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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화

[화염 방사기에 사용되는 가스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현재 미사일 터렛의 포가 20% 남았습니다.]

[예상 소진 시간 30분.]

나는 줄어들지 않는 거인들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제한된 자원 내에서 그들을 상대하려다 보니 너무나도 부족했다.

딩동-.

소리와 함께 상황실의 엘리베이터가 열렸다. 피투성이의 김연희가 숨을 헐떡거리며 들어왔다.

“김천재! 언제까지 막아야 하냐고!”

“……”

“밖에 안 보여? 네 친구도 다 죽어가고 있는 거?!”

나는 고개를 내려 마정우를 보았다. 반절 이하로 줄어든 그의 생명력이 위험함을 나타냈다.

그래도 아직은 싸울 수 있는 상태.

“아직 죽지 않았잖아.”

“…… 뭐?”

“저기는 정우가 맡기로 했으니 믿고 기다려.”

“아니! 다들 위험한 상태라니까?”

“그럼 어쩔 수 없고. 정우가 죽으면 이곳에 있는 모두가 죽는 것으로 알아.”

김연희가 빠른 걸음으로 내 앞으로 다가왔다.

“…… 너 진짜 미쳤어?”

“아니.”

“근데 어쩌자고 이러는 거야?”

“뭘?”

“너는 혼자 여기서 쉬고, 우리는 밖에 나가서 싸우라니? 엉?”

하긴, 나 혼자 안전한 곳에서 명령만 내리고 있으니 편해 보이겠지. 속이 타들어 가는 것을 보여줄 수도 없고 참 답답하다.

김연희는 대답 없는 내 어깨를 밀치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미친 새끼야! 전부 죽는다고!”

“…… 김연희.”

“왜!”

나는 차가운 표정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너 여기까지 따라오면서 죽을 각오도 안 했냐.”

“……”

“조영기가 너한테 시킨 거야? 나한테 가서 따지라고?”

그녀가 손을 저었다.

“아, 아니!”

“근데 너는 왜 여기 있는 거지? 다들 죽을 각오를 하고 싸우고 있는데 너 혼자 도망 온 건가?”

“그게 아니라! 위험하니깐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보라고-”

“지금 모두 살 방법은 단 하나다. 내가 다음 명령을 내릴 때까지 나가서 싸우던가, 혼자 도망가던가.”

“……”

김연희가 고개를 떨구었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는 나도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나설 차례가 아니다.

불지옥 난이도가 되었음과 동시에 적의 세력이 강해졌다면, 분명 그 세력에 맞설 수 있는 시스템이 이 게임 안에 숨겨져 있을 것이다.

그게 바로 강대원의 무기이고.

아니라면 내게 앞선 스토리 흐름을 보여줄 필요가 없으니 말이다.

스토리텔러가 누군지 모르겠지만, 눈치가 없는 자도 알 수 있도록 해놨으니….

나는 다시 창밖을 보며 말을 이었다.

“내 역할은 상황지시와 함께 이 게임을 승리로 이끄는 거야. 너도 알겠지만, 이번 라운드는 내가 소환 능력을 사용하지 못하니 후방에서 머리 역할을 하는 거고.”

“그건….”

“김연희, 나한테 투정 부릴 시간에 나가서 네 그룹장을 돕도록 해.”

조영기의 생명력 게이지도 반절 이하다. 모두 체력의 한계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싸우고 있었다.

회복 능력이라도 사용할 수 있었으면 좋았는데, 이번 라운드는 제한이 되다 보니 어쩔 수 없었다.

한계점까지 싸운 후 휴식을 하는 수밖에.

김연희가 이빨을 꽉 깨물더니 다시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김천재! 뭘 준비하는지 모르겠지만 늦지 않도록 하라고!”

“아까 세 번이나 설명했는데 그걸 모르면 어떻게 하냐….”

“아 몰라, 몰라, 몰라! 나 간다!”

