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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화

“…… 에이도스. 현 시간부로 탑의 방어 시설을 전부 가동하도록 한다.”

[‘에이도스’ 김천재 님의 명령에 따라 탑의 방어 시설을 전부 가동합니다.]

[미사일 터렛 자동 모드 ON]

[전기 방어막 자동 모드 ON]

[화염 방사기 자동 모드 ON]

에이도스가 탑에 붙어 있는 방어 시설을 전부 작동시키기 시작했다.

화염 방사기가 가까이 붙은 거인들을 불태워냈다. 이어 탑을 향해 방망이를 휘두르는 거인들이 고압 전류에 감전되어 몸을 떨며 물러났다.

놈들이 뒤로 물러나자 미사일 터렛이 정확하게 거인의 머리만을 향해 미사일을 쏘기 시작했다.

쾅! 콰광!

사람이 직접 조종하는 것보다 더욱 정밀한 타격에 빠른 임팩트를 보여줄 수 있었다.

게다가 전기 방어막 같은 경우에는 전압의 무게가 달랐는지 감전된 거인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화르르르륵!

화염 방사기가 땅을 태워 뜨겁게 만들었다. 거인들이 밟을 수도 없을 정도로 말이다.

-쿠워어어어!

거인들이 한둘씩 물러났다. 놈 중 한 마리가 미사일에 집중 표적이 되었다.

계속해서 날아온 미사일이 거인의 머리를 날려버렸고. 끝내 놈의 생명력 게이지가 회색으로 변하며 죽음을 맞이했다.

쿠궁!

한 마리가 쓰러지자 다른 거인들의 저항이 더욱 거세졌다.

가까이에 붙을 수 없는 것을 깨달은 그들이 방망이에 온 힘을 실어 탑을 향해 던졌다.

바람을 가르며 날아간 방망이가 미사일 터렛에 명중했다.

쿵!

발사대가 휘어지며 미사일이 하늘을 보았다. 각도가 나오지 않자 터렛이 발포를 멈추었다.

“…… 에이도스, 전투 기체(機體) 출동.”

[‘에이도스’ 김천재 님의 명령에 따라 전투 기체(機體)를 출동시킵니다.]

[도시 전역에 잠들어 있는 기체를 가동합니다.]

[전투 기체의 수 12/12]

우우우우우웅-

굉음이 메카니아 전역에 울렸다. 비행기 엔진 같은 소리가 이곳저곳에서 들려왔다.

[전투 기체 준비 완료.]

[현 시간부로 거인 사냥을 시작합니다.]

쿠구우우웅!

어두운 밤. 하늘 위로 로봇 열두 마리가 날아올랐다. 오지명 박사가 만든 조잡한 물건과는 달랐다.

얼핏 보면 사람의 모습을 본 따 만들었다고 생각할 정도로 관절들이 자유로웠다.

어린 시절 합체 로봇 만화에서나 볼 법한 그런 기계들 말이다.

기체들은 양손에 기관총을 장착하고, 날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등에 달린 엔진으로 날아다닐 수 있었다.

‘기체가 열두 기밖에 없는 건가?’

본격적인 전투를 위해서는 배 이상 필요할 것 같은데, 아쉬웠다.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나으니깐….

제트기처럼 빠르게 날아온 전투 기체들이 거인들을 향해 기관총을 겨누었다.

[전투 기체가 ‘김천재’ 님에게 상황을 보고합니다.]

[적 발견, 섬멸 작전을 수행하도록 하겠음.]

[파악된 적의 수: 19]

[작전 성공률: 75%]

[전투 시작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시작 / 중지]

나는 미소를 지으며 눈앞에 있는 홀로그램을 만졌다.

[시작]

로봇의 기관총에서 철컥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총구에서 불꽃이 터져 나왔다. 사격음이 얼마나 시끄러웠는지 계속 들으면 귀 고막이 찢어질 정도였다.

