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화
[일곱 번째 라운드에 입장하셨습니다.]
[‘불타는 성전’으로 향하는 게이트가 메카니아와 폐허가 된 마을에 열립니다.]
[글로벌 서버가 활성화됩니다.]
[지옥에 도착하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김천재’ 플레이어는 지옥 남쪽에 배정되셨습니다.]
게이트 안으로 들어오자 뜨거운 열기가 나를 감싸 안았다.
메카니아의 하늘이 화염처럼 붉게 보였다면, 이곳은 그와 반대로 발밑에서 지옥 불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꺼지지 않는 불꽃이 지옥임을 나타냈다.
“저거구나.”
[불타는 세계수]
타오르고 있다는 것 빼고는 엘프 헬름과 드워프 협곡의 중간에 놓여있던 세계수와 똑같이 생겼다.
내 얼굴이 후끈거렸다.
고개를 아래서 위쪽으로 한참 동안 올려야 할 정도로 높았다. 구름을 뚫고 올라가서 끝을 볼 수가 없었다.
세계수의 위치가 내가 있는 곳에서 3시 방향으로 보이는 것으로 보아, 나는 남쪽 게이트가 출발지인가보다.
‘남쪽이라면…. 그놈이 있겠구나.’
나는 타오르는 세계수를 보며 조용히 독백했다.
“드디어 일곱 번째 라운드다.”
앞으로 조금 걸어가자 좁디좁은 다리 하나가 보였다.
양옆으로 폭포수처럼 용암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아래로는 어둠만이 가득했다.
얼마나 깊었는지 돌 조각을 하나 걷어차 던져 보았는데 지면에 닿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밑에서 각종 몬스터의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녀석들의 음성을 듣지 못한 척 길을 따라 걸었다.
조금만 발을 헛디디면 끝을 모르는 절벽 아래로 떨어진다.
게임 속에서는 이 아래로 떨어질 때 사망으로 처리되어 있었다.
빠지면 쉽사리 나갈 수 없는 장치일 테니 더욱 조심해야 한다.
“유황 냄새….”
온천에서나 맡아 볼 법한 향이었다.
나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길을 따라 걸었다.
[‘지옥 다리’에 입장하셨습니다.]
[다리의 끝으로 가는 길을 악마가 지키고 있으니 조심하십시오.]
다리의 중간쯤 도착하자 나를 기다리고 있는 지옥 임프와 트리플 비홀더가 보였다.
수십, 아니 수백은 되어 보이는 지옥 임프들.
“비켜라.”
내가 낫을 굳게 쥐자 놈들이 뒤로 물러났다.
상대가 되지 않음을 직감한 것이다.
임프들이 길을 터주자 트리플 비홀더가 내 앞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좌측과 우측에는 도깨비의 얼굴.
중앙에는 코끼리의 얼굴을 하고 있는 거인 괴물이다.
놈이 코끼리 코로 ‘뿌우우우!’ 거리며 내 앞으로 다가왔다.
“인간이 이곳에는 어떻게 온 거지?”
강하다.
혼자 상대하기에 벅찬 상대임이 틀림없었다.
나는 태연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내가 인간으로 보이나?”
“그럼? 악마라고 할 생각인가?”
“아니, 천사일 수도 있잖아.”
“…… 천사 따위는 이곳에 올 수 없다.”
“왜지?”
“지옥의 입구를 우리 거인족의 수장인 타이탄 님이 지키고 있으니 말이야.”
역시 시스템이 정해놓은 틀 안에서 대화를 한다.
그렇다면 우리 그룹원 전부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지옥 길을 전투 없이 지나갈 수 있으니 말이다.
나는 손가락으로 나 자신을 가리켰다.
“인간은 올 수 있고?”
“인간은 타이탄 님의 허락만 있다면 들어 올 수 있지.”
“…… 나 말고 이곳에 온 인간이 있었나?”
“그건 내가 대답해줄 의무가 없군.”
나는 표정을 굳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맞아. 네가 나한테 친절하게 말해줄 이유는 없지.”
“그래서 네가 이곳에 온 이유가 뭐지? 합당하지 않다면 너를 잡아먹도록 하겠다.”
“나를? 왜?”
“인간이니깐.”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하는 대답. 인간이니깐 잡아먹는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그렇게 행동을 하던가, 왜 이곳에 온 이유를 물어보는 것일까?
“내가 네게 이유를 말해줘야 하나?”
“죽기 싫다면.”
