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그인 더 아포칼립스-98화 (98/215)

98화

시나리오 화면이 끝났다.

내 눈앞에는 그대로 하얀 안개가 가득 차 있었다.

보통 스토리 소개 가 끝나면 바로 원상태로 돌아가기 마련인데, 왜 이러는 거지?

[NPC 김승현에 의해 숨겨진 시나리오가 발동 됩니다.]

[‘김천재’ 님 전용 숨겨진 시나리오를 재생하도록 합니다.]

내 전용 숨겨진 시나리오?

다시 한 번 화면이 밝아졌다.

젊었을 적 강대원의 모습이 보였다. 앞서 확인한 그의 얼굴보다 더욱 어렸다.

그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컨트롤 타워 앞에서 설계도를 들고 소리치고 있었다.

“모두 제대로 안 하냐!”

강대원의 외침에 일꾼들이 투덜거렸다. 아직 그가 영웅이라 불리던 시절이 오지 않은 것 같다.

탑이 완성된 이후로 그의 활약이 펼쳐졌으니 말이다.

그는 설계도에 높게 솟아오른 안테나를 보며 밝은 미소를 지었다.

단순한 것으로 보이는데 뭐 특별한 게 있나?

나는 강대원 가까이 날아가 설계도를 유심히 보았다. 안테나 밑으로 작은 글씨가 적혀있다.

[대 악마 격침용 초음파 공격기]

나는 너무 놀라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악마 격침용 초음파 공격기라니?

그가 악마에 대한 존재를 어떻게 알았지? 아직 그들의 존재가 이곳에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두 가지 의문이 동시에 생겼다.

강대원은 어떠한 방법으로 악마에 대한 존재를 알게 된 것이고,

저 ‘대 악마 격침용 초음파 공격기’라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아는 저 안테나의 역할은 메카니아의 모든 전자기기를 에이도스와 연결해주는 것인데 말이다.

강대원이 들고 있는 설계도에는 전혀 다른 내용이 적혀있었다.

-이 초음파 공격기는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지 않는 높이의 주파수를 발산하여 초월적인 진동을 일으킨다.

나는 턱을 쓸어내렸다.

‘굉장한데?’

계속해서 읽어 내리려던 차에 그가 설계도를 덮었다.

“모두 휴식! 10분만 쉬고 다시 하도록 한다.”

-우워어어!

-아이고, 팬티에 땀 찬 것 좀 봐라. 반장! 우리 시원한 아이스크림이라도 좀 사주면 안 돼?

강대원이 텅텅 빈 지갑을 열더니 그들에게 말했다.

“선금 들어오면 소고기라도 쏠 테니 그때까지만 힘내!”

* * * * *

다시 하얀 안개가 내 눈 앞을 가렸다. 굉장한 정보를 얻게 되었다. 탑 정상에 있는 안테나가 그렇게 강한 힘을 가지고 있을 줄이야.

감탄이 절로 나왔다.

다음 장면이 나오기까지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것도 잠시.

안개가 걷혔을 때 나는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시멘트벽으로 둘러싸인 조그마한 방 안에 두 명의 남성이 있었다.

메카니아의 총독인 김수현과,

영웅이라 불리던 시절의 강대원.

김수현 총독이 강대원의 머리를 발로 짓누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강대원! 내가 이렇게까지 부탁했는데 어떻게 네가….”

“크으윽…. 수, 수현아.”

“이제부터는 내 이름을 부르지 마라, 그저 총독이라고 하는 게 좋을 거야.”

강대원이 일그러진 얼굴로 김수현을 쳐다보았다.

“네가 말한 로봇은 군사적 결함이 많아…. 분명 AI 시스템에게 큰 힘을 주면 후에 너를 배신하게 될 거야.”

“닥쳐. 이제부터 네게 명령하도록 하지. 이번 달 안에 전투용 로봇을 만들지 않으면 네 가족을 전부 죽이도록 하겠다.”

“…… 김수현!!”

“형수님이 많이 아프시다면서? 그 약이 이 도시에 얼마 없는 거로 알고 있는데, 잘- 생각해봐 친구.”

김수현이 강대원의 복부를 걷어찼다. 그리곤 망설임 없이 뒤로 돌아 감옥에서 나갔다.

나는 김수현의 대가리에 낫을 휘둘렀다.

부웅-

‘죽어, 이 새끼야!’

벌써 죽인 놈이지만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김수현이 감옥에서 사라졌다. 강대원이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얼굴을 처박으며 흐느껴 울었다.

