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화
거인들을 몰아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미카엘의 축복’으로 인해 정신을 차리지 못하니, 그저 일방적으로 공격을 쏟아부을 수 있으니 말이다.
머리가 두 개 달린 트윈 비홀더와 세 개 달린 트리플 비홀더는 완벽하게 처리했다.
다만 비홀더 중 최약체라 불리는 일반 거인 중 몇몇이 도망갔다.
약한 만큼 충격이 적었나?
찝찝하기는 하지만 놓친 건 어쩔 수 없었다. 도시 밖으로 쫓아가기에는 너무 위험하니 말이다.
에이도스가 로봇 기체를 시켜 거인의 시체를 도시 밖으로 이동시켰다.
강대원이 만든 자동 세척기가 도시 전역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청소차에서 뿜어 나오는 수증기가 도로 위를 적신 거인의 피를 닦아냈다.
주민들이 탑에서 나가 자신의 자리를 찾아갔다.
단 하루 만에 AI와 강대원의 힘으로 멸망한 도시가 다시 일어섰다.
강대원이 내게 말했다.
“김천재 씨, 정말 감사합니다.”
“뭘요. 에이도스의 권한은 강대원 씨에게 넘겨 드렸으니, 이제 이 도시는 대원 씨가 알아서 잘 지키도록 하세요.”
“…… 옙.”
그의 눈빛이 살아있다. 처음 보았을 때와 너무나도 달랐다.
아들을 잃어 슬픔에 정신을 차리기 힘들 텐데, 굉장한 정신력이다.
“늦었지만, 아드님 일은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천재 씨가 그런 것도 아닌데 왜 사과를 하십니까.”
“저희 쪽에서 넘어 온 사람들이 그랬으니까요.”
“신경 쓰지 마세요. 천재 씨는 저희의 영웅입니다.”
그가 내게 미소를 보여 주었다.
나는 그를 포옹해주며 귀에 속삭였다.
“대원 씨,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긴장을 늦추지 말아 주세요.”
“…… 예?”
* * * * *
거인들이 사라진 이후 메카니아에 있는 모든 사람의 얼굴에 웃음이 떠나가지 않았다.
우리는 이곳에서 머물러야 하는 정해진 시간 동안 도시를 돌아다녔다.
우리 그룹과 조영기의 그룹이 시스템이 만든 여는 자 동상을 찾아갔다.
‘…… 뭔데?’
나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아니, 우리 전부가 말이다.
동상이 깨져 있었다.
그 안에서 무언가가 나온 흔적이 보였다. 질척한 투명한 액체와 함께 동상 안쪽으로 유리관이 보였다.
마치 생명체를 담고 있었던 듯.
정우가 동상을 걷어찼다.
쿵!
“뭐야!”
“정우야, 저거 누가 가동했냐?”
“나도 모르지! 분명 내가 거인들을 상대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동상은 그대로였어. 조영기, 너냐?”
조영기가 손을 저었다.
“아니, 내가 미쳤다고 저걸 가동하겠어? 저 녀석은 내가 속한 초월자 그룹의 최대 걸림돌이었는데.”
김연희가 새초롬한 미소로 손을 들고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그녀의 행동이 불안감을 심어주었다.
“난데? 내가 가동했어!”
우리 모두가 김연희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대답을 들어보니 어떻게 된 상황인지 이해가 되었다.
나를 믿지 못한 김연희가 거인들을 상대하기 위해 ‘가짜 여는 자’를 깨웠다는 것이었다.
탑이 위험할 때 거인들을 막아주었던 자가 바로 저놈이었구나.
‘…… 하!’
정우가 어이없이 웃으며 김연희의 뒤통수를 때렸다.
찰싹!
“이 년이 정신 나갔나.”
“아악! 왜, 왜 그래?”
“너 저게 누군지 알고 풀어준 거야?”
“어…. 김정재 아니야? 왜….”
“아는데 풀어줘? 너 저 새끼가 왜 미친개라고 불리는지 몰라?”
김연희가 기분 나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알지. 아는데…. 어쩔 수 없었다고! 저 동상을 사용하지 않았으면 우리 모두 죽었을 거야.”
나는 수긍하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도 어느 정도는 일리가 있으니 말이다.
내가 담뱃불을 붙이며 말했다.
