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화
“내 이름은 수현, 이곳의 총독이네.”
흰색 베레모에 군복.
한쪽 눈에 안대를 쓴 중년 남성이 내게 손을 내밀었다.
“김천재입니다.”
“그래그래. 자네가 게이트 너머에서 왔다면서?”
수현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나를 대하였다.
“예.”
“게이트를 어떻게 넘어왔지?”
“…… 그냥 걸어서 넘어왔습니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장난으로 받아들여졌나 보다. 단숨에 찌그러진 표정에서 그의 성격을 알 수 있었다.
“미안한데 나는 농담을 좋아하지 않아.”
“농담 아닙니다.”
“……”
“이곳, 메카니아에 주민이 먼저 게이트를 타고 저희 쪽으로 넘어와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우리 주민이?”
“예.”
“…… 이곳의 주민이라는 자가, 혹시 탑에 거주자인가?”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렇군, 그래서 게이트의 위치를 알 수 있었던 게야.”
총독이라는 이 콧수염 늙은이, 마치 게이트를 알고 있었다는 듯이 말하고 있다.
“총독님도 게이트의 존재를 알고 계셨나요?”
“로봇으로부터 보고만 들었다네.”
“로봇?”
“그래, 자체 이 탑에 올라오기 전에 혹시 옥상을 올려 보았나?”
“…… 예.”
여기까지만 설명했는데,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알 수 있었다.
앞서 PC 버전 멸망의 땅에서 이곳에 설치된 기기들을 전부 보았으니 말이다.
이 탑의 모든 일을 관장하는 AI 시스템이 도시의 CCTV를 보았다는 것이겠지.
총독이 껄껄 웃으며 내게 말했다.
“우리 메카니아의 자랑, 내 사랑 에이도스가 이 도시 전체를 들여다보고 있다네.”
“옥상에 있는 기다란 안테나 말씀하시는 거죠?”
“…… 어떻게 알았지?”
“제가 살던 곳에도 비슷한 시스템이 있었습니다.”
[메카니아의 총독 ‘수현’이 당신을 경계합니다.]
수현은 자신의 메카니아가 그 어느 곳보다 발달한 기계 문명이라고 생각하는 자이다.
하지만 내 대답 한 번으로 게이트 밖의 존재에 위협을 느꼈을 것이다.
자신들의 시스템과 비슷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말이다.
“…… 게이트 건너에도 괜찮은 도시가 있나 보군.”
“여기만은 못하죠.”
“그런가? 하하…. 그나저나 밖에서 걸었다면 목이 마를 텐데. 물 한 잔 마시겠나?”
그가 환하게 웃으며 컵에 수돗물을 따랐다. 살짝만 틀어도 폭포수처럼 터져 나왔다.
콰르르륵.
그는 가득 찬 물컵을 내게 건네어 주었다.
“자-.”
“…… 감사합니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잔을 받아 들었다. 미지근한 물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굉장한 청량감을 받았다.
몇 시간을 탁한 공기를 마시며 걸은데다가 전투까지 했으니, 목이 마를 만도 하지.
꿀꺽.
잔에 담긴 물을 전부 마셨다.
수현이 의미심장한 미소로 내게 물었다.
“김천재 군, 혹시 이곳에 온 이유는 무엇인가?”
“…… 주민들을 저희 도시로 이동시키려 합니다.”
“음? 주민들을? 왜?”
“탑은 인원이 제한되어 있고, 밖은 거인들의 위협으로부터 살아남기 힘들기 때문에요.”
“허허…. 미안하지만, 그들을 데려가는 것은 그만두도록 하게나. 거인에게 위협받는 건 그들의 운명이야.”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기가 차서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내가 대답이 없자, 수현이 말을 이었다.
“내 말은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인과율이라는 게 정해져 있다네. 모두 신께서 만드신 흐름에 따라 사는 것이지.”
“신?”
“그래, 신.”
어떤 종교를 믿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손사래를 쳤다.
“죄송한데 저는 신을 믿지 않습니다.”
“…… 뭐, 믿든 안 믿든 그건 자네 자유네. 하지만 앞으로 내 생각을 거스르지는 말아주길 바라네.”
“총독님의 생각이요?”
“그래, 메카니아의 주민들은 내 손으로 직접 지킨다. 이게 내가 스스로 생각하는 사명. 이 부분만 김천재 군이 터치해주지 않았으면 해.”
그의 부탁은 간단했다.
자신의 허락 없이는 메카니아의 주민들을 건들지 말라는 뜻이었다.
“탑 밖의 주민들도 건들지 말라는 말씀인가요?”
“그렇지.”
“그럼 그들을 탑 안으로 보내주시죠.”
“그건 안 된다네. 이곳은 벌써 정원이 초과 되었어.”
나는 석연찮은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렸다.
“정원이 몇 명인지 모르겠지만 낑겨 살더라도 안으로 보내야 합니다. 아니면 다들 죽어요.”
