임 없이 바로 대답했다.

“지하철입니다.”

“그럼 가웨인, 너는 나와 어디서부터 동행했지?”

“정복자의 무덤에서부터입니다. 주군, 저 녀석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마십시오. 언제 칼을 들이밀지 모릅니다.”

질투와 시기로는 이런 상황이 만들어질 리가 없다. 서로를 죽일 정도로 강한 살기를 뿜고 있는데, 서로가 내 명령 안에서 움직였다면 분명 무슨 일이 있었다.

나는 둘의 무기를 거두게 한 후 다시 물었다.

“가웨인, 내가 없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봐.”

“…… 갑자기 악마들 사이에 사탄이 나타나서 박규환의 모습으로 변해 저를 공격했습니다.”

“그럼 진짜 박규환은 어디에 있지?”

“그건 모르겠습니다. 녀석이 변하는 순간 박규환은 사라졌습니다.”

사탄이 박규환으로 변하고,

박규환은 사라졌다.

“…… 알았다. 그럼 박규환, 너도 아까 전 상황을 말해봐.”

박규환이 도깨비 가면을 벗으며 말했다. 그의 이마에 뚫려있는 총구멍이 보였다.

“우선, 제가 진짜 박규환이라는 것부터 증명하겠습니다. 제 이마에 있는 구멍, 지하철에서 제 동료였던 군인에게 총탄 맞아서 생긴 상처입니다.”

“…… 그리고?”

“제가 사탄이었다면 모를 사실 중 하나, 리바이어던의 행방입니다.”

내가 깜짝 놀라서 눈을 부릅떴다.

“리바이어던의 행방?”

“예. 사탄은 그 사실을 모르니 리바이어던의 행방이 제가 진짜 박규환임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나는 생각에 잠겼다.

현재 벌어진 상황에서 어떠한 결과가 나오더라도 좋은 일이 아니다.

어쨌든 둘 중에 사탄이 있다는 말이니깐.

사탄 녀석이 대체 왜 이런 행동을 하는 거지? 분명 손을 잡는다고 했는데 말이다.

“…… 가웨인, 너는 리바이어던의 행방을 말할 수 있나?”

가웨인이 고개를 저었다.

“죄송합니다.”

“모른다는 거지?”

“아닙니다. 알고 있지만 말할 수 없습니다.”

박규환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모르니 말할 수 없겠지.”

“……”

“더러운 호랑이 녀석.”

“……”

나는 낫의 손잡이를 꽉 쥐고 박규환에게 물었다.

“박규환.”

“예.”

“…… 죽어라.”

부웅-.

캉!

내가 휘두른 낫을 박규환이 맨손으로 잡아냈다.

‘역시.’

검술의 달인인 박규환이 날붙이를 몸으로 직접 받아낸다고?

“왜, 왜 그러십니까!”

“……”

나는 녀석의 정강이를 걷어찬 후, 턱을 팔꿈치로 가격했다. 박규환이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다. 이어지는 내 주먹세례를 버티기 힘들었는지 녀석이 낫의 날붙이를 놓고 뒤로 뛰어올랐다.

가웨인이 대검을 휘둘러 녀석의 목을 노렸다.

박규환이 재빠른 몸놀림으로 공격을 피하더니 계단 밑으로 점프를 뛰었다.

“목표물 전환!”

내가 검지로 박규환을 가리켰다.

[‘김천재’ 플레이어의 수하에 있는 모든 소환수의 목표물이 전환됩니다.]

스켈레톤 궁수들이 박규환을 향해 활을 쏘았다. 스켈레톤 마법사가 땅을 얼려 그의 발을 묶으려 했다.

모두의 공격이 우습다는 듯 박규환이 검을 휘둘러 막아냈다.

캉! 캉캉!

박규환이 입가에 흘러내리는 피를 손등으로 닦아냈다. 이어 비열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 크하하하하!”

나는 그를 향해 낫을 겨누며 말했다.

“사탄, 이게 무슨 짓이지?”

박규환의 몸이 찰흙처럼 뒤틀리며 형태를 바꾸더니 검은 날개를 가진 사탄의 모습이 되었다.

