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그인 더 아포칼립스-94화 (94/215)

94화

모두가 숨을 죽이고 유소라의 대답을 기다렸다.

잠깐이었지만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게 거짓말은 하지 않아 주었으면 한다.

이미 전부 알고 있으니깐.

“제작…. 그건 어떻게 아셨죠?”

부정하지 않았다.

그녀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점에 안심이 되었다.

내 목적을 이루려면 초록 눈의 플레이어를 데려가야 하니깐 말이다.

나는 창밖을 보며 말을 이었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조금씩 조사했어요.”

“아….”

“근데 이해가 되지 않는 점이 몇 가지 있어서 물어본 거예요.”

“이해되지 않는 점?”

“소라 씨는 분명 제 나이 또래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멸망의 땅 제작에 참여하신 거죠? 제작 시기를 계산해 보니 말이 안 되는데……”

유소라가 방긋 웃으며 대답했다.

“전부 알고 계신 건 아니군요.”

“예, 제가 아는 것은 소라 씨가 운영진 중 한 명이었다는 것이에요.”

“…… 제가 어떻게 참여했는지만 알려드리면 되나요?”

“우선은요. 이것 외에도 물어볼 게 더 있어요.”

그녀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생각을 정리하듯 계속 눈알을 굴렸다. 할 말과 못 할 말을 걸러내는 듯 보였다.

정우가 의자 두 개를 가져와 우리 옆으로 놔주었다.

“둘 다 앉아서 말해요, 나는 침대에 좀 누워있을 테니깐.”

유소라가 입꼬리를 살짝 올려 웃었다.

“고마워요.”

“뭘요.”

“음…. 천재 씨, 혹시 제게 물어보실 것을 전부 정리해서 종이에 적어주실 수 있나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려운 일도 아니거니와 그녀가 말을 지어내더라도 알 방법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 둘, 셋, 넷.

네 가지의 궁금증을 종이 위에 적어 내렸다. 답을 하기에 어려운 질문은 아니었다.

그녀가 어떻게 대답할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원하는 답이 나왔으면 좋겠다.

유소라가 종이를 받아 들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독백했다.

“어떻게 게임 제작에 참여했는지…. 운영진이 왜 이곳에 있는지….”

“답하기 어렵거나 싫은 건 따로 말씀해주세요.”

“아, 네. 으음…. 지금까지 왜 게임에 서투른 척을 했는지…. 이 게임에서 나가는 방법을 알고 있는지….”

모든 질문을 읽어 내린 그녀는 눈을 질끈 감았다.

[‘에이도스’가 유소라 님을 스캔하기 시작합니다.]

[거짓말 탐지기 작동 중]

[신체 변화 감지 작동 중]

“…… ”

이제부터 유소라가 내 질문에 대답하면 에이도스가 말해줄 것이다. 그녀의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그럼 나 또한 그녀와의 관계를 정확하게 선을 그을 수 있겠지.

거짓을 말하면 그녀를 이번 라운드에 버린다.

진실을 말하면 나와 함께 마지막까지 가는 것이고.

유소라는 생각이 정리되었는지 눈을 뜨고 내 질문에 순서대로 답을 해주었다.

“천재 씨, 첫 번째 질문인 어떻게 게임에 참여했는지는 간단해요.”

“…… 어떻게 했나요?”

“저는 게임을 만든 최초의 5인이 아니라, 그중 한 명이 나가서 빈자리에 잠깐 들어갔던 ‘일러스트레이터’ 예요.”

[거짓말 탐지기 결과= 진실]

진실이다.

“…… 그렇군요.”

“네, 제가 들어갔을 때도 회사에는 다섯 명밖에 없었어요.”

“일러스트레이터면 그림 같은 걸 그리신 건가요?”

“그렇죠.”

“어떤 그림을 그리셨죠?”

유소라가 수줍은 듯 얼굴을 붉혔다.

“몬스터…. 아이템…. 배경…. 그냥 시키는 대로 다 그렸어요.”

“…… ”

이 안에 존재하는 그림을 다 그렸다는 말은, 게임 속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것 아닌가?

“그럼 지형이나 몬스터 같은 것도 전부 알고 있으시네요?”

“생긴 것만요. 능력치나 어디서 나오는지는 모르고요.”

“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보니 그림만 맡아서 했다면 스토리에 대해서는 잘 모를 테니 말이다.