“됐다, 어차피 풀어진 거. 저 새끼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도록 하자.”
“야 김천재, 이거 웃어넘길 수 있는 일이 아니야.”
“나 안 웃었어. 그리고 어차피 벌어진 일 좋게 생각하자고.”
“하….”
마정우가 김연희를 째려보았다.
김연희가 눈치를 보며 고개를 떨구었다.
조영기가 그 사이로 들어갔다.
“이번 일은 내가 사과하도록 하지.”
“저년 감시 잘해. 우리 정말 다 죽을 수 있어.”
“미안하다.”
“…… 후우.”
조영기가 담배 한 대를 꺼내어 정우에게 건네어 주었다.
정우가 한숨을 푹푹 내쉬며 담배를 받아들었다.
위이이이이잉-!
로봇 기체 다섯 대가 타이탄의 시체를 들고 동상 앞으로 왔다.
“고맙다. 에이도스.”
[로봇 기체가 모든 명령을 마치고 자리로 돌아갑니다.]
나는 까맣게 탄 타이탄의 시체를 바라보았다. 그리곤 정우와 함께 날붙이를 휘둘러 놈의 몸을 잘라내기 시작했다.
얼마나 강한 충격을 받았는지 피부 속까지 전부 검게 변해있었다.
살의 두께를 일 미터 정도 베어내고 나서야 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 다들 준비됐지?”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중 한 명은 사라진다. 타이탄 몸속에 갇혀있는 미카엘에 의해서 말이다.
이에 대해서는 모두 이야기가 끝났다.
스토리 진행상 어쩔 수 없는 희생이지만, 게임과 다르게 이곳에서 목숨을 잃는 것은 죽음을 뜻하니….
모두 긴장이 역력했다.
이때다 싶은 나는 온 힘을 다해 낫을 휘둘렀다.
“시작한다!”
부웅-.
콰직!
낫의 끝이 깊게 들어갔다.
내가 낫의 손잡이를 강하게 끌어당겼다.
스으으으윽-.
목 밑부터 복부까지 단번에 잘라냈다. 타이탄의 갈라진 살덩이 사이로 금빛의 날개가 보였다.
우리를 다 같이 힘을 모아 타이탄의 복부를 양옆으로 벌렸다.
쿠지직.
천사의 얼굴이 보였다.
태양이 그녀의 얼굴을 비추는 순간 빛이 뿜어져 나왔다.
콰앙!
우리 전부의 몸이 튕겨 나갔다.
[‘김천재’ 님의 그룹이 여섯 번째 라운드의 메인 이벤트가 현 시간부로 종료됩니다.]
[‘불지옥’ 난이도에 따른 클리어 보상이 지급됩니다.]
[속성(강철) 책이 지급됩니다.]
속성 책?
열 번째 라운드 이후에나 발견 할 수 있는 아이템인데, 불지옥 난이도의 보상은 역시나 달랐다.
나, 마정우, 조영기, 김연희.
이 게임을 해본 자들은 모두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마이클과 유소라를 제외하고 말이다.
[수고하셨습니다.]
이벤트에 성공했다는 홀로그램 메시지와 함께 천사가 눈을 떴다.
[악마의 몸에 숨겨진 천사가 나타났습니다.]
[위대한 존재가 인간의 몸을 원합니다.]
[이번 라운드에 참가한 플레이어 중 1명이 제물로 사용됩니다.]
시작되었다.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내 앞으로 룰렛 하나가 나타났다. 여섯 개로 나누어진 칸, 한 곳에만 천사의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천천히 손을 올려 버튼을 눌렀다.
빠르게 돌아간 룰렛의 속도가 점점 느려지더니 아무것도 없는 칸에 멈춰 섰다.
당연했다.
시스템상 그룹의 리더는 지목되지 않는 것이 당연했으니깐. 하지만 예외의 경우라는 게 생길 수도 있다.
그렇기에 잠시 긴장했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른 이들을 보았다.
정우와 조영기의 표정을 보니 안전하게 지나간 것 같았다. 버튼을 누르는 속도를 보니 저 둘은 죽음에 관하여 큰 미련이 없어 보였다.
물론 그렇게 치면 나도 똑같지만 말이다.
“마정우.”
“살았다.”
“조영기.”
“…… 뭐?”
“룰렛 결과, 어떻게 나왔냐고.”