투두두두두!

전투 기체가 나타나자 거인들이 도망가기 시작했다. 앞서 싸운 탑하고는 공격력이 차원이 다르기에, 인원이 많더라도 버텨낼 수 없었을 것이다.

-쿠웨에에엑!

전투 기체들은 사격하며 거인을 쫓고,

거인들은 나무 방망이로 등을 가린 채 도시 밖을 향해 뛰었다. 물론 그들 중 몇은 로봇 기체에 잡혀 사망하게 되었다.

대부분이 도망가버렸지만.

그래도 한 가지는 확실했다.

이벤트의 난이도가 올라간 대신 전투 기체의 파워도 같이 올라갔다는 것 말이다.

나는 도망가는 거인들을 보며 에이도스에 명령했다.

“에이도스, 추격을 멈추고 탑을 정비하도록 해라. 곧 다가올 대전투를 준비하도록 한다.”

[‘에이도스’ 명령 하달, 전투 기체는 거인의 추격을 멈추고 탑으로 복귀하도록 한다.]

[김천재 님의 그룹이 ‘컨트롤 타워’를 지켜라! (SSS+) 임무에 성공하셨습니다.]

[보상으로 ‘거인의 영혼’이 지급됩니다.]

[거인의 영혼]

-지옥에서 온 거대한 마물의 힘이 담겨있는 영혼이다.

* * * * *

임무를 마친 조영기가 공장으로 돌아왔다.

그는 마정우를 찾아 대화를 나누었다. 현재 바깥 상황과 함께 김천재의 명령을 전달했다.

이야기가 끝난 마정우는 잠을 자는 주민들을 깨워 한둘씩 모으기 시작했다.

“다들 일어나세요! 이동하겠습니다!”

의자에 앉아서 가면을 취하던 노효만이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무슨 짓입니까?”

“주민들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키려고요.”

“대피? 지금 말입니까?”

정우는 그의 행동이 고까웠는지 눈썹을 찡그렸다.

“예.”

“…… 안전한 곳이 어디입니까? 이 도시에 안전한 곳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노효만의 표정을 보니 진짜로 묻는 것이 아니라 ‘그런 곳이 있어?’라는 투의 비꼬는 말이었다.

“안전한 곳을 찾았습니다.”

“찾았다고요? 어디요?”

“메카니아 중심에 있는 컨트롤 타워, 그곳으로 전부 이동할 겁니다.”

이야기를 들은 주민들이 깜짝 놀랐다.

그들은 탑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정우의 말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저 양반이 뭐라는 거야? 우리 같은 놈들이 탑에 들어갈 수 있다고?

-그러게 말이에요.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닐까요?

-뭣 하러 거짓말을 해? 진짜일 거야. 믿어 봐.

의견이 둘로 나뉘었다.

마정우를 믿고 가보자는 사람들과,

이곳에 남아서 노효만과 함께 수색 임무가 끝나기를 기다린 후 게이트 너머로 간다는 사람들.

웅성거림을 들어보니 대부분이 노효만의 영향권 안에 있었다. 기다리는 편이 더욱 안전하다고 생각하니 말이다.

마정우를 믿고 가는 편이 생존 확률은 훨씬 높았다. 하지만 이곳 주민 NPC의 신뢰도를 먼저 얻은 것은 노효만이었다.

“그럼 다들 이곳에 남는 것으로 하시지요.”

“음? 아니 간다는 사람도 있는데 왜 그래요?”

“안 간다는 사람이 더 많지 않습니까?”

“그럼 소수의 의견은 무시하겠다는 겁니까?”

노효만이 얄미운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거렸다.

자기주장이 굉장히 강한 놈이다. 주장이 대립 될 때마다 자신의 의견을 최우선으로 생각했다.

“그곳에는 돈이 없으면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제는 들어갈 수 있을 거예요.”

“확실합니까?”

