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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화

성전 앞에 도착한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리바이어던의 붉은 피부를 가진 악마들이 전부 갈기갈기 찢어져 쓰러져 있었다.

플레이어의 짓인가, 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참혹했다.

“설마.”

나는 빠른 걸음으로 성전 안을 향했다.

그럴 일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사탄 녀석이 플레이어와 크게 붙었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치직.

어찌 된 일인가 싶어 안으로 들어가려 하자 내 소환수들이 결계에 막혔다.

[신성한 존재만이 안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플레이어가 조종하는 언데드도 들어갈 수 없다고? 분명 PC게임에서는 가능했는데 왜 이렇게 변한 것일까.

그렇다면 어둠의 힘을 사용하는 네크로맨서도 출입을 금지해야 하는 것 아닌가?

‘…… 그럼 게임이 진행되지 않겠구나.’

성전 안으로 들어온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약속한 장소인 계단 앞으로 가보았지만, 플레이어들이 보이지 않았다.

전투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데….

땡그랑!

성전 안에서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전속력으로 달려갔다.

이 안은 던전이라고 생각될 만큼 어두운 곳이었다.

관리하는 자가 아무도 없어 거미줄이 여기저기 쳐있는 데다가 정체 모를 자들의 유골이 땅에 굴러다녔다.

‘…… 악마구나.’

머리에 뿔이 달린 것으로 보아 악마가 확실했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습한 냄새가 났다. 지옥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높은 기둥이 서 있는 복도를 계속해서 걷자 길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저 안으로 들어가면 이번 라운드의 메인 이벤트가 시작되기에, 단독으로 움직일 수 없었다.

“…… 어디로 간 거야.”

내가 성전 안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어이!”

메아리치듯 내 목소리가 울렸다.

어이-! 어이--! 어이---!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갈만한 곳이 없을 텐데 어떻게 된 일이지? 라는 생각을 하는 도중,

똑. 똑. 똑.

누군가가 손가락으로 벽을 두드렸다.

“안녕하십니까.”

비열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사탄이 있었다. 내가 눈치 채지 못할 만큼 기척을 죽이는 솜씨가 대단했다.

“사탄.”

“리바이어던은 어디에 있고 혼자 왔습니까?”

“…… 글쎄. 너야말로 이곳에는 어떻게 들어왔지? 결계로 막혀있을 텐데.”

놈이 때려주고 싶을 만큼 얄미운 미소를 짓더니 날개를 펄럭이며 땅으로 내려왔다.

“글쎄요. 제 질문에 대답하지 않으시니, 저도 대답하기 힘들군요.”

“…… 그렇구나.”

“응? 뭐가 그렇다는 거죠?”

“왜 다들 안 보이는지 알았어. 네 녀석 짓이었군.”

놈이 크게 웃었다.

푸하하하!

“김천재 씨 친구분들 말씀하시는 건가요?”

“내 이름은 어떻게 알았지?”

“아차차- 실수로 말해버렸군요.”

내 이름을 알고 있다.

독심술을 사용하지는 않았을 테니 다른 플레이어에게 이야기를 들었을 테고.

지금 내가 알고 있는 녀석의 정보는 ‘거울의 방’ 능력이 추가되었다는 것.

“사탄, 거래 하나 할까?”

“…… 거래?”

“그래. 네가 내 친구들을 거울의 방에서 나오게 해준다면 네가 원하는 부탁을 한 가지 들어주지.”

“내가 원하는 부탁이라….”

거울의 방은 외부에서 간섭할 수 없다. 방을 연 당사자인 사탄을 제외하고 말이다.

지금 내가 세울 수 있는 두 가지의 가설. 첫 번째는 사탄이 세운 거울의 방안에 플레이어들이 전부 갇혀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사탄의 부하인 가고일과 전투 중일 거고.

아니었다면 가고일이 성전을 둘러싸고 있었을 테니깐 말이다.

“사탄, 거래는?”

“…… 제가 당신에게 할 수 있는 부탁이 무엇이 있을까요?”

“그건 네가 생각해야지.”

놈이 단숨에 내 앞으로 날아와 얼굴을 들이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미카엘의 부하들을 놔주는 행동은 할 수 없겠는데요.”

나는 낫을 휘둘러 놈을 떼어냈다.

부웅-.

“그들은 미카엘의 부하가 아니야.”

“예?”

“못 믿겠으면 이 성전 안을 확인해봐. 리바이어던이 네게 말한 것은 전부 거짓이었으니깐.”

사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거짓?”

“그래. 그건 내가 그를 속이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였어.”

“허허….”

사탄이 손가락을 튕기자 연기가 일더니 두꺼운 책 하나가 튀어나왔다. 사자의 서와 똑같이 생겼지만, 색이 달랐다.

놈이 검지를 가로로 길게 긋자 책장이 빠르게 촤르르르륵 펼쳐졌다.

탁.

나는 조용히 놈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사탄 녀석이 저 책, 지옥의 법전을 꺼냈다는 것은 곧 플레이어와 거래를 하기 위함이라는 뜻이니 말이다.

