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화
메카니아 전역이 난리가 났다. 모든 전력이 끊긴 상태에서 거인들의 침공이 시작되었다.
나는 탑에서 밑을 내려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거인들이 한둘씩 이곳을 향해 모여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 조영기.”
역시 끝내주는 실력이다.
그가 도시 밖에서 거인들을 데려왔다. 어떠한 방법을 사용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쿵! 쿵! 쿵!
누군가 내 방문을 두드렸다.
나는 문구멍으로 밖을 확인했다.
성난 표정의 총독이 서 있었다.
“들어오세요.”
“…… 문 좀 열어주겠나.”
“음? 암호 모르시나요.”
“모르네.”
그의 두 손이 밑으로 내려가 있다. 뒤편이 보이지 않도록 구멍에 가까이 다가서 있는 것이 왠지 불안했다.
혹시 내게 덤비려는 건가?
아니, 덤빌 이유가 없지 않은가?
이 정전의 사태가 나 때문이라는 증거도 없으니 말이야.
어차피 총독이 내게 덤비더라도 이길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
나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그의 뒤로 복도를 꽉 채운 병사들이 보였다.
철컥.
그들이 내게 총을 겨누었다.
총독이 눈썹을 찌푸리며 내게 물었다.
“자네, 지금까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 밥 먹고 있었는데요.”
“밥? 무슨 밥?”
그가 나를 밀치며 방안으로 들어왔다. 테이블 위에는 따뜻하게 데운 일회용 밥에 참치 통조림이 올려져 있었다.
이곳 냉장고 안에 준비되어 있던 식품들이다.
총독이 밥그릇에 손을 가져다 대어 보더니 내게 물었다.
“밥을 먹고 있었다고?”
“예.”
“이 시간에?”
수현이 내 방 안에 있는 시계를 보았다. 정확히 여섯 시 오 분. 나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그에게 대답했다.
“이제 곧 아침이잖아요. 저는 일찍 일어나는 편입니다.”
“……”
나는 내게 총을 겨누고 있는 병사들을 보며 물었다.
“무슨 일 있나요?”
“아무 일도 없네.”
“근데 왜 제게 총을 겨누고 있는 거죠?”
“지금 문제를 일으킨 놈을 찾느라 그랬네.”
“문제?”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을 하자 굳었던 총독의 얼굴이 풀렸다.
싼 티가 나는 웃음을 짓는 것으로 보아 분명 연기를 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나를 안심 시키려고 말이다.
“자네, 정말 방안에만 있던 거 맞지?”
“그럼요. 못 믿겠으면 밖에 보초병에게 물어보세요.”
“보초병?”
“예.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이요. 어차피 복도가 일자니 그들이 봤을 거 아니에요?”
김수현의 얼굴이 굳었다. 그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심상치 않았다. 그는 내 얼굴을 멀뚱히 볼 뿐 대답하지 않았다.
내가 쓰러뜨린 보초병이 죽었기에 그런 건가?
“…… 김천재.”
“말씀하세요.”
“밖에 보초병이 있는 것은 어떻게 알고 있었지?”
그의 질문에 잠시 멈칫했다. 아무렇지 않게 바로 대답했어야 했는데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총독이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말을 이었다.
“이 층에는 원래 보초를 세우지 않는다네. 오늘만 특별히, 자네를 감시하기 위해 세웠지.”
“그래요?”
“그래.”
“……”
“…… 체포해!”
병사들이 방안으로 달려왔다. 내 양팔을 붙잡고 머리에 총구를 겨누었다.
나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총독에게 말했다.
“왜 이러시는 거죠?”
“역시 네 놈이 범인이었어.”
“뭐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번 일을 저지를 사람은 너밖에 없어. 아니면 갑자기 에이도스가 고장이 날 리가 없거든.”
쿵!