“예, 그쪽 상황은 천재가 직접 전달해 줬으니 정확해요.”

천재라는 말이 나오자 작전 과장의 얼굴에 어둠이 드리웠다.

“그분, 지금 탑 안에 있습니까?”

“…… 예.”

노효만이 석연찮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김천재가 없어야 자신의 일을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으니 그럴 수밖에.

그가 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김천재 씨는 그래서 안 보였던 겁니까.”

“위장 잠입을 하고 있었거든요.”

“왜 제게는 말씀해주시지 않았습니까?”

“비밀리에 진행하던 임무라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어요.”

정우의 말을 들은 노효만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아무리 비밀 작전이라도 자신에게 말하지 않은 점이 신경 쓰였나 보다.

“정우 씨, 죄송한데 이곳의 주민들은 제가 직접 지키도록 하겠습니다. 컨트롤 타워에는 여러분들만 가도록 하시지요.”

“…… 저는 여기 있는 사람들을 전부 데려가야겠는데요?”

“안 됩니다. 이 시간에 움직이다가 거인에게 들키기라도 하면 정말 끝장납니다!”

노효만이 완강하게 거부했다.

이어 주민들을 한 곳으로 모으는 조영기에게 그만하라며 소리쳤다.

“안 된다고 했습니다!”

마정우의 표정이 매섭게 변했다. 이어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노효만에게 대답했다.

“…… 이유가 뭔데?”

“방금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위험하다고요.”

“앞뒤 뻥 뚫려있는 이 공장이 더 위험하지 않나?”

“저희가 있는데 왜 위험합니까?”

“싸워보지 않아서 모르나 본데, 당신들은 거인에게 절대 이길 수 없어.”

“해보지 않으면 모르지요.”

“이 자식이….”

둘은 서로를 노려보며 입장의 견해를 좁히지 않았다.

노효만은 꼭 옮겨야 하냐는 쪽으로 이야기를 하고, 마정우는 지금이 아니면 옮길 기회가 없다며 팽팽하게 말싸움을 했다.

그들의 대화를 듣던 주민들이 수군거렸다.

-아니…. 그럼 먼저 탑으로 갔다가 군인들과 함께 게이트에 들어가면 되잖아? 저 둘은 왜 싸우는 거야….

-옳소! 군인 양반, 내일 당신네 세계로 가기 전까지 안전하게 탑에 숨어 있읍시다.

-맞아요. 탑에 들어갈 수 있으면 그쪽에 있는 게 더 안전하지 않을까요?

노효만이 그들을 슬쩍 째려보더니 내게 말했다.

“아까 보니깐 거인 여럿이 탑 쪽으로 이동하고 있던데.”

“…… 놈들은 이미 떠났다.”

“그걸 어떻게 압니까?”

“여기 이 사람이 직접 확인하고 왔으니깐.”

조영기가 맞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떠났다는 거인들이 지금 밖에 돌아다니고 있다면요?”

“없다고.”

“그러니깐 만약에라도 있으면 어떻게 할 겁니까?”

야만 전사를 선택한 대부분의 플레이어 성격은 불같았다. 마정우 또한 마찬가지. 천천히 달아오른 그의 분노가 대화를 마치지 못하고 끝내 폭발하고 말았다.

마정우가 두 손에 오라를 모았다.

“…… 안 되겠다. 너 오늘 좀 맞자.”

쾅!

정우가 노효만의 머리채를 잡아 책상에 들이박았다. 이어 주먹으로 명치를 세게 때린 후 땅에 집어 던졌다.

털썩!

“계속 여기 있으면 전부 뒤진다고 이 X신 새끼야!”

“크윽….”

“아니 뭣도 안 되는 새끼가 오늘 왜 이렇게 깝치는 거야? 뭐 네 부하 쪽수 믿고 그러는 거냐?”

노효만의 부하들이 눈치를 보았다. 하지만 도와주지는 않았다, 김천재 그룹은 김준철 소령의 군인들과 친밀도가 굉장히 높기 때문이다.