사탄이 목에 걸린 가래를 크게 뱉어내더니,

퉤엣.

내게 말했다.

“대악마라 불리는 리바이어던에게 거짓말을 했다니,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왔군요.”

“……”

“지옥에 잘 맞는 분이에요. 마음에 듭니다.”

“핵심만 말해.”

“…… 거래, 하도록 하죠. 다만 이번에는 거짓말을 하시면 안 됩니다.”

나는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놈이 새하얀 종이 위에 무언가를 끄적이더니 나를 향해 날렸다.

휘릭-.

[‘사탄’이 악마의 계약서를 건넵니다.]

바람을 가르며 날아온 종이가 내 손가락 사이에 꽂혔다. 그 안에 적혀있는 내용은 간단했다.

리바이어던을 배신하고 그를 잡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것. 그 계획을 위해서 내가 놈을 특정한 장소로 유인해달라는 조건이었다.

웃음이 나올 뻔했지만 참았다.

녀석이 리바이어던의 생사를 모르고 있다는 점이 내게 큰 이득이 되었다.

“리바이어던을 처리하는 게 네 목적인가?”

“현재로서는요.”

“이유는?”

“배신자. 루시퍼 님에게 해가 될 만한 녀석들은 미리 처리해놔야 하니 말입니다.”

악마 주제에 올곧은 충성심을 보였다.

나는 녀석에게 건네어 받은 종이에 서명했다.

치직. 치지직.

“…… 됐지?”

“계약서에 적힌 내용을 불이행하거나 거짓말할 시에는 어떻게 되는지 아시죠?”

“알고말고. 영혼 소멸, 그쯤은 나도 알고 있어.”

“허허…. 인간이라고 들었는데 보통 정보력이 아니군요. 악마가 아니면 알기 힘든 내용인데 말입니다.”

“글쎄, 나도 어떻게 보면 악마 같은 놈이라….”

내가 웃어 보이자 녀석도 따라 웃었다. 놈이 손바닥을 머리 위로 들더니 크게 원을 그리며 흔들었다.

공간이 뒤틀리며 일그러져 보였다. 마치 우주 다큐멘터리에서 보았던 빅뱅의 폭발과도 비슷했다.

이어 쨍그랑! 소리와 함께 거울의 방 벽면이 깨지며 다른 플레이어들이 보였다.

-허억!

-가, 가고일 이 X새끼들아!

-녀석들이 어떻게 성전에 들어오는…. 응? 뭐지? 갑자기 가고일들이 사라졌어!

거울의 방이 깨짐과 동시에 사탄 녀석도 모습을 숨겼다. 녀석과 다시 싸우게 될 날이 오기는 하겠지만, 일곱 번째 라운드가 시작하기도 전부터 녀석과 부딪치다니.

“…… 후우.”

점점 재밌어지는구나.

* * * * *

마정우가 얼굴에 묻은 피를 털어내며 내게 말했다.

“에이 쉬벌!”

“괜찮냐?”

“아니! 어떻게 성전 안에 가고일이 들어 올 수가 있지?”

내가 피식 웃어 보였다.

그리곤 지금까지의 일을 설명해 주었다. 리바이어던을 만난 이후에 그를 처리하기까지의 과정과 사탄에게 새로 생긴 능력까지.

내 이야기를 들은 다른 플레이어들이 웅성거렸다.

그중 드루이드로 보이는 자가 앞으로 한 발자국 나와 내게 말을 걸었다.

“저기, 당신이 정말 고인물 플레이어입니까?”

“……?”

정우를 보았다.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벌써 내 설명을 마쳤구나.

나는 부정하지 않고 그에게 나를 소개했다.

“예. 제가 고인물입니다.”

모두 놀라워하는 표정이었다.

“저, 정말인가요?”

“정말이에요. 근데 왜요?”

“아니…. 게임에서만 보던 분을 직접 만나 뵈니 영광스러워서….”

“응? 저를 만나서 영광스럽다니….”

“저희의 영웅이셨잖아요.”

“……”

영웅.

나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그저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행했을 뿐.

내가 손을 절레절레 저었다.

“저는 영웅이 아니에요.”

“허…. 그런 겸손한 말씀을 하실 줄이야.”

“…… 그나저나 사망하거나 크게 다친 플레이어는 없나요?”

내 시야에는 없었다.

마이클과 유소라, 그리고 김연희도 티끌 하나 묻지 않았을 정도로 깨끗해 보였다.

도포를 입은 드루이드가 내 옆으로 다가와 고개를 꾸벅이며 말을 이었다.

“저희 중국 플레이어 중에서 부상자는 없습니다.”

나는 눈을 흘겨 그의 뒤편을 보았다. 중국 플레이어라면 그녀석이 있을 확률이 다분한데, 보이지 않았다.

다섯 번째 라운드에서 중국을 대표하던 무술의 달인.

‘왕천마.’

일곱 번째 라운드를 아직 끝내지 못한 건가?

“…… 알겠습니다.”

