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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화

내 머리 위에서 황금빛이 한 바퀴 돌았다.

사냥터에 두고 온 가웨인과 박규환이 열심히 사냥하고 있나 보다.

* * * * *

●상태창

이름: 김천재

직업: 네크로맨서

레벨: 70

생명력: 840/840

마나: 283/283

체력: 57+16 공격: 60+17

방어: 49+14 속도: 57+16

▶리바이브 (마나 소모: 3)

-시전자의 레벨 수만큼 죽은 자를 소생하여 언데드로 만듭니다.

▶스켈레톤 소환 (마나 소모: 2)

-시전자의 레벨 수만큼 뼈를 매개체로 해골 전사를 소환.

▶아이언 메이든 (저주)

(마나 소모: 적 1인당 10)

-저주에 걸린 적들의 몸에 투명한 가시들이 달라붙습니다.

[특성 개방]

▷영혼의 고리(능력치 공유)

-리더 소환수 1인에게 영혼의 고리를 걸어 능력치를 공유합니다.

[(플레이어+소환 수)/2=보정치]

* * * * *

상태창을 보는 내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낫과 영혼의 고리 버프를 포함하니 모든 능력치가 육십 이상이었다.

물리적으로 싸우더라도.

동급 능력치의 전투계열 직업보다는 약하겠지만, 그 이하인 자들은 쉽게 제압할 수 있을 정도의 파워다.

과거, 내가 추구하는 네크로맨서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소환수에게만 의존하는 일반적인 네크로맨서가 아니라, 직접적인 전투에서도 적에게 밀리지 않는 강자 말이다.

“…… 그래서. 내가 저 동상과 똑같은 여는 자다, 이 말이지?”

주민 중 젊은 청년이 대답해왔다.

[‘젊은 청년’은 당신에게 높은 신뢰도를 가집니다.]

“예.”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이놈들이 어째서 나를 보고 여는 자라고 하는지 모르겠지만, 맞는 말이라서 아니라고 할 수도 없었다.

[현재 생존 주민 수: 278명]

단숨에 백 명 이상의 주민이 늘어났다. 삼백 명 이상 살리라고 했으니 큰일이 생기지만 않는다면 충분한 수가 완성되었다.

지금 내 앞에 서 있는 거대한 동상. 이들이 ‘여는 자’라고 부르는 인물인데….

나와는 전혀 다르게 생겼다.

그리고 이 게임, 멸망의 땅을 오래 한 플레이어라면 모두 알고 있는 자의 모습이었다.

‘게임 내에서 최강의 전사라고 불리던 사람. 전설의 버커서, 유오성이다.’

왜 저 사람의 동상이 여기 있는 걸까?

게임 내에서 여는 자에 제일 가까웠던 사람은 나인데 말이야.

‘설마….’

의문이 여러 가지 생겼다.

나는 젊은 청년에게 물었다.

“아까 말한 동화 이야기는 뭐지?”

“아! 제가 말한 동화는…. 이곳의 전래동화입니다. 어른들이 하는 말을 듣지 않으면 괴물들이 나타나서 사람을 잡아먹고, ‘여는 자’라는 영웅이 나타나 도시를 구원한다는….”

녀석이 말한 동화는 이번 라운드의 스토리와 동일했다.

여는 자가 거인을 잡고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다.

다만 그 동화 속 주인공을 나라고 선택한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분명 이곳에는 두 그룹이 있다.

나와,

조영기.

‘…… 얼굴만 보면 내가 주인공이기는 하지.’

한 명은 악당의 상이니깐.

“그래서. 여는 자가 너희를 구원할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이 말인가?”

“……예.”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언제 올지도 모르는 구원자를 기다리는 그들의 행동이 한심했기 때문이다.

“너희는 어디에 있다가 지금 나타난 거지?”

“죄송합니다.”

“아니, 뭐라고 하려는 게 아니라 이렇게 변한 도시에서 어떻게 살았는지를 물어보는 거야.”

“어떻게 살았는지….”

주민들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말하기를 꺼리는 것 같았다.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왜 아무도 대답이 없어? 뭐 범죄라도 저지른 거야?”

“아, 아닙니다! 그게 아니라. 저희가 살아온 방식이 창피해서….”

나는 상대방이 말하기 싫어한다면 되묻지 않는다. 예의를 떠나서 이야기에 질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달랐다.

스토리가 어떻게 변했는지 알아야 하므로, 다시 물었다.

“괜찮으니까 말해봐.”

“……”

“말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냥 떠나도록 하지. 그럼 여는 자고 뭐고 없는 거야.”

청년이 마지못한 얼굴로 대답했다.

“저희는…. 지하에 살았습니다.”

“지하?”

“예. 하수구요.”

내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게 뭐가 창피해? 거인들을 피해 지하로 간 거 아니야?”

“그렇기도 하고….”