* * * * *

쿠웅-! 쿠웅-!

비홀더 몇 마리가 탑을 공격하는 대에 성공했다.

그들의 공격이 성공할 때마다 주민들이 불안에 떨며 비명을 질렀다.

외침을 들을 때마다 내 심장이 더욱더 빠르게 뛰어왔다.

어느 순간부터 죽음이 두렵지 않았는데, 막상 계획대로 되지 않으니 더욱 그런 것 같았다.

메카니아의 1중대장이라는 놈이 내게 다가와 물었다.

“기, 김천재 선생님. 이제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

“현재 60층 이상의 전력은 전부 차단한 상태입니다. 사용량에 비해 공급이 부족한 상태라 이대로 간다면 방어막이 전부….”

나는 에이도스에게 전력량 확인을 부탁한 후 중대장에게 말했다.

“전기 방어막은 앞으로 몇 분이나 더 사용할 수 있을까요?”

“짧으면 십오 분, 길면 삼 십 분 정도일 겁니다.”

“메카닉들이 한 시간 이내에 일을 처리해본다고 했으니, 곧 끝날 겁니다. 그때까지만 버텨 주세요.”

“……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체력을 다한 마정우와 조영기가 복귀했다.

의료병들이 달라붙어 둘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갑주를 벗긴 후 하얀 연기가 나오는 스프레이를 뿌리고 상처에 붉은 액체를 발랐다.

“정우야, 괜찮냐?”

“괜찮아 보이냐?”

“어, 목숨이 붙어있네.”

“그럼 괜찮네.”

정우가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조영기가 벽에 등을 기대고 내게 말했다.

“나는 왜 안 물어봐?”

“너는 괜찮아 보이니깐.”

“…… 열심히 싸우고 왔는데, 수고했다는 말이라도 해라.”

“어어, 수고했다!”

“에이 시벌….”

조영기가 어이없는 듯 웃으며 땅에 주저앉았다.

나는 무전기를 들고 마이클에게 말했다.

“마이클.”

-마이클 수신.

“지금 전력이 부족한 상태니, 고장 나거나 사용하지 않는 병기들은 전부 전원을 내리게 하도록.”

-예썰! 전부 꺼버리겠다.

그래도 마이클과 유소라가 있어서 다행이다. 저들마저 없었더라면 이렇게 휴식하는 시간도 없었을 테니 말이다.

직접적인 전투를 하지 않는 유소라와 마이클은 군인들을 보조하며 계속해서 거인을 막았다.

그들의 불안한 전투를 보는 나는 초조한 얼굴로 팔짱을 끼고 무전기를 쳐다보았다.

‘…… 아직인가?’

계속해서 탑이 흔들렸다. 비홀더의 밀집도가 점점 높아진다.

그들의 대장 타이탄도 벌써 코앞까지 도착했다. 놈의 철퇴를 정통으로 맞으면 탑이 기울고 말 텐데, 그 전에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야 한다.

“…… 김연희는 어디 있지?”

조영기가 치료를 받으며 대답했다.

“연희? 아까 내 옆에서 싸우고 있던데.”

“응?”

나는 창문 밖을 보았다.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혹시라도 죽었나, 싶어 조영기에게 그룹 창을 확인시켜보니 아직 살아있단다.

“흐음…. 어딜 간 거지?”

“죽기 싫어서 어디 숨어있거나, 잠깐 화장실 갔겠지.”

그런가?

나는 그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어차피 암살자 직업을 선택한 그녀의 활약은 기대하지 않았으니깐.

* * * * *

강대원과 약속한 한 시간이 벌써 지나갔다.

일분일초가 급박한 이 상황에서 대답이 오지 않으니, 내 가슴이 타는 듯 답답해졌다.

다행인 것은 유소라와 마이클이 시간을 잘 끌어주고 있다는 것이었다.

‘화염 방사기도 없는데 어떻게 하고 있는 거지….’

