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화
불타는 하늘 아래 회색 도시를 미칠 듯이 달렸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김승현의 아버지를 찾을 수가 없게 된다.
‘개 같은 노효만.’
놈이 병사들을 이끌고 게이트 건너로 다시 넘어가려 하고 있다.
그래도 수색 기간은 전부 채우고 돌아갈 줄 알았는데, 바이러스만 퍼트리고 줄행랑을 쳤다.
다른 군인들이 많은 곳에서 일을 저질렀는데…. 목격한 자가 남아 있지 않으려나?
김준철에게 넘겨줄 만한 확실한 증거 말이다. 아직 심증만 있는 상태라 노효만을 조사할 수 없을 것이다.
녀석이 바이러스에 연관된 인물이라는 확실한 물증을 찾아야 한다.
“에이도스, 이 길 맞아?”
[그대로 직진하다가 다음 골목에서 우측으로 빠지면 게이트가 나온다고 합니다.]
에이도스가 메카니아 전역에 있는 CCTV를 이용해서 노효만과 그의 부하들 위치를 내게 보고해 주었다.
현재 위치는 게이트 앞.
들어가면 게임은 끝나게 된다.
로봇 기체가 부족한 상태에서는 절대 이길 수 없을 테니깐 말이다.
다다다다다다!
내가 달려온 곳에 먼지가 일었다. 그 정도로 빠른 속력이었다는 말이다.
에이도스가 알려준 길을 따라가다 보니 이곳으로 넘어왔을 때 사용한 게이트가 보였다.
다시 보니 어느 정도 크기인지 실감할 수 있었다.
최하급 거인이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높이였다.
나는 게이트 밖으로 한둘씩 들어가고 있는 군인들을 향해 소리쳤다.
“그만!”
그들이 걸음을 멈추고 나를 보았다. 나는 빠르게 눈알을 돌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 안에 노효만이 있나 해서였다.
‘…… 잡았다.’
노효만이 게이트 앞에서 병사들을 인도하고 있었다. 덩치가 작은 순서부터 큰 순서대로 게이트를 넘어갈 생각이었나 보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기겁을 했다.
“처, 천재 씨.”
나는 숨을 천천히 고르며 그에게 다가갔다.
“노효만.”
“……”
“어디를 가시는 거죠? 수색 임무는 내일까지인데요.”
“어…. 그게…. 공장 안에 큰일이 생겼습니다.”
노효만이 코를 만지작거렸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그에게 물었다.
“큰일이요?”
“예, 이곳에도 바이러스가 퍼져 주민들이 좀비로 변했습니다. 그에 저희는 빨리 보고해야 할 것 같아서 복귀하던 중입니다.”
거짓말을 참 잘한다.
자신이 퍼트린 바이러스를 제 3자 때문인 것처럼 말하다니, 저것도 능력이기는 하지-.
“좀비로 변한 주민들은 어떻게 되었죠?”
“전부 사망…. 현재 몇몇은 근처에 배회하고 있습니다.”
“배회하고 있다…. 그럼 수색 정찰 임무는 끝인가요?”
“충분히 했습니다. 애초에 바이러스 생물이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하러 온 것이니까요.”
“바이러스 유무를 확인했으니 임무는 완료다, 이 말인가요?”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가 이곳에 온 이유는 단 한 가지, 괴생명체가 왜 생겼나와 바이러스의 존재 여부였습니다.”
“괴생명체가 왜 생겼나는 아직 조사하지 않으셨잖아요?”
“그건 여건이 되면 다시 돌아오려고 합니다. 우선 이곳에 남아 있는 주민들의 생존과 바이러스의 존재 여부를 보고하는 것이 더 시급합니다.”
게이트 앞에 대기하고 있는 주민들은 대략 열 명 정도. 나는 그들의 얼굴을 알고 있었다.
전부 이곳에서 명인(名人)의 경지에 오른 메카닉들.
그중 김승현의 아버지가 보였다.
“…… 저분하고 잠시 대화 좀 하겠습니다.”
“아, 안됩니다.”
“왜요?”
“그…. 저들은 아직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입니다.”
“아는 분이라서 그래요. 비켜봐요.”
나는 노효만의 팔을 슬쩍 밀고 지나갔다. 그는 나를 막아설 수 없었다. 아는 사람이라고 하는데 어쩌겠는가?
