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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화

조영기가 ‘정복자의 무덤’앞에 놓여 있는 픽업트럭 중 하나의 시동을 걸었다.

투두두두두-. 투두두두두-.

트럭이 술 취한 망아지처럼 힘없는 소리를 내었다. 계속해서 열쇠를 돌리자 꽉 막힌 구멍이 뚫리듯 펑! 소리와 함께 검은 연기가 터져 나왔다.

엔진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드르르르!

나는 조영기와 함께 앞좌석에 탔다.

김리아와 김연희가 뒷좌석에 탔다.

우리는 그대로 경성을 향해 출발했다.

“김천재, 그럼 출발한다.”

“잠깐만. 조영기, 너 운전 면허증은 있어?”

“당연한 거 아니냐.”

“…… 다행이네. 근데 너 1종이야, 2종이야? 이 차 수동인 것 같은데.”

“자동, 수동 전부 가능하니깐 걱정하지 마라. 나는 프로 라이센스 보유자다.”

프로라니 믿음직스럽기는 한데 처음 들어보는 자격증이다.

레이싱 선수에게만 지급되는 건가? 싶어 그에게 되물었다.

“프로 라이센스?”

“그래. 무지개 장갑이라고. 누구보다 빠르게 달릴 거니깐 손잡이 꽉 잡아라.”

“무지개 장갑? 아니 그게 뭔데. 자, 잠깐만!”

부릉!

조영기가 풀 액셀을 밟았다.

중력이 등 뒤에서 잡아당기듯 몸이 등받이에 딱 붙게 되었다.

조그마한 돌조각 하나에도 차가 덜컹거렸다. 김리아와 김연희가 비명을 질러댔다.

나는 두 손으로 손잡이를 잡고 조영기에게 소리쳤다.

“이 미, 미친 새끼야. 차 세워!”

조영기가 사악한 표정으로 기어를 움직였다. 능숙하게 조작하는 것으로 보아 운전은 확실하게 할 줄 아는 것 같은데.

왜 이렇게 난폭하게 운전하는 것일까.

조영기가 소리쳤다.

“곧 숲이다!”

파박!

나뭇가지를 부수며 숲속으로 들어갔다. 그 안으로 쌓여있는 시체들이 보였다. 내가 네 번째 라운드에 사용하려 잡아놓은 몬스터들이었다.

‘으으…. 조, 좋아. 저놈들이라도 데리고 가야겠다.’

“스켈레톤 소환.”

내 명령하에 스켈레톤 전사 수십

마리가 일어났다.

[소환 목록]

-Ⓛ박규환(군인) 1/1 : 대기 중

-가웨인(호랑이) 1/1 : 대기 중

-스켈레톤(전사) 40/40 : 대기 중

-스켈레톤(궁수) 20/20 : 대기 중

-스켈레톤(마법사) 3/3 : 대기 중

좋은 조합을 만들어 내기에는 마법사의 숫자가 턱없이 적었다.

이 녀석들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최상의 조합은….

내 머릿속에서 수십, 수백 개의 조합법이 퍼즐을 맞추듯 조립되었다.

머리가 번뜩였다.

최종적으로 이번 전투에 쓰일 조합이 떠올랐다.

전사 40, 궁수 20, 마법사 2.

총 62마리의 스켈레톤을 사용해서 만드는 2마리의 최종 병기.

‘…… 혹시 김리아가 배신자일 수 있으니 조합은 나중에 해야겠다.’

놈들이 차의 뒤를 따라 달려왔다. 절대로 쫓아올 수 없는 속도지만 열심히 달렸다.

어차피 소환수들은 내가 있는 곳의 위치를 알고 있으니 알아서 찾아오겠지.

* * * * *

망자의 숲을 넘어 다시 사막으로 돌아왔다. 트럭이 모래를 흩날리며 전속력으로 달렸다.

나는 전방을 주시하며 조영기에게 물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작전 같은 건 없어. 시간이 없으니 그냥 돌진해서 전부 밀어버린다.”

“몇 명이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는데?”

“어차피 경성에는 한국 소속의 군인들이 대기하고 있어. 한조도 마음대로 날뛰지 못할 거야.”

조영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 과연 그럴까? 한국인 네크로맨서가 한조와 손을 잡았다잖아. 그리고 적이 너보다 강하다면? 어떻게 할 건데.”

“그럴 리는 없을 거야. 놈은 아직 세 번째 라운드에서 벗어나지 못했어.”

“…… 김천재.”

“왜?”

“세 번째 라운드에서 벗어나지 않았다고 너보다 약하다는 편견은 버려.”

그의 말이 맞다.

사실 세 번째 라운드에서만 머물렀다고 하더라도, 나보다 강해지는 방법은 무궁무진했다.

시간이 엄청나게 오래 걸리겠지만.

