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화

북쪽의 왕이 남쪽을 찾아왔다.

내가 아는 스토리에서는 먼저 나서지 않고 탑을 지키는 역할인데, 왜 이곳까지 온 걸까?

흔히들 바포메트라고 불리는 모습의 사탄이 리바이어던을 향해 날아왔다.

“어이! 오랜만이야?”

“…… 발이 빠르군.”

“발이 빠르다니? 날개가 빠른 거지.”

리바이어던은 심기가 불편했는지 사탄을 향해 꼬리를 휘둘렀다.

“너와 말장난할 시간 없다. 비켜라.”

부웅-

팍!

겨우 인간 크기의 사탄이 손바닥으로 리바이어던의 거대한 꼬리를 막아냈다.

“왜 이러시나? 나는 너와 잠깐 이야기를 나누러 왔을 뿐인데?”

“이야기를 나누려고 가고일들을 전부 데려와?”

“허허…. 그건 네가 너무 무서우니깐 그러지. 너는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잖아.”

[북쪽의 마왕이 은연중 적개심을 드러냅니다.]

게임의 스토리가 흘러가는 내내 리바이어던의 힘을 부러워하는 사탄. 녀석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알 수 없지만 참으로 묘한 캐릭터였다.

대사도 항상 헛소리만을 늘어놓으니 말이다.

“시끄럽다. 용건이 없으면 꺼져라.”

사탄이 나를 내려 보았다.

“…… 용건이 왜 없어? 저기 저 꼬마, 내가 데려가야겠는데.”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 어깨를 으쓱거렸다.

아무리 지옥의 왕이라 불리는 놈이지만, 내 오라를 보고서도 저런 말을 쉽게 내뱉다니 말이다.

내가 소리치려 하는 순간, 리바이어던이 사탄을 향해 나지막이 말했다.

“사탄, 미카엘이 부활했다.”

실실 웃던 사탄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

“뭐라고?”

“미카엘이 부활했다고. 녀석이 지금 불타는 성전 안에 있다.”

“불타는…. 설마 라파엘의 봉인을 풀러 온 건가.”

“그렇다더군.”

사탄은 리바이어던의 말을 못 믿겠다는 듯 혀를 찼다.

“아니, 그럴 리가 없을 텐데? 놈이 어떻게 우리의 경계망을 피해서 성전까지 간 거지?”

“그건 나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내 옆에 있는 인간이 알려 주었다.”

둘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거짓말을 들킬까 봐 순간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것도 잠시, 어차피 시스템이 정해놓은 대화의 흐름을 전부 알고 있는 나는 당당하게 대답했다.

“맞아. 지금 불타는 성전 안에 미카엘이 있어.”

계획이 조금 틀어지기는 했지만, 사탄까지 성전 안으로 유인한다면 일거양득이다.

두 마리의 대악마를 동시에 잡을 수 있으니 말이다.

사탄이 바람을 가르며 내 앞으로 날아왔다.

“정말인가?”

“정말이야.”

“네 눈은 거짓이라고 하고 있는데?”

나는 눈에 힘을 빡 주고 녀석에게 말했다.

“거짓은 네가 하고 있겠지.”

사탄이 리바이어던을 슬쩍 보더니 크게 웃었다.

“……. 푸하하하! 이 녀석, 물건인데? 나와 눈을 마주치고도 겁을 먹지 않네.”

리바이어던이 눈을 깜빡이자 벼락이 내리쳤다.

쿠구궁-.

“사탄, 우리를 따라올 텐가?”

“…… 아니. 미카엘의 봉인이 풀렸으면 루시퍼 님께 먼저 보고해야지.”

“……”

“그리고 너, 왜 그 마을 밖으로 나온 거지? 루시퍼 님이 출타를 허락하지 않았을 텐데.”

“상황이 급하여 먼저 움직였다.”

“보고 없이?”

“그래.”

친한 것 같지만 서로 경계하는 듯한 대화.

한참 동안 리바이어던을 째려보던 사탄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네가 마을에서 나온 것도 루시퍼 님께 보고하도록 하마.”

“마음대로.”

“저 인간도 같이.”

“마음대로 해라. 볼일 다 끝났으면 이제 꺼져.”“…… 후우. 오랜만에 만났는데 참 쌀쌀맞네?”

“사탄, 나는 분명 경고했었다. 말장난하지 말라고.”

“경고? 경고하면 어쩔 건데?”

리바이어던이 사탄과 함께 날아온 가고일들을 향해 입을 크게 벌렸다.

[‘리바이어던’이 전방을 향해 용의 숨결을 시전합니다.]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비가 그의 입으로 빨려 들어가더니 크게 소용돌이쳤다.