유소라가 내 눈치를 살짝 보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럼…. 두 번째 질문의 답도 말씀드릴게요. 운영진이 왜 이곳에 있는지! 이건…. 저도 모르겠어요.”

“예?”

“저도 회사에서 퇴직한 지 좀 돼서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잘 모르는 데다가, 그냥 자고 일어나니 세상이 이렇게 변해 있었어요.”

[거짓말 탐지기 결과=진실]

또 진실이었다.

이것만은 내가 원하는 답변이 나오길 바랐는데, 너무나도 엉뚱한 답이 나왔다.

그냥 자고 일어나니 세상이 변해버렸다.

이곳에 있는 그 누구와도 똑같지 않은가?

“……후우.”

“실망하셨나요?”

“조금요.”

“미안해요.”

“뭐…. 미안할 게 있나요. 소라 씨도 모르고 들어온 건데요.”

나는 답답한 마음에 담배를 하나 꺼내 물었다. 불을 붙이지는 않았다. 대화 도중에 연기를 뿜는다면 유소라의 정신이 흐트러질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근데 제 말을 전부 믿어주시는 건가요?”

그녀는 내 거짓말 탐지기의 존재를 모른다. 그래서 저런 질문을 했겠지.

내가 최대한 사람 좋게 보이는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럼요.”

“지금까지 전부 숨기고 있었는데도요?”

“이유가 있었겠죠. 지금이라도 말해줘서 고마워요.”

유소라가 고개를 푹 숙여 땅을 보았다.

“믿어주시니 제가 더 고맙죠….”

“그럼 다음 질문도 봐주시겠어요?”

“아…. 넵!”

다음 질문은 사실 내가 이해가 안 되는 점 중 하나다.

운영진이라면 이 게임을 조금이라도 해 보았을 텐데, 초반에 응급 상자를 얻는 방법이나 간호사로 전직하는 방법.

그리고 전용 스킬을 사용하는 것도 제대로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소라는 내 질문에 대한 대답이 너무 쉽다는 듯 환한 표정을 지었다.

“아! 이건 제가 게임을 해 보지 않아서 몰랐어요.”

“…… 뭐요?”

“멸망의 땅에서 그림만 그렸지, 게임을 해 보지는 않았거든요.”

“운영진들은 게임 안 해요?”

“안 해요.”

에이도스가 거짓말 탐지기 능력을 작동했다.

거짓말이었으면 좋겠다.

운영진이 자사 게임을 안 한다니, 이 얼마나 무지한 행동이 아닌가.

[거짓말 탐지기 결과=진실]

‘뭐고.’

황당해서 말이 안 나왔다.

“아니! 자기가 일하는 회사의 게임을 안 했어요?”

“네. 저는 게임 안 좋아해요.”

“……”

뭐라고 하겠는가.

게임을 좋아하지 않는다는데 말이다.

“그럼 마지막 질문에 대해서 말해드릴까요?”

“예예…. 게임에서 나가는 방법이요?”

“네.”

나는 포기한 표정으로 그녀를 보았다. 게임을 해 보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나가는 방법을 알고 있겠나.

심지어 자신이 이곳에 어떻게 들어왔는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나는 의자에 편하게 기대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유소라는 내 눈을 또렷하게 쳐다보았다.

“나가는 방법은 알고 있어요.”

“아- 네. 그럴 줄 알았어요. 응? 아니? 어! 나가는 방법을 알고 있어요?!!”

내가 의자를 박차고 일어났다. 이어 그녀의 어깨를 잡고 크게 흔들며 되물었다.

“나가는 방법을! 알고 있었냐고요!”

그녀는 내가 강하게 쥐어 아팠는지, 어깨를 움츠리며 말했다.

“아, 아파요 천재 씨.”

“소라 씨, 정말 이 게임에서 나가는 방법을 알고 있어요?”

“…… 아마도요. 저번에 그 한조라는 사람이 말한 방법 있죠?”

“…… 강제 종료 말씀하시는 건가요? 서버에 과부하를 만들어서 튕기게 한다는.”

“네, 그 방법은 못 쓸 거예요. 대신 비슷하게…. 게임 밖으로 튕기는 방법은 있지만요.”

나는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방안에 모인 모두가 흥분 상태에 이르렀다.

조영기와 김연희도 자리에서 일어나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정우와 마이클은 침대에 편하게 누워 들었다. 세상 편한 자식들이었다.