“…… 나는 네 보스 부탁을 들어주러 이곳까지 왔는데. 나를 문전 박대할 생각인가?”
“보스…. 타이탄 님을 말하는 건가?”
“그래.”
트리플 비홀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타이탄 님의 부탁이라니?”
나는 은근슬쩍 놈과의 거리를 재었다.
이 정도면 녀석의 급소까지 내 낫의 거리가 닿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확실하게 끝낼 수 있는 각이 나오지 않았다.
내가 검지로 비홀더를 가리켰다.
“타이탄이 너를 찾던데. 지금 메카니아에 인간들이 떼로 몰려와 거인들을 사냥하고 있어.”
“……”
“인원이 부족하니 지옥에서 좀 데려와 달라고 하던데?”
트리플 비홀더의 세 개의 머리가 나를 동시에 쳐다보았다.
총 여섯 개의 눈알이 나를 지켜보고 있으니 굉장히 부담스러웠다.
가뜩이나 표정이 좋지 않은 놈인데, 저런 시선은 굉장히 부담스럽다.
트리플 비홀더가 고개를 아래서 위로 흔들며 내 행색을 보더니 되물었다.
“나를 데려와달라 했다고?”
“어. 거인 중 제일 강해 보이는 자에게 전달해달라고 했어.”
“인간들이 쳐들어왔는데, 인간을 통해서 내게 이야기를 전달한다고?”
“…… 어. 나는 너희 두목과 오랜 친구 사이거든. 너도 알걸? 지옥의 왕 루시퍼와 손을 잡았다는 인간.”
녀석이 또다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하는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구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당연히 없는 말을 지어낸데다가 자신 있게 말하니 놈도 헷갈릴 수밖에.
그리고 스토리상 루시퍼와 손을 잡은 인간 따위는 없다. 녀석을 물리치는 게 모든 플레이어의 염원이니깐.
한참 동안의 생각을 마친 트리플 비홀더가 내게 대답했다.
“타이탄 님이 우리를 데려오라고 했다는 건가?”
“맞아.”
“겨우 인간을 잡기 위해서?”
“아니, 지금 메카니아에는 천사들도 있어.”
천사라는 말에 비홀더가 눈을 부릅떴다.
[‘트리플 비홀더’가 당신의 말에 흥분합니다.]
“뭐라고…? 천사?!”
“그래, 천사. 갑자기 미카엘이라는 놈이 나타나서 메카니아의 거인들을 전부 쓰러뜨리고 있어.”
“미…. 미카엘이…. 정말인가? 그놈은 분명 루시퍼 님이 봉인하셨는데-”
“정말이지. 내가 여기까지 와서 너한테 뭐 하러 거짓말을 해?”
비홀더가 내 눈빛을 한참 동안 쳐다보더니 대답했다.
“알려줘서 고맙다. 그럼 나는 부대를 이끌고 메카니아로 가도록 하지.”
“부대?”
“그래. 루시퍼 님이 직접 하사하신 임프 부대 말이다.”
비홀더의 곁으로 임프 수십 마리가 달라붙었다.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길이 저들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할 수 있게 해주었다.
저 정도 화염 불길이면 대략 2 서클 마법사의 화염구 정도 되겠군.
‘다행이다.’
불지옥 난이도라도 하급 몬스터들은 그리 강해지지 않았구나.
“멋지네, 임프 부대.”
“그런가? 뭐…. 너도 함께 메카니아로 돌아갈 텐가?”
나는 손을 저었다.
“아니. 나는 다른 악마들을 찾아서 데려가야 해.”
“다른 악마?”
“어. 천사들을 상대하려면 더 많이 데려가야 할 거 아니야? 타이탄이 직접 도움을 청했는데 하급 병사들만 끌고 갈 수는 없잖아.”
“그렇긴 한데….”
“너 먼저 빨리 가봐. 늦기 전에 도착해야 타이탄이 좋아하지 않겠어?”
트리플 비홀더가 흐뭇한 미소로 턱을 쓸었다.
“내게 제일 먼저 알려준 건가?”
“그렇지.”
“…… 알았다. 그럼 상황 전파는 네게 부탁하도록 하지. 고맙다.”
‘내가 더 고맙지.’
전투 없이 지옥 길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말이야.
[‘트리플 비홀더’가 지옥의 임프들을 데리고 메카니아로 향합니다.]
* * * * *
대결 없이 트리플 비홀더를 보냈다. 굳이 필요하지 않은 싸움을 하지 않게 되었다.
