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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화

대천사 중 한 명인 미카엘이 모습을 드러냈다.

조영기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황금빛 천사의 모습만이 보였다.

모든 플레이어의 무릎이 저절로 굽혀지며 그에게 고개를 숙였다.

[일곱 번째 라운드의 메인 이벤트 ‘치유의 여신, 라파엘! 그녀가 부활한다.’ 가 시작됩니다.]

[현 시간부로 지옥에 있는 모든 악마가 성전을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임무: 대천사의 부활을 기다리며 지옥의 악마들을 무찌르시오.]

[보상: 고대 유물]

[남은 시간: 11:59:58]

이 게임의 최악의 라운드라 불리는 곳의 이벤트가 드디어 시작되었다.

보호막 같은 얇은 빛이 우리 몸에 둘렸다. 난이도마다 다른 두께를 보이는 이 막은 악마 저항력을 높여주는 일종의 시스템 장치였다.

이렇게까지 얇은 막은 처음 보았는데, 우리 그룹 때문에 난이도가 ‘불지옥’으로 올라가서 그런가 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미카엘에게 미리 받은 황금 오라가 얇은 막과 합쳐졌다는 것이다.

나는 천천히 몸을 움직여 보였다.

움직이지 않았던 무릎이 천천히 펴졌다. 내가 움직이자 다른 플레이어들도 눈치를 보며 슬슬 일어났다.

-드디어 시작인가, 이 게임의 첫 번째 고비가.

-여기서만 살아남는다면….

-그나저나 저 천사 녀석은 게임에서 본 것보다 훨씬 큰 것 같구만.

우리는 고개를 들어 미카엘의 모습을 보았다.

그녀가 라파엘의 가슴에 박힌 검의 손잡이를 조금씩 당기고 있다.

키이이이이익!

[‘미카엘’이 라파엘의 봉인을 해제하고 있습니다.]

이번 라운드의 첫 번째 흐름은 미카엘이 라파엘의 봉인을 해제하는 동시에 끝난다.

즉, 저 검만 뽑히면 게임 종료.

말로만 들으면 쉬워 보이지만 지옥에 있는 모든 악마의 공격을 막아 이곳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다.

멸망이라는 단어를 인간 세상이 아니라, 지옥에 보여주는 것이 이번 라운드의 핵심.

나는 미카엘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미카엘!”

내 외침에 그녀가 고개를 내려 보았다.

“‘여는 자’로군.”

“천사 부름은 몇 번 사용할 수 있지?”

“…… 천사의 부름을 알고 있는가.”

“그래, 바쁜 거 알고 있으니깐 간단하게 대답해줘. 몇 번이야?”

천사의 부름.

위급 상황에서 천사들의 도움을 받는 능력이다. 그녀의 힘으로 성역에 있는 자들을 부르는 스킬.

그녀가 손가락을 세 개 펼쳐 보였다.

‘세 개라.’

“…… 알았어.”

그녀의 대답을 들은 플레이어들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세 번이라면 굉장히 많은 숫자.

시스템이 앞선 내 플레이를 높게 평가해준 덕분에 얻은 기회인가보다.

리더의 역량에 따라 천사의 부름 횟수가 달라지니, 내 예상은 확실하다고 보아도 좋았다.

내가 손짓하자 다른 국가의 플레이어들이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곳에 모인 플레이어들은 게임에 대해 하나씩 설명해주지 않아도 웬만큼은 알고 있는 사람들.

각자 맡은 바의 역할을 알고 있는 자들이다.

정우가 담배를 태우며 내 옆으로 다가왔다.

“김천재, 준비는 다 됐어.”

“다른 플레이어들은 전부 동의했고?”

“어, 일본만 빼고. 늦게 와서 이야기를 못 했어. 네가 따로 해야 할 것 같아.”

“…… 알았어.”

나는 대열을 정비하고 있는 일본 플레이어들 사이에 들어가 한조를 따로 불렀다.

“잠깐 이야기 좀 하자.”

한조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신의 부하들을 다른 곳으로 보냈다.

“…… 무슨 일이지?”

“작전에 대해서는 들었나?”

“작전?”

“어, 작전.”

그는 따로 들은 게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들은 적 없다.”

“…… 복잡하니 간단하게 설명해 줄게. 이번 라운드에 참여한 사람들은 전부 10번째 라운드로 점프할 거야 ”

“여덟 번째와 아홉 번째 라운드를 거치지 않는다는 말인가?”

“그렇지. 한 번에 열 번째 라운드로 가니깐.”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가능한가?”

“가능해. 나는 그 방법을 알고 있거든.”

