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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화

내가 모르는 5년의 세월, 이곳의 대악마들은 크게 성장했다.

리바이어던에게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 사탄 녀석이 우리 둘을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방심하지 않았다.

녀석이 이런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 몰랐을 뿐.

세계수를 향해 계속 걷고 있는데, 제자리다. 벌써 한 시간은 멈추지 않고 걸어온 것 같다.

하지만 우리 눈앞에 보이는 풍경은 같았다.

마치 제자리를 걷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망할! 망할! 망할!!!”

나는 짜증 섞인 포효를 내뱉었다.

계획대로라면 늦어도 지금쯤은 리바이어던과 내가 성전에 도착했어야 하니 말이다.

어릿광대 같은 사탄 녀석, 지레짐작이지만 녀석이 내 계획을 어느 정도 눈치 챈 것 같다.

녀석이 사라지기 전에 한 마지막 독백.

[성전에는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데? 인간과 천사라…. 재밌군, 크큭.]

‘빌어먹을.’

바보 같은 리바이어던이 성전에 관한 이야기만 하지 않았어도 내가 이렇게까지 초조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띠링!

갑자기 내 머리 위에 황금빛이 한 바퀴 돌았다.

[‘김천재’ 플레이어님이 아시아 서버 최초로 80레벨 달성에 성공하셨습니다!]

[상급 플레이어에 도달하여 네크로맨서 전용 스킬인 ‘리콜’을 습득하게 됩니다.]

[*리콜- 플레이어의 모든 소환수 들을 전부 주인 앞으로 강제 소집한다.]

‘…… 리콜.’

“허허….”

헛웃음이 나왔다.

99레벨이 끝인 게임에서 혼자 80이라니.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온 리바이어던이 지팡이로 땅을 치며 내게 말했다.

팍! 팍!

“빌어먹을 사탄 녀석!”

“…… 리바이어던. 사탄이 이런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말은 처음 들어봤는데. 이게 대체 뭐지?”

그가 씁쓸한 표정으로 낮게 깔아 말했다.

“공간 왜곡, 녀석이 나를 가둬두기 위해 루시퍼에게 받은 능력이다.”

“공간 왜곡?”

“그래. 혹시나 내가 폭주할까봐 받았다더군.”

“…… 그럼 여기는 다른 곳이랑 공간이 다르다는 건가?”

“아마도-.”

오호라.

“나가는 방법은?”

“모른다. 알고 있으면 진즉에 나갔을 것이야.”

녀석의 말대로라면 우리가 지금 있는 곳은 사탄이 만들어 낸 새로운 공간.

나는 지면에서 솟아오르는 화염에 손을 대 보았다.

뜨거움이 느껴진다.

“…… 그렇구나.”

리바이어던이 알고 있는 사실과는 다르게 여기는 사탄에 의해 만들어진 공간이 아니다.

그런 능력은 이 게임 속에 있지도 않고 혹시라도 새로 생긴 스킬이라면 아무도 놈을 이길 수 없다.

운영진이 그렇게 사기급 스킬을 만들 인간들도 아니고.

그렇다면 우리가 걷고 있는 공간이 계속 되풀이되는 이유는 단 하나.

‘거울의 방.’

히든 직업인 무희들이 사용하는 스킬 중 하나다.

나는 돌을 하나 주워 멀리 던져 보았다.

역시.

앞으로 던진 돌이 뒤통수 쪽에서 날아왔다.

나는 고개를 옆으로 꺾어 돌을 피했다.

“…… 그렇지.”

리바이어던이 내게 물었다.

“뭐지? 왜 돌이 뒤에서 튀어나오는-”

“리바이어던. 사탄과 너는 어떤 사이지?”

“어떤 사이라니?”

나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적인가? 아군인가?”

“…… 굳이 따지자면 적에 가깝군. 지금은 말이다.”

“그래?”

“그건 왜 묻지?”

“……”

리바이어던은 사탄을 적군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럼 그들의 부하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터.

미리 떠난 리바이어던의 부하들은 우리의 대화를 듣지 못했다.

그 말은 즉, 내가 지금 이 녀석을 죽여도 다른 악마 병사들은 사탄을 의심할 것이라는 거다.

내가 아무 말 없이 서 있자 리바이어던이 말을 이었다.

“이곳에서 나가는 방법을 알고 있나?”

“알고 있지.”

“오! 어떻게 하면 되는 거지?”

“그건 알려 줄 수가 없겠는데.”

“…… 뭐?”

“안 알려줄 거라고.”

나는 낫을 크게 휘둘러 놈과의 거리를 벌렸다.

부웅-.

리바이어던이 공중제비를 돌며 뒤로 날아올랐다.

“이 자식이! 이게 무슨 짓이냐?”

“무슨 짓이기는. 이런 짓이지.”

[리콜]

[‘김천재’ 플레이어의 명령하에 모든 소환수들이 강제 소환됩니다.]

눈앞이 번쩍이더니 내 소환수들이 모두 모였다.

한층 더 성장한 박규환과 가웨인이 보였다.