삐빅.

응?

무전기 켜지는 소리가 났다.

“김천재 씨? ”

강대원의 목소리다.

나는 무전기를 들고 크게 대답했다.

“예!”

“완성되었습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조금 늦었지만 게임의 승패를 좌지우지할 정도는 아니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이라도 강대원의 병기가 작동해서 타이탄을 묶을 수 있다면,

아니. 거인들을 잠깐만이라도 전부 묶을 수 있다면,

이 게임의 승자는 우리가 될 테니깐 말이다.

“아닙니다. 지금 바로 가동해 주시겠어요?”

“어…. 이건 제가 아니라 탑의 인공 지능에게 가동을 부탁해야 할 것 같습니다.”

“에이도스한테요?”

“예. 저에게는 작동 권한이 없습니다.”

권한이 없다는 이야기에 강대원이 왜 저 무기를 설치하지 않았는지 알게 되었다.

강대원, 정말 똑똑한 사람이다.

과거, 혹시라도 에이도스가 김수현의 말을 거부하고 폭주한다면 막을 수 없으니 설치를 취소했었을 것이다.

내가 아는 스토리에서도 그렇게 흘러갔기에 단번에 이해가 됐다.

나는 대화를 마치고 무전기를 내려놓았다.

“에이도스, 현 시간부로 대 악마 격침용 무기를 가동하도록 해라.”

[‘에이도스’가 김천재 님의 명령을 하달합니다.]

[현 시간부로 대 악마 격침용 무기 ‘미카엘의 축복’을 가동하도록 하겠습니다.]

우우우우우우우웅-

거대한 엔진 소리와 함께 탑이 미칠 듯이 흔들렸다. 발밑에서 먼저 느껴지는 것으로 보아 지하에 기기가 있는 것 같은데.

굉음과 함께 탑이 진동하자 거인들이 물러났다. 아마도 무너지는 것으로 착각했나 보다.

[앞으로 10초 후 미카엘의 축복이 메카니아 전역을 강타합니다.]

에이도스의 목소리가 귓가에 아련히 들려왔다.

나는 미소를 지었다.

이제 끝이다.

정확한 위력을 알 수는 없지만, 이것 하나는 확실했다. 강대원의 설계도에 적혀 있는 대로라면, ‘미카엘의 축복’이 발동할시 분명 거인들은 그로기 상태가 된다.

“에이도스, 모든 로봇 기체를 출격 준비시키도록.”

[‘에이도스’가 김천재의 명령을 하달합니다.]

[대기 중인 로봇 기체 39기의 전원을 가동합니다.]

에이도스가 대답하는 사이에 10초가 지났다.

우우우웅, 하는 소리가 멎더니 탑의 진동이 사라졌다.

밖에 대기하고 있는 거인들이 잠시 움직임을 멈추더니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나도 창문을 통해 그들이 보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 아.”

그런 거야?”

불타는 하늘 아래 황금빛 여신이 날갯짓하고 있었다.

아름답다.

그녀는 싱긋 웃더니 입을 크게 벌리고 땅을 향했다.

위잉-.

귀가 찌릿했다.

음성이 들리지는 않았다.

우리와는 다르게 거인들이 모두 무릎을 꿇고 귀를 틀어막았다.

머리가 많이 달릴수록 더욱 괴로운가보다. 트윈 비홀더는 머리를 땅에 처박고, 트리플 비홀더는 아예 땅을 굴렀다.

쾅! 쾅! 쾅!

타이탄이 거대한 철퇴로 땅을 내리치며 탑을 향해 달려왔다.

다른 거인들은 옴짝달싹 못 하는데 저 녀석만큼은 달랐다.

-쿠워어어어어!

쿠궁-. 쿠궁-. 쿠궁-.

나는 손가락으로 총 모양을 만들어 타이탄을 조준했다.

탕-!

