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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화

[메카니아에 첫 방문을 환영합니다.]

[오염된 공기로 인해 호흡이 힘들어집니다.]

[플레이어의 이동 속도가 <보통>에서 <느림>으로 변동됩니다.]

꼬마의 안내를 따라 노효만의 부대와 내 그룹이 메카니아의 도로를 따라 걸었다.

용암처럼 붉은 하늘이 도시를 태워내듯 강한 열기를 뿜었다.

초토화된 도시가 불타고 있었다.

후우-.

떨어지는 하얀 가루들이 콧속으로 들어와 매캐한 냄새를 내었다.

슈트를 입고 있는 군인들과는 다르게 우리는 숨을 쉬는 것마저 고역이었다.

나는 미리 챙겨온 손수건을 꺼내었다.

“마정우.”

“어?”

“이거로 입 가려.”

“손수건? 어디서 났냐?”

“잡화점에서 몇 개 사놨었어. PC로 할 때 이곳에서 숨쉬기 힘들다는 멘트가 생각나서.”

“…… 기억력도 좋다야.”

정우가 쓴 미소로 손수건을 건네어 받았다.

총 다섯 장.

나, 정우, 유소라, 마이클 그리고 한 장이 남았다.

“…… 조영기, 김연희. 손수건이 한 장밖에 남지 않았는데 둘 중 누가 할래?”

조영기가 머리 위로 손을 들었다.

뒤늦게 손을 들려던 김연희가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

그녀가 탄식을 내뱉었다.

“그럼 먼저 손을 든 조영기에게 주도록 하지.”

나는 조영기에게 손수건을 건네어 주었다.

사실 김연희가 받는 쪽이 더 좋은 그림이 나올 것 같기는 한데, 먼저 손을 든 것은 조영기니 어쩔 수 없었다.

“고맙다, 김천재.”

“남는 거 준 건데 뭐.”

“손수건만큼의 금액은 앞선 계약에서 변제 하도록 하지.”

“예예. 그렇게 하시던가요.”

부우웅-

갑자기 바람이 불어왔다. 하얀 가루와 함께 매캐한 냄새가 짙게 날아왔다.

우리 그룹원들은 전부 손수건을 사용해 입과 코를 막았다.

김연희가 콜록거리며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렸다.

콜록- 콜록-

“……”

조영기가 그녀의 모습을 보더니, 이빨 사이로 바람 새는 소리를 내었다.

-칫.

이어, 그는 수통을 꺼내 물로 손수건을 적시더니, 콜록거리는 김연희에게 건네어 주었다.

“이걸 입하고 코에 가져다 대고 있어.”

“…… 내가 써도 돼?”

조영기는 손수건을 던지듯 그녀의 품에 주었다.

“줄 때 써라.”

멸망의 땅 최고의 오타쿠이자 자신만을 생각하는 에고이스트 차카니, 아니 조영기가 손수건을 양보한다는 말인가?

‘…… 별일이 다 있네.’

숨쉬기가 한결 나아진 나는 앞장서서 우리를 안내하는 꼬마를 불렀다.

“꼬마야, 아직 멀었냐.”

꼬마 아이가 해맑게 웃으며 대답했다.

“거의 다 왔어요. 그리고 저는 꼬마가 아니라 김, 승, 현. 김승현이에요.”

“…… 알았다. 승현아, 얼마나 더 걸어야 하지?”

“저- 기 앞에 무너지지 않은 건물 보이죠? 탑 같이 길게 솟아오른 건물이요.”

나는 도시 중심에 있는 탑을 보았다.

메카니아의 상징이자 도시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는 기계 탑.

[메카니아 컨트롤 타워]

딱 보아도 백 층 이상의 탑이었다.

벽면에는 거인들이 다가오지 못하도록 전류가 흐르고 있었고, 층마다 미사일 터렛이 밖을 조준했다.

과거, 메카닉들이 모였던 곳이라 그런지 모든 기기들이 잘 정비되어 있었다.

새로운 기계들이 탄생하고, 고쳐지고, 없어지고.

계속해서 반복했겠지.

나는 탑을 유심히 보며 승현이에게 대답했다.

“보인다.”

“저 탑 앞에 공장이에요. 거기에 사람들이 모여 있어요.”

“공장? 탑이 아니라?”

“네. 저희는…. 탑에 못 들어가요.”

“뭐? 왜?”

“거긴 벌써 사람들이 꽉 차 있는데다가 부자들만이 갈 수 있거든요.”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부자들만이 간다고?”

“맞아요, 돈이 없으면 입장이 되지 않으니까요.”

“…… 탑에 입장하는데 돈을 받아?”

“그럼요! 저 탑은 각종 병기가 지키고 있어 거인들이 못 다가가거든요. 메카닉들이 그 병기들을 유지하는 돈을 받아요.”

기가 찼다.

그저 최후의 보루로 알고 있던 컨트롤 타워가 놀이공원처럼 돈을 받고 사람들을 입장시킨다니.

