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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화

아지트라고 해서 뭔가 특별한 곳일 줄 알았는데.

그냥 동네 여관이었다.

그것도 경성 중앙에 있는 아주 허름한 나무판자 집.

나는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의자에 기대어 마정우에게 물었다.

“몸은 좀 괜찮냐?”

마정우가 침대에서 상체를 일으켜 세우며 대답했다.

“죽다 살아났다.”

벗어 놓은 황금 갑주의 상태를 보니, 얼마나 많은 공격을 받았는지 알 수 있었다.

크고 작은 흠집들이 셀 수도 없을 만큼 등을 긁어 놓았다.

웬만해서는 전투 중 적에게 등을 잡히지 않는 놈인데, 이렇게까지 당하다니.

“…… 몇 명이랑 싸운 거냐.”

“백 명도 넘더라. 스벌.”

“그렇게 많았다고? 이량훈 녀석 레벨이 적어서 소환수도 많지 않을 텐데.”

“우리가 네 번째 라운드에서 구출해줬던 사람들. 대부분 이량훈 쪽에 붙었더라.”

“…… 잉? 무슨 개소리야. 그 사람들이 왜 이량훈한테 붙어?”

노예같이 살던 자들을 구출해 줬더니 우리를 배신했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일본놈들의 손아귀에서 해방해준 지가 얼마나 됐다고 그런 일을 하겠는가.

마정우가 헛웃음을 내뱉었다.

“그러니깐. 그 쓰레기 같은 새끼들이 구해줬더니 뒤통수를 치네.”

“…… 전부 바이러스에 감염된 상태는 아니었지?”

“어.”

“혹시 협박을 받고 움직였나.”

“그럴 수도 있지. 근데…. 협박을 받았더라도 우리를 공격하는 건 좀 아니지 않냐?”

“당연하지.”

팔짱을 끼고 벽에 기대어 있던 조영기가 창문을 닫았다.

쿵.

‘멸망의 땅’ 시스템상 창문을 닫으면 채팅이 밖으로 세어나가지 않기에 한 행동이다.

채팅이 세어나가지 않는다는 말은 대화도 이곳에 갇힌다는 뜻이니깐.

“김천재, 우선 네 친구의 저주를 풀 방법부터 찾도록 해.”

“저주?”

정우가 옷을 걷어 어깨를 보여주었다. 보랏빛으로 변한 피부와 팽창한 핏줄, 앞서 내가 이량훈에게 당한 저주와 같았다.

“제길, 그 새끼 또 이 저주를 사용한 건가.”

“이것만 당하지 않았어도 놈들에게 밀리지 않는 건데. 생각보다 저주의 수준이 높은 것 같더라.”

“나도 소라 씨가 아니었으면 죽을 뻔…. 어? 소라 씨는 어디 있냐?”

나는 방안을 둘러보았다.

유소라가 보이지 않는다.

“소라 씨는 리 커우러나 녀석이 목숨 걸고 탈출시켰어.”

“리 커우러나가?”

“어. ‘정복자의 무덤’에서 빠져나올 때 녀석들하고 크게 싸웠거든. 그 틈에 먼저-.”

쿨럭.

마정우가 피를 토했다.

나는 손수건을 그에게 건네어 준 후 조영기에게 물었다.

“소라 씨 못 봤어?”

“어, 찾도록 할까?”

“…… 부탁하지. 소라 씨가 없으면 이 저주는 풀 수 없어.”

“네 능력으로는 불가능한가?”

“나는 네크로맨서지 힐러가 아니야.”

조영기가 손가락으로 마이클을 가리켰다.

“저놈은 사제잖아?”

“…… 사제긴 한데 저주를 풀 수 있는 스킬은 배우지 않았어.”

“흐음….”

마이클이 멋쩍은 표정을 보였다.

“저도 저주 걸렸어요우.”

“너도? 어디?”

“보여드리기 좀 민망한데 보여드릴까요우?”

“상체야, 하체야 ”

“하체.”

나는 손사래를 쳤다.

“됐어.”

찰싹!

채찍질하는 소리가 들렸다.

-죽어! 죽어!! 죽어!!!

김리아의 외침이다.

피투성이의 한조가 괴로운 표정으로 신음을 내뱉었다.

김연희와 김리아가 그를 묶어두고 괴롭히고 있었다.

김연희의 암살자 전용 스킬, 그림자 묶기와 김리아의 드루이드 스킬인 넝쿨 채찍으로 계속해서 고문했다.

찰- 싹!