“나는 잘 나왔어. 저놈이나 확인해봐.”
조영기가 검지로 마이클을 가리켰다. 마이클이 룰렛을 보며 표정을 구겼다.
‘설마?’
“천사 갖기 실패!”
“천사를 가지면 죽는다고!”
“아, 그래요우?”
“하…. 참….”
저 미친놈이 천사에 걸리면 죽는다고 몇 번이나 설명해줬는데….
조영기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저 녀석 한국말 할 줄 아는 거 맞지? 아니면 우리랑 한 대화를 기억 못 하는 것 같은데.”
“…… 둘 다일 수도 있어.”
“너도 참 고구마 같은 새끼를 데리고 다니네.”
“개똥도 쓰려면 없다잖아. 분명 필요할 때가 올 거야.”
“여유롭네, 앞으로 계속 그러면 좋겠어.”
조영기가 괜히 히죽 웃으며 내게 어깨동무를 했다.
“징그럽다, 꺼져.”
“왜 그래? 서로 안 지도 오래됐는데.”
“오래되기는.”
“오래됐지. 생사를 같이했었는데 말이야.”
나는 목에 걸린 조영기의 팔을 밀쳐냈다.
“…… 알았으니깐 좀 꺼지라고. 더워죽겠는데 왜 자꾸 붙어.”
“아, 알겠습니다. 동생은 한 걸음 뒤로 꺼지겠습니다-.”
“더 꺼져.”
조영기가 셔츠 깃을 세우며 타이탄의 시체가 있는 쪽으로 갔다.
“예예, 저는 그럼 미카엘 구경 좀 하고 있습죠.”
저 새끼가 왜 저런담?
똑. 딱. 똑. 딱.
시스템이 시곗바늘 돌아가는 소리를 내었다.
아직 선택하지 못한 플레이어는 점점 초조해질 것이다.
남은 사람은 유소라와 김연희.
유소라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녀는 김연희의 눈치를 보며 버튼을 누를까 말까 고민하고 있었다.
정적이 흘렀다.
안전권 안에 들어온 자들은 일부로 자리를 회피했다. 마정우가 담배를 피자며 조영기를 데리고 갔다.
마이클도 끌려가듯 그들과 함께 사라졌고.
나만이 남아 둘을 보았다.
“…… 빨리 선택하지?”
유소라가 벌게진 얼굴로 나를 보았다.
“천재 씨….”
나는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선택하세요. 기다린다고 피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
아직 플레이어들이 밝혀내지 못한 알고리즘이지만, 분명 룰렛은 천사의 제물이 되는 자를 뽑는 기준이 있다.
플레이어가 알아낸 것은 단 하나.
그룹의 리더는 뽑히지 않는다는 것.
우리가 모를 뿐이지, 그 외에도 선발 기준이 분명 존재한다.
동네 암살자 김연희.
여는 자의 동료 유소라.
과연 둘 중 죽게 되는 것은 누구일까?
지금 내가 원하는 것은 사실 김연희의 죽음이다.
유소라가 죽으면 ‘사자의 서’를 읽어줄 플레이어를 잃게 되고,
그럴 경우 나는 또다시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그룹원을 찾아야 한다.
이 게임에서 머물러야 하는 시간이 점점 길어진다는 소리.
그러기에 나는 계획을 바꾸었다.
유소라가 선택되더라도 나는 김연희를 제물로 만든다. 시스템이 정해준 등가교환을 통하여 말이다.
정우와는 이야기가 끝낸 상태.
그러기에 조영기와 마이클을 데리고 자리를 피했고. 나는 이곳에 남은 것이다.
김연희가 손톱을 물어뜯었다.
“너는 살았으니깐 걱정이 없겠지!”
내가 얼굴을 찡그렸다.
“내가 걱정이 없어서 그냥 버튼을 눌렀겠어?”
“…… 각오의 차이다.”
유소라가 침을 꿀꺽 삼키더니 버튼을 눌렀다. 룰렛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빠르게 돌아가는 룰렛만큼 내 가슴이 뛰었다. 김연희 또한 마찬가지, 그녀는 굳을 얼굴로 룰렛을 응시했다.
‘제발.’
두두두두두두두-
삐익!
“…… 끝났네.”