“…… 로봇 기체 출격, 타이탄을 집중 공격하도록 한다.”

[목표물 확인 완료]

[타이탄을 집중적으로 공격하도록 합니다.]

콰광!

폭발음과 함께 사방에서 로봇 기체들이 날아올랐다. 거인들은 로봇을 확인했지만 대항할 여력이 없었다.

그들의 우두머리인 타이탄을 제외하고 말이다.

타이탄이 포효했다.

“쿠워어어어!!”

완벽하다.

타이탄만 처리하게 된다면 나머지 거인들은 머리 없는 뱀이 된다.

“로봇 기체, 사격 시작.”

[사격 시작]

로봇의 기관 총구에 불꽃이 터져 나왔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탄환이 타이탄의 몸에 명중했다.

투두두두두!

타이탄의 몸을 둘러싸고 있는 갑주가 순식간에 찌그러졌다. 다 마신 음료수 캔 깡통을 발로 밟은 것처럼 말이다.

“크하아악! 빌어먹을! 이 빌어먹을 인간 새끼들!”

놈의 생명력 게이지가 빠른 속도로 깎이기 시작했다. 이 와중에도 싸울 여력이 있는지 철퇴를 흔들어 로봇을 공격했다.

부웅- 부웅-.

당연히 맞을 리가 없었다. 거리가 닿지도 않는데다가 방향도 맞지 않았다.

한참 동안 로봇에게 공격을 당하던 타이탄이 갑자기 철퇴로 머리를 가렸다.

그리곤 탑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렸다.

‘그렇지, 그래야지.’

나는 놈을 비웃으며 손바닥을 펼쳤다.

“아이언 메이든.”

[아이언 메이든 발동]

투명한 가시 수 천 개가 날아올라 그의 몸을 감싸 안았다. 타이탄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몸에 붙은 가시를 털어내 보려 했다.

“응, 안 돼.”

쏟아지는 총격을 피하며 탑에 도착한 타이탄이 철퇴를 휘둘렀다.

“우어어어어어!”

내가 속삭였다.

“에이도스, 로봇 기체 한 기로 녀석의 공격을 막도록.”

[‘에이도스’가 김천재 님의 명령을 하달합니다.]

로봇 기체 하나가 빠른 속도로 날아와 타이탄의 철퇴에 몸을 박았다.

콰광!

박살 난 로봇에서 불꽃이 치솟아 올랐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며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내가 원했던 장면이 나왔으니 말이다.

‘…… 아디오스.’

[아이언 메이든 발동]

쿠구궁!

타이탄의 몸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었다. 여태까지 보아왔던 그 어떤 힘보다도 막강했다.

메카니아 전역이 흔들렸다.

겨우 일격 한 번을 되돌려 주었을 뿐인데, 이 정도라니.

놀라웠다.

타이탄이 그대로 쓰러졌다.

몸이 새까맣게 타 있었다.

[‘거인 왕도 내게는 안 돼~’ 칭호를 획득합니다.]

[소환 레벨이 +1 증가합니다!]

[소환 레벨 ‘10’ 달성]

[10단위 레벨 달성으로 하수인의 생명력 게이지가 두 칸으로 바뀝니다.]

[하수인의 공격력과 방어력, 체력이 소폭 증가합니다.]

나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눈앞에 있는 시스템 창을 보았다.

[여섯 번째 라운드의 메인 보스, ‘타이탄’ 사망.]

모두가 숨을 죽이고 녀석을 쳐다보았다. 연기가 걷히자 회색으로 변한 놈의 생명력 게이지가 보였다.

[게임을 지켜보는 자들이 김천재 님의 플레이에 입을 다물지 못합니다.]

[‘불지옥’ 난이도가 맞느냐며 당황스러워합니다.]

[시스템이 운영진에게 확인창을 띄워 난이도를 보여줍니다.]

“…… 반격이다! 거인들을 이 땅에서 몰아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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