김리아가 가시넝쿨로 한조를 채찍질했다. 때릴 때마다 한조의 피부가 찢겨 나갔다. 근육이 단단하다고 피부까지 튼튼한 것은 아니니….

호러 영화에서나 볼법한 모습이 펼쳐졌다.

몸을 감싸고 있는 붕대가 전부 붉게 물들었다.

나는 그녀의 어깨를 툭툭 쳐 진정시켰다.

“잠깐만. 녀석에게 물어볼 게 있어.”

“…… 끝나면 알려주세요.”

김리아가 아쉬운 표정으로 뒤로 물러났다.

“한조. 정신 차려라.”

몸을 일으켜 세우지도 못할 정도로 힘이 빠졌나 보다. 생명력 게이지만 보더라도 바닥을 치고 있으니 사망하기 일보 직전이겠지.

놈이 바닥에 누워 비열한 웃음을 내뱉었다.

“크으-. 나를 죽여라.”

“…… 네게 제안을 하나 하고 싶은데 말이야.”

한조가 눈썹을 움찔거렸다.

“…… 제안?”

“그래, 제안. 목숨을 살려줄 테니 몇 가지 정보를 내놔라.”

녀석이 잠시 머뭇거렸다.

나는 마이클의 총을 가져와 녀석의 정수리에 겨누었다.

철컥.

“이건 그냥 총이 아니야, 천사의 은총이 장전되어 있지.”

“…… ”

“치유해주고 살려줄 테니. 유소라의 위치, 이량훈에 관한 정보 그리고.”

“…… 그리고?”

“네가 알고 있는 이 게임에서 나가는 방법. 이렇게 세 가지를 우리에게 공유해라.”

* * * * *

촤르륵.

김리아가 씁쓸한 표정으로 한조를 묶고 있는 넝쿨을 풀어 주었다.

놈이 옷장에 기대어 숨을 헉헉거렸다.

“됐나?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이게 전부다.”

“그래…. 그럼 약속대로 풀어주도록 하지.”

김리아가 날카롭게 소리쳤다.

“안 돼요! 천재 씨, 왜 저놈을 놔주는 거예요?!”

나는 담배를 꺼내어 물며 그녀에게 말했다.

“약속했으니깐.”

“약속? 아니! 저런 놈을 상대로 약속을 지킬 필요가 있어요?”

“……”

치직. 치지직.

쓰읍- 푸후.

하얀 연기가 내 얼굴을 가렸다.

한조가 흔들리는 다리로 겨우 일어나더니 눈치를 보았다.

“정말 가도 되는 건가?”

“그래. 마음 바뀌기 전에 빨리 꺼져.”

“……”

“삼십 초 주마. 그 안에 내 눈에서 사라지지 않으면 나도 어떻게 할지 몰라.”

조영기와 마정우가 말없이 그를 노려보았다.

김연희가 금방이라도 칼부림을 하려는 듯 단검의 손잡이를 쥐고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김천재, 나는 네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겠다.”

“이해하지 않아도 돼.”

“저 녀석은 지금 죽여놔야겠어.”

나는 손을 뻗어 그녀의 앞길을 막았다.

“안 돼, 방금 김리아에게도 말했지만 한조와 약속했다. 내 질문에 대답하면 살려주기로.”

김연희가 얼굴을 붉혔다.

“약속? 저 녀석이 말해준 정보. 전부 살기 위해 아무렇게나 지껄인 거짓이면?”

“전부 사실이다. 거짓말은 없었어.”

“그걸 어떻게 믿냐고! 됐어. 나는 녀석을 죽일 거니깐 그렇게 알아.”

김연희가 다시 움직이려 하자 조영기가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스톱.”

“…… 왜?”

“흥분하지 마라. 암살자라는 년이 이렇게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

“김연희, 이 일은 김천재 말대로 해. 우리는 보수만 받으면 이곳을 빠져나가도록 한다.”

김연희가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뭐? 아니 저 녀석이 어떤 놈인 줄-”

“안다. 나도 알고 있고 김천재도 알고 있어. 그리고 이곳에서 일어난 일의 모든 결정권은 녀석에게 있다.”

“……”

조영기가 닫아놨던 창문을 다시 열었다.

쿵.

빛이 새어 들어와 방안을 환하게 비추었다.

한조가 슬금슬금 창가로 걸어가더니 내게 말했다.

“나를 살려준 것을 후회하게 될 텐데.”

“그런 일은 없을 거야. 그리고 미리 경고하도록 하지. 다시는 이량훈과 손을 잡지 마라. 어떠한 방식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죽게 될 거야.”

“……”

“가라.”

탕!

나는 권총을 쏘았다.