다시 한 번 탑이 흔들렸다. 모두가 중심을 잡기 위해 두 다리에 힘을 꽉 주었다. 균형을 잡지 못한 몇몇이 기울어지는 방향으로 쓰러졌다.
-으어어어!
이번 충격은 꽤 컸다.
총독조차 무너진 중심을 잡기 위해 테이블을 붙잡았으니 말이다.
진동이 멈춤과 동시에 나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총독에게 물었다.
“……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요.”
“모르는 척하지 마라.”
“총독님, 제가 모른다고 했는데 증거도 없이 자꾸 우기시면 곤란합니다.”
“증거? 증거가 왜 없어.”
“있으신가요?”
김수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CCTV를 전부 부쉈기에 증거가 있을 리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총독이 손짓하자 병사들이 아까 내게 잘린 보초병의 목을 들고 왔다.
“보이나?”
“……”
“표면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예리한 날붙이가 단숨에 잘라냈다.”
“…… 그래서요?”
“네가 지금 들고 있는 낫. 바로 그놈이 증거지.”
나는 손에 쥐고 있는 낫을 보며 물었다.
“이게 증거라고요?”
“그래. 메카니아에서 날붙이를 무기로 쓰는 자는 없거든.”
날의 피를 전부 닦아내어 알리바이가 완벽하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부분을 놓쳤다.
생각해보니 PC에서도 병사들이 총을 쏜다는 부분만 계속해서 언급되었고, 칼을 쓴다는 말은 없었는데 말이다.
실수다.
내가 한숨을 쉬자 총독이 미소를 지었다.
“시키는 대로만 하면 목숨은 살려주도록 하지. 에이도스를 원 상태로 돌려놓게나.”
“……”
“아니면 죽던가. 어차피 날이 밝으면 태양열로 인해 이 도시는 다시 돌아가기 시작할걸세. 전력이 들어오면 에이도스도 다시 가동될 테고.”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방안에 가득 찬 병사들이 보였다. 그들 모두 긴장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 어쩔 수 없네.’
내가 낫을 굳게 쥐자 놈들도 방아쇠에 올린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그저 일반적인 탄환을 사용하는 병사들이었다면 전부 상대할 만한데, 저들 중 몇은 테이저건과 전기 총을 가지고 있어 혼자 상대하기에는 위험하다.
“총독님.”
“말해.”
“빠른 시일 내에 다시 뵙겠습니다.”
“…… 뭐?”
나는 팽이처럼 몸을 돌려 팔을 잡고 있는 군인들을 튕겨냈다.
이어 낫을 크게 휘둘렀다. 날붙이가 전방에 있는 자들의 몸을 관통하듯 그대로 베며 지나갔다.
놈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상체와 하체가 분리되어 땅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털썩.
-크학!
잘린 몸뚱이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이 와중에 총독 녀석이 상체를 납작이 수그려 내 공격을 피했다.
‘일개 병사와는 다르다는 건가.’
“김천재 이 개새끼!”
총독이 소리치자 병사들이 정신을 차린 듯 나를 향해 총을 쏘아댔다.
탕! 탕탕!
나는 낫을 빙그르르 돌리며 창문을 향해 달려가 휘둘렀다.
와장창!
그리곤 밖으로 뛰어내렸다.
“아디오스.”
* * * * *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어둠 속, 나는 바람을 가르며 지면을 향해 떨어졌다.
불타는 구름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무언가 타는 듯한 냄새는 똑같았다.
다른 사람들이 내 행동을 보았다면 미친놈이라고 했을 것이다.
계획을 들킨 이상 녀석들에게 도망가기 위해서는 이 방법밖에 없었다.
포로로 잡히는 것보다는 이쪽이 더 안전하니깐.
쾅!
그대로 지면에 떨어졌다.
“커헉!”
말도 못 할 정도로 고통이 심했다. 단말마 신음이 절로 나왔다. 온몸에 뼈가 부서진 것 같다.
내 머리 위에 생명력 게이지가 절반으로 깎였다.