박규환의 머리 위로 [도깨비 귀신]이라는 타이틀이 보였다. 처치한 몬스터가 만 마리 이상 돼야지 얻을 수 있는 칭호.

그의 옆에 있는 가웨인의 머리 위로도 타이틀이 하나 있었다.

[검황의 재림]

이 게임의 고인물인 나도 처음 보는 타이틀이었다. 어떻게 해서 저런 칭호를 얻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 미칠 정도로 강해졌네.’

가웨인의 몸에서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와 반대로 박규환의 몸에서는 어둠이 흘러나왔다.

선과 악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 같았다.

리바이어던이 내 소환수들을 보더니, 뒤로 주춤 물러났다.

“이, 이 녀석들은 또 어디서 나타난 거지?”

나는 싱긋 웃었다.

“그건 알 바 없고. 이제부터 나랑 좀 놀아줘야겠어.”

리바이어던의 몸에서 불길한 오라가 뿜어져 나왔다. 푸르지만 탁해 보인다. 마치 검은 물감과 파란 물감을 대충 섞은 듯이 말이다.

“…… 나와 싸우겠다는 건가?”

리바이어던이 콧방귀를 뀌더니 다시 몸을 거대화시켰다.

백발 할아버지의 몸이 순식간에 한 마리의 용이 되었다. 오라를 회복한다며 축소 시켜 놓은 노인의 몸과는 전혀 다른 위압감이다.

“그렇지.”

또다시 비가 쏟아져 내렸다.

나는 고개를 들어 놈을 쳐다보았다. 꼬리를 세우니 얼굴의 위치가 타이탄보다도 높아 보였다.

“애송이 주제에-.”

리바이어던의 꼬리가 지면을 휩쓸며 날아왔다. 놈의 꼬리가 지나가는 곳에 먼지 폭풍이 일었다.

가웨인이 한 발자국 앞으로 나왔다.

“맡겨주십시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리바이어던의 무력은 익히 알고 있다. 일곱 대 악마 중 제일 강하다. 이 사실에 대해서는 아무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놈에게는 크나큰 약점이 하나 있었다.

“…… 지금이다.”

팟!

박규환이 높이 뛰어올랐다.

탕! 탕탕!

권총으로 리바이어던의 머리를 노렸다. 큰 충격을 주지는 못했다. 다만 정확하게 눈을 노려 놈의 시야를 가렸다.

쿠구구구구-!

리바이어던의 꼬리가 지면을 가르며 빠르게 다가왔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가웨인이 대검을 머리 위로 들었다.

“화형(火刑).”

가웨인의 검날에서 불이 뿜어져 나왔다.

내가 아는 가웨인은 리바이어던과 비슷한 공격력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베어내지는 못하더라도 잠깐의 움직임을 멈출 수 있겠지.

쿠궁!

리바이어던의 꼬리와 가웨인의 검이 맞닿았다. 하늘에서 천둥이 내려치고 공간이 깨질듯한 파열음이 났다.

공명(共鳴)이 일었다.

콰르릉!

“가자!”

꼬리가 멈추는 동시에 수십 마리의 스켈레톤 병사들이 놈의 몸을 밟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마치 사마귀를 잡아먹는 개미 떼처럼 말이다.

크게 발버둥 쳐보았지만, 스켈레톤은 그의 몸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았다.

박규환이 총을 집어넣고 검을 꺼내었다.

“바람 가르기.”

검을 크게 휘두르자, 오라가 바람을 가르며 날아갔다. 리바이어던의 목에 명중한 오라가 피부를 베어냈다.

깊지는 않았다.

사람의 손이 종이에 살짝 베인 정도.

그래도 고통을 주기에는 충분했다. 잠시만 놈의 시선을 멈추면 되니깐.

“가자!”

“크하아아악!”

박규환이 리바이어던의 등을 타고 올라갔다. 미리 자리를 잡은 스켈레톤 병사들이 몸을 말아 계단처럼 올라갈 길을 만들어 주었다.

다다다다다다-!

순식간에 머리까지 올라간 박규환은 놈의 정수리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일도양단(一刀兩斷).”

부웅-

콰직!

검날이 사파이어 모양의 보석이 박혀있는 리바이어던의 미간에 박혔다.

“크하아악!”

일곱 악마 중 루시퍼를 제외하면 제일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리바이어던’.

녀석은 강한 힘에 비례하는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다.

미간에 있는 사파이어가 깨지면 막강하다고 불리는 천둥 능력의 사용이 불가능해지는 것.

이것만 없다면 리바이어던은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된다.

대악마 중 최강에서 최약체로 바뀔 만큼.

“…… 이제 끝이다.”

놈이 크게 발버둥을 쳤다. 주변의 지면이 휩쓸려 나가며 모래 폭풍을 일으켰다.

[‘제3의 눈’이 김천재 님의 플레이를 보며 깜짝 놀랍니다.]

[운영진들이 저자한테는 너무 많은 정보가 공유되었다며 제재를 가해야 할 것 같다고 합니다.]