“나는…. 나는…. 그저 메카니아를 위해서….”

강대원의 눈물이 바닥에 떨어지자 흰 안개가 화면을 가득 메웠다.

[스토리 화면이 종료됩니다.]

눈을 뜨자 모두가 걱정되는 얼굴로 내 앞에 서 있었다.

마정우가 내 어깨를 잡았다.

“처, 천재. 괜찮냐?”

나는 그의 손을 뿌리쳤다.

“왜 이래?”

“괜찮냐고 이 새끼야.”

“뭐가? 다들 시나리오 화면 보고 온 거 아니야?”

유소라의 얼굴이 창백하다.

그녀의 손을 보니 영혼 물고기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천재 씨, 치료해드릴까요?”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대답했다.

“무슨 일 있었어요?”

“천재 씨가…. 깨어나지 못해서 다들 걱정했어요.”

마정우가 말을 이었다.

“그래 이 새끼야. 네가 혼수상태로 낑낑거리니깐 우리 모두 걱정했잖아.”

“……”

그런 건가?

나 혼자 숨겨진 시나리오를 보게 되어서 잠들어 있었구나.

머리가 번쩍였다. 물론 빛이 나왔다는 게 아니라 엄청난 생각이 들었다는 말이다.

‘시나리오를 보는 동안에는…. 그렇다는 말이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털었다. 아무렇지 않은 내 모습에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내 걱정은 하덜 말어.”

“꽤엑! 꽤엑! 죽어! 이렇게 외치던데 걱정을 하지 말라고?”

“내가?”

“그래 네가.”

마이클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 * * * *

쿠궁! 쿠궁! 쿠궁!

창문 밖으로 대기하고 있는 거인 무리가 보였다.

비홀더, 트윈 비홀더, 트리플 비홀더.

그리고 그들의 중앙에 서 있는 거인들의 대장, 타이탄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거대한 철퇴를 들고 있었다.

기세가 엄청났다.

금방이라도 덤벼올 것만 같은 표정이었다.

타이탄이 대열의 최전방으로 나오더니 탑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인간들이어! 지금이라도 항복하고 너희 우두머리를 넘겨라.”

나는 스피커를 통해 녀석에게 말했다.

“지라알. 당장 안 꺼지면 너희들이 전부 뒤질 줄 알아!”

내 목소리가 떨렸다.

당당하게 말하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수의 적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정면 대결로 녀석들을 이길 확률은 극히 낮다. 다만 강대원이 남겨 놓은 숨겨진 무기를 사용한다면….

나는 강대원을 불렀다.

“대원 씨, 이 탑 옥상에 설치된 안테나 있죠?”

“…… 예.”

“지금 가동 가능한가요?”

“에이도스는 가동 중이지 않습니까?”

“아뇨, 에이도스 말고요. 그…. 대 악마….”

이야기가 끝나기도 전에 그가 놀란 듯 눈을 부릅떴다.

“어…. 어떻게 그 사실을?”

“저, ‘여는 자’잖아요.”

내가 윙크했다.

그가 침을 꿀꺽 삼켰다.

“…… 천재 씨, 죄송하지만 그 무기는 사용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왜요?”

“죄송하지만 에이도스에게 로봇 기체를 설치해 주기 인해 저 안테나는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완성하지 못했다는 말은 작업에는 들어갔었다는 뜻이 아닌가?

다행이다.

희망의 끈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그에게 질문을 이었다.

“완성 시키지 못했다는 말은 어느 정도 진행이 되었다는 거죠?”

“예, 반절 정도입니다.”

“반절이라…. 남은 작업을 완성하려면 얼마나 걸릴까요?”

그는 표정을 구기며 고민에 잠겼다.

“…… 지금 상태에서 작업을 개시한다면…. 설계도 보유 시 반나절, 없는 상태에서 진행한다면 이틀 정도 걸릴 겁니다.”

“설계도는 가지고 계시고요?”

강대원이 고개를 좌우로 절레절레 저었다.

“없습니다. 공장이 공격당할 때 전부 불타서 사라졌거든요.”

“…… ”

나는 책상 위에 있는 종이를 펼치고 볼펜을 들었다. 이어 앞서 시나리오 화면에서 보았던 그의 설계도를 그리기 시작했다.

미처 읽지 못한 기기에 대한 설명들은 적을 수 없었지만, 설계적인 도면은 전부 그려줄 수 있었다.

도면을 그려나가기 시작하자 강대원이 손뼉을 쳤다.