“내가 가짜인 건 어떻게 알았지?”

“내 질문에 먼저 대답해라. 왜 내게 덤비는 거냐?”

“왜 덤비냐니? 나는 덤빈 적 없는데.”

“…… 뭐?”

“그저 장난 한번 쳐본 거야. 저스트 키딩, 악마의 놀이 중 하나지.”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보통은 목숨을 건 일에 대해서는 장난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인간의 상식선에서는 말이다.

가웨인이 오라를 뿜으며 사탄을 향해 걸어갔다.

나는 손을 뻗어 그를 멈춘 후 사탄에게 말했다.

“박규환은 어디에 있지?”

“이번에는 내 질문에 대답하지? 내가 가짜인 건 어떻게 안 거지?”

“…… 간단하지. 박규환은 명령 외에 이야기를 직접 말 할 정도로 어리석지 않아.”

사탄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언데드 주제에 생각한단 말인가?”

“당연하지. 그의 몸속에 있는 영혼은 그대로니깐.”

“…… 내가 녀석을 너무 얕봤군.”

“그래서, 박규환은 어디 있나?”

신경전이라고 해야 하나? 녀석이 대답 없이 나를 노려보았다. 나 또한 눈을 피하지 않고 그를 보았다.

놈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사악한 기운이 주변을 삼키는 것 같았다.

녀석은 분명 대악마 중에서도 전투 능력이 그리 뛰어난 편이 아닐 텐데, 이상하게 불길한 기운이 엄습했다.

왠지 내가 질 수도 있다는 느낌 말이다.

사탄이 앞으로 한 발자국 걸어왔다.

놈의 움직임과 동시에 가웨인이 움찔거렸다.

“…… 푸하하하! 내 장난이 너무 심했나?”

“뭐?”

“아까 말했잖아 장난이라고. 자, 여기 있다 네 부하 박. 규. 환.”

사탄이 손을 위에서 아래로 긋자 ‘거울의 방’이 열리며 그 안에서 박규환이 나왔다.

상처가 하나도 없는 것으로 보아 전투가 벌어지지는 않은 것 같았다.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의아한 행동.

대체 왜 이런 짓을 한 것일까?

사탄이 하늘로 날아오르더니 내게 말했다.

“그래서 리바이어던은 지금 어디에 있지?”

“아까 알고 있다면서?”

“그…. 인간의 언어로 하자면 딱 그거지.”

“뭐.”

“구. 라.”

구라? 순간 구라가 무슨 단어인가 생각했다. 많이 들어보고 쓰기도 했지만, 악마의 입에서 나오니 생소했다.

‘구라….’

거짓말.

“장난하냐?”

“아까부터 말했잖아. 장난이라고.”

“이…. 새끼가.”

스켈레톤 궁수들이 내 신호에 맞춰 사탄에게 화살을 발사했다. 사탄이 배를 잡고 웃으며 화살을 맞아 주었다.

최상급 스켈레톤 병사인 데다가 강철 모드인데, 아무런 흠집도 내지 못했다.

“간지럽군!”

“…… 너, 루시퍼에게 새로운 힘을 받았구나?”

사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음? 어떻게 알았지?”

“네 몸. 아까와 전혀 다르니깐.”

“…… 정말 눈치가 빠른 녀석이군.”

-쿠웩, 쿠에에엑! 쿠웩!

성전을 향해 몰려온 악마 중 한 녀석이 토사체를 뿜으며 땅에 쓰러졌다.

쿵!

사탄이 한둘씩 쓰러지는 악마 병사들을 보더니 내게 말했다.

“성전을 넘겨라. 네놈도 미카엘을 잡으려 하잖아?”

그 사실을 아직도 믿고 있는 건가.

“아니, 성전은 넘기지 않는다. 너와 내 계약은 리바이어던에 관한 것뿐이야. 미카엘은 내가 알아서 처리할 거고.”

“계약 내용은 나도 알고 있어. 하지만 네가 계약을 위반하고 리바이어던의 행방을 내게 알려주지 않고 있잖아?”

“모르니깐.”

“거짓말하지 마라.”