사람의 목숨보다 돈이라는 건가.

“…… 알았다. 우선 이동하자.”

* * * * *

김승현이 우리를 컨트롤 타워에서 멀지 않은 빈 공장 앞으로 데려갔다.

공장의 천장은 곳곳이 무너져 있는데다가 벽에는 큰 구멍이 나 있었다.

심지어 쇠붙이로 보이는 모든 물건이 녹슬어 황색으로 변해 있었다.

“…… 여기에 사람이 살고 있다고?”

“그럼요.”

김승현이 먼저 공장 안으로 들어갔다.

뒤따라 들어가 보니 커다란 기계를 조립하는 곳 같았다.

마치 자동차 조립 공장처럼 말이다.

기계들은 전부 가동한 지 한참 된 건지 먼지가 두텁게 쌓이고 거미줄이 처져 있었다.

“여긴 뭘 만드는 공장이냐?”

“어…. 아버지 말로는 군인들이 사용할 병기를 만들었다고 들었어요.”

“병기?”

“네. 정확한 건 모르겠고요.”

“…… 그래.”

노효만이 공장 밖에 메카 X를 대기시키더니 보병과 함께 공장 안으로 들어왔다.

이어 주변을 둘러보며 꼬마에게 물었다.

“여기 어디에 주민들이 있다는 거지?”

“기다리세요. 제가 불러올게요.”

김승현이 공장 안으로 달려 들어가더니 두 손을 머리 위로 흔들며 소리쳤다.

“다들 나오세요! 군인들이 왔습니다! 다들 나오시라고요!”

김승현의 외침을 들은 주민들이 한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무엇이 그리 두려운지, 두 발을 덜덜 떨고 있었다.

슬글슬금 걸어 나오는 삐쩍 마른 주민들. 노인부터 어린아이까지, 얼마나 못 먹었는지 뼈가 보이기 일보 직전이었다.

[메카니아의 주민을 발견했습니다.]

[현재 생존 주민 수: 189명]

한 방에 백 명 이상의 생존 주민을 찾았다.

이렇게 쉽게 이벤트를 진행하게 될 줄이야.

삼백 명을 생존시키는 게 스토리 임무였으니 벌써 반절 이상을 끝낸 것 아닌가?

나는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그중 턱수염을 길게 기른 노인이 김승현에게 말했다.

“승현아!”

“아부지!”

김승현이 달려가 그의 품에 안겼다.

“너 어디 갔다 왔니? 다들 네 걱정을 얼마나 했는지 알아?! 욘석아!”

“죄…. 죄송해요. 너무 배가 고파서 혹시 박스라도 있나 보러 다녀왔어요.”

“아빠가 박스 먹지 말라고 말했잖아. 왜 그런 걸 먹어….”

“…… 배가 고프니까요.”

노효만이 일부로 기침을 해 소리를 내었다.

큼큼.

김승현의 아버지가 우리를 슬쩍 보더니 노효만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아, 안녕하십니까. 승현이 아버지 됩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도깨비 부대 작전 과장 노효만이라고 합니다.”

“도깨비…. 부대?”

김승현이 중간에 서서 말을 이었다.

“아버지! 제가 군인들을 데려왔어요. 저희 도시 사람들은 아니지만, 갑자기 저- 건너편에 게이트가 생겨서 다른 곳으로부터 도움을 요청했어요!”

“…… 다른 곳으로부터?”

“네. 거기에는 사람들이 엄청 많고 식량도 많았어요. 봐요, 봐! 저도 이 빵을 한가득 먹고 왔다니까요?”

김승현이 주머니에서 빵 쪼가리를 꺼내어 아버지에게 보여 주었다.

“허…. 정말이구나.”

주민들이 술렁였다.

의심이라기보다는 환희였다.

멸망한 도시에 군인들이 찾아왔다는 소식은 희망의 씨앗이 자라나는 것과 같으니 말이다.

반대쪽도 멸망한 도시지만.

김승현의 아버지가 노효만에게 물었다.

“저희를 도와주러 오신 겁니까?”

“…… 솔직하게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예.”

“아닙니다. 저희는 이곳을 수색하러 왔을 뿐, 주민들을 도와주러 온 것은 아닙니다.”

“……”

“다만 저희 쪽 게이트로 넘어올 수 있도록 도와드릴 수는 있습니다. 선택은 여러분들이 하시는 것이지만요.”

갑자기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다, 당연히 가야 하는 거 아니야? 여기 있으면 굶어 죽던지, 거인한테 잡혀 먹일 거라고.

-세진아, 윤수야. 빨리 가서 짐 챙겨라. 군인 아저씨들 따라서 안전한 곳으로 가도록 하자.

-다들 뭐해?! 빨리 짐 싸!

노효만이 주민들을 보더니 천천히 숫자를 세어보았다.

하나, 둘, 셋…….

“잠깐, 모두 게이트 너머로 가실 생각이십니까?”

김승현의 아버지가 대답했다.