주위에 있는 메카닉들이 ‘우와!’ 하는 소리를 내며 감탄했다.

잃어버린 설계도를 순식간에 만들어냈으니 말이다.

“이거 맞죠?”

강대원이 설계도를 들고 손을 떨었다.

“허….”

메카닉들이 그의 주위로 모여 설계도를 관찰했다.

-이 정도면 오늘 안에 끝낼 수 있겠는데?

-어이! 누구 C언어 프로그래밍 할 수 있는 사람 있어?

-나! 나 할 줄 알아!

나는 강대원에게 말했다.

“대원 씨. 인제 와서 말하기 죄송한데, 적들의 수가 많아 로봇 기체로는 놈들을 이길 확률이 없습니다.”

“…… 그래서 이 무기를 말씀하신 거군요.”

“예, 나머지 이야기는 설명해드리지 않아도 되겠지요?”

“천재 씨, 한 시간만 주시면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한 시간. 가능하겠어요?”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믿어주시지요.”

* * * * *

전투가 시작되었다.

[메인 이벤트]

[난이도 불지옥의 ‘메카니아 방어 이벤트’가 시작되었습니다.]

[‘천사를 삼킨 악마’ 타이탄의 부하들이 탑을 향해 공격 오기 시작합니다.]

[주민들을 지키고 메카니아의 평화를 가져오십시오!]

우리 모두가 10층 상황실로 자리를 옮겼다. 이곳이 적들을 살피기에 제일 좋은 곳이기 때문이다.

“에이도스, 로봇 기체는 출동하지 않는다. 기존 방어 병기로 시간을 끌도록 해라.”

[‘에이도스’가 김천재 님의 명령을 하달합니다.]

[로봇 기체 대기중, 메카니아에 설치된 모든 방어 병기를 발동합니다.]

미사일 터렛의 뚜껑이 열리며 포가 장착되었다. 자동모드임에도 불구하고 병사들이 조종석에 올라타게 되었다.

혹시라도 모를 시스템 에러를 대기하기 위서였다.

이어 전기 방어막의 위력을 높였다. 눈으로 보기에도 스파크가 튈 정도로 강력했다.

화염 방사기가 탑 근처에 땅에 불을 쏘아댔다. 미리 열을 올려놔야 놈들이 가까이 붙지 못하기 때문이다.

거인들이 점점 가까워진다.

그들의 움직이기 시작하자 땅이 울렸다. 모두가 숨을 죽이고 거인들을 보았다.

비홀더들이 탑을 중심으로 둥그렇게 위치를 잡았다. 동시에 공격해올 심산인 것 같은데 과연 어떤 방식으로 공격해올까?

부웅-. 부웅-. 부웅-.

일반 비홀더가 머리 위로 방망이를 빙글빙글 돌리며 탑을 향해 걸어왔다.

철컥.

피유우웅-

방어 터렛이 놈의 머리를 향해 미사일을 발사했다.

쾅!

비홀더가 화염에 휩싸인 얼굴을 붙잡고 뒤로 쓰러졌다.

쿵.

-……. 키에에에엑!

타이탄이 철퇴로 땅을 내리쳤다.

쿠궁!

“탑을 무너트려라!”

-우오오오오오!

거인들의 진격이 시작되었다. 에이도스가 빠르게 탑 주변을 스캔하더니 모든 방어 병기를 최대 출력으로 올렸다.

미사일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거인들은 방망이로 얼굴을 가리고 계속해서 진격했다.

타오르는 땅을 밟은 거인들이 하나둘씩 쓰러졌다. 뒤이어 오는 놈들이 쓰러진 거인을 밟으며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타이탄이 불타 쓰러진 거인 한 마리를 잡아들더니 탑을 향해 던졌다.

부웅-

쾅!

미사일 터렛 한 기의 포구가 뒤틀렸다.

내가 소리쳤다.

“거인을 밀어내라!”

군인들이 뛰쳐나와 쓰러진 거인을 밖으로 밀어내기 시작했다. 스무 명 정도가 붙어서야 겨우 탑 밑으로 떨어뜨릴 수 있었다.

-우어어어어어!

탑을 향해 다가오는 비홀더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이곳에 설치되어 있는 화염 방사기는 총 네 대. 사방에서 달려오는 거인을 전부 상대하기에는 너무 적었다.

“제길, 마정우! 전부 데려가서 시간 좀 끌 수 있겠어?”

마정우가 불타는 눈빛으로 대답했다.

“맡겨둬.”

로그인 더 아포칼립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