마이클의 총에서 노란빛과 함께 은색의 탄환이 발사되었다.

총에 맞은 한조의 이마가 빛에 휘감기며 생명력 게이지가 올라갔다.

털썩.

한조는 그대로 창문 밖으로 몸을 떨어뜨렸다.

수 초 후 밖에서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쿵!

놈이 제대로 착지도 하지 못한 채 떨어졌다. 그래도 일본의 상위 랭커 답게 곧장 몸을 일으켜 세웠다.

나는 쓰러져있는 한조를 보며 담배를 태웠다.

‘후우…. 미끼 장착 완료.’

한조가 사라지자 김리아가 달려와 내게 따지듯 물었다.

“천재 씨!”

“고막 터지겠다야. 좀 작게 말해.”

“아니 저 사람은 대체 왜 살려준 거예요?”

“…… 미끼.”

“미끼?”

“그래, 미끼.”

나는 담배 연기를 천천히 내뱉으며 머리를 쓸어 넘겼다.

이어 창문을 닫은 후 모두에게 설명해 주었다.

앞으로 일어날 일들과 내가 준비한 작전.

그리고 한조는 곧 죽게 될 것을.

* * * * *

조영기와 김연희, 김리아가 유소라를 찾으러 나갔다.

그들이 유소라의 행방을 찾는 동안. 나는 정우 옆에 앉아 대화를 나누었다.

“소라 씨에 대해서는 좀 알아봤냐?”

“뭐…. 협곡에 있는 동안 조사를 좀 해봤는데. 아무래도 맞는 것 같아.”

“왜 그런 사람이 우리 빌라에 같이 살고 있던 거지?”

“글쎄. 잘은 모르겠지만 일반적인 플레이어가 아닌 건 확실해.”

“…… 우리를 테스트하려는 걸까?”

“게임에 대해서 모르는 척하는 걸 보니 그럴 확률이 제일 높지.”

유소라.

그녀의 정체가 조금씩 밝혀지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까지 정확하지 않았다.

이번 라운드가 끝나면 확실하게 알 수 있겠지만,

과연 그녀의 정체는 무엇일까.

“…… 김천재, 저 상자나 먼저 까봐라.”

“상자? 아 상자!”

미궁 게이트에서 얻은 상자.

나 혼자 모든 몬스터를 사냥하여 처치율 100%로 얻은 특별 보상이다.

끼이이이익.

상자를 열어 보았지만 텅 비어 있었다. 분명 레이더에는 고대 유물 표시가 되어 있는데 아무런 아이템도 없었다.

‘혹시 투명한 아이템인가?’

손을 넣고 휘저어 봐도 아무것도 없다.

“……”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뭐지?’

그냥 텅 빈 상자다.

“뭐해? 안에 뭐 들어있어?”

“…… 공기? 아니, 아무것도 안 들어있어.”

“아무것도 없다고?”

“어. 분명 내가 가진 레이더에는 고대 유물이라도 뜨는데….”

마정우가 아픈 몸을 일으켜 세우더니 내 옆으로 붙었다.

“정말로 비어 있네?”

“그렇다니깐.”

정우가 상자를 이리저리 뒤집어 보더니 내게 물었다.

“이게 특별 보상이라 했다고?”

“그래.”

“고대 유물이라고 표시되었고?”

“그렇다고.”

“…… 그럼 그거밖에 없네.”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뭔데.”

마정우가 책상 위에 올려놓은 금붙이 몇 개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황급 갑주를 만들고 남은 금붙이들.

“…… 설마?”

“맞는 거 같지?”

“마정우…. 너 이 새끼 천재구나.”

“뭐, 제작에 관한 지식은 내가 너보다 나으니깐.”

나는 상자를 들어 땅에 내리쳤다.

쾅!

콰직-.

역시.

상자를 연결해주는 쇠만 찌그러져 부러질 뿐, 나무는 아무런 상처도 없이 그대로였다.

나는 강도를 확인해보기 위해 용의 송곳니로 나무판자를 내리쳐 보았다.

쿵! 쿵!

흠집조차 나지 않았다.

표기명을 보아도 정체를 알 수가 없다.

[???: 오래된 제작 재료.]

“확실하네.”

“강도를 보니 드워프한테 제작을 맡기면 기가 막힌 물건이 나올 것 같은데.”

“드워프…. 한테 맡기는 건 이미 늦었고. 고대 유물급 재료로 아이템을 만들 수 있는 놈이 누가 있을까?”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고민에 빠졌다.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우리 둘 다 ‘멸망의 땅’에 존재하는 모든 제작 NPC를 알고 있으니.

“…… 불카누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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