“정말이야, 지금 그 녀석이 어디 있는지는 나도 몰라. 연락이 되면 알려준다고 했잖아.”

정말 모른다.

죽어버렸으니 녀석의 행방을 알 수 있는 자는 ‘신’ 밖에 없다.

신이란 곧 이 게임 내에서 운영진이라 불리는 자들.

[시스템 메시지]

[‘사탄’이 심안 능력으로 당신의 생각을 들여다봅니다.]

나는 놈을 약 올리듯 딴청을 피우며 귀를 후벼팠다.

“…… 정말이군.”

“그렇지? 네 능력 중 하나인 ‘심안’으로 알 수 있잖아.”

“……!! 시, 심안의 존재는 어떻게 알았지?”

“…… 글쎄다.”

시스템이 알려줬다고 말하면 뭐라고 생각하려나?

“김천재, 리바이어던에 관한 계약을 뒤로 하고. 성전을 내게 넘기면 지금 타이탄이 지배하고 있는 메카니아를 네게 주도록 하지. 어떤가? 내 제안이.”

“필요 없어.”

“그럼 무엇이 필요하지?”

“…… 모든 것.”

나는 녀석을 향해 손을 뻗었다.

[‘아이언 메이든’을 시전 합니다.]

투명한 가시들이 날아올라 사탄의 몸을 감싸 안았다. 녀석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몸을 털어냈다.

반사적인 행동.

이 능력에 당한 녀석들의 반응은 전부 똑같았다.

“이, 이게 뭐지?”

역시 내 저주에 관해서 모르고 있다.

‘…… 확인 완료.’

나는 플레이어가 모르는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들이 얼마나 변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해졌다.

순수 악, 악마 중 제일 약아빠진 녀석이 내 저주에 대해서 모르고 있다.

그럼 다른 대악마들도 알 턱이 없겠지.

이곳에 도착한 ‘네크로맨서’ 플레이어는 내가 최초니깐.

“모든 것이라니?”

“…… 글쎄, 리바이어던에 관한 약속은 지키도록 할 테니 우선 꺼져. 네 얼굴은 보기만 해도 역겨우니깐.”

* * * * *

사탄이 성과 없이 돌아갔다.

녀석이 온 이유는 충분히 알았다.

성전과 리바이어던.

둘 중에서도 리바이어던의 행방에 대해 더욱 집착했다. 녀석이 이렇게까지 서둘러 움직이려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지옥의 계약까지 했으면 내가 약속을 어길 수 없는 건 알고 있을 텐데.

‘혹시 그 녀석 때문인가?’

일곱 대악마 중 리바이어던과 함께 루시퍼에게 반감을 품은 의형제.

‘벨제붑’

두 놈이 뭉치기 전에 빨리 일을 처리하려는 것이구나.

“박규환, 몸에 이상은?”

“없습니다.”

“그래, 그럼 다시 데몬과 함께 움직이도록 해라.”

“…… 옙.”

박규환이 멀뚱히 서 있는 가웨인에게 눈인사를 하더니 데몬의 등에 올라탔다.

가웨인이 그의 인사를 받아 고개를 끄덕이더니 스켈레톤 병사들을 정리했다.

“밀집 대형!”

그의 외침에 스켈레톤 병사들이 서로 밀집하여 붙었다.

첫 번째 보스 라운드가 시작되어서 그런지 성전을 찾아오는 몬스터의 종류가 바뀌었다.

지금까지 발록의 명령을 따르는 임프와 헬하운드, 데몬의 수하에 있는 가고일들이 주류였다면.

지금 먼 곳에서 다가오는 놈들은 한층 더 강해진 짐승형 악마였다.

날개 달린 흡혈 원숭이.

머리가 세 개인 독수리.

커다란 워해머를 어깨에 걸치고 두 발로 걷는 황소.

밀짚모자에 농기구를 들고 다니는 돼지까지.

“긴장을 늦추지 마라!”

내 명령에 모두가 함성으로 대답했다.

[‘아스모데우스’가 성전 인근에 도착했습니다.]

[플레이어는 전원 대악마 중 한 명인 ‘정욕의 악마’ 아스모데우스를 맞을 준비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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