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화
나는 불타는 마을 앞에 강철 스켈레톤을 일렬로 세워놓았다.
누가 보아도 보통 존재가 아님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위협적인 오라를 내뿜었다.
불카누스가 만들어준 낫의 힘으로 상급 아이템까지 착용하고 있으니, 절대 얕볼 수 없는 소환수였다.
악마들과의 대치.
싸울 생각은 없었다.
그저 내 앞에 있는 자들에게 힘을 보여줄 뿐.
악마 병사 중 한 명이 앞으로 나와 내게 물었다.
“저 녀석들이 전부 네 부하란 말이지?”
“그래.”
“…… 리바이어던 님을 공격하러 온 건 아니고?”
“그럴 거면 진즉에 너희들부터 공격했겠지?”
PC게임 내에서도 하급 악마는 멍청한 소리를 내뱉더니, 이곳에서도 똑같았다.
녀석과 잡답을 하는 사이 리바이어던이 마을 밖으로 나왔다.
초라한 모습의 지팡이를 짚고 있는 백발노인. 꼴에 마왕 중 한 명이라고 금관을 쓰고 있었다.
그는 줄지어 있는 내 스켈레톤 병사들을 보더니, 헛웃음을 내뱉었다.
“나를 죽이러 온 건가?”
“아니.”
“그럼 왜 왔지?”
“병사들이 설명해주지 않았나?”
리바이어던이 자신을 부르러 온 악마 병사를 슬쩍 보았다.
진짜로 설명해주지 않았나 보다.
이 정도까지 오합지졸일 줄은 몰랐는데 큰일이구나.
리바이어던이 먼 산을 바라보았다.
나는 그에게 다시 물었다.
“리바이어던, 타이탄이 당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어.”
“타이탄이?”
“미카엘의 부활로 인해 그가 위기에 처했거든.”
미카엘이 부활했다는 말을 듣자 악마들이 화들짝 놀랐다.
오직 리바이어던만이 평정심을 유지했다.
“그렇군.”
“안 놀랍나 보네?”
“언젠가는 미카엘이 부활하리라 생각했다.”
“그래?”
“그리고 나는 타이탄을 돕지 않는다. 빌어먹을 루시퍼의 충신을 내가 왜 도와?”
역시, 내가 예상했던 대로 루시퍼에 대한 적개심을 나타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타이탄 쪽에서 이야기했다.
“타이탄은 네가 꼭 도와줄 거라고 하던데?”
“내가? 왜?”
“같이 힘을 모아 루시퍼를 잡자면서.”
리바이어던의 눈썹이 움찔거렸다.
“뭐?”
“지금 루시퍼가 여는 자에 의해 봉인된 것은 너도 알고 있지?”
“…… 그래.”
“봉인된 장소를 아는 자는 오직 타이탄뿐이잖아?”
“…… 그것도 맞다. 그 사실을 아는 것으로 보아 진짜 타이탄의 부하인가 보군.”
나는 좋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니깐?”
* * * * *
악마들의 안내를 받아 불타는 마을 안으로 들어왔다.
이렇게 살 바에는 그냥 죽는 게 낫다고 생각될 만큼 열악한 곳이었다.
지하세계에서 제일 더럽고 냄새나는 곳이라는 말이 맞았다.
듣도 보도 못한 온갖 쓰레기들이 마을 한편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이들이 집이라고 말하는 모래 덩이는 그저 몸을 누일만한 공간이 있는 장소였다.
마을 안에 있는 유일한 나무. 비틀어진 나뭇가지의 끝에는 촛불처럼 불이 붙어 있었다.
마왕이 사는 곳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처참했다.
“…… 여기가 네 구역인가?”
알면서도 한 번 더 물어봤다.
놈이 자신의 처지에 비참함을 느끼도록 말이다.
“그렇지.”
“나는 이런 곳에 못 살 것 같은데.”
“…… 하던 이야기나 마저 해라.”
“아 그거? 타이탄이 위치를 알려 줄 테니 같이 루시퍼를 잡고 지옥의 주인을 바꾸자고 하더군. 네가 미카엘 처치를 도와주는 대신 말이야.”
“……”
“나쁜 조건은 아닐 텐데?”
리바이어던이 고민하는 듯 눈을 질끈 감고 명상에 잠겼다. 거절하기 힘든 권유일 것이다.
루시퍼에게 찍혔다는 이유로 지옥 제일 구석 쓰레기장에 박혀 살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턱을 괴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악마 부하들이 수군거렸다.
-그럼 우리 전부 다 여기서 나갈 수 있는 건가?
-이 빌어먹을 마을에서만 살지 않는다면 무슨 짓이라도 하겠어.