내가 다가가자 김승현의 아버지가 고개를 떨구었다. 아마도 자신에게 해코지하러 왔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죄…. 죄송합니다….”
“응? 뭐가 죄송해요?”
“말대답하지 않겠습니다….”
“……”
가까이서 보니 고문이라도 당했나 싶을 정도로 초췌한 얼굴이었다.
그렇다고 구타를 당한 흔적이 보이지는 않았다. 노효만이 말한 대로 정신이 불안정해 보였을 뿐.
“저기요, 김승현 군의 아버지시죠?”
내 질문에 그가 고개를 올렸다.
“…… 어?!”
“저 기억하세요?”
“기, 기억납니다. 승현이랑 같이 공장에 오셨던 분 아닙니까?”
“예.”
나는 손짓을 하여 메카닉들을 불러 모았다. 노효만과 함께 말이다. 그리곤 그들에게 말했다.
“여기 계신 노효만 대위님께서 하셨던 말 다들 기억하시죠? 제 친구에게 말하길 주민들이 갈 길은 스스로 선택하기로 했다던데요.”
노효만이 미간을 찌푸렸다.
“아니 천재 씨. 그건 천재 씨 친구분이 계속 주민들을 데려가야 한다고 우겨서 그런 겁니다.”
“노효만 대위님. 그럼 주민들을 강제로 데려가실 생각인가요?”
“아니 제가 언제 강제로 데려간다고-”
“선택권이 없다면 강제성이 있는 것 아닙니까?”
“……”
나는 주민들을 한 명씩 바라보았다.
“저기 잠시 다들 집중해 주세요. 그리고 지금 선택해주시기 바랍니다. 저를 따라서 탑으로 갈지, 여기 앞에 계신 노효만 대위님을 따라갈지요.”
모두가 노효만의 눈치를 보았다.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협박이 제대로 먹힌 것 같았다.
선뜻 대답을 해오는 자가 없으니 말이다.
“대답하기 힘드시면 거수로 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저를 따라오시겠다는 분은 손을 내려주시고. 노효만 대위를 따라가실 분은 손을 올려주세요.”
이렇게 말하면 선택하기 쉬울 것이다. 물론 노효만이 어떤 협박을 했는지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오겠지만 말이다.
주민들이 서로 힐끔힐끔 보며 손을 쳐다보았다. 어떻게 할지 생각하는 것 같은데, 내가 열을 셀 동안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 좋아.’
노효만이 주민과 내 사이에 손을 크게 흔들며 말했다.
“이게 뭐 하는 짓입니까!”
“뭐 하는 짓? 말을 왜 그렇게 하시죠?”
“아니, 그런 식으로 말하면 이분들이 겁을 먹지 않겠습니까?”
“겁은 노효만 씨에게 먹은 것 같은데요? 저분들 눈을 보세요.”
노효만이 주민들을 보았다.
주민들이 고개를 떨구어 눈을 피했다.
“후우…. 자꾸 이러실 겁니까?”
“예. 저는 제가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이거든요.”
“할 일?”
“이 도시를 지키려 합니다. 그러려면 그분들이 필요하고요.”
“…… 무슨 말을 하는지 도통 모르겠습니다만, 이 자들은 제가 데리고 가겠습니다. 야! 통신소대장! 무전기 들고 이 사람들 전부 게이트 안으로 들여보내!”
스으윽-
나는 낫으로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노효만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내 얼굴을 확인했다. 다른 장교들도 침을 꿀꺽 삼키며 상황을 지켜보았다.
“이 자들은 내가 데려간다. 허튼짓하면 전부 죽어.”
“…… 저희를 적으로 돌리겠다는 겁니까?”
“아니, 너만.”
“허허…. 지금 이곳에 제 병사들이 몇이나 대기하고 있는지 아시고 이러십니까? 메카X! 이 자를 조준하도록 해라.”
철컹!
메카X의 기관총이 나를 겨누었다.
“…… 에이도스, 로봇 기체 전원 게이트를 포위하라.”
[‘에이도스’가 김천재 님의 명령을 하달합니다.]
[로봇 기체 출동]
우우우우우웅-!
바람을 가르며 나타난 로봇 기체들이 노효만의 부대를 감싸 안았다.
서로 다른 두 개의 로봇을 세워놓고 보니 메카X가 조잡해 보였다.