“당연한 거 아닙니까? 안전한 곳으로 가야-”

“죄송하지만 저희가 있는 곳도 안전하지는 않습니다. 이곳의 거인이 얼마나 위험한 존재인지 모르겠지만, 저희가 온 곳에도 괴물들은 득실거리거든요.”

“허….”

환희에 찬 주민들의 얼굴에 어둠이 드리웠다. 짐을 챙기던 사람들이 갑자기 행동을 멈추고 노효만을 바라보았다.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주다니, 굉장한 언변술이다.

나는 절대로 하지 못할 설계적 대화.

노효만이 김승현의 아버지에게 물었다.

“그래도 저희를 따라오시겠습니까?”

“…… 가겠습니다. 그곳이 아무리 위험하다고 하더라도, 여기보다는 살기 좋겠지요.”

김승현의 아버지가 아들이 들고 있는 빵을 슬쩍 보더니, 말을 이었다.

“식량도 있고….”

대화가 끝나자 주민들이 다시 짐을 싸기 시작했다.

노효만이 그들을 보며 소리쳤다.

“게이트 너머로 가는 것은 삼 일 후! 그때까지 모두 이동할 준비를 끝내 주시기 바랍니다!”

주민들이 동시에 대답했다.

-예!

군인들이 공장 안으로 들어와 진형을 꾸리기 시작했다. 쇠봉을 이어 바리케이드를 치고 그 위에 철선을 감아 공장 밖을 네모나게 감싸 안았다.

끼이익. 쿵! 끼이익. 쿵!

메카 X가 완성된 철책 안에서 상체를 좌우로 돌리며 주위를 경계하였다.

십 분이 채 되지 않아 방어적인 요새가 만들어졌다.

김승현의 아버지가 로봇을 보며 노효만에게 물었다.

“저건 뭡니까?”

“저희 기동 병기입니다.”

“아…. 전투에 쓰이는 물건이군요.”

“그렇습니다. 저놈 한 기가 좀비 백 마리를 상대할 정도입니다. 하하하!”

“…… 좀비?”

“예, 좀비요.”

“좀비가 뭡니까?”

노효만이 놀란 표정으로 그에게 물었다.

“좀비를 모르십니까?”

“처음 들어봅니다.”

“…… 여기에는 아직 바이러스가 퍼지지 않은 건가.”

김승현의 아버지가 메카 X를 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좀비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저 기동 병기가 강하다는 거지요?”

“그럼요. 거인인가 뭔가가 나오더라도 전부 물리칠 수 있을 겁니다.”

노효만의 자신감 있는 말투에 모두가 신뢰하는 눈빛을 보냈다.

‘…… 이제 여기에는 우리가 필요 없겠네.’

나는 담뱃불을 붙이며 정우에게 말했다.

치직. 치지직.

쓰읍.

푸후-

“정우야.”

“왜?”

“탑으로 가자.”

“…… 여기 있는 사람들은?”

“노효만이랑 같이 알아서 게이트로 넘어가겠지.”

정우가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리를 뜨려 공장 밖으로 향하자 노효만이 소리쳤다.

“김천재 씨!”

“…… 왜요?”

“어디 가십니까?”

나는 공장 밖을 가리켰다.

“이 근처에 뭐가 있는지 보러요.”

“잠시 기다리시지요. 이곳에서 어떻게 움직일지 아직 안 정해졌습니다.”

아까부터 거슬렸는데 계속해서 명령조로 말한다.

군대에서나 상급자지 사회에서는 일개 아저씨인 주제에 내게 이런 대우를 한단 말인가?

그것도 나보다 약한 자가 말이다.

내가 굳은 얼굴로 대답했다.

“…… 죄송한데 저는 노효만 씨 부하가 아닙니다. 작전권도 따로 받았고요.”

노효만이 석연찮은 표정으로 얼굴을 찌푸렸다. 흔히 말하는 똥 씹은 표정이다.

“저희와 함께하지 않겠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런 말 한 적 없는데요? 주위를 둘러본다고 했잖아요.”

“그게 그 말 아닙니까? 상황이 파악되기 전까지 단독행동은 금물입니다.”

이 녀석, 내가 따로 움직이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

그가 왜 이런 행동을 보이는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놈이 좋지 않은 꿍꿍이를 가지고 있다는 것.

“저기요, 왜 자꾸 명령조로 말하는지 모.르.겠.는.데. 효만 씨는 제게 명령을 내릴 권한이 없어요. 저는 군인이 아닙니다.”

“……”

“제가 김준철 소령과 약속한 것은 정보 공유일 뿐. 당신의 밑에서 일하기로 한 게 아닙니다. 아시겠습니까?”

노효만이 나를 째려보기만 할 뿐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한 걸음 다가가 다시 물었다.

“아시겠냐고요.”

모두의 시선이 우리에게 집중되었다.

주민과 군인들 말이다.

“…… 알겠습니다. 그럼 마음대로 해보시죠.”

“예, 마음대로 하겠습니다. 무전기는 꺼놓을 테니 필요하면 직접 찾아오도록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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