잠깐이지만 내 말을 못 믿겠다는 눈빛을 지었다. 석연찮은 표정과 함께 일그러진 미간이 그의 생각을 대변했다.

“김천재.”

“말해.”

“나는 이 빌어먹을 곳에서 빨리 나갈 수 있다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 동의한다는 건가?”

“그래.”

알았다고 하면 될 걸 말을 참 어렵게 한다.

“…… 알았다. 그럼 동쪽 수비를 잘 부탁한다.”

“너희도 남쪽을 잘 처리하도록 해라. 그쪽이 제일 위험한 곳이지 않은가?”

“내 걱정은 할 필요 없어.”

“내 걱정도 할 필요 없다.”

나는 고개를 까딱거리며 그에게 등을 돌렸다. 사이가 좋지 않은 상태에서 이 정도면 서로 충분한 만큼의 대화를 나누었다고 생각한다.

* * * * *

성전 밖으로 나오자 셀 수도 없이 많은 악마가 군대를 이끌고 오는 모습이 보였다.

소형 악마인 임프부터 시작하여 중형인 가고일과 중형인 헬하운드. 게다가 대형 몬스터 중에서도 최상급에 속하는 악마 종 발록까지 모습을 드러냈다.

컹! 컹!

성전 앞까지 도착한 헬하운드가 우리를 향해 짖었다.

부웅-

콰직!

내 스켈레톤 병사 중 한 명이 도끼를 휘둘러 놈의 목을 쳐냈다. 헬 하운드가 쓰러지자 임프 수십 마리가 내 스켈레톤 병사를 향해 달려들었다.

내 수하에 있는 놈들과 악마들이 서로 뒤엉켜 싸우기 시작했다.

“허허-. 정우야, 저 새끼들 기세가 대단한데?”

마정우가 도끼를 어깨에 걸치고 코를 후벼파며 내게 말했다.

“막지 못하면 녀석들도 전부 사라지니깐. 그나저나 우리는 언제 출발하면 되냐?”

나는 담배에 불을 붙이며 대답했다.

치직. 치지직.

쓰읍- 푸후.

“바로 출발해.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깐.”

“혼자 가능하겠어?”

“…… 물론.”

녀석과 내가 주먹을 맞부딪쳤다.

정우가 한국 소속의 플레이어들을 모으더니 성전 밖으로 향했다.

이곳에서 멀지 않는 곳에 있는 세계수에 가기 위해서다. 다들 혼자 남아있는 나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보았다.

-정말 저 사람만 두고 저희끼리 가나요?

-죽고 말 거야. 지금 우리 눈앞에 있는 악마만 하더라도 천 마리 이상인데….

-고, 고인물님.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이곳은 마의 라운드라 불리는 일곱 번째 라운드입니다.

나는 좋은 미소로 그들을 향해 손짓했다.

“예, 그리고 고인물이라고 부르지 마세요. 제 이름은 김천재입니다.”

-아, 넵!

어차피 이제부터 남쪽에서 몰려오는 악마 중 보스급은 없으니 나 혼자서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 혼자라.’

나와 어울리지는 않는 단어.

그래도 나쁘지는 않았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혼자인 것으로 보이지만, 내 곁에는 항상 소환수들이 있으니깐.

나는 성전 계단에 앉아 조용히 손을 뻗었다.

“리바이브.”

[지옥의 악마들에게 영혼의 숨결을 불어 넣습니다.]

내 하수인에게 당한 지옥의 악마들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붉은 피부를 가진 악마들이었지만, 내 밑에서는 검은 피부로 바뀌었다.

임프도.

헬 하운드도.

가고일도.

적과 아군을 구분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시스템인가 보구나.

“스켈레톤 소환.”

[악마의 뼈로 만들어진 스켈레톤 병사를 일으켜 세웁니다.]

[공격력이 15% 증가합니다.]

[방어력이 15% 하락합니다.]

‘리바이브’와 ‘스켈레톤 소환’.

둘 다 지금까지 보았던 메시지와는 달랐다. 앞선 라운드와는 다른 매개체 덕분에 바뀐 것이다.

이곳에서 만들어진 스켈레톤 전사들의 모습은 조금 달랐다.

똑같은 강철 소재의 스켈레톤이었지만, 몸에 불이 붙어 있었다.

[불타는 강철 스켈레톤]

두 가지의 속성을 동시에 가진 병사들이 되었다.

오직 지옥에서만 만들 수 있는 특수한 소환물.

만족스럽다.

하나둘씩 늘어나기 시작한 내 하수인들이 금세 백 마리가 넘는 중대급의 숫자가 되었다.

[인구수가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160/160]

많으면 많다고, 적으면 적다고 할 수도 있는 숫자.

군단이라고 부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그만큼의 위력을 낼 수 있는 병사들이었다.