나는 콧방귀를 뀌었다.

‘제재? 내가 불법 프로그램을 쓴 것도 아니고….’

[운영진 중 한 명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합니다.]

[정보를 미리 알고 움직이는 것 또한 그의 능력이라고 합니다.]

맞는 말이다.

앞선 정보 또한 플레이어의 능력 중 하나.

내가 가웨인에게 손짓했다.

“잘라버려.”

가웨인이 불타는 검을 휘둘러 리바이어던의 꼬리를 쳤다.

키이이이이익-!

리바이어던의 비늘이 깨지며 검날이 박혔다.

“키야아악!”

콰직. 콰직. 콰지직!

이어 꼬리가 잘려져 나갔다.

몸과 분리되었음에도 잘린 꼬리가 버둥거렸다.

이제 지면을 가르는 녀석의 꼬리 공격도 불가능해졌다.

내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나는 녀석의 생명력을 주시하며 놈과의 거리를 벌렸다.

“머리 쪽으로 모여라.”

내 명령에 스켈레톤 병사들이 전부 리바이어던의 머리를 향해 기어 올라갔다.

중심을 잃은 리바이어던의 고개가 땅을 향해 천천히 떨어졌다.

놈이 하늘을 보며 무언가 말하려다 말았다.

[‘리바이어던’이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습니다.]

‘멍청한 놈.’

위력적인 꼬리 공격도 가웨인에 의해 막혔으니 지금 놈이 사용할 수 있는 무기는 오로지 날카로운 송곳니.

그 또한 나를 향해 들이미는 건 불가능했다.

스켈레톤들이 머리를 짓누르고 있으니깐.

쿵!

스켈레톤들이 개 목걸이처럼 리바이어던의 목을 휘감아 잡았다.

박규환이 녀석의 미간에 박힌 검의 손잡이를 잡고 오라를 불어 넣었다.

가웨인이 불타는 검으로 리바이어던의 목을 조준했다.

완벽한 포위.

나는 지면에 처박힌 리바이어던의 머리 앞으로 걸어왔다.

터벅. 터벅. 터벅. 터벅.

낫으로 툭툭 치자 녀석이 눈을 떴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어째서 나를….”

“전부 구라였어.”

“…… 뭐라고?”

“너한테 말한 거, 구라였다고. 타이탄이 손을 잡자는 것도, 신전에 천사가 있다는 것도.”

놈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 그런.”

“대악마라는 놈이 머리가 너무 나쁘네. 그 마을에 너무 오래 갇혀있어서 그런가?”

“…… 제길. 제길! 제기랄!!”

꼬리가 잘린 뱀은, 아니 용은 크게 저항하지 못했다. 이미 의욕까지 꺾여버렸으니 말이다.

이어진 내 수하들의 공격은 놈의 체력을 바닥으로 만들었고.

생명력 게이지가 얼마 남지 않았을 때 나는 낫을 휘둘러 용의 머리를 베어냈다.

“고맙다, 네 덕분에 사탄의 능력까지 알게 되었어.”

샥-.

털썩.

[일곱 번째 라운드를 지키는 대악마 중 한 명인 ‘남쪽의 리바이어던’ 처치에 성공하셨습니다.]

[‘사자의 서’에 김천재 님의 활약이 기록되며 ‘남쪽의 대악마 처치!’ 칭호가 지급됩니다.]

[칭호 획득으로 인한 특수 능력 ‘악마의 구슬’이 지급됩니다.]

[*악마의 구슬: 악의 힘을 담은 구슬로써 각 직업군에 맞게 설정하여 사용할 수 있다.]

“…… 좋아.”

리바이어던의 몸이 하얀 재가 되어 바람에 흩날렸다. 내 수하에 있는 스켈레톤 병사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어 대열을 이루었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신 후 다시 세계수를 향해 나아갔다.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게임을 지켜보는 자들이 놀라움에 입을 다물지 못합니다.]

[‘제3의 눈’이 김천재 플레이어에게 찬사를 보냅니다.]

보이지 않는 곳의 누군가의 환호성이 내 귓가에 들려왔다.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앞을 향해 나아갔다.

“…… 가자.”

부웅-

치지지지지직!!!

내가 낫을 휘두른 곳에 불꽃이 일었다. 종이가 찢어지는 것처럼 공간이 일그러지며 갈라지기 시작했다.

나는 온 힘을 다해 손잡이를 잡아끌었다.

“흐아아아압!”

치이이이이익- 쾅!

이 공간을 막아선 거울 벽이 허물어지며 땅에 쏟아져 내렸다.

나는 쏟아져 내리는 공간을 지나가며 악마의 구슬을 먹었다.

꿀꺽.

[어둠의 힘이 스며들기 시작합니다.]

[*‘시체 폭발(최상급)’ 스킬을 획득!]

▶시체 폭발 (마나 소모: 10)

-주변의 시체를 폭발시켜 적에게 큰 피해를 줍니다. (시체의 수에 따라 피해량이 배로 증폭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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