유소라가 박수를 짝! 하고 치더니 내게 말했다.

“루시퍼, 그놈을 이용해서 게임을 폭발시키는 거예요.”

“…… 예?”

“제가 이 게임에서 마지막으로 그린 작화가 멸망이었거든요.”

“멸망? 이 게임의 마지막은 제가….”

아!

문득 떠올랐다. 내가 모든 플레이어를 전멸시킨 후, 운영진이라며 찾아왔던 자가 했던 말.

[라스트 게임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 혹시 라스트 게임이라는 부제의 결말이 따로 있다는 말인가요?”

“뭐, 어떻게 끝나는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그린 멸망의 그림은 루시퍼가 온 세상을 어둠으로 뒤덮는 그림이었어요. 제목이 멸망이었고요.”

“어둠으로….”

“그리고 지금 저희가 보는 것처럼 상태창이라는 걸 그리라고 했었어요. ‘서버 종료’ 라고.”

루시퍼가 서버를 종료시킨다.

어떤 의미인지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되었다. 멸망의 땅의 주인은 플레이어가 아니라 결국 이 안에 있는 NPC였다는 말인데.

‘…… 진실인가?’

[거짓말 탐지기 결과=진실]

“허허….”

그럼 전부 죽어야지 게임이 끝난다는 말인가? 아니! 그럼 플레이어 모두 여기서 나갈 수 없다는 말인데.

그럴 리가 없다.

분명히 이 게임에서 나가는 방법은 있다.

확실하다.

정우의 삼촌이 남겨 놓은 메시지를 봤으니깐….

유소라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보았다.

“괜찮으세요?”

“…… 예. 소라 씨, 전부 말해줘서 고마워요.”

“뭘요. 아까도 말했지만…. 미리 말씀드리지 못해 미안해요. 경황이 없는데다가 한번 말을 못 하니깐 계속 말할 수 있는 타이밍이 안 오더라고요.”

“그럴 수도 있죠. 아! 혹시 장유의 저택에서 구한 ‘사자의 서’에는 새로운 내용이 안 나왔나요?”

유소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마 일곱 번째 라운드에 들어가면 나올 것 같아요.”

“왜죠?”

“두 개의 뿔이 달린 짐승이 날아오르면 예언이 시작되리다. 라고 적혀 있거든요.”

“…… 두 개의 뿔이 달린 짐승인데 날아다니는 거면…. 악마인데요.”

“그러니까요. 그래서 일곱 번째 라운드에 책 내용이 이어질 것 같다고 말씀드린 거예요.”

“…… 그렇군요.”

우선 내가 유소라에게 궁금했던 내용은 모두 정리가 되었다. 그녀조차 모르는 이야기들은 어쩔 수 없고, 그래도 꽤 나 많은 정보를 얻게 되었다.

‘이제는…. 마이클 차례인가.’

* * * * *

백색의 거인 백여 마리가 황야에 모여 대화를 나누었다.

그들 중 몇은 머리가 두 개, 몇몇은 머리가 세 개 달려 있었다.

머리의 개수가 많을수록 높은 전투력을 뜻하는 비홀더. 놈들이 악당 모의를 하듯 사악한 웃음소리를 내었다.

-캬학학학학!

“이번에 AI가 고장나서 타워를 부술 수 있었다면서?”

온몸이 전기에 그을린 두 머리 괴물, 트윈 비홀더가 대답했다.

“거의 다 부쉈는데, 망할 에이도스 녀석이 복귀해서 망했다.”

“호오라…. 혹시 그 AI 녀석. 네가 갔던 시간에는 자리를 비우는 거 아니야? 저번에도 새벽에 잘못 찾아갔을 때 탑을 쉽게 공격했었잖아.”

“…… 그런가?”

쿠웅-. 쿠웅-.

그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누구보다 우월한 피지컬과 크기의 거인이 다가왔다.

삐쩍 마른 비홀더에 비해 프로 레스링 선수처럼 근육질의 몸을 가진 괴물.

온몸이 미스릴로 만든 갑주를 착용하여 그 누구보다도 단단해 보였다.

크기만 하더라도 벌써 빌딩 한 채는 되어 보이는데, 거기다가 단단해 보이는 갑주까지 입은 자였다.

“크르르르르르, 너희들 스무 명이나 도시에 갔는데 인간에게 당했다면서?”

로그인 더 아포칼립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