터벅. 터벅. 터벅. 터벅.

가웨인이 결계 앞까지 걸어와 내게 물었다.

“주군, 저 녀석은 제가 맡아도 되겠습니까?”

가웨인이 가리키는 곳을 보니 대형 악마인 ‘발록’이 채찍을 휘두르며 다가오고 있었다.

“혼자?”

“예.”

“…… 맡기마.”

가웨인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명령을 받들겠습니다.”

박규환이 질 수 없다는 듯 옆으로 붙어 내게 물었다.

“대장, 저 녀석은 제가 맡도록 하겠습니다.”

“…… 데몬을?”

가고일들의 대장 데몬.

루시퍼와 함께 신에게 반기를 든 천사들이 타락하여 변한 놈들이다. 천사 시절 부관의 위치에 있는 자들이 변했다고 하던데, 괜찮으려나?

가고일보다 더욱 큰 날개와 날카로운 손톱을 가진 저놈은 발록에 맘먹는 힘을 가진 대형 몬스터.

“예.”

“괜찮겠어?”

“간단합니다.”

박규환은 전설급인 가웨인에 비해 너무나도 평범한 존재였다.

서로 라이벌 의식이 있는 것 같은데, 무리하지 않아야 할 텐데.

“…… 알았다. 저놈은 네게 맡기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박규환이 기분 좋은 표정을 지었다.

녀석과 내 친밀도가 높은 편이기에 거절할 수 없었다.

자신이 직접 내뱉은 말이니 믿는 수밖에.

다른 소환수 같은 경우에는 쓰러져도 상관없지만, 박규환과 가웨인은 특별했다.

그 증거로 저 둘만 음소거 모드를 하지 않았을 정도니깐 말이다.

“후우.”

가웨인과 박규환의 든든한 모습 덕분에 내 기세가 올랐다.

나는 담뱃재를 털어내며 새로운 명령을 전달했다.

“스켈레톤, 입구를 막아라.”

강철 스켈레톤 병사들이 일렬로 서서 성전으로 들어오는 계단 입구를 막았다.

쿵.

방패를 들고 있는 스켈레톤 전사들이 전방을 지키고,

마법을 사용할 줄 아는 놈들이 그 뒤로 붙었다.

마지막 줄에 선 놈들은 활을 든 스켈레톤 병사들.

세 줄로 서 있는 놈들의 모습을 보니, 마치 고대 그리스의 스파르타 전사들이 페르시아인을 막아서는 것처럼 단단함이 느껴졌다.

-키에에에엑!

가고일이 성전을 향해 날아들었다. 스켈레톤 병사 중 활을 든 궁수들이 쏘아 놈들을 떨어뜨렸다.

부웅-

팍!

헬하운드 수십 마리가 미친듯이 달려와 스켈레톤 전사들과 충돌했다.

-카하아악!

스켈레톤 전사들이 타이밍을 맞춰 방패를 크게 휘둘렀다.

튕겨 나간 헬하운드가 땅을 뒹굴었다.

스켈레톤 마법사들이 기다렸다는 듯 땅을 얼리고 바람을 사용해 녀석들을 날려 보냈다.

쿵!

완벽하다.

먼 곳에서 싸우고 있는 내 수하의 악마들이 쓰러지면, 나는 다시 리바이브 주문을 사용해 놈들을 일으켜 세웠다.

무너지지 않는 스켈레톤 장벽과 무한히 싸우는 악마 병사들.

그리고 적군 중 위협이 되는 존재를 맡아주는 가웨인과 박규환.

PC로 게임을 즐길 때 보다 더욱 안전성이 느껴졌다.

바로 눈앞에 악마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 곧, 내 군단이 도래한다.”

* * * * *

어딘지 알 수 없는 어두운 공간.

커다란 모래시계 앞에 두 명의 남성이 서 있다.

무릎을 꿇고 있는 자의 이름은 사탄.

“리바이어던이 저희를 배신했습니다.”

모래시계 뒤, 그림자 속에서 그의 이야기를 들은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그럴 놈이었다. 그래서 이제부터 어떻게 할 생각이지?”

“지금 놈과 함께 손을 잡았던 인간이 저희를 도와주기로 했습니다. 그 인간과 함께 힘을 합쳐 리바이어던을 잡을 생각입니다.”

“가능하겠나?”

“예. 그 인간을 잘만 활용하면 리바이어던뿐만 아니라 성전에 갇혀있는 라파엘까지 처리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모래시계 뒤에 서 있던 남성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림자 때문에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이 게임을 즐겨본 자라면 모두가 알고 있는 존재.

“…… 라파엘까지?”

“예, 루시퍼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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