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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화

가웨인과 박규환이 X 트롤 부대를 데리고 오크 요새를 향해 달렸다.

내가 모르는 오 년이라는 시간 동안 모두 성장했지만, 승패는 확실하게 정해져 있었다.

겨우 다섯 번째 라운드의 NPC들이 60레벨에 달하는 네크로맨서의 소환수를 어찌 막을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X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공격력이 1.5배 증가한 트롤들을 상대로 말이다.

-키에에에엑!!

내 트롤 부대가 기이한 소리를 내며 달려갔다.

곧 적군이 되어버린 드워프 정예병과 내 수하들이 충돌한다.

듀발이 소리쳤다.

“디- 펜스!”

앞줄에 서 있는 드워프 정예병이 방패를 치켜들었다.

-우워!

그들의 방패 위로 내 트롤이 몸통 박치기를 날렸다.

콰앙-!

프라이팬 안에서 팝콘이 튀겨지는 것처럼 금속 튕기는 소리가 연속해서 들렸다.

트롤과 드워프 전사들이 뒤섞여 싸우기 시작했다. 겨우 수십의 내 수하와 천이 넘는 적군.

전투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싸움처럼 보였다.

그것도 잠시.

트롤이 드워프를 조금씩 밀어내기 시작했다.

-키야아악!

말벌 한 마리를 잡으려면 꿀벌 백 마리가 필요하다고 하던데.

이 싸움은 그 수준이 아니었다.

드워프의 공격이 전혀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베어내도 트롤의 특성인 빠른 재생력으로 계속해서 회복했다.

머리 위에 있는 생명력 게이지에 변동이 없을 정도로 말이다.

일반적인 학살.

드워프 전사들이 한둘씩 쓰러지기 시작했다.

듀발이 다급한 표정으로 블란트에게 소리쳤다.

“블란트!”

블란트가 자신의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전원 트롤을 공격할 수 있도록 활과 지팡이를 들도록 해라!”

마법과 화살로 지원 공격을 하겠다는 건가.

엘프 정예병 전원이 검을 집어넣고 활과 지팡이를 들었다. 방패를 사용할 수 없는 무기를 들다니, 멍청한 놈들.

그들은 모르고 있었다.

근방에 기회를 노리는 한 마리의 야수가 있다는 것을.

적의 움직임을 포착한 가웨인이 땅을 박차고 달려갔다.

호랑이의 몸이라서 그런지 치고 달리는 속도가 엄청났다.

“멍청한 지휘관을 두었군!”

가웨인이 적들을 향해 입을 크게 벌렸다. 이어 공기가 흔들릴 정도로 크게 포효했다.

크헝!

순간 적들의 움직임이 얼어붙었다.

가웨인의 검날이 타올랐다.

[인챈트 파이어]

철컹.

내가 본 것은 그가 검을 검집에 넣는 것뿐이었다. 휘두르는 모습은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빠른 격이었다.

이게 바로 검성이라고 불리는 자의 실력인가.

가웨인이 상체를 일으켜 세우자,

털썩. 털썩. 털썩.

엘프 부대 앞줄에 서 있는 자들이 하나둘씩 쓰러졌다.

화르르륵!

이어 그들의 몸이 타올랐다.

‘…… 역시 태양의 기사 타이틀은 그냥 주어지는 게 아니구나.’

박규환이 이에 질세라 칼과 총을 앞세워 드워프 부대의 중앙으로 뛰어들었다.

탕! 탕탕!

드워프 정예병들이 접근하지도 못했다. 가까이 붙으면 칼에 썰리고, 거리를 두면 총탄이 날아왔다.

-크하악!

-사, 살려줘. 이런 괴물들과 싸운다는 말은 못 들어봤다고!!!

-듀발 님!

듀발이 허둥지둥대며 책을 펼쳤다.

펄럭-. 펄럭-.

“이,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지. 자…. 작전 명령….”

블란트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소리쳤다.

“전장에서 병법서는 왜 꺼내 들어!”

“아….”

“카바타가 뒤를 봐주는데 굳이 우리끼리 싸울 필요 없어. 전군 적을 뿌리치고 오크 요새로 후퇴하도록 한다!”

실질적인 전투를 이끌었던 드니로와는 다르게 듀발은 진두지휘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그에 반해 블란트는 오크와의 전투를 많이 경험해보았기에 이런 상황에서도 냉철한 면모를 보일 수 있는 사내였다.

문이 닫히기 전까지.

스르르르르-

쿠웅!

오크 요새의 성문이 닫혔다.

* * * * *

[메인 NPC의 대화가 끝날 때까지 모든 플레이어의 움직임이 중지됩니다.]

도피로가 막힌 드워프와 엘프 정예병들이 갈 곳을 잃었다.

블란트가 고개를 들어 카바타에게 소리쳤다.