죽지 않을 것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PC게임 시절 많이 해본 짓이니깐 말이다.
정우와 함께 누구의 방어구가 더 좋은가를 테스트해보려 하던 미친 짓이지만 말이다.
“후우-.”
-쿠웨에에엑!
멀지 않은 곳에서 거인의 포효가 들려왔다.
나는 고통을 참고 일어났다. 비틀거리며 제일 가까운 건물의 안으로 들어갔다. 지금 이 상태로 거인에게 들키기라도 하면 큰일이니 말이다.
난이도가 ‘일반’ 상태였다면 정면 대결을 해볼 만도 한데, 이번 라운드는 ‘불지옥’ 난이도로 진행되었으니깐….
담배 한 대를 꺼내어 입에 물었다. 불을 붙임과 동시에 거인의 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쿠웅-. 쿠웅-.
나는 몸을 숨긴 채로 녀석이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후각이 발달한 거인이었다면 나를 발견했을 텐데, 다행히도 어제 상대한 최하급 비홀더와 같은 개체였다.
‘빨리 이동하라고….’
날이 밝아서 도시에 전력이 공급되기 전에 거인들이 빨리 모여야 한다.
에이도스가 작동하지 않는 이상 모든 병기는 수동으로 조종이 이루어질 테고, 거인들을 막으려면 사람들이 직접 기기를 운용하는 수밖에 없다.
즉, 거인들을 막기 위해 탑에 있는 모든 주민이 낮은 층으로 몰릴 것이다.
‘그때가 되면 나는….’
쓰읍-
푸후.
담배를 다 태우자 통증이 가라앉았다. 걷는 데 지장이 없어진 나는 건물 밖으로 나가 조영기를 찾기 시작했다.
그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탑 위에서 그의 이동 경로를 미리 보고 왔기 때문이다.
“조영기!”
거인을 피해 도망가던 조영기가 걸음을 멈추었다.
“어? 김천재.”
“수고 많았다.”
조영기가 나를 위에서 아래로 훑어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몸이 왜 그래?”
“번지 점프 좀 즐겼어.”
“재밌었겠네.”
“그래.”
그의 신발을 보니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얼마나 뛰어다녔는지 내구성이 높은 가죽 구두였는데도 밑창이 너덜거렸다.
“거인들은?”
“네가 시킨 대로 전부 탑으로 유인했어.”
나는 엄지를 치켜들었다.
“잘했다.”
“근데 네가 저 탑에서 나오면 안 되는 거 아니야?”
“계획이 좀 변동됐어.”
“좋은 쪽으로? 나쁜 쪽으로?”
“둘 다.”
조영기가 어이없는 듯 헛웃음을 내뱉었다.
“이제 어떻게 하면 되지?”
“너는 마정우에게 돌아가서 주민들을 이동시킬 준비를 해. 나는 이곳에서 일을 마무리할 테니.”
“혼자 괜찮겠어? 생명력도 얼마 없는 것 같은데.”
나는 머리 위에 있는 생명력 게이지를 툭툭 건들며 대답했다.
“이 정도면 충분해.”
“충분하기는….”
“혹시라도 노효만 녀석이 지랄하면 네가 좀 처리해.”
“어떻게? 죽여?”
“죽이지는 말고 불구로 만들어. 녀석한테 얻어야 할 정보가 있어.”
조영기가 셔츠 깃을 세우며 대답했다.
“오케이, 지랄하지 않으면 그냥 두면 되는 거지?”
“…… 그래.”
* * * * *
스무 마리의 거인이 컨트롤 타워를 공격했다. 그들의 방망이가 벽면을 강타할 때마다 탑이 크게 흔들렸다.
군인들이 거인을 막으려 미사일 터렛과 전기 총을 사용했다. 한 마리만 쳐들어왔을 때는 손쉽게 제압했는데,
숫자가 많아지니 그들도 버거워했다.