-리바이어던 님, 저 인간의 이야기를 좀 더 들어봅시다.
부하들의 이야기를 듣던 리바이어던이 생각을 마쳤는지 내게 말했다,
“내가 미카엘을 처치해주면 되는 건가?”
“그렇지.”
“흐음, 위치는?”
“불타는 성전.”
“불타는 성전?!”
녀석이 또 한 번 눈썹을 움찔거렸다. 동요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불타는 성전이라면 지옥의 악마들이 대천사 중 또 다른 한 명을 봉인해둔 곳이니 말이다.
미카엘의 든든한 지원자이자 치유의 대명사인 라파엘이 잠들어있다.
미카엘과 라파엘이 동시에 깨어난다면 악마들에게도 큰 위기가 온다.
멸망한 세계를 다시 되돌릴 힘을 가진 자들이니 말이다.
“그래, 불타는 성전. 그곳에 미카엘과 그를 따르는 인간들이 모여 있어.”
“…… 타이탄은 어디에 있는 거지?”
“그는 메카니아라는 곳에서 인간과 천사들이 지옥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고 있고.”
“거인들 전부가 말인가?”
“그렇지.”
리바이어던의 몸에서 갑자기 푸른색 오라가 뿜어져 나오더니 마을 전체를 휘감았다.
갈라진 지면에서 솟구쳐 오르던 불길이 멈추었다.
그가 지팡이를 휘두르자 하늘에서 천둥과 함께 물이 쏟아져 내렸다.
콰르릉!
“타이탄의 조건을 수락하도록 하지.”
폭우가 쏟아졌다.
리바이어던의 몸이 푸른 비늘로 덮이며 한 마리의 괴물이 되었다.
흔히 동양에서 용이라 부르는 존재였다. 날개는 없지만 뱀처럼 기다란 몸을 가지고 있는, 그런 존재 말이다.
그의 몸이 마을을 전부 두르고도 남을 만큼 길었다.
악마 부하들이 떨어지는 비를 맞으며 함성을 질렀다.
-드디어 리바이어던 님이 부활하셨다! 이제 이 지긋지긋한 곳에서 벗어날 수 있어!
-그래, 루시퍼 님을 배반하더라도 더는 이 마을에 있을 수는 없다고!
모두 그의 결의에 환대했다.
리바이어던이 고개를 높이 들고 소리쳤다.
“이곳의 불을 끈 이상 나는 다른 형제들과의 연을 끊은 것이다. 이제부터 뒤는 돌아보지 않는다. 지옥의 지배자가 될 때까지 앞만 보고 나아간다!”
-우오오오오!
다들 기쁨에 잠겼다.
나는 그들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내 미소의 의미가 무엇인지 그들을 알 수 있을까?
“…… 그럼, 이제 가볼까?”
* * * * *
리바이어던이 지나가는 길목마다 비가 쏟아져 내렸다. 악마들이 그의 뒤를 따라 불타는 성전을 향해 나아갔다.
나는 리바이어던의 머리와 같은 선상에서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미카엘의 봉인이 풀린 이유가 뭐지? 분명 타이탄의 몸속에 녀석이 있다고 들었는데.”
“여는 자가 나타났어.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미카엘을 타이탄의 몸속에서 끄집어냈더군.”
“여는…. 자. 정말로 여는 자라는 놈이 있었단 말인가?”
“그래. 녀석이 타이탄의 몸속에서 미카엘을 부활시키고 지옥을 정화하려고 한다더군.”
“망할….”
놈이 치아를 드러냈다.
톱니 같은 리바이어던의 치아가 보였다. 한 번만 물려도 전부 썰려 나갈 것 같았다.
나는 시선을 돌려 리바이어던의 머리 위에 있는 생명력 게이지를 보았다.
노란색이다.
그럼 총 네 번을 깎아 내야 한다.
생명력 게이지의 색상이 노랑부터 시작한다면, 생명력 게이지의 순서는 노랑->파랑->초록->빨강.
거인족보다 한 칸이 더 많다.
타이탄보다 리바이어던의 체력을 더 강하게 측정하다니, PC 버전하고 조금 다르구나.
‘불지옥 난이도라서 그런가?’
우리는 세계수로 연결된 길을 따라 계속해서 이동했다.
불타는 성전은 세계수 앞, 루시퍼의 왕좌로 향하는 길에 세워져 있다.
천사들이 성전을 찾아올 수 없도록 루시퍼가 내린 특단의 조치였다.
라파엘의 치유 능력은 루시퍼도 겁을 낼 정도로 수많은 천사를 되살려낼 수 있으니 말이다.
우리들이 이동하는 동안 다른 악마들이 말없이 길을 터주었다.
