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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화

김리아가 늑대의 모습으로 변신하더니 유소라의 냄새를 추격했다.

킁킁-.

조영기가 그녀에게 물었다.

“찾을 수 있겠어?”

“네. 소라 씨는 특이한 로션을 쓰셔서 냄새가 기억나요.”

“로션? 그 여자한테서 로션 냄새가 났었나?”

“그렇게 여자한테 관심이 없어서야….”

김리아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다시 땅을 훑었다.

개처럼 킁킁거리며 경성을 돌아다니던 그녀가 경매장 앞 맨홀 뚜껑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뭐지?”

“왜.”

“이 안에서 소라 씨의 냄새가 나요.”

“…… 너 믿어도 되냐?”

“당연하죠!”

조영기가 무릎을 쪼그려 앉더니 맨홀 뚜껑 안을 들여다보았다.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보이면 귀신이게요. 이렇게 캄캄한데 어떻게 봐요.”

“…… 김연희!”

나무 뒤에 숨어있던 김연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혹시나 적에게서 추격자가 붙었을까 봐 거리를 두고 이동하고 있었다.

“왜?”

“나는 몸이 커서 이 안으로 들어갈 수 없어. 네가 김리아를 따라가서 유소라 좀 찾아봐야겠다.”

“…… 여기 냄새나고 더러운 곳 아니야?”

“그럴걸.”

조영기가 맨홀 뚜껑 구멍에 손가락을 넣더니 온 힘을 다해서 들어냈다.

끼익. 끼이이익!

쿵.

맨홀 뚜껑을 연 조영기가 그 안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조심해. 전투가 벌어질 것 같으면 바로 도망가고.”

“알았어. 근데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 김리아, 불의 정령 사용할 줄 알지?”

김리아가 피에로처럼 입을 환하게 찢었다.

“그럼요! 혹시 라이터 있으면 잠시 불 좀 켜주실 수 있어요?”

“그래. 여기 있다.”

조영기가 라이터를 켰다.

그녀가 낮게 깔린 불꽃 위로 손을 휘휘 젓더니 조용히 주문을 외웠다.

자그마한 불이 조금씩 커지더니 나비 모양이 되어 그녀의 옆으로 날아들었다.

“하급이지만 이 정도면 손전등 역할로는 충분할 거예요.”

“아직 레벨이 낮은가보구나.”

“…… 그래도 삼십이에요.”

“이번 일이 끝나면 레벨 업 좀 해라.”

“아…. 예….”

김리아가 작게 독백했다.

-꼰대 같으니라고.

조영기가 얼굴을 찌푸렸다.

“뭐라고?”

“아, 아니에요. 그럼 저희는 가볼 테니 이곳을 잘 지켜주세요.”

“알았다. 다시 말하지만, 위험할 것 같으면 그냥 도망가.”

“…… 네.”

불꽃 나비가 어둠 속으로 날아 들어가 지하를 비추었다.

물이 조금씩 흐르고 있는 지하배수로. 역한 냄새가 났지만 김연희와 김리아는 코를 부여 막고 안으로 내려갔다.

다행히 계단이 있어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크으…. 코가 썩겠네.”

불평불만인 김연희와는 다르게 김리아는 계속해서 킁킁거리며 주변의 냄새를 감지했다.

“연희 씨, 저기로 가면 될 것 같아요.”

“…… 후각이 뛰어나다면서 여기 냄새는 괜찮아?”

“괜찮을 것 같아요?”

“아니.”

김리아가 억지웃음을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빨리 이동하도록 하죠.”

둘은 배수로를 따라 계속해서 걸었다. 얼마 가지 않아 안쪽에서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동굴처럼 울리듯 들려오는 남성과 여성의 목소리.

김리아가 김연희의 입술에 검지를 올려놓더니 ‘쉿!’하며 바람 새는 소리를 내었다.

“……”

김연희가 벽에 붙어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언제까지 여기 있어야 하는 거죠?

-천재 형님이 저희를 구출하러 오실 겁니다. 그때까지만 좀 참아보세요.

-저희도 나가서 싸워요! 숨어만 있으면 되겠어요?

-안 됩니다. 마정우 형님이 특별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천재 형님이 오실 때까지는 소라 씨를 안전하게 지키라는….

대화를 들은 김연희가 김리아의 손가락을 치우더니 크게 소리쳤다.

“야! 유소라!”

야!! 야!!! 야!!!!

그녀의 목소리가 메아리치듯 전방으로 날아갔다.