“카바타!!!”

카바타가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블란트, 듀발. 싸워야지 뭐 하는 거야?”

“같이 싸우기로 하지 않았나?!”

“응, 같이 싸울 거야. 근데 너희들은 밖에서 싸우고 우리는 안에서 싸우고.”

“…… 뭐?”

블란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카바타가 비열한 웃음을 내뱉었다.

쿠데타를 일으킨 병력들의 얼굴에 절망이 드리웠다.

카바타가 오르쿠스의 뺨을 툭툭 치더니 모두에게 들릴 정도로 크게 소리쳤다.

“한 번 배신한 놈이 또 배신하지 못하리란 법이 어디 있나?”

“빌어먹을 자식이…. 나를 이용한 건가.”

“어! 그렇지 그래. 순진한 엘프들은 조금만 마음을 긁어주면 상처가 생기고, 쓰다듬어 주면 그새 낫거든. 이용하기가 너- 무 좋더라고. 크하하하!”

“……”

“아 참! 한 가지 더 말해주자면 네 아버지는 사실 드워프 중 한 명이 죽였어.”

“뭐……?”

“바로…. 저 자지. 그날 돈 비토와 실비아의 위치를 내게 알려준 첫 번째 배신자!”

카바타가 손가락으로 듀발을 가리켰다. 듀발이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손을 저었다.

“아, 아니야. 블란트!”

“아니기는. 블란트에게 그날의 일을 설명해줘. 돈 비토의 위치를 알려준 것도 너고, 공주를 찾아온 엘프 기사에게 화살을 쏜 것도 너라고.”

“다, 닥쳐 카바타!”

블란트가 듀발을 노려보았다.

“정말이냐 듀발.”

“……”

“제길…. 제길…. 제기일!!!”

-크아아악!

블란트가 머리를 부여잡고 비명을 질러댔다. 카바타는 그를 내려보며 배를 잡고 웃었다.

“블란트! 어때? 내가 너를 위해 준비한 절망이.”

“그럼…. 공주님은….”

“공주? 뭐 아무것도 모르고 죽게 된 거지. 네 손에 의해서.”

“……”

블란트가 쓰러져 있는 엘프 여왕을 한 번 쳐다보고. 다시 오크 요새 깃대에 걸려있는 실비아의 얼굴을 보았다.

그의 이마에 핏대가 섰다.

“용서하지 않겠다.”

“네가 나를 용서하지 않아서 어쩌려고? 네 앞에 있는 저 네크로맨서나 막아보시지!”

[시스템이 플레이어의 움직임을 허용합니다.]

나는 모두에게 공격 명령을 중지시켰다. 그저 박규환에게만 듀발을 처리할 것을 명령했다.

박규환이 검을 검집에 넣더니 듀발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아무도 그를 말리지 않았다.

듀발의 부하들조차 말이다.

“머, 멈춰. 다들 뭐 하는 거야. 저 새끼 안 막아?!”

정예병들이 눈치만 볼 뿐 그의 명령을 듣지 않았다.

샥-

박규환의 총구가 반짝였다.

탕!

듀발의 정수리에 구멍이 뚫렸다.

정적이 흘렀다.

분노에 가득 찬 블란트가 무방비한 상태로 내 앞으로 걸어왔다. 죽여 볼 테면 죽여 보라는 식.

[당신을 향한 ‘블란트’의 적대감이 사라집니다.]

나는 모두에게 나서지 말 것을 신호주며 그대로 기다렸다.

뚜벅. 뚜벅. 뚜벅. 뚜벅.

“김천재.”

“왜.”

“여왕님께 이 말 좀 전해주길 부탁한다. 나를 용서하지 마시라고….”

“…… ”

대화를 마친 블란트가 검을 뽑아 들었다.

“드니로! 당신에게도 사과하도록 하지. 일이 이렇게 된 것은 유감이지만, 우리가 할 일은 확실하게 마치도록 하겠다!”

드니로가 그에게 소리쳤다.

“어떻게 된 일인인지는 알겠다. 지금이라도 돌아온다면 모두 용서해주도록 하겠다.”

“…… 아니, 나는 용서받지 못할 죄를 저질렀다.”

블란트가 오크 요새 앞에 있는 정예병들을 향해 소리쳤다.

“작전을 변경한다. 오크 요새의 성문을 뚫도록 해라!”

쿠데타에 참여한 정예병들이 잠깐 멈칫했다. 이내 그의 의중을 알아챈 병사들이 오크 요새를 향해 몸을 돌렸다.

듀발의 부하들도 블란트의 명령에 따라 움직였다.

드워프 병사들이 커다란 망치와 도끼를 이용해 성문을 부수기 시작했다.

쾅! 쾅! 쾅!

카바타가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놈들을 막아라!”