(꺼져라.)

입 밖으로 나온 말이 아니었다.

마음속에서 그의 목소리가 울렸다.

쿠궁!

굉음과 함께 리바이어던의 입속에서 물보라가 뿜어져 나왔다.

쓰나미라고 부를 만큼 거대한 파도였다.

수백 마리의 가고일이 한 방에 휩쓸려 나갔다.

“리바이어던!”

사탄이 물보라를 향해 비명을 지르자 파도가 깨지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 * * * *

<불타는 성전>

그리스 로마 신화의 신들이 살 것 같은 기둥이 높은 건물.

가우디가 설계한 파밀리아 성당만큼 웅장하고 아름다운 성전이 세계수 앞에 세워져 있다.

성스러운 힘으로 결계가 쳐져 있는 성전 안으로 플레이어들이 한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피부색이 다른 여러 국가의 사람들. 모두 같은 목적을 가지고 모인 사람들이었다.

직업도 가지가지였다.

전사, 마법사, 궁수, 드루이드, 사제, 네크로맨서.

그 외에도 각 나라의 특유 직업을 가진 플레이어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닌자라던가, 인디언이라던가, 부두술사라던가.

하여튼 수십 명의 플레이어가 성전 앞 계단에 모여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들의 중심에 마정우가 섰다.

“내 친구가 곧 대악마 중 한 명을 끌고 올 테니 다들 싸울 준비 하라고.”

일곱 번째 라운드까지 올 정도면 꽤 실력이 있는 플레이어들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마정우의 말에 군대 후임병처럼 신속하게 움직였다.

멸망의 땅, 일곱 번째 라운드에서 유일무이하게 희생자를 내지 않고 클리어한 그룹의 플레이어인 것을 미리 밝혔기 때문이다.

전 세계에 분포된 모든 멸땅 유저들이 존경하는 초월자 그룹.

마정우를 못 믿는 흰 피부의 마법사 플레이어가 비꼬듯 말했다.

-당신 정말 초월자 그룹의 멤버가 맞습니까?

그의 말을 이어 검은 피부의 전사 플레이어가 투덜거렸다.

-못 믿겠습니다!

황색 피부의 드루이드 플레이어가 덩달아 소리쳤다.

-너희가 진짜 초월자 그룹이었다면, 증거를 보여라.

마정우가 도끼를 들고 그들에게 말했다.

“못 믿겠으면 덤벼봐. 실력으로 증명해 보일 테니깐.”

“아, 아니 그런 식으로 증명하라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증거를 보여달라고요.”

“증거를 어떻게 보여주면 되는데?”

“뭐…. 그들만의 표식이라던가.”

초월자 그룹의 표식.

당연히 이곳에 있을 리가 없었다. 저들이 무엇을 말하는지는 정우도 알고 있다.

아무도 도달하지 못한 열다섯 번째 라운드에서 받을 수 있는 제3의 눈을 말하는 것일 거다.

마정우는 그의 말을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아직 구할 수 없어.”

“제가 무엇을 말하는지는 아시는 겁니까?”

“제3의 눈, 맞지?”

“……”

이곳에 모인 플레이어 중 절반은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마정우는 그들의 의중이 중요치 않다는 듯 코를 후벼팠다.

“그거 말고는 지금 당장 초월자 그룹인 것을 증명할 방법 없어. 믿기 싫으면 믿지 말든가.”

“…… 만약에 당신이 초월자 그룹의 멤버가 아니었다면, 그 말은 어떻게 책임을 질 생각이십니까?”

“내 목숨을 가져가라. 이 정도면 답변이 됐나?”

극단적인 대답에 상대방의 말문이 턱 막혔다.

마정우는 일부로 그의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가며 말을 이었다.

“여기까지 와서 거짓말을 할 이유가 뭐가 있겠냐.”

“……”

“한 가지만 미리 말해주도록 하지. 일곱 번째 라운드가 끝난 후에 우리는 곧장 10번째 라운드로 강제로 갈 수 있는 게이트를 열거야.”

“……?!”

“이 방법은 오직 단 한 그룹만이 알고 있지. 너희들이 아까부터 계속 언급한 초월자 그룹.”

드루이드가 지팡이로 땅을 찍었다.

쿵!

“저, 정말인가?”

“그래. 가고 싶으면 조용히 우리가 시키는 대로 하라고.”

마정우의 제안에 모두가 조용해졌다. 그를 믿지 않았던 자들도 귀를 기울였다.

쿠구구구구구구.

갑자기 땅이 울렸다.