잠시 정적이 흐르더니 반대편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누구세요?”

우렁찬 김연희의 목소리와는 다르게 겁먹은 듯한 여성의 대답.

김연희와 김리아는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향해 달려갔다.

“우리가 왔어! 김천재를 데리고 왔다고!”

* * * * *

나는 고대 유물로 생각되는 나무판자를 들고 ‘경성 박물관’으로 이동했다.

앞서 척준경의 시체를 찾으러 왔던 곳이지만, 실패해서 엄청난 실망감을 가지고 갔던 곳.

‘뭐….’

레벨에 따라 이곳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달라진다.

그러기에 초수부터 고수까지 계속해서 방문하는 마을이기도 하고.

주목적은 경매지만….

나는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 그리스 신화 코너 쪽으로 향했다. 물론 내가 데려갈 수 있는 소환수는 몇 없었다.

대부분 레벨 제한이 구십 이상인 데다가 효율이 좋은 자들이 몇 없기 때문이다.

“…… 헤라클레스.”

그리스 신화 관을 걷던 나는 입구에서 감탄을 금치 못했다.

헤비급 보디빌더만큼 커다란 근육질의 남성이 멋진 포즈로 서 있었다.

머리에 뒤집어쓴 ‘네메아의 사자 가죽’과 왼손에 쥐어진 올리브 나무 방망이.

정말 탐나는 놈이다.

‘레벨이 안 되니 오늘은 포기하도록 하자….’

나는 헤라클레스 동상을 넘어 안으로 들어갔다. 걷는 내내 내가 데려갈 수 있는 매개체는 하나도 없었다.

전부 신급 또는 그에 준하는 것들이라 손을 대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리바이브.”

#

[소환 가능 목록: 없음]

#

역시 앞쪽에 있는 자들은 내 능력으로 확인조차 되지 않는다.

나는 놈들을 과감히 포기하고 안쪽을 향해 속도를 높였다.

박물관 끝에서 나를 기다린 동상은 올림포스의 12신 중 제일 못생겼다는 인물.

‘…… 진짜 추남이네.’

감자를 돌로 찍어서 만든 것 같은 얼굴이다.

열두 명의 올림포스 신 중 제일 레벨 제한이 낮은 동상.

제조 외에는 아무런 능력도 없는데다가 레벨 제한이 높아 인구수가 아까워 데려가지 않는다는 바로 그 소환 재료.

[대장장이의 신 불카누스]

동상을 보는 내내 한숨이 나왔다. 너저분한 몸매에 하체를 대충 가린 저 천 조각.

살려놓으면 뭔가를 덜렁거리며 다가올 것 같아 기분이 나빴다.

‘…… 남에게 줄 바에는 데려가는 게 낫겠지.’

나중에 버리더라도 말이다.

나는 동상에 손을 올려놓고 조용히 속삭였다.

“리바이브.”

[‘신화’등급의 소환수 발견]

[인구수 20에 달하는 ‘신화’등급의 소환수입니다.]

[‘불카누스’를 영입하시겠습니까?]

“…… 그래.”

우지끈.

쿠궁!

빛이 번쩍이더니 불카누스의 동상이 조금씩 깨지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몸을 감싸고 있던 돌들이 떨어져 내렸다.

그 안으로 못생긴 남성의 얼굴이 보였다.

거인족이라고 부르기는 힘들지만 그래도 인간보다는 훨씬 큰 덩치의 사나이.

그가 찌뿌듯한지 기지개를 켜며 하품했다.

“으아아아함-”

※ 신규 영입: 불카누스(추남)

레벨: 65

생명력: 100/100

마나: 100/100

체력: 10 공격: 20

방어: 99 속도: 5

▶정열의 망치 (마나 소모: 100)

-만 번에 달하는 쇠 질을 단 한 방으로 끝냅니다.

▶절름발이의 기적 (마나 소모: 100)

-재료만 있다면 그 어떤 아이템이라도 제작할 수 있습니다.

불카누스가 자신의 옆에 있는 망치를 집어 들어 어깨에 걸치더니 내게 말했다.

“자네가 나를 살려냈는가?”

“그래.”

불카누스가 무릎을 꿇으며 넙죽 엎드렸다.

“고맙네!!!”

고맙다, 감사하다, 내 은인이다, 신보다 낫다.

등 녀석이 압도적 감사의 표시를 연신 내뱉었다.

