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화
“에이도스, 현재 메카니아 안에 구동 가능한 로봇 기체의 수를 확인해줘.”
[메카니아 전역에 설치된 CCTV 확인을 시작합니다.]
[사용 가능한 로봇 기체의 수를 확인하고 있습니다.]
[즉시 사용 가능한 기체: 19대]
[수리 시 사용 가능한 기체: 20대]
[총 서른아홉 대입니다.]
서른아홉 대라.
그래도 대격전을 준비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였다. 거인의 수가 백 마리 이상인 것을 감안하면 말이다.
정우가 내게 물었다.
“동상은?”
“…… 가동해도 될까?”
“유오성 아저씨랑 똑같이 생겨서?”
“어! 그 사람 우리랑 사이 엄청나게 안 좋았잖아.”
“아저씨가 동상 안에 있지는 않겠지.”
“없어도 싫어…. 그냥 싫어….”
유오성이라는 사람은 멸망의 땅 PC 시절 정우와 나를 끝까지 괴롭혔던 인물이다. 15번째 라운드까지 도착한 그룹은 우리가 전부, 열네 번째 라운드까지 온 그룹은 두 팀이나 더 있었다.
그중 하나가 유오성 아저씨가 있던 곳이고, 그 그룹의 인원은….
단 한 명.
혼자서 열네 번째 라운드에 도착했던 자이다.
말 그대로 괴물.
“정우야, 그 사람 마지막 게임에는 참가하지도 않았었지?”
“…… 있었다면 내가 좀 위험했을걸.”
“하긴, 일대일 대결로는 너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인물이었으니깐.”
“그 사람 미친 폐인이잖아? 24시간 게임 켜놓고 사는 사람.”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 아니야?”
“어…. 맞네.”
내가 멋쩍게 웃었다.
크르르르릉-.
거인의 숨소리 같은 저 음성은 마이클의 코고는 소리다. 다들 피곤하다고 해서 한숨 자라고 했다.
마정우, 나, 조영기를 제외하고 말이다.
나는 이 둘을 데리고 탑의 옥상으로 올라갔다. 우리끼리만 잠시 해야 할 이야기가 있어서다.
조영기가 꽃무늬 와이셔츠의 깃을 빳빳하게 세우며 내게 물었다.
“할 이야기가 뭔데?”
나는 말없이 담배를 꺼내어 건네어 주었다.
우리 셋은 하얀 연기를 뿜으며 메카니아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불타는 하늘 아래 멸망한 기계 문명의 잔재.
내가 살던 세계보다 더 뛰어난 기술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망해버린 이 도시 말이다.
담배를 다 태운 나는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조영기, 정우랑 내가 너를 왜 여기로 불렀는지 알고 있어?”
쉽지 않은 이야기라 사실 망설여졌다.
하지만 결심했다.
더 늦기 전에 그에게 말하기로.
“…… 왜지?”
“제안을 하나 할까 해서야.”
“뭔데?”
조영기가 무서운 얼굴로 나를 내려보았다. 아니, 그냥 평소와 같은데 더욱 험악해 보였다.
“너 이제부터 어떻게 할 생각이지?”
“…… 뜬금없이 뭔 소리야?”
“이번 라운드가 끝난 후에 어떻게 할 거냐고.”
조영기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일곱 번째 라운드로 이동하겠지.”
“그리고? 거기서 어떻게 하려고.”
“…… 너희를 따라다니다 보면 어떻게든 되지 않겠어?”
역시.
물론 잔머리가 빠른 조영기가 단순하게 저 생각만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제일 간단한 방법은 우리를 따라오는 것.
“다음 라운드는 월드 서버에서 진행되는 거 알지?”
“어.”
“그럼 우리가 못 만날 가능성도 있어.”
“……”
“그때는 어떻게 하려고?”
내 질문에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일곱 번째 라운드는 임의로 선택된 각 나라의 인원을 10명씩 제한해서 총 30명의 플레이어만을 뽑는 형식.
인원이 많은 한국과 일본은 무조건 만나게 되어 있다.
나머지 10명은 러시아, 중국, 대만, 베트남 쪽 사람들일 테고.
하여튼 다음 라운드에서는 조영기의 그룹과 우리가 헤어질 가능성도 있다는 뜻이다.
조영기가 한숨을 길게 내쉬더니 내게 말했다.
“그럼 어쩔 수 없고.”