성전 앞을 지키던 플레이어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리가 나는 방향을 보자 셀 수 없이 많은 악마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드루이드가 놈들을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정말이었군.”

마정우가 기쁜 얼굴로 몰려오는 악마들을 보았다.

한참 동안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일 선봉에 있어야 할 리바이어던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 어디 있지?”

그들의 최전방을 지키는 사람은 김천재.

플레이어들이 환호했다.

-우와! 진짜 악마들이 성전을 향해 오고 있잖아?

-이 녀석들. 저, 정말이었나?

-허얼….

성전 앞에 모인 백여 명의 플레이어 전원이 기쁨에 찼다.

일곱 번째 라운드에서 그들을 위기에 몰아넣는 가장 큰 위험 중 하나를 손쉽게 처리 할 수 있게 되었으니깐.

마정우가 악마들을 천천히 살피더니 도끼를 머리 위로 들었다.

“전원 전투 준비.”

-우워!

유소라가 마정우에게 물었다.

“정우 씨.”

“예?”

“왜 다들 악마를 보며 환호하는 거죠?”

“음? 작전대로 잘 되어가고 있으니까요.”

“작전대로? 작전대로라면 천재 씨가 리바이어던이라는 대악마를 데리고 와야 하는 것 아닌가요?”

“어…. 그렇긴 한데.”

유소라의 말을 들은 마정우는 갑자기 생각에 잠겼다.

작전의 핵심은 리바이어던을 초기에 제압하는 건데, 김천재가 데려온 놈들은 겨우 하급 악마들뿐이었으니 말이다.

유소라가 머리를 긁적이더니 악마들을 보며 말했다.

“천재 씨는 어디 있죠?”

“천재요? 저기 제일 앞에 있잖아요.”

“어디요?”

“저기, 저기요.”

유소라가 눈을 부볐다.

“응? 저기에는 붉은 피부의 악마들밖에 없는데요.”

“아니 저기 저…. 제일 앞에 있는-”

“…… 저 염소 머리 악마 말씀하시는 거예요?”

마정우가 악마들을 가리키던 검지를 내리더니 마이클을 불렀다.

“마이클, 천사의 찬가 가능하지?”

“오우예! 당근당근, 드디어 내 차례인가요우?”

“그래. 그리고 내가 천재를 만나러 가면 유탄을 장전해.”

“…… 유탄?”

마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메카니아에서 제작한 특별 탄으로.”

* * * * *

악마 대군이 삼지창을 들고 성전 앞에 줄지어 섰다.

어디선가 나타난 가고일들이 하늘을 날아다니며 기이한 소리를 내었다.

-키야아아악!

전투 준비를 마친 악마들이 성전을 둘러싸자, 그들의 최전방에서 김천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뚜벅. 뚜벅. 뚜벅. 뚜벅.

“어어, 다들 잘 있었나?”

마정우가 대답했다.

“리바이어던은 어디 있지?”

“아 그놈? 잠깐 어디 좀 들른다고 먼저 가 있으라던데?”

“그래? 그럼 이제부터 어떻게 할 생각이지?”

“어떻게 하다니. 계획대로 하자고.”

“그 계획이 뭔데?”

김천재가 성전 앞에 모인 플레이어들을 한 번씩 둘러보더니 입꼬리를 살짝 올려 미소를 지었다.

“…… 계획이 뭐냐니?”

“김천재.”

“응?”

부웅-

마정우의 도끼가 허공을 갈랐다.

팍!

김천재가 손을 뻗어 막아냈다.

“뭐, 뭐야?”

야만 전사의 풀 스윙 도끼를 맨손으로 막아내다니, 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겨우 네크로맨서가 말이다.

둘을 지켜보는 플레이어들의 얼굴에 긴장이 역력했다.

한때 초월자라고 불리는 둘의 싸움이 시작되었으니 말이다.

10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시간 동안 정적이 흘렀다.

모두가 침을 꼴깍꼴깍 삼키며 그들의 움직임을 기다렸다.

마정우가 도끼날을 비틀어 빼더니 김천재에게 말했다.

“어이, 진짜 김천재는 어디에 있는 거지?”

“……”

“하마터면 속을 뻔했어. 천재가 가지고 있는 낫까지 똑같이 재현했으니 말이야.”

갑자기 김천재가 미칠 듯이 웃기 시작했다.

크하하하하!

“알고 있었나?”

“알고 있었지. 네가 계단을 올라오기 전부터.”

“그런데 왜 내가 이곳까지 올 때까지 기다려준 거지?”

“…… 왜 기다려줬겠냐? 어이 마이클!”

마이클이 빙긋 웃었다.

“롸져댓.”

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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