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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화

유소라가 리 커우러나와 함께 하수구에 빠진 이야기를 해주었다.

극적으로 무리에서 이탈하게 된 그들은 길을 헤매다 열려있는 맨홀에 빠졌고,

바보같이 빠진 그곳이 경성 전체의 지하와 연결된 하수도관이었다고 한다.

“…… 그 안에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말이죠?”

“네. 진짜 사람인지 게임 속 사람인지 모르겠지만요.”

“NPC인지 플레이언지 모르겠다는 말이고요?”

“아, 예. 맞아요. 그 말이에요.”

하수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

‘흐음….’

하수구에 관한 설명을 마친 유소라가 정우와 마이클의 저주를 치료해 주었다.

레벨이 제법 오른 덕에 이 정도 저주는 손쉽게 처리할 수 있었다.

닥터피쉬 정도 크기의 영혼 물고기도 이제는 제법 커져 검지만 했다.

저주에서 벗어난 정우가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 보더니 내게 물었다.

“후우……. 김천재, 이제 복수하러 가야지?”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복수보다 먼저 확인해야 할 게 있어.”

“…… 뭔데?”

“한조가 말한 이 게임에서 나가는 방법. 진짜인지 아닌지 한 번 확인해 봐야지.”

* * * * *

경성에서의 볼일을 마친 나는 ‘폐허가 된 마을’로 갈 채비를 했다.

리 커우러나가 굳건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저희는 이곳에 남아 상황을 살피도록 하겠습니다.”

자신감 넘치는 대사와 등 뒤로 넘실거리는 투명한 오라.

이제 막 초수 딱지를 떼고 배운 오라지만 그래도 믿음직스러웠다.

“우리가 여섯 번째 라운드를 진행하는 동안 많이 성장했네.”

리 커우러나와 그의 일당들이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전원 건달이라고 불러도 될 만큼 험악한 얼굴에 해적 같은 두건을 쓰고 있지만, 의리 하나는 뛰어난 놈들이었다.

물론 내 입장에서 보자면 말이다.

“그럼-. 다녀오십시오. 이곳은 저희가 목숨을 걸고 지키도록 하겠습니다.”

“괜찮겠어?”

“그럼요.”

“…… 우선 지금 쓸 제니를 넉넉하게 주고 갈 테니깐 밥 잘 챙겨먹고.”

“알겠습니다. 존경합니다, 김천재 행님.”

나는 리 커우러나에게 만 제니와 함께 경성에 남은 잔당 처리 임무를 주었다.

어차피 배신자 중에는 강한 놈이 없을 테니 리 커우러나의 일당만으로도 처리가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녀석들을 처리해 얻은 금액으로 조영기에게 약속한 대금을 치러야 하기도 하니 일거양득이다.

“그럼 나중에 다시 보자.”

“알겠습니다!”

리 커우러나의 대머리 두건 부대가 전원 마을 앞으로 나와 늘어섰다.

-몸조심하십시오!

나는 검지와 중지를 가볍게 흔들어 인사했다.

쿠르릉!

차에 시동이 걸렸다.

먼저 차에 탑승한 정우가 운전석에 앉아 있었다.

“이번에는 내가 운전한다.”

“…… 오케이.”

조영기의 그룹 덕분에 차량이 두 대여서 불카누스도 같이 올 수 있었다.

우리는 저렴한 지프 차량을 구입했는데, 조영기는 의외로 값이 꽤 나가는 픽업트럭을 구했었다.

돈이 될 만한 것을 전부 실어 오려고 했다나 뭐라나.

‘…… 시끄러워 죽겠네.’

-쉬벌! 쉬버얼!! 쉬버어얼!!!

나는 창문을 열고 소리쳤다.

“좀 닥쳐, 불카누스!”

픽업트럭 짐칸에 누워있는 불카누스가 씩씩거리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이 x벌! 내가 올림포스 산에 있을 때만 하더라도 이런 대우는 받지 않았는데. 개 쌍놈들이 나를 짐칸에 두고 말이야!”

“술 먹었냐?”

“술을 줘야 먹지! 빌어먹을 주인 새끼.”

“…… 너 그냥 소환 취소해줄까?”

소환 취소라는 말에 불카누스가 투덜거리던 입을 다물었다.

사라지고 싶지 않으면 그래야지, 암-. 그렇고말고.

정우가 끌끌 거리며 내게 말했다.

“저 녀석은 신경 쓰지 말고 한숨 자. 도착하면 바로 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깐.”

“…… 너무 피곤해서 그런지 잠이 안 오네.”

“그럼 눈이라도 감고 있어.”

“하아….”

나는 시트에 기대어 창밖을 바라보았다. 덜컹거리는 차 밖으로 바이러스에 감염된 동물들이 보였다.

녀석들을 데려갈까? 잠깐 고민이 되었지만 차를 멈추지는 않았다.

더 강력한 놈들이 마을 근처에 있을 테니깐.

밀림을 가로질러 사막으로 진입하자 모래 폭풍이 우리를 감싸 안았다.