“일곱 번째 라운드에서 탈락하면 그룹 전원 사망인 거 알고 있지?”
“…… 어.”
나는 담배꽁초를 탑 밖으로 던졌다. 바람을 타고 날아간 꽁초가 빙글빙글 돌며 사라졌다.
마치 다음 라운드에 사라질 수 있는 우리처럼 말이다.
“이번이 네게 하는 처음이자 마지막 제안이다. 우리 그룹으로 들어와라, 조영기.”
조영기가 놀란 듯 두 눈을 부릅떴다.
“…… 정말이냐?”
“그래, 김연희는 우선 폐허가 된 마을에 대기시키고. 일곱 번째 라운드가 끝난 후 다시 데려가면 될 거야.”
“……”
“일곱 번째 라운드는 여러 번 플레이 할 수 있으니깐 상황을 설명해주면 김연희도 동의할 거야.”
정우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같이하고 싶지 않는 그를 설득한 사람이 나였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조영기와 함께하는 것을 원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와 함께 하는 것보다 더 싫은 것이 죽음이다.
하려면 확실하게 끝내야 한다.
그와 함께 일곱 번째 라운드로 넘어가 마의 벽을 깨트린다.
그리고….
그때 내가 기록해놓은 역사를 다시 한 번 넘는다.
이 게임에서 나가는 방법은 아마도 거기 있을 테니깐.
조영기가 대답을 머뭇거렸다.
나는 그를 보며 다시 한 번 물었다.
“우리 그룹에 들어오겠나?”
“…… 잠시 시간을 좀 줄 수 있나? 당연히 가고 싶지만, 김연희에게 설명을 좀 해줘야 할 것 같아서.”
“설명…. 알았다. 그럼 내일 아침까지 시간을 줄 테니 확실하게 대답해줘. 이번 라운드는 종료되는 동시에 일곱 번째 라운드로 연결되는 게이트가 열리는 거 알고 있지?”
조영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 이야기가 끝나는 대로 바로 말해줄게.”
* * * * *
나는 모두를 탑에 대기시키고 노효만이 있는 공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협상하려면 혼자 오는 편이 편했기 때문이다.
“…… 뭐지.”
공장 앞에 있던 기다란 굴뚝이 옆으로 무너져 있었다.
정문과 후문을 지키고 있던 노효만의 병사들과 메카 X도 사라졌다.
바람 속에서 익숙한 냄새가 내 코를 찔렀다.
‘…… 설마.’
아니겠지.
그런 미친 짓을 하지는 않았겠지.
우리 모두가 아는 스토리에 전혀 없는 내용이다.
아니 있으면 안 되는….
공장 안으로 천천히 걸음을 떼었다. 가까워질수록 나의 불길한 예감은 점점 확신으로 바뀌었다. 짙어지는 피비린내와 고기 썩은 내.
-키에에엑!
“…… 안 돼, 안 돼. 안 돼! 노효만 이 시벌럼아!”
[현재 생존 주민 수: 198명]
공장 안에 가득 찬 좀비들이 나를 보았다. 초록색 액체를 질질 흘리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는 Z 바이러스. 일본 과학자들과의 공동 연구로 만든 X 바이러스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노효만은 처음부터 이 모든 것을 계획하고 게이트 너머 여기로 왔다는 말인데.
“제길…. 제길…. 제길!”
대체 무슨 짓을 꾸미고 있는 거냐, 노효만.
아니, 그의 배후에 있는 오박사가 꾸민 짓이겠지.
나는 주민들을 보며 고개를 떨구었다.
이곳에 있는 메카닉을 데려가야 고장 난 로봇 기체들을 수리해서 사용할 수 있는데, 그 길이 막혔기 때문이다.
난이도가 높아진 만큼 거인들이 너무 강력해서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키에에엑!
좀비 한 마리가 내게 덤벼들었다. 나는 가볍게 낫을 휘둘러 놈의 목을 베어냈다.
샥-.
녀석의 목이 땅에 떨어졌다.
그 소리를 들은 공장 안에 모든 좀비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키엑, 키에엑.
빠르게 시선을 돌려 녀석들의 얼굴을 보았다. 혹시라도 살아있을 수 있는 메카닉을 찾기 위해서였다.
-쿠웩, 쿠웨엑.
바이러스에 감염된 주민 중 이곳으로 우리를 안내한 꼬마가 보였다.