계속해서 고개를 꾸벅이던 놈이 환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 많은 올림포스의 신 중에서 나를 부르다니, 현명한 선택이군.”

“……”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그래도 녀석의 기분이 좋아졌다면 상관없지 뭐.

나는 보상으로 얻은 고대 유물 나무판자를 그에게 던져주었다.

불카누스가 빙글빙글 돌며 날아오는 나무판자를 집더니 내게 물었다.

“이게 뭔가?”

“뭔지는 이제부터 네가 알아보도록 해.”

“…… 신목인 것 같은데. 이 세계의 것이 아니군.”

신목(神木).

대게 이 게임에서 말하는 신목이란, 네 개로 나뉘어 있는 대륙에 하나씩 있는 세계수를 뜻하는 말이 아니던가.

불카누스가 세계수라고 말하지 않고 신목이라 돌려 말한 이유가 무엇일까?

“…… 신목이 확실해?”

“확실하다. 이 나무를 내게 준 이유는 뭐지?”

“확인해보려고. 정말 고대 유물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의 물건인가 해서.”

“고대 유물? 허허….”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웃어?”

“고대 유물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도 신선한 물건이 아닌가. 아직 생기가 남아있는데 말이야.”

“어? 오래된 물건이 아니야?”

“그래. 길어 봤자 만 년 정도밖에 안 된 것 같아.”

만 년밖에 안 됐다.

만 년 전이면 석기시대인데 이 녀석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만 년 전이면 고대 유물이 맞는 거 아니야?”

“…… 자네 기준에서는 그렇겠지.”

“그럼 내 기준으로 말하지 당신 기준으로 말해?”

“그건-”

“아 됐어. 닥치고 그 나무 들고 따라와.”

나도 모르게 까칠하게 말하였다.

불카누스, 몇 마디 안 나누어 봤는데 왜 이렇게 짜증이 나는 것일까.

대화 상대가 너무 못 생겨서 그런 건가?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되는데 나도 모르게 감정 조절이 되지 않는 것 같다.

[‘대장장이의 신 불카누스’가 당신을 고깝게 봅니다.]

‘그러든지 말든지….’

* * * * *

박물관에서의 볼일을 마친 나는 숙소로 돌아왔다.

천장에 머리가 닿을 정도로 키가 컸던 불카누스는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나무를 깎아냈다.

키이이익-. 키이이익-.

내가 온 힘을 다해서 내려쳐도 끄떡하지 않았던 나무판자가 불카누스의 손톱에 갈려 나가고 있다.

“…… 불카누스. 제작 기간은 얼마나 걸리지?”

불카누스가 나무판자와 용의 송곳니를 번갈아 만져보며 기간을 가늠 잡았다.

“이 틀. 나무 깎는데 하루, 그 뼈를 제련하는데 하루. 조립은 금방 하니깐 시간으로 안 치고.”

“이틀이라…. 확실해?”

“확실하다. 다만 제련하는 동안에는 이 재료들을 사용하지 못 해.”

“…… 알았다.”

앞으로 이틀 동안은 용의 송곳니를 사용하지 못 한다.

그 말인즉슨 스켈레톤 조합과 능력치 상향 보정을 받지 못한다는 것.

그룹원 전부 능력치가 40% 하향된다.

‘…… 위험한데.’

지금까지 스토리를 쉽게 풀어나갈 수 있었던 이유는 전부 용의 송곳니 덕분.

나 또한 능력치가 떨어진다면 맨몸으로 몬스터를 상대하는 일은 할 수 없게 된다.

‘한시가 바쁜데 말이야.’

마정우가 침대에서 일어나더니 스트레칭을 했다.

그의 목과 허리에서 우드득 하는 소리가 났다.

“천재야, 소라 씨는 아직 소식이 없고?”

“어. 마을 안에서 헤어졌다고 했으니 금방 찾을 수 있을 거야-”

쾅!

조영기가 방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그의 뒤를 따라 김연희와 김리아.

그리고 유소라가 뒤따라 들어왔다.

전원 초췌해 보이는 얼굴과 몸에서는 구린내가 진동했다.

유소라가 소리쳤다.

“처, 천재 씨!”

나는 코를 부여잡고 그녀에게 말했다.

“소라 씨. 어떻게 된 거예요?”

“그게….”

유소라가 정우를 슬쩍 보더니 말을 이었다.

“네 번째 라운드에서 어떻게 하다 보니…. 정우 씨와 떨어져서…. 리 커우러나 씨랑 하수구에….”

하수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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