[‘페르아 사막’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황토색 바람이 강하게 불어와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끼익. 끼이익.

와이퍼가 버벅거린다.

“으…. 김천재. 바람이 더 세진 것 같은데?”

“여섯 번째 라운드를 마치고 와서 그런가 보네.”

“상급 던전으로 가는 길은 열렸으려나?”

“…… 아직. 상급 던전으로 가는 길은 바람이 걷혀야 열려.”

우우우웅-!

강풍이 차의 좌측면을 때렸다.

차가 달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크게 흔들렸다.

또다시 불카누스의 방언이 터졌다.

“으어어어어- 이 망할 새끼들아! 너희들만 좋은 자리에 타고. 나는 뒤지라고 이런 자리를 주는 거냐? 입이 있으면 대답을 해봐. 이 썩을 년들아!”

우리는 못 들은 척 계속 달렸다.

욕설이 점점 심해지자 뒷자리에 탄 유소라가 질린 얼굴로 귀를 틀어막았다.

마이클이 보다 못했는지 불카누스의 뒤통수에 총을 겨누었다.

철컥.

“불카누스 셧 업.”

불카누스가 총구를 보더니 다시 조용해졌다.

얼마 안 있어 도착한 폐허가 된 마을의 입구. 김준철의 병사들이 마중 나와 우리를 반겨 주었다.

-단! 결!

차를 멈추자 도깨비 마스크를 쓴 자들이 양옆으로 달려와 우리의 짐을 받았다.

-수고하셨습니다.

우리가 오는 것은 어떻게 알고 기다렸냐고?

이 게임을 해본 자라면 당연히 알고 있는 장면이다.

시스템상 여섯 번째 라운드를 마치고 온 플레이어를 정부에서 반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깐.

김준철이 가면을 벗으며 환한 표정을 지었다.

“드디어 오셨군요.”

나는 가볍게 목례를 한 후 그에게 말했다.

“반겨주시니 고맙네요.”

“고맙긴요. 영웅에 대한 존경을 뜻하는 것뿐이지요.”

불카누스가 픽업트럭에서 내리자 모두가 감탄사를 내뱉었다.

-와! 저 사람 진짜 못생겼다.

-쉿, 조용히 해. 사람이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불카누스가 화난 개처럼 크르릉 거리며 군인들을 째려보았다.

-저 괴물. 김천재 님 옆에 있으니깐 더 못생겨 보이지 않냐?

-눈 마주치지 마…. 바이러스 감염자인 것 같아.

“우어어어어!”

불카누스가 양팔을 머리 위로 들고 포효했다.

[‘도깨비 부대’의 병사들이 불카누스에게서 위협을 느낍니다.]

[*경고: 소환수의 행동이 주인에게도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나는 불카누스의 정강이를 걷어 찬 후 그의 귀에 속삭였다.

“닥치고 있어. 다시 한 번 소리치면 음소거 모드야.”

“으…. 저 새끼들이 나를 무시했다고.”

“그냥 넘겨. 신이라는 놈이 겨우 인간의 말을 왜 이렇게 신경 써?”

불카누스가 이를 악물고 김준철의 부하들을 쳐다보았다.

김준철의 부하들과는 높은 친밀도를 유지해야 하기에 이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불카누스에게 뒤로 물러날 것을 명령한 후 김준철에게 물었다.

“마을은 괜찮은가요?”

“그럼요. 이곳은 다른 어느 곳보다 아- 주 평화롭답니다.”

대답으로 보아 중간 스토리가 바뀌지는 않았겠군.

안전하게 마을 안으로 들어온 우리는 세 번째 라운드에서 클리어했던 장유의 저택으로 이동했다.

여섯 번째 라운드를 마치고 온 플레이어에게 시스템이 마련해준 임시 거처.

[저택에 입장하시겠습니까?]

[현재 저택에 머무는 그룹의 수 ‘4’.]

한국 플레이어 중 여섯 번째 라운드를 클리어한 플레이어가 네 그룹이나 되는구나.

나는 망설임 없이 저택의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림과 동시에 우리 그룹원을 제외한 모든 플레이어가 눈에서 사라졌다.

[저택에 입장합니다.]

갑자기 동그란 결계가 쳐지며 저택 전체가 우리만의 공간으로 바뀌었다.

1 저택에 1그룹의 인원이 허용되니, 다른 플레이어에게 방해를 받지 않는 장소.

진짜 아지트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을 얻게 되었다.

유소라가 방방 뛰며 기뻐했다.

“와! 여기 정말 저희가 머물 곳 맞아요?”

“예. 장유의 저택하고는 구조가 조금 다르니 잘 확인해 보도록 하고, 각자 자기가 원하는 방으로 찾아 들어가세요.”

“네!”

“소라 씨는 한 번 더 씻고 나오시고요. 옷도 한 번 빠셔야 할 것 같아요.”

“아…. 네….”

마이클이 저택의 2층을 보며 내게 물었다.

“저는 2층으로 갈게요우.”