하지만 동일한 시간을 두고 성장했을 때 당연히 앞서 나가는 쪽은 높은 라운드에 있는 플레이어.

나는 이량훈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 있다. 아마 지금의 내가 놈보다 강할 것이다.

‘아마….’

끼이이이익!

조영기가 차를 멈춰 세웠다.

경성에서 조금 떨어진 오아시스다.

“여기부터는 걸어가도록 하지. 차로 이동한다면 놈들이 눈치 채고 더욱 견고하게 움직일 거야.”

“…… 웬일로 네가 생각이란 것을 하면서 움직이지?”

“나는 원래 신중한 편이야. 너처럼 즉흥적으로 움직이지 않아.”

역시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더니.

내 치밀한 작전들이 차카니에게는 전부 즉흥적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듣고 싶은 대로 듣는 편이 녀석 입장에서도 마음이 편할 것이다.

“그럼 어차피 이렇게 된 김에 팀을 나눠서 움직이도록 하자.”

“…… 어떻게?”

“네가 김리아와 김연희를 데리고 후문으로 들어오도록 해. 나와 연관이 없는 것처럼 들어가서 내 친구들을 찾는 거지.”

“…… 너는?”

“나는 정면으로 들어가서 놈들을 상대한다. 적들의 눈을 내 쪽으로 돌리는 거지.”

“그동안 나는 네 그룹원을 찾고?”

나는 손가락을 튕겼다.

딱!

“빙고! 너도 이제 머리를 쓸 줄 아는구나.”

“후우-. 저번에도 말했지만 나는 랭커 플레이어였다고.”

그러세요.

“그럼 나는 스켈레톤 병력이 도착하는 대로 바로 진입하도록 할게. 너는 먼저 이동하도록 해.”

“…… 그렇다면 우리는 차를 가지고 가도록 하지. 그편이 더 의심을 받지 않을 것 같아.”

“알았어. 한조는 네 얼굴을 알고 있으니 망토를 쓰든지 가면을 쓰든지. 들키지 않도록 움직이고.”

“가면이라….”

조영기의 얼굴에 미소가 띠어졌다. 김리아와 김연희가 그를 보더니 얼굴을 찡그렸다.

건달 놈이 음흉한 표정을 지으니 그럴 만도 했다.

* * * * *

조영기가 먼저 떠났다.

나는 순서대로 도착하는 스켈레톤 병사들을 조합하여 두 마리의 고등 소환 수를 만들어 냈다.

이번 전투에서 핵심적인 능력을 발휘할 친구들.

※ 신규 영입: 스켈레톤 대장 (상급)

레벨: 64

생명력: 3200/3200

마나: 0/0

체력: 32 공격: 32

방어: 32 속도: 32

▶지휘관의 자긍심 (마나 소모: 0)

-전방 100m 안에 있는 모든 스켈레톤은 ‘스켈레톤 대장’의 명령에 복종합니다. (적군 포함.)

▶목구멍 포도청 (마나 소모: 0)

-소환주가 지목한 적을 상대로 강제 수사를 진행합니다. (강제 수사가 진행 중인 적은 움직임이 봉쇄됩니다.)

‘좋아…. 아주 좋아….’

조선시대 포도대장의 군복으로 보이는 의상에 뼈로 만들어진 방망이를 들고 있는 스켈레톤.

그들이 내 옆으로 붙었다.

[김천재 님의 스켈레톤 허용 인구수: 64/64]

조합 후에도 인구수는 그대로 이기에 더 이상의 스켈레톤을 소환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이 두 마리가 아주 큰 역할을 할 것이니 괜찮다.

터벅. 터벅. 터벅. 터벅.

가웨인이 도착했다.

헐떡거리고 있었다.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사막에서 쉴 틈 없이 달려왔으니 그럴 만도 했다.

“…… ”

가웨인의 뒤를 이어 박규환이 도착했다. 가면 속에서 거세게 몰아쉬는 숨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들의 숨이 돌아올 때까지 오아시스 앞에서 휴식을 취했다.

전투에 지장이 될 만한 일들은 전부 처리하고 이동하는 것이 나으니깐.

“…… ”

그룹 창을 보니 아직 사망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걸음을 서두르는 게 좋을 것 같다.

‘약속을 지킨다는 보장이 없으니 말이야.’

휴식을 마치자 두 마리의 스켈레톤 대장과 스켈레톤 마법사가 내 뒤로 붙었다.

우리는 천천히 사막을 걸어 경성을 향해 나아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막에 몇 가닥씩 풀이 생기더니 금세 밀림으로 바뀌었다.

며칠 전과는 다르게 근처에 동물이 보이지 않았다.

누가 사냥한 것인가?

이유는 모르겠지만 리바이브에 사용될 재료들이 보이지 않았다.

‘…… 어쩔 수 없지 뭐.’