청년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다른 주민에게 다시 물어보아도 지하에서 살았다는 이야기 외에는 하지 않았다.

매크로인가.

대화를 마친 나는 청년에게 다시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지?”

“…… 여는 자님을 따라가면 안 되겠습니까?”

“나를 따라온다고?”

“예!”

그의 질문에 주민들이 반색했다.

나는 데려갈 생각도 없는데 말이다.

“안 돼. 위험해.”

“여기 남아도 위험한 건 마찬가지입니다!”

“위험도가 달라. 방금 만난 괴물들을 계속해서 상대해야 하는데, 괜찮겠어?”

“그럼요.”

“그럼요? 근데 왜 방금은 거인 잡을 때 구경만 했어?”

“……”

이곳 주민들의 생명력 게이지는 빨간색에 아주 짧고 가늘었다.

방어력은 그렇다고 치고 체력이 너무 낮아 전투에는 쓸 수 없는 상태.

괜히 데려가서 사망자를 내는 것보다는 이곳에 남겨두는 것이 좋은 선택이었다.

내가 정한 스토리 흐름은 주민들을 생존시키는 것이니깐.

“됐고, 안전한 곳에 숨어서 기다리도록 해. 저- 쪽에 있는 공장에 가면 우리를 따라온 군인들이 있을 거야.”

“군인들…. 은 믿지 않습니다! 제발 부탁드리겠습니다. 저희를 데리고 가주세요.”

청년이 너무 강경하게 대답해왔다. 앞선 스토리 때문에 군인들을 믿지 않는다는 것은 이해되지만, 노효만의 부대는 그들과 전혀 다른데 내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았다.

나는 청년의 어깨를 붙잡으며 말을 이었다.

“안 된다고 했잖아. 미안하지만 나한테는 너희를 지켜줄 여유 따위는 없어.”

“……”

“그리고 나는 영웅이 아니야. 그저 이곳에 볼일이 있어서 온 거지.”

청년이 고개를 떨구었다.

암울해 보이는 표정을 지었다.

“볼일이라는 게 무엇인가요?”

나는 도시 중앙에 높이 솟구쳐 오른 탑을 쳐다보았다.

“그건 네가 알 필요 없고. 나는 탑으로 향한다.”

“탑….”

“허튼소리 하지 말고. 죽기 싫으면 내가 말한 공장으로 향하도록 해.”

“…… ”

쿠웅-!

멀지 않은 곳에서 또 다른 거인의 발걸음이 들렸다.

비홀더보다 더욱 큰 진동을 가진 놈이다.

땅이 흔들리자 주민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그중 몇은 내가 거인을 잡아줄 것이라 믿고 있었고, 몇은 도망가야 한다는 의견을 내었다.

내게 말을 걸어온 청년이 불안한 눈빛으로 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보았다.

“또…. 녀석이….”

“어이, 전부 죽기 전에 내 말대로 해. 조영기!”

조영기가 나를 보았다.

“왜?”

“이 사람들 데리고 전부 공장으로 피신해있어.”

“너는?”

“나는 탑을 수색하고 올 테니깐.”

“…… 보수는-”

“없어 이 새끼야! 같이 이벤트 깨는 건데 무슨 보수야.”

조영기가 멋쩍은 듯 웃었다.

“알았다.”

“그리고 사람들을 전부 대피시킨 후에는…. 알지?”

“…… 알았다.”

* * * * *

주민들을 지하수로로 대피시킨 우리는 메카니아의 중앙으로 이동했다.

101층에 달하는 기계 탑.

우리는 그 앞에 서서 컨트롤 타워의 위력을 보았다.

우리가 다 같이 힘을 모아 잡은 거인보다 더욱 큰 생명체가 탑을 향해 걸어갔다.

높이만 보더라도 4층 빌라 정도는 되어 보이는데, 놈이 맥을 못 추리고 무릎을 꿇었다.

“…… 굉장한데.”

탑 근처에 다가서자 고압의 전류가 흐르고, 이어서 날아오는 미사일 터렛의 공격이 놈을 초토화했다.

급소를 노린 것도 아닌데 놈의 생명력이 순식간에 깎여 내려갔다.

정우가 나지막이 물었다.

“정말 혼자서 괜찮겠어?”

“…… 어. 내가 탑 안에 들어가면 너는 숨어있는 주민들을 찾아서 공장으로 보내.”

“알았어. 그럼 조심해라.”

“어어.”

콰광!

거인의 생명력이 끝나는 것을 본 나는 탑 앞을 향해 걸어갔다.

터벅. 터벅. 터벅. 터벅.

거리가 가까워지자 탑의 보초병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흰 슈트를 입은 자였다.

“멈춰, 움직이면 쏜다.”

나는 두 손을 들어 공격 의사가 없음을 나타냈다.

탑의 입구를 지키는 보초 병중 한 명이 내 앞으로 다가와 물었다.