* * * * *
유소라의 룰렛이 하얀 칸에서 멈추었다. 그녀는 살았다는 기쁨에 환호성을 질렀다. 그것도 잠시, 어두워진 김연희를 보더니, 얼굴에서 웃음을 지웠다.
“죄…. 죄송해요.”
김연희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아니에요…. 언니가…. 정한 것도 아닌데요….”
이제 룰렛에 남아 있는 칸은 천사가 그려져 있는 제물 칸.
그녀는 이를 꽉 깨물고 버튼 위에 손을 올려놓았다.
“흐으으윽…. x발…… x발…… ”
김연희의 손가락이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처럼 떨려왔다. 그녀는 버튼을 누르지 못하고 하염없이 눈물을 떨어뜨렸다.
유소라가 그녀를 안아 주었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 흐윽-. 언니 잘못도 아닌데…. 흐윽, 왜 자꾸 미안하데요!”
나는 차가운 표정으로 김연희에게 말했다.
“김연희, 내가 분명 말했었지? 이번 라운드는 목숨을 걸고 해야 한다고.”
“…… 안다고!”
“룰렛의 결과는 절대적이다.”
“누가 뭐래?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왜 지랄인데?”
“그럼 울지 말고 룰렛을 돌려. 그게 지금 네가 해야 할 일이야.”
“……”
“그리고 내가 한 가지 더 말해줬었지?”
김연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뭘?”
“죽음이 아닐 수도 있다고.”
“…… 지이라알. 나도 컴퓨터로 여섯 번째 라운드 깨 봤거든?”
“……”
나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김연희가 옷소매로 눈물을 닦아내더니 버튼을 눌렀다.
“잘 먹고 잘살아라! 이…. 이…. 흐윽…. 나쁜 새끼들.”
핑그르르르!
룰렛이 돌아갔다.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한 룰렛의 속도가 점점 느려지며 천사 날개가 그려져 있는 칸을 향해 나아갔다.
나는 김연희의 표정 변화를 보았다. 한참 동안 울기만 했던 그녀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
공포 혹은 절망.
이 둘이 아니라면…. 포기다.
삶의 희망을 포기해야만 나올 수 있는 표정이다.
김연희가 천천히 고개를 내려 땅을 보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름다운 엘프 마을에서 죽을걸….”
그녀의 긴 한숨이 땅속 깊이 들어가는 것 같았다.
천천히 돌아가던 룰렛이 ‘띵!’ 소리와 함께 멈추었다.
김연희는 결과를 보지 못했다. 유소라 또한 그녀의 시선을 회피하느라 룰렛을 확인하지 않았다.
나는 룰렛의 결과를 보고 깜짝 놀랐다.
“김연희.”
“…… 왜?”
“룰렛을 봐라.”
“뭐?”
“룰렛을 확인하라고.”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홀로그램 룰렛의 결과를 확인한 김연희가 두 볼을 붙잡고 비명을 질렀다.
-꺄아아악!
“기, 기기기 김 천재!!”
“……”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김연희의 룰렛 결과가 내 예측을 벗어났다.
그녀의 룰렛 화살이 멈춘 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스토리가 잘못된 건가? 아니면 바뀐 흐름에서는 제물이 필요 없게 된 것인가?
이상하다.
분명 둘 다 아닐 것이다.
시스템이 직접 제물이 필요하다고 말했으니 말이다.
나는 김연희의 룰렛 결과를 보며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 설마.”
김연희가 유소라에게 달려가 껴안았다.
“살았다!!”
“다행이에요! 축하해요. 연희 씨!”
“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천재 씨가 스토리의 흐름이 계속 바뀐다고 하던데. 전부 살 수 있게 됐나 봐요!”
‘…… 그럴 리가.’
제물이 없으면 다음 라운드로 갈 수가 없는데 말이야.
기쁨에 젖은 그들의 표정과는 다르게 이곳에 모인 플레이어 중 한 명의 얼굴이 천천히 굳어갔다.
나는 그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타이탄 앞에서 담배를 태우던 조영기가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았다.
“김천재.”
“…… 말해.”
“내 모든 돈은 저 아이한테 전부 맡겨놨다.”
“……”
“그동안 나 같은 새끼랑 같이 돌아다니느라 수고했다. 고인물.”
[룰렛 종료]
[여섯 번째 라운드, ‘미카엘의 부활’ 제물로 조영기 플레이어가 선택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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