“아까 말했지만 죽는 것도 인과율. 전부 신께서 정해주시는 것이라네.”
말이 안 통한다.
멍청한 자가 신념을 가지면 무섭다고 하더니, 딱 그 꼴인 것 같다.
가슴팍과 어깨에 달린 [HALO]와 [SCUBA] 패치.
특전 공수 부대 출신인 것 같은데 그런 사람이 머리가 나쁠 수 있나?
‘…… NPC한테 무엇을 바라겠나.’
“죄송한데 저희 게이트에서 넘어온 군인들이 이미 이곳의 주민들을 모으고 있습니다.”
“…… 뭐?!”
“삼 일 후에는 전부 게이트 너머로 데려갈 거예요.”
“그, 그자가 지금 어디 있나? 왜 나한테 허락을 받지도 않고 그런 짓을 하는 거야!”
수현이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쾅!
나는 담담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들은 지금 이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습니다. 최대한 많은 주민을 데려가기 위해서요.”
“내 지금 당장 가보도록 하겠네. 혹시 나를 안내해 줄 수 있겠나?”
그가 불안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내가 대답을 망설였다.
탑 밖의 주민들을 왜 이곳으로 들여보내지 않는지, 그 이유를 아직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것만 알게 된다면 바뀐 스토리의 흐름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 텐데.
“아뇨.”
“뭐라고?”
“안내하지 않겠습니다.”
“…… 이 자식이.”
수현이 권총을 꺼내 나를 겨누었다. 정확하게 이마를 노리고 있었다.
철컥.
‘…… 투구로 가려진 내 얼굴에 맞을 거라 생각하나?’
나는 양팔을 좌우로 벌리고 그에게 말했다.
“쏘려면 쏘십시오. 다만 제가 죽는다면 당신은 그들을 찾지 못할 것입니다.”
“…… 아니. 네가 말하지 않더라도 내 귀염둥이 에이도스가 놈들을 찾아줄 거야.”
“찾더라도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겁니다. 그들은 이곳의 병기만큼 강력한 로봇과, 많은 수의 병사들을 데려왔으니까요.”
우리는 말없이 서로를 노려보았다. 그는 방아쇠를 슬쩍슬쩍 만지며 내 표정 변화를 관찰하였고,
나는 굳은 표정 그대로 그를 째려보았다.
“…… 김천재 군. 그럼 내가 어떻게 하면 되겠나?”
* * * * *
노효만이 난처하다는 표정으로 정우에게 말했다.
“안 됩니다. 이곳에 더는 주민들을 받을 수 없어요.”
“왜 안 되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이제는 앉을 자리도 없습니다.”
“그럼 공장 밖에 앉히면 되잖아?”
“그렇게 하면 문제가 생길 시 제가 책임을 져야 하니깐 말입니다.”
둘의 말다툼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한 명은 주민들을 더 받을 수 없다는 입장이고, 또 다른 한 명은 어떻게 해서라도 주민들을 받으려 했다.
“그럼 여기 있는 사람들을 우선 게이트를 통해 보내고 와. 그렇게 하면 계속해서 주민들을 받을 수 있잖아?”
“이동 간에 거인을 마주치면 손실이 큽니다. 그리고 저희는 이곳의 주민을 구출하러 온 것이 아니라 게이트 정찰 차 왔습니다.”
“하-. 이 새끼 말이 안 통하네. 사람들을 한 번 보내고 다시 와서 정찰하면 되잖아?”
“그건 김준철 소령님께서 저희에게 내린 작전의 한도 내에서 벗어납니다.”
NPC다운 대사다.
둘의 대화를 듣던 조영기가 공장 밖으로 나왔다. 그리곤 김연희를 불러 속삭였다.
“연희야, 잠깐 거래 창 열어봐라.”
“거래 창?”
“그래. 잠깐 내 돈 좀 전부 들고 있어. 저 중에 혹시 도둑 클래스를 가진 자가 있을까 봐.”
김연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 알았어. 근데 도둑으로 의심 가는 사람이 있는 거야?”
“있으니깐 네게 맡기겠지?”
“하긴.”
[‘조영기’ 플레이어가 모든 제니를 ‘김연희’ 플레이어에게 양도합니다.]
제니를 전부 건넨 조영기는 메모지 한 장을 곱게 접더니 자신의 주머니에 넣었다.
“산책 좀 하고 올 테니 공장 밖으로 나오지 말고 있어.”
“아, 알았다고요. 근데 이런 곳에서 산책을 해?”
“답답해서.”
“밖은 덥고 공기가 안 좋아서 더 답답할 텐데?”
“…… 몸 말고 머리가 답답해서. 금방 다녀올 테니까 일 저지르지 말고 있어.”
* * * * *
수현과의 협상을 마친 나는 이곳에서 제일 좋은 방에 머물게 되었다.
그의 방에서 한 층 밑에 있는 100층, 고급 호텔의 펜트하우스같이 굉장히 화려한 곳이었다.