“인간인가?”

“예.”

“어디서 왔지? 처음 보는 복장인데 말이야.”

“…… 게이트 너머에서 왔습니다.”

내 대답에 보초병이 깜짝 놀랐다.

“게이트 너머?!”

“예.”

“게이트 너머 어디서 왔다는 거지?”

“대한민국, 폐허가 된 마을에서 왔습니다.”

“대한민국…. 어디인지 모르겠지만 잠시 기다려라.”

“예.”

보초병이 돌아갔다.

그는 엘리베이터같이 생긴 기계 안으로 들어가 어딘가로 연락을 했다.

창문을 통해 보니 유선으로 통화를 하는 것 같은데.

‘무선은 막힌 것인가.’

통화를 끝낸 보초병이 종이와 펜을 가지고 오더니 내게 물었다.

“입장료는 만 제니. 들어오도록 하겠나?”

“입장료…. 입장만 하는데 만 제니라는 건가요?”

“그렇다.”

비싸다.

겨우 입장만 하는 것인데 만 제니나 받다니.

“…… 들어갈게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들어가지 않으면 이벤트를 진행할 수도 없으니 말이다.

가뜩이나 조영기에게 부탁의 보수를 주느라 거지가 되었는데.

“후우-.”

[남은 제니: 1,200 ]

거지가 되어버렸다.

일곱 번째 라운드에서 제니를 쓸 곳이 많은데 이렇게 될 줄이야.

‘…… 상납을 한 번 받아야겠네.’

금액을 지불하자 보초병이 나를 탑 안으로 안내했다. 그의 목에 걸린 카드 키를 입구 앞에 가져다 대자 두터워 보이는 쇠문이 양옆으로 열렸다.

끼이이이익.

탑의 안쪽이 보였다.

무슨 전대물 만화의 박사가 이상한 기계를 만들 것 같은 연구실 모습이었다.

머리 위에서 계속 ‘삐리리리’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어릴 적 자전거 벨을 누르면 나오는 그런 소리 말이다.

탑 안의 구조는 누가 보아도 한 번에 외울 수 있을 정도로 간단했다.

길게 늘어진 복도에 양옆으로 방이 지그재그로 있으니 말이다.

보초병의 안내를 따라 걷는 동안 호기심에 열려있는 방을 슬쩍 보았다.

싸구려 여관의 1인실처럼 80년대식 구조였다.

TV 하나에 이불 그리고 화장실.

얼마를 주고 저기서 머무는지 모르겠지만 괴상한 그림이 그려져 있는 액자에 형광등이 켜있었다.

“저기요.”

“왜?”

“이쪽 방은 얼마지요?”

“…… 1층은 1박에 천오백 제니다.”

이거 미친 새끼 아닌가?

얼마나 남겨 먹으려고 저런 방을 천오백 제니나 받는가.

딱 봐도 한 층에 백 개 정도의 방이 있는 것 같은데.

100층이 넘는 탑에서 이런 짓을 한다고?

나도 모르게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보초병이 내 모습을 보더니 아니꼬운 듯 표정을 구겼다.

“뭐야? 시비 거는 거야?”

“아, 아닙니다.”

나는 그의 시선을 회피했다.

보초병이 입으로 ‘쓰읍’하고 눈썹을 찡그리더니 다시 걷기 시작했다.

띵- 동.

은색의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문이 열리자 안내원이 서 있었다.

아니, 안내 로봇이 있었다.

“몇 층으로 안내해드릴까요?”

보초병이 대답했다.

“101층, 총독님의 방으로 안내해라.”

“알겠습니다.”

문이 닫혔다.

고속 엘리베이터인지 움직이기 시작하자 속이 울렁거렸다. 층수가 적혀 있는 번호판 위에 빠르게 올라가는 숫자가 보였다.

1, 2, 3, 34, 57, 89, 101.

딩- 동.

순식간에 도착했다.

문이 열리자 에어컨을 틀어 놓았는지 차가운 공기가 밀려 들어왔다.

사우나 같은 바깥하고는 전혀 다른 곳이었다.

보초병이 내 등을 떠밀었다.

“들어가라, 그리고 경고 하나 하도록 하지. 죽기 싫다면 총독께 무례를 범하지 말도록 해라.”

“……”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보초병의 눈을 바라보고 있을 뿐.

내가 멍하니 서 있자 방의 안쪽에서 걸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허허-. 어서 오시게나.”

보초병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깊게 숙였다.

“초, 총독님! 말씀드린 외부인을 데리고 왔습니다.”

나는 그가 인사하는 방향을 보았다.

‘…… 이놈이구나.’

흰색으로 된 베레모에 군복을 입은 안대 남성이 있었다.

히틀러 같은 콧수염이 돋보이는 자였다.

“안녕하신가! 나는 이곳, 메카니아의 총독인 김수현이라고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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