리바이어던의 모습만 보고도 벌벌 떠는 것 같았다.
심지어 여섯 번째 라운드에서 처치하느라 애 좀 먹었던 비홀더 조차 눈치를 슬금슬금 보며 바위 뒤로 몸을 감추었다.
부우우우웅-.
앞서가던 악마 중 한 명이 크게 소리쳤다.
-리바이어던 님, 북쪽에서 바람이 불어옵니다!
“북쪽에서 바람이?”
-예!
갑자기 강풍이 몰아쳤다. 악마 중 가벼운 개체들이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땅을 기던 리바이어던이 몸을 휘감아 바람을 막아주었다.
모두가 움직임을 멈추었다.
“전투 준비.”
그가 낮게 뱉은 한 마디에 악마들 모두가 행동을 멈추었다.
리바이어던의 부하들은 하급 악마 특유의 무기, 삼지창으로 주변을 경계했다.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나는 리바이어던에게 물었다.
“왜 멈췄지?”
“놈들이 오고 있다.”
“놈들?”
“…… 악의 창조주, 루시퍼의 아들 중 한 명. 내 형제인 사탄이다.”
사탄.
남쪽에 리바이어던이 있다면 북쪽에는 사탄이 있다.
놈이 이유 없이 남쪽까지 올 확률은 극히 희박한데, 벌써 이쪽의 움직임을 눈치 챈 것인가?
리바이어던이 똬리를 틀더니 하늘을 향해 몸을 길게 세웠다.
머리가 구름까지 닿을 정도로 높이 솟았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악마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전원 전속력으로 불타는 성전으로 이동하도록 해라!”
악마 병사들이 망설였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자 그가 꼬리를 살짝 흔들어 땅을 쳤다.
쿵!
악마들이 화들짝 놀라더니 리바이어던의 명령을 이행했다.
-모두 불타는 성전을 향해 뛰어라!
나는 리바이어던을 향해 소리쳤다.
“리바이어던!”
“인간, 너도 저놈들을 따라가도록 해라. 내가 시간을 끌도록 하지.”
“시간을 끌어?”
“어차피 사탄과 녀석의 부하들은 내 상대가 되지 못한다. 아마도 놈의 목표는 내 부하들이겠지.”
“……”
안 된다.
나는 놈을 데리고 불타는 성전으로 가야 한다.
네크로맨서가 가질 수 있는 최강의 스킬을 그에게서 받을 수 있으니깐.
일곱 번째 라운드의 메인 이벤트를 쉽게 끝내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요소.
나는 강철 스켈레톤 병사들을 사방으로 배치하며 리바이어던에게 말했다.
“나도 싸우도록 하지.”
“…… 뭐?”
“아까 말했잖아. 불타는 성전까지 같이 가야 한다고.”
“먼저 가라고 하지 않았나?”
“먼저 가면? 우리끼리 미카엘을 상대하고 있으라고?”
리바이어던이 몸을 비꼬며 지면으로 내려와 내게 말했다.
“여기 있으면 죽을 수도 있다.”
“죽는 게 무서우면 지옥까지 왔겠어?”
“녀석은 인간이 상대할 정도로 약하지 않아.”
“당신은 더 강하다면서?”
“……”
“나도 인간 중에는 강한 편이야.”
리바이어던이 크게 입을 벌려 어금니를 드러냈다. 어떠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부정적인 느낌은 아니었다.
“마음대로 해라. 내 발목을 붙잡지만 않으면 좋겠군.”
“걱정하지 말라고.”
빨간 피부를 가진 리바이어던의 부하들이 땅에 먼지가 흩날리도록 뛰었다.
북쪽에서 몰려온 먹구름이 하늘을 덮기 시작했다.
리바이어던이 푸른 오라를 뿜으며 하늘을 경계했다.
“온다.”
나는 스켈레톤 병사를 한곳에 모았다.
사탄 녀석이 왜 이곳에 왔는지 모르겠지만, 놈이 리바이어던보다 약한 것은 틀림없다.
그를 막으러 왔다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전력의 차이가 큰데, 이유가 무엇일까.
내가 스토리의 흐름을 너무 많이 바꾸어서 그런가?
“…… 뭐.”
상관없지.
회색 가고일들이 하늘을 덮었다.
그들의 최전방에 염소 머리에 인간의 몸을 한 악마가 춤을 추며 날아오고 있었다.
이마에 그려진 별 모양.
사자의 서에 그려져 있는 바로 그 모양이었다.
[시스템 메시지]
[북쪽의 마왕, 일곱 악마 중 순수 악이라 불리는 ‘사탄’이 남쪽의 왕을 찾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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