고급 호화용품들과 부자들이 쓸 것 같은 잡다한 도구들이 많았다.
제일 좋은 것은 널찍한 침대.
나는 그곳에 앉아 창밖을 쳐다보았다.
‘…… 여기 말고는 불빛이 없구나.’
캄캄하다.
내가 생각한 시티 뷰하고는 전혀 달랐다.
물론 멸망한 땅에서 제대로 된 풍경을 기대하기는 힘들지만, 이 정도인줄은 몰랐다.
“후우.”
나는 담배를 한 개비 꺼내어 물었다. 불을 붙이자 초인종 소리와 함께 수현이 찾아왔다.
“잠시 이야기 좀 할 수 있겠나?”
“…… 예.”
그가 양주 한 병과 얼음 바구니를 들고 오더니, 식탁에 앉았다.
털썩.
“한 잔 하겠나?”
“아뇨.”
“허허…. 좋은 술인데 말이야.”
나는 창가에 서서 담배 연기를 뿜으며 그에게 물었다.
“왜 오셨죠?”
“까칠하게 굴지 말게나. 자네가 원하는 대로 해주기로 하지 않았나?”
“……”
수현이 눈치를 보며 내 표정을 읽었다. 나는 포커페이스라 가늠할 수 없을 텐데도 말이다.
“김천재 군. 오해가 있을 것 같아서 말하는 건데, 내가 이곳의 주민들로부터 걷은 돈은 전부 방위비로 사용하고 있네.”
얼토당토않은 말이었다.
“쓸 곳이 어디에 있어서요? 탑 안에 전부 가둬두고 돈을….”
머리에 망치를 맞은 듯 번쩍였다.
왜 지금까지 그 부분을 생각하지 않았던 것일까?
그는 멸망한 도시에서 돈을 어디에 쓰려고, 큰 금액을 받으며 탑을 운영하고 있었던 걸까.
그것도 탑 밖과 탑 안에 구분을 두면서 말이다.
“음? 자네가 놀라는 표정은 처음 보는구먼.”
“…… 아닙니다. 갑자기 배가 아파서요.”
“배가?! 어디 아픈 거 아닌가? 약을 좀 가져다줄까?”
나는 손사래를 쳤다.
“아닙니다.”
“허허….”
수현이 양주를 얼음 잔에 따르더니 조금씩 마셨다.
조금씩 이번 라운드의 흐름이 보이기 시작했다.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자 나는 그를 없애고 싶어졌다.
더 이상 필요가 없을 것 같으니까.
“……”
내가 째려보자 그가 살기를 느낀 듯 몸을 움츠렸다.
“왜 그런 표정으로 나를 보는 거지?”
“…… 총독님. 한 가지만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말해보게나. 어차피 자네와의 오해를 풀고 싶어서 온 것이니 말이야.”
나는 다 피운 담배꽁초를 쓰레기통에 던졌다. 하얀 담배 연기가 방안을 가득 채웠다.
“주민들을 게이트 밖으로 내보내려 하지 않는 이유. 제가 알 수 있겠습니까?”
“…… 그 대답은 아까도 했지만-”
“아뇨, 진짜 이유를 말하는 겁니다.”
“진짜 이유라니?”
끝까지 시치미를 뗄 생각이구나.
나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이 문제에 관하여 더 이상 대답해주지 않는다면 대화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 아닙니다.”
“도통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군.”
삐빅.
-안녕하십니까! 컨트롤 타워의 귀염둥이 AI, 에이도스의 안내 방송 시간입니다.
방안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익숙한 목소리다.
자주 듣고, 이야기해본 음성.
-오늘 날씨는 매우 더움! 어제도 더움! 내일도 더움! 그다음 날도 더움!
쓸데없는 말을 하는 것까지 저 목소리의 주인과 같았다.
-죄송합니다. 제가 많이 흥분했지요? 사실 오늘의 방송을 킨 이유는 단 한 가지. 거인들의 출몰 빈도가 높아져서입니다.
수현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 래. 서! 거인들이 많이 나타난 만큼 그에 사용된 병기들이 많아졌으니.
‘…… 설마 이 새끼들.’
-거주비를 30%씩 더 높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모두 안전하고 행복한 밤 되세요!
삐빅.
방송이 끊어졌다.
나는 의자에 앉아있는 수현을 내려 보았다.
“돈이 없는 자는 탑에서 나가게 되는 것입니까?”
“그렇지.”
“그럼 빈자리는요?”
“돈이 있는 자가 들어오겠지.”
“밖에 있는 자들도 돈이 없다면요?”
“…… 그럼 들어오지 못하지 않겠나?”
돈이 없으면 죽는다.
이곳에 들어오려면 돈을 벌어야 하고, 그 돈을 벌려면 몬스터를 사냥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들은 거인을 사냥할 수는 없으니 돈을 벌기 위해….
아니, 빼앗기 위해
서로를 죽여야 한다.
‘…… 생각보다 어렵네.’
[현재 생존 주민 수: 278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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