“X발…. 너희들은 폐허가 된 마을로 복귀하면 전부 죽은 줄 알아라.”

“넌 지금 죽을 텐데?”

정우가 노효만의 멱살을 잡아 허공에 들어 올렸다. 마치 어른이 어린아이를 상대로 하듯 말이다.

“어어어어!”

“마이클, 내 도끼 가져와.”

마이클이 도끼를 가져왔다.

“여기요우.”

“너 이 새끼, 오늘 손모가지 날아간다.”

노효만이 주변을 살폈다. 아무도 도와주려 하지 않았다. 그는 이내 정신을 차렸는지 갑자기 태세를 전환했다.

“죄, 죄송합니다!”

뜬금없는 그의 한 마디에 정적이 흘렀다.

마정우도 기가 찬 듯 도끼의 손잡이로 노효만의 정수리를 내려찍은 후 땅에 던졌다.

팍!

둘의 대화를 듣던 조영기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둘 다 뭐하는 거야? 이렇게 하면 되잖아. 따라올 사람들은 따라오고, 남을 사람들은 남고. 이곳 주민들에게 직접 선택하라고 해.”

* * * * *

거인들이 전부 떠났다.

정우가 공장에 있는 주민들을 데리고 탑으로 찾아왔다.

수를 세어보니 백 명이 채 되지 않았다.

노효만의 방해 공작으로 더 이상 데려올 수 없었단다.

‘빌어먹을 새끼.’

탑 밖에서 안으로 들어온 사람들이 기쁨에 환호했다. 나는 군인들을 시켜 비상식량을 전부 풀었다.

다들 배불리 먹고 남은 하루를 버틸 수 있게 말이다.

‘어차피 오늘만 지나면….’

이번 이벤트는 종료되니깐.

해가 떴다.

흔히 동쪽에서 일출하여 서쪽으로 일몰하는 태양이 아니었다. 그저 붉은 빛이 구름과 함께 섞여 하늘을 태워냈다.

빛이 어둠을 순식간에 몰아냈다.

메카니아 전역이 환해졌다.

나는 그룹원들을 데리고 탑의 최상층에 있는 김수현의 방으로 이동했다.

아 물론 조영기와 김연희도 말이다.

쪼르르르르-.

정수기에서 물이 나왔다.

다들 한 잔씩 벌컥벌컥 들이켠 후 쉴 곳을 찾아 앉았다.

소파와 침대, 그리고 의자는 널렸으니 말이다.

나는 창가에 서서 밖을 보고 있는 유소라에게 다가갔다.

“…… 소라 씨.”

유소라가 억지로 미소를 보이며 내게 말했다.

“네?”

“잠시 이야기 좀 하죠.”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말씀하세요.”

나는 그녀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에메랄드같이 반짝이는 그녀의 초록색 눈.

시스템이 정한 ‘여는 자’의 동료.

“소라 씨는 직업이 뭐죠?”

“간호사요.”

“아뇨, 이곳에서 말고. 원래 직업이요.”

바로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그러기에 아무 말 없이 그녀를 기다려 주었다.

“…… 그건 왜요?”

“제가 먼저 말씀드려도 될까요?”

“뭘요?”

“소라 씨 직업이요.”

“…… 뭔데요?”

모두가 우리를 바라보았다.

마정우, 마이클, 조영기, 김연희.

정우는 전부 알고 있어서 그런지 별 반응 없었다.

나머지 인원들이 의아한 표정으로 보고 있었을 뿐.

유소라의 얼굴이 상기 되었다. 마치 치부를 들킨 것처럼 말이다. 가까이 서 있으니 빨라진 그녀의 숨소리가 들렸다.

나는 낮은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

“소라 씨.”

“…… 네.”

“이 게임을 만든 최초의 제작자, 5인 중 한 명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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