고통스러운 얼굴로 나를 향해 걸어왔다.
나는 공격하지 않고 그를 기다렸다. 몸이 갈변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아직 대화가 가능한 상태일 수도 있어서다.
“…… 꼬마야.”
“하아…. 하아…. 아저씨….”
“……! 말 할 수 있겠어?”
“하아…. 네….”
숨쉬기 벅차 보인다.
나는 백신을 꺼내어 녀석에게 놓아 주었다.
물론 치료제가 아니어서 나을 수는 없었다. 그저 바이러스가 퍼지는 속도를 늦추어 줄 뿐.
백신을 놓자 거칠었던 호흡이 천천히 돌아왔다.
“아저씨….”
“어떻게 된 거냐?”
“…… ”
“어떻게 된 거냐고.”
“저는 꼬마가 아니라…. 승현이라고요…. 김승현….”
“알았어, 이놈아. 다 죽어가는 놈이 입만 살아서는.”
다 죽어가는 놈이 히죽 웃었다.
“군인…. 그 군인 아저씨가….”
“군인이 너희를 이렇게 만들었어?”
“아마…. 군인들이 준…. 물을 마신 모두가….”
-키에에엑!
갑자기 바이러스에 감염된 주민들이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나는 꼬마를 등 뒤로 두고 좀비들을 막기 시작했다.
“잠깐만 기다려.”
“아저씨….”
“…… 죽으면 안 된다. 아저씨 금방 돌아올게.”
* * * * *
백 명 가까이 되는 많은 수였지만, 전부 쓰러뜨리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좀비로 변하더라도 자신이 가진 고유의 능력치에는 큰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공격력이 높아지고 방어력이 낮아진 감염 상태에서는 내게 접근조차 하지 못했다.
낫에 스치기만 해도 몸통이 날아가 버리니 말이다.
“후우…. 끝이다.”
나는 정신을 잃어가는 김승현의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눈에 반쯤 감긴 상태로 나를 바라보았다.
“기다려줘서 고맙다.”
“아무것도 안 했는걸요….”
“버텨주었지.”
김승현은 수면제를 먹은 사람처럼 횡설수설했다. 그래도 노효만과 그의 부하들에 관한 이야기는 들을 수 있었다.
식량을 보급한 후 수색을 나간다며 이곳에서 떠났다고 했으니깐.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고?”
“네…. 그냥…. 거인들을 찾는다고….”
“거인들을 찾는 다라….”
김승현이 서글픈 표정을 지었다.
“아저씨, 근데 저 이제 죽는 거예요?”
선뜻 대답하기 힘들었다. NPC이지만 너무나도 인간 같은 대사를 내뱉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를 바라보는 저 똘망똘망한 눈.
“…… 그래.”
거짓말은 할 수 없었다.
내 대답이 그를 절망에 빠지게 할지라도 우호적인 시스템에 거짓말하는 것은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모르니깐 말이다.
“그렇군요…. 혹시 다른 사람들처럼 저도 괴물이 되나요?”
“아마도.”
“……”
“게이트 밖으로 가면…. 아버지랑 같이 빵을 실컷 먹기로 했었는데….”
“아버지?”
“…… 저희 아버지요.”
내가 김승현의 어깨를 흔들었다.
“스, 승현아. 너희 아버지 아직 살아 계시니?”
“아버지…. 군인들을 따라갔어요….”
“아버지가 군인들을?”
“그….”
털썩.
김승현의 고개가 떨어졌다.
조금 전 까지만 하더라도 괜찮았는데, 갑자기 눈동자의 색이 빠르게 변하며 좀비화되기 시작했다.
백신의 효과가 끝난 건가?
몸이 부르르르 떨렸다.
천천히 변하는 그의 피부가 이미 끝났음을 보여 주었다.
“…… 수고했다, 승현아.”
나는 얼굴을 쓸어 승현의 눈을 감겨 주었다.
이어 가볍게 낫을 휘둘러 목을 떨어트렸다. 고통을 느낄 수 없는 지금이 그를 편하게 떠나 보내주는 것이라 생각되었다.
[여섯 번째 라운드의 메인 NPC인 ‘김승현’ 사망.]
[그의 죽음이 스토리의 흐름에 영향을 끼칩니다.]
나는 초토화된 공장 안을 들여다보았다.
‘노효만.’
그가 데려간 김승현의 아버지를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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