“2층은 아직 입장이 불가능해. 저긴 열 번째 라운드 이후에.”

“오우, 오케이. 이 층은 열 번째 라운드 이후에.”

좌측에 두 개의 방.

우측에 두 개의 방.

서로 마주 보는 구조의 집이었다.

나와 정우는 좌측으로 이동했고, 유소라와 마이클은 우측으로 이동했다.

딱히 방을 고르는 요령은 없었다. 그저 자신과 가까이 있는 방으로 향했을 뿐.

방에 도착한 나는 갑주를 벗어 던지고 침대에 누웠다.

편하다.

새하얗고 보송보송한 이불과 푹신한 베개가 기다리고 있는 침대.

이 게임에 들어오기 전에는 항상 누리던 것들이라 이렇게 좋은 것인지 몰랐다.

“후우….”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방 안에 있는 거울을 보았다. 얼마 안 되는 사이에 벌써 얼굴이 늙어 보였다. 잔주름이 생기고 피부가 탔다.

“…… 나름대로 멋진데?”

남성미라고 해야 하나?

그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터프함이 얼굴에서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매일 집에서 게임만 처하던 놈이 계속해서 야외에서 활동했으니, 그럴 만도 하지.

나는 샤워를 하며 화장실에 있는 면도기로 수염을 깎았다. 정리하지 못해 늘어진 덥수룩한 머리도 가위로 조금씩 잘라내고.

정리하는 김에 갑주도 가져와 따뜻한 물로 전부 닦아냈다.

긴장했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갑주에 베인 역겨운 냄새들이 코를 찔렀다.

‘…… 샴푸를 좀 풀어 볼까.’

거품을 내어 겉을 닦아내자 정체 모를 액체들과 적의 피가 배수구를 통해 내려갔다.

* * * * *

샤워를 마치고 나왔다.

침대 위에 낯익은 아이가 앉아 있었다.

투명한 몸에 곰 인형을 껴안고 있는 아이.

“…… 스펙터.”

[시스템 메시지]

[‘폐허가 된 마을’ 내에 스펙터가 돌아다니기 시작합니다.]

시스템 메시지가 너무 늦게 나타난 것 아닌가? 녀석을 마주친 후에 나타났으니 말이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놈의 옆으로 다가갔다.

“가라, 여기에는 네가 찾는 사람이 없어.”

“…… 아저씨.”

“아저씨 아니다. 형이라고 불러.”

“그럼 형.”

“…… 왜?”

스펙터가 입꼬리를 올려 씨익 웃었다. 소름이 끼쳤다. 이렇게까지 기묘한 표정을 보이는 아이는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마치 공포 영화 속 귀신이 달라붙은 아이를 보는 것 같았다.

눈은 그대로인데 입만 웃고 있었다.

“형, 그 누나는 어디에 있어요?”

녀석이 말하는 누나가 누군지 알지만 모른척했다.

“누나?”

“네. 그 눈이 엄청 큰 누나요.”

“글쎄다. 나는 네가 누구를 말하는지 모르겠네.”

“…… 유소라. 유! 소! 라! 플레이어요.”

나는 스펙터를 무시하고 거울 앞으로 다가가 머리를 정리했다.

“…… 너, 그 곰 뭐냐?”

이제까지 아무런 의심조차 하지 않았던 스펙터의 곰 인형.

‘멸망의 땅’을 PC 버전으로 할 때 그저 아무것도 아닌 묘사로 생각했던 스펙터의 물건이 나를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거울에 비친 놈의 곰 인형이, 유소라의 머리로 보였기 때문이다.

스펙터가 허공을 날아 내 옆으로 오더니 곰 인형을 보여주었다.

“이거요?”

“……”

실제로 보면 그냥 곰 인형이다. 거울로 보았을 때만 유소라의 머리로 보일 뿐.

나는 곰 인형을 만져 보았다. 그저 보드라운 털을 가진 인형이 확실했다.

이어 다시 거울을 확인했다.

유소라의 머리가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스펙터, 너 유소라를 찾는 이유가 뭐냐?”

“…… 그 누나랑 잠깐 이야기 좀 하고 싶어서요.”

“그럼 직접 유소라한테 갈 것이지 왜 나한테 온 거지?”

“어디 있는지 몰라서요.”

“…… 거짓말.”

부웅-

내 주먹이 허공을 갈랐다.

스펙터의 몸이 연기처럼 반으로 갈라지며 잠시 나뉘었다가, 금세 다시 붙어 보였다.

“혀, 형! 뭐 하는 거예요!”

“너는 유소라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잖아. 내게 온 진짜 이유를 말하도록 해.”

“……”

“싫으면 말고. 대화 끝. 이제 나한테 말 걸지 마라.”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갑주를 하나씩 입었다. 부츠를 신고 갑옷을 입은 후 장갑을 끼자.

스펙터가 울음소리를 내었다.

“으아아앙!”

“……”

“형 미워! 나는 형 친구한테 이걸 가져다주러 온 건데!”

“……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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