-쿠워어어.
쾅!
탑이 계속해서 흔들려서 그런지, 군인들의 화기가 거인을 명중시키지 못했다.
게다가 거인의 수가 많아 화력이 분배되었다.
거인들은 전류가 흐르는 벽을 향해 나무 방망이를 계속해서 휘둘렀다.
양날의 검이라고 해야 하나? 벽을 부수며 감전되어 생명력이 깎이는 게 보였다.
나는 골목에 숨어 녀석들을 지켜보았다.
탑이 무너져야 다음 계획을 실행할 수 있으니 말이다.
쿠웅-. 쿠웅-. 쿠웅-.
거인의 수가 점점 많아졌다. 조금씩 허물기 시작한 탑은 균형을 잃기 시작했고. 집중 공격을 받은 쪽의 기골이 무너져 내렸다.
쿠구구궁.
건물이 한쪽으로 쏠리자 군인들이 탑 밖으로 뛰쳐나왔다.
-어어어어, 무너진다!
-모두 도망가라!
-여기서 나가면 죽는데 어디로 가라는 거야?!
-초, 총독님.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총독이 이빨 사이로 바람 새는 소리를 내었다.
“제길…. 모두 끝까지 싸워라! 탑이 무너지면 어차피 다 같이 죽는다!”
군인들이 동시에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명령을 마친 총독은 자신의 비서와 함께 상황실에서 나갔다. 이어 병사 몇 명과 함께 엘리베이터의 최상층으로 이동하더니 그곳에 준비된 헬기를 탔다.
투두두두두두-
헬기의 프로펠러가 회전하자 먼지가 일었다.
파일럿으로 보이는 자가 총독에게 물었다.
“출발해도 되겠습니까?”
“…… 그래.”
헬기가 날아올랐다.
총독이 자신의 발밑에 있는 탑을 보며 활짝 웃었다.
그리곤 독백했다.
“여기까지 했으면 충분했지….”
비서처럼 보이는 여성이 김수현에게 말했다.
“저희는 이제 어디로 가는 겁니까?”
“어디? 허허…. 내 옆에서 그렇게 오래 일했는데 모르겠나?”
“…… 죄송합니다.”
“이번에 새로 열린 게이트, 그곳이 안전하다면서?”
“제 3 게이트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돈도 충분히 챙겼겠다. 이제는 그곳에서 평화를 즐기며 살도록 하지.”
김수현이 비서의 어깨를 잡아끌었다. 그녀는 싫지 않은 듯 고개를 총독 쪽으로 돌렸다.
부웅- 부웅- 부웅- 부웅-
파일럿이 소리쳤다.
“초, 총독님!”
“왜 그러는가?”
“아래서. 아…. 아래서 무언가 날아오고 있습니다.”
“날아온다고? 뭐가?”
“잘 모르겠습니다. 이쪽에서는 보이지 않습니다. 고개를 숙여 한 번만 확인해주시겠습니까?”
총독이 밑을 내려보았다.
날붙이가 붙어 있는 기다란 무언가가 원형을 그리며 날아오고 있었다.
그는 공포감에 휩싸인 얼굴로 주먹을 꽉 쥐었다.
“이런 X발…. 김천재!!”
부웅- 부웅-.
쾅!
[여섯 번째 라운드의 주요 아군 인물인 ‘김수현 총독’을 처리하였습니다.]
[숨겨진 임무가 열립니다.]
[‘컨트롤 타워’를 지켜라!]
[거인의 습격으로부터 컨트롤 타워를 지키고 주민들을 구하라.(난이도 SSS+)]
[주민 사망률 15% 미만 유지]
[컨트롤 타워 내구력 45% 이상 유지]
[보상: 거인의 영혼 획득]
나는 추락하는 헬기를 보며 속삭였다.
“…… 에이도스. 현 시간부로 탑의 방어 시설을 전부 가동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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