직접 싸운다고 하더라도 질 것 같지는 않지만, 체력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앞으로 많은 적을 상대해야 하니 말이다.
나는 세계수로 이어져 있는 길에서 벗어나 불타는 땅을 걷기 시작했다.
일곱 번째 라운드의 숨겨진 마을을 찾아서.
지면이 고르지 못해 걷는 내내 험난한 산을 오르는 듯이 숨이 차올랐다.
“후우.”
담배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
사우나에서 제일 높은 온도의 방에 들어온 것처럼 뜨거운 열기가 폐까지 들어오는 것 같았다.
처음 배정받은 게이트로부터 거리가 멀어지자, 임프들이 한둘씩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게임이니 나약한 악마들의 개체 수가 적어지겠지?
“…… 어이.”
나는 혼자 있는 임프에게 말을 걸었다.
“키익?”
샥-.
털썩.
임프의 몸이 땅에 떨어졌다.
놈의 생명력 게이지를 보니 반 이상 남아 있었다. 나는 낫을 크게 휘둘러 놈의 몸을 산산조각 내었다.
[시스템 메시지]
▶스켈레톤 소환 (마나 소모: 2)
임프의 뼈를 매개체로 스켈레톤 병사 한 마리를 소환했다.
뼈가 반짝이는 강철로 만들어져 있었다.
이전과는 강도가 전혀 다른 물체였다. 걷어차면 부러질 것 같았던 뼈들이 공사장 쇠파이프처럼 단단해 보였다.
[소환 목록]
-Ⓛ박규환(군인) 1/1 : 대기 중
-가웨인(호랑이) 1/1 : 대기 중
-불카누스(호구) 1/1 : 식사 중
-스켈레톤(강철) 1/1 : 대기 중
나는 스켈레톤 병사를 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속성이 강철이라면 악마에게 우세한 종족이니 말이다.
“가자.”
스켈레톤 병사와 함께 길을 걷게 되었다.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 임프들을 사냥하여 강철 스켈레톤 병사들을 한둘씩 늘렸다.
그 수는 대략 마흔 마리 이상.
내가 ‘불타는 마을’ 앞에 도착했을 때는 벌써 한 개의 해골 병사 중대가 만들어져 있었다.
“문을 열어라.”
마을 안은 서유기 속 우마왕의 성처럼 꺼지지 않는 불길이 이곳저곳에서 솟구쳐 오르고 있었다.
내 외침을 들은 병사들이 안쪽에서 문을 밀어 열었다.
끼익-. 끼이이이익-.
문이 열리자 붉은 피부의 악마 병사들이 나와 마주쳤다.
놈들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 너는 뭐냐?”
인간과 굉장히 비슷한 외관을 가진 악마들이었다. 이마에 뿔이 하나 튀어나와 있다는 점을 빼면 말이다.
“나는 김천재라고 한다.”
“김천재?”
“그래. 이곳에 성주님을 뵈러 왔는데 말이야.”
“…… 성주님을?”
악마 병사는 기가 찬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잠깐만. 너한테서 인간의 냄새가 난다.”
“인간 맞아.”
“뭐?!”
“나는 지금 타이탄의 부탁을 받아 이곳으로 왔다. 시간이 없으니 최대한 빨리 성주님을 불러줘.”
악마 병사가 삼지창의 날을 세워 나를 겨누었다.
“안- 돼. 인간 따위가 감히! 이곳의 성주님이 누군지나 알고 있는 거냐?”
나는 입을 굳게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리바이어던, 지옥의 일곱 왕 중 한 명이 아닌가?”
내 대답에 악마 병사들이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리바이어던’은 지옥에서 아무나 함부로 이름을 올릴 수 없는 존재인 데다가, 언급하는 것만 하더라도 그의 귀에 들어가도록 시스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너 정말 리바이어던 님을 알고 있어?”
“당연하지.”
“네까짓 놈이 어떻게?”
“…… 모르면 내가 왔겠어? 시끄럽고 빨리 문이나 열어.”
악마 병사 둘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하였다. 나는 그들이 생각을 정리하지 못하도록 재촉했다.
“안 열어주면 나 그냥 간다?”
“…… 여기 온 이유가 뭐라고 했었지?”
“타이탄의 부탁을 받아서 이야기를 전달하러 왔다고.”
“타이탄이 왜 네게 부탁을 한 거지? 그분에게는 다른 강력한 거인족 병사들도 있을 텐데 말이야.”
나는 능청스럽게 웃었다.
“내가 제일 강하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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