경성 앞에 도착한 나는 거침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두 번째 방문이라 그런지 경비병들이 고개 숙여 인사를 할 뿐 신분증을 검사하지는 않았다.

-좋은 여행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끼이이이익-.

쿵!

성문이 열렸다.

안으로 들어가자 모든 이들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분명 NPC인 것 같은데 나를 경계하는 듯한 눈빛.

주위를 보니 NPC 사이사이에 한국 플레이어들이 있었다. 행색을 보아 이곳에 온 지 얼마 안 되어 보이는 자들.

그들이 나를 무시하듯 고개를 돌렸다.

“……”

나를 알아본 것인가.

아니면 그저 견제하기 싫어 시선을 피한 것인가.

둘 중 어느 쪽인지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경성이 바뀌었다.’

네 번째 라운드에서 한국이 승리한 덕분인지 경성 내에 있던 일본군이 전부 사라졌다.

길목을 지키고 있는 자들은 전부 도깨비 가면을 쓰고 있는 김준철의 군인들.

그들을 보니 그나마 안심이 되었다.

나를 도와줄 만한 조력자가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나저나 한조와 이량훈은 어디에 있는 걸까?’

나는 놈들을 추격하려 경성 내에 있는 플레이어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털보 아저씨가 눈동자를 좌측 끝으로 돌리며 대답했다.

“어, 그래. 그럼 나는 바빠서 먼저 가보도록 하지.”

“…… 잠깐만요. 왜 저를 피하시는 거죠?”

그가 당황스러워하며 손사래를 쳤다.

“피, 피하다니! 무슨 소리를 하는 겐가.”

“저랑 눈을 안 마주치시잖아요.”

“내가 공황증세가 있어서 사람 눈을 못 봐.”

“…… 정말이에요?”

“그래!”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렇군요. 그럼…. 눈을 안 마주칠 테니 뭐 좀 물어봐도 될까요?”

“응? 아니.”

“…… 예?”

“물어보면 안 된다고. 자네하고 이야기하다가 걸리면….”

나와 이야기를 하다가 걸리면?

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어떤 상황인지 대충 알게 되었다.

혹시 하는 생각으로 주변을 둘러보니 내 현상 수배서가 벽에 붙어있었다.

‘현상금 헌터들에게 나를 쫓게 할 생각이었나.’

나는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저었다.

“알겠습니다. 더 이상 묻지 않도록 하지요.”

김준철의 병력이 머물고 있는 곳에 내 현상 수배서를 붙여 놓다니.

흐음.

“그럼 나는 이만….”

그가 자리를 떠났다.

나는 멋쩍게 머리를 긁적인 후 사람들이 많은 광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녀석들의 목표가 나라면 분명 찾아올 테니까 말이다.

“…… 왔구나.”

한조다.

놈이 자신의 부하 백여 명 정도를 이끌고 나를 향해 걸어왔다. 이량훈과 함께 나타날 줄 알았더니 겨우 저놈 혼자 나를 상대로 덤빈단 말인가?

콧방귀가 절로 나왔다.

“…… 한조.”

“오랜만이군, 김천재.”

가까이서 보니 놈의 기운이 변한 것이 느껴졌다.

붕대 안으로 슬쩍 보이는 피부도 보라색에다가, 뿜어져 나오는 오라의 색상도 마치 몬스터처럼 날카롭게 치솟고 있었다.

“못 본 사이에 강해졌네?”

“강해졌지…. 금단의 힘을 사용해서 말이야.”

금단의 힘.

녀석 측 진영에서 무엇을 연구하는지와 놈의 피부색만으로도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플레이어에게 주입하는 X 바이러스.

Z 바이러스의 변형 형태인 개조 좀비와 같은 류의 힘이다.

역겨운 새끼. 인간으로 남는 것을 포기하고 결국 힘을 얻었다.

나는 용의 송곳니로 땅을 긁으며 말을 이었다.

“이량훈은 어디 있지?”

“어딘가에 있겠지.”

모른다는 말이군.

“다섯 번째 라운드는 잘 처리하셨고?”

“…… 그래, 전부 죽였다.”

전부 죽여?

내가 아는 한 네 번째 라운드에 그런 흐름은 없을 텐데.

“…… 나와 다른 스토리의 흐름으로 진행했나보네.”

“스토리가 어떻게 흘러가던지 무슨 상관인가? 너와 다시 만난 것이 중요하지.”

나는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 녀석에게 경고했다.

“한조…. 그 정도 힘으로는 내게 이기지 못해. 이번 한 번만 봐줄 테니 내 친구들 내놓고 꺼져.”

한조가 검을 빼 들었다.

스으으윽.

“길고 짧은 것은 대 보아야 아는 것. 여긴 멸망의 땅이다. 가지고 싶은 것이 있다면 힘으로 빼앗도록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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