이어 백색 피부의 남성이 내 앞으로 오더니 말했다.

“저희 베트남 소속 플레이어 중에도 부상자 없습니다.”

“베트남? 베트남 사람들이 원래 이렇게 피부가 하얀색이었나?”

“저는 베트남에 거주 중인 독일 사람입니다.”

아!

마이클과 같이 거주지에 따라 분배가 된 사람이었구나.

이어 마이클과 같은 검은 피부를 가진 친구들이 내 옆으로 붙었다. 내가 좋아하는 축구 선수가 코트디부아르 출신이어서 그런지 그들의 모습이 너무나도 친근했다.

“할로우.”

“하이.”

“우리 한국 플레이어도 부상자 없습니다.”

“…… 한국?”

“예스, 한국.”

“저희도 한국 플레이어예요.”

“오우!”

생각지도 못했다. 마이클이 그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둘 다 미국 국적이었다.

저 사람도 주한 미군인가? 지금 보니 덩치가 마이클만큼 좋았다.

뭐-.

어찌 되었든 여기까지 온 플레이어들은 전부 이 게임 고수에 속하는 자들.

스스로의 일은 알아서 할 수 있는 자들이다.

‘…… 다행이다.’

그래도 삼국의 플레이어들이 이곳에 모이게 되었다.

수를 세어보니 각국에 20명 정도가 모여 있었다.

예상한 인원보다는 적었지만 그래도 이번 라운드를 진행할만했다.

이제 일본 플레이어들만 모이면 동아시아 서버의 플레이어가 전부 모이게 된다.

‘게임의 끝에 가까워지고 있다.’

플레이어의 수를 세어보던 정우가 내게 물었다.

“김천재, 이제 시작해볼까?”

“일본 플레이어가 아직 안 왔어.”

“…… 일본 녀석들은 없이 시작하자.”

“안 돼. 열 번째 라운드까지 한 번에 가려면 일본 쪽 플레이어도 꼭 필요-”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천장에서 연기가 펑! 하고 터지며 붕대를 감은 자가 떨어져 내렸다.

쿵!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꽂혔다.

이어 성전 밖에서 빠르게 달려오는 사무라이 복장의 사나이들이 보였다.

두두두두두두.

마이클이 그들을 보며 소리쳤다.

“뻐킹 싸무라이!”

한조가 한쪽 눈썹을 치켜세우며 내게 말했다.

“오랜만이군.”

“…… 오랜만이야.”

“늦었나?”

“조금. 왜 이렇게 늦게 왔지?”

“오는 길에 이상한 놈을 만나는 바람에 늦었다.”

“이상한 놈?”

한조가 부러진 뿔을 내게 보여주었다. 창날의 끝처럼 반짝이는 뿔이 눈에 익다.

“그래, 북쪽의 대악마라 불리는 사탄이 덤벼오더군.”

“…… 사탄이?!”

이야기를 들어보니 놈이 일본 플레이어들에게도 접촉했었다.

이유는 단 한 가지, 다른 플레이어를 배신하고 자신과 함께 손을 잡자는 권유를 했다고 한다.

강력한 힘을 받는 대신 말이다.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혹시라도.

아주 작은 확률이지만 혹여나 한조가 놈과 손을 잡았다면….

“…… 우선 이번 게임을 시작하도록 할까?”

한조가 고개를 끄덕였다.

* * * * *

플레이어들이 성전 끝으로 이동했다. 그곳에 있는 방 안으로 들어가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웠다.

플레이어 중 한 명이 토치에 불을 붙여 주변을 밝혔다.

벽면에 악마와 천사들이 싸우고 있는 장면이 보였다.

화염의 크기를 좀 더 키우자 방 전체가 보였다.

마치 진시황릉처럼 넓은 공간에 굳어있는 천사상이 수백 개 보였다.

[‘사자(使者)의 방’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모두가 숨을 죽이고 그사이를 지나 앞을 향해 나아갔다.

방의 중앙에 도착하자 복부에 불타는 대검이 꽂혀 있는 거대한 천사상이 보였다.

플레이어들이 모두 모여 천사 석상을 바라보았다.

-저, 저게 라파엘인가?

-게임에서 보던 것과는 다른데.

-너무 무섭게 생긴 거 아니야?

천사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매서운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기다란 눈꼬리와 날카로운 콧날이 뾰족하게 올라가 있으며 입은 굳게 다물고 있었다.

마치 뱀이 떠오르는 듯한 얼굴이었다.

나는 모든 플레이어를 대표해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곤 검의 손잡이에 손을 가져다 대고 조용히 속삭였다.

“여는 자가 왔노라.”

정적이 흘렀다.

이어 지면이 흔들리며 천사상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콰직. 콰지직.

부우우우웅-.

게이트가 열릴 때와 같이 엄청난 진동이 방안을 가득 메웠다.

하늘에서 빛이 쏟아져 내리더니 하얀 깃털이 방안을 가득 메웠다.

쿠궁!

[‘대천사 미카엘’이 불타는 성전에 강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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