내가 살던 곳의 지식으로는 절대 따라잡을 수 없는 기계 문명.
그러기에 메카닉들을 납치하려 한 것이겠지.
“노효만 대위, 한 번 해보겠습니까?”
“……”
놈이 로봇 기체를 아래서 위로 올려보더니 꼬랑지를 내렸다.
“후우…. 여단장님께 보고드리겠습니다. 저희를 위협하고 주민들을 데려갔다고 말입니다.”
“저를 먼저 조준했다는 말과 주민들을 강제로 데려갔다는 말도 빼먹지 말도록 하고요.”
“……”
“어차피 상황이 정리되면 김준철 소령과는 따로 이야기할 생각이었으니, 그때 다시 뵙도록 하죠.”
노효만이 코를 움찔움찔하더니 화가 난 표정으로 내게 등을 보였다.
“그렇게 합시다!”
* * * * *
나는 구출한 주민을 데리고 탑으로 돌아왔다.
혹시나 보복성 협박을 당했나 싶어 대화를 나누어 봤지만, 그들은 공장에서의 이야기를 더 이상 하려 하지 않았다.
이유는 모르겠다.
하고 싶지 않다고 해서 그대로 대화를 끝냈으니 말이다.
‘일이 끝나면 다시 물어볼 테지만 말이다….’
[‘에이도스’가 숨겨진 로봇 기체의 위치를 표시합니다.]
커다란 모니터 위 메카니아의 지도가 표시되었다. 도시 내에 20개의 X 마크가 찍혀 있었다.
김승현의 아버지가 놀라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설마….”
“메카니아 내에 있는 고장 난 로봇 기체의 위치입니다. 수리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제가 메카닉 활동한 지가 오래되고 나이도 많이 들어서 수리가 가능할 런지 모르겠습니다.”
“가능해요. 안전하게 움직이실 수 있도록 동행할 사람을 붙여드릴 테니 작업을 서둘러 주시고요.”
멍하니 지도를 보던 그의 눈빛이 갑자기 강렬하게 변했다. 무언가를 다짐한듯한 표정이었다.
“존함이 김천재라고 하셨었나요?”
“예.”
“저 기체들을 수리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나는 단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 도시를 지키려 합니다.”
“도시를 지켜요?”
“예.”
나를 따라온 주민 모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이 도시를 지킨다는 의미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것이니 말이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저희를 지키기 위해서 기체를 수리해달라는 말씀이지요?”
“그렇죠. 그리고 일이 전부 끝나면…. 이 탑은 아저씨께서 맡는 것으로 해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김승현의 아버지가 놀란 듯 콧구멍을 벌렁거렸다.
“…… 예?!”
“이에 대한 설명은 나중에 해드리도록 하죠. 우선 급하니 기체 수리에 빨리 들어가 주세요.”
마이클이 김승현의 아버지 옆으로 붙었다.
“나를 따라오면 되요우.”
마이클이 내가 준 지도를 들고 주민들을 데려갔다. 나는 그의 등 뒤에 소리쳤다.
“마이클! 로봇 몇 기 붙여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마이클이 엄지를 치켜올렸다.
“에이도스, 지금 수리에 떠나는 주민들에게 로봇 기체를 다섯 대 붙여줘. 적이라 생각되는 자들이 나타나면 사격을 허락한다.”
[‘에이도스’가 김천재 님의 명령을 하달합니다.]
[로봇 기체 다섯 대가 탑 앞에 대기 중입니다.]
“조영기, 김연희. 둘은 로봇 기체를 한 대씩 붙여줄 테니 CCTV가 닿지 않는 지하수로를 전부 수색해. 남아 있는 모든 주민을 찾아와야 해.”
조영기와 김연희가 동시에 대답했다.
“알겠다!”
“알겠다고요. 이것만 먹고 간다고요.”
나는 침대에 누워있는 마정우에게 말했다.
“마정우 군, 자네는 탑 내에 있는 전투가 가능한 자들의 수와 방어 기기 상태를 확인하도록.”
“충!떵! 알겠뚬다! 이러면 되냐?”
“어, 빨리 가서 확인하고 와.”
“알겠다야.”
정우가 자리를 떠났다.
나는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유소라에게 말했다.
“소라 씨.”
“…… 네.”
“소라 씨는 지금부터 저와 함께 특훈하도록 해요. 내일 죽기 싫다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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