성벽 위에 있는 오크들이 끓는 기름을 붓고, 화살 비를 쏟아부었다.

엘프들이 방패를 머리 위로 들어 쏟아지는 공격을 막았다. 공성 병기 하나 없이 그저 근접 무기로 성문을 뚫는 것을 불가능한 일.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묵묵하게 싸웠다.

블란트의 지휘 아래.

“성문을 뚫어라!”

* * * * *

대붕역풍비 생어역류수

(大鵬逆風飛 生漁逆流水)

큰 새는 바람을 거슬러 날고,

살아있는 물고기는 물살을 거슬러 오른다.

그의 검날에 새겨져 있는 문구가 무색해질 정도로 처참한 결과만이 남았다.

목숨을 걸고 싸웠지만 블란트는 성문은 뚫지 못했고.

그의 부하들은 전멸했다.

마지막 생존자가 된 블란트가 피투성이의 얼굴을 쓸며 카바타에게 소리쳤다.

“이게 끝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 끝인데? 네 옆에 전멸한 병사들을 보아라. 그리고 뒤에, 네게 배신당한 드워프와 엘프들의 얼굴이 안 보이나?”

“……”

“이 전투는 끝났다. 아직 싸움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너희 정예 병력은 전멸했고, 원군(援軍)에 남은 병력은 얼마 되지도 않아. 너희에게는 이제 희망이 없어.”

“…… 아니, 이제 시작이다.”

“뭐?”

블란트가 카바타에게 등을 보이더니 내게 소리쳤다.

“김천재! 길은 전부 닦아 두었으니 뒤를 부탁한다!”

“…… 뭐?”

콰직!

블란트가 자신의 복부를 향해 검을 찔러 넣었다.

할복.

블란트는 그대로 엘프 여왕이 있는 곳을 향해 절을 했다.

놈의 머리 위에 있는 생명력 게이지가 검은색으로 바뀌었다.

나는 나지막이 독백했다.

“뭔데.”

왜 내 이름을 부르면서 죽는 건데?

엘프라는 놈들은 모두 이기적이고 제멋대로다. 적군이 되었으면서 왜 내게 부탁을 하는 것인가?

‘이 게임의 스토리텔러는 정말 최악이다. 무엇을 해도 찝찝하게 만드니….’

피비린내가 전장에 퍼졌다. 그 많던 정예병들이 전부 쓰러졌다.

계획대로 움직였다면 벌써 오크 요새를 함락 시켰을 텐데.

‘멍청한 놈들.’

나는 데스 나이트의 장갑을 한 쪽 벗었다.

“소라 씨! 푸른 주사!”

유소라가 기다렸다는 듯 달려와 내 손에 푸른 주사를 놓아주었다.

사파이어 색상의 빛이 유소라의 손안에서 휘몰아치더니 파란색 홀로그램 주사기가 만들어졌다.

심호흡을 크게 한 유소라가 내 팔뚝을 잡고 조심스럽게 바늘을 꽂아 넣었다.

치이익.

푸른색 액체가 혈관을 타고 천천히 내 몸 안으로 들어왔다.

박하사탕을 먹었을 때 입이 화한 것처럼 온몸이 시원하게 느껴졌다.

머리 어딘가에 박혀있던 길이 뻥 뚫린 듯 기분이 좋아지며 눈이 번쩍 뜨였다.

심장 박동 수가 점점 느려지며 긴장감이 해소되었다.

액체가 몸에 들어오는 동안 눈을 감으니, 맑아진 정신을 집중할 수 있었다.

[‘유소라’ 플레이어로부터 푸른 피를 수혈 받았습니다.]

[경장(經藏), 율장(律藏), 논장(論藏)을 모두 통달한 삼장법사(三藏法師)의 힘이 활성화됩니다.]

[활성화 시간: 30분]

머리 위로 파란색 마나 게이지가 빠른 속도로 차올랐다.

고속의 재생력.

소환에 제약이 사라졌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유소라가 다시 마이클의 옆으로 돌아갔다.

전투 준비를 마친 나는 카바타에게 소리쳤다.

“어이! 너 네크로맨서라면서?”

카바타가 나를 내려보았다.

“그래.”

“나도 네크로맨서인 거 알고 있지?”

“…… 그래.”

“근데 이 시체들을 그냥 뒀어?”

나는 전멸한 정예병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카바타가 눈을 한 번 끔뻑이더니 침을 튀기며 소리쳤다.

“서, 설마!”

나는 놈의 일그러진 표정을 보며 속삭이듯 주문을 외웠다.

[스켈레톤 소환]

해골 병사들이 일어났다.

전부 상급 이상의 전사들이었다. 스켈레톤 병사들이 문을 부수기 위해 적에게 덤벼들었다.

쾅! 쾅! 쾅!

정예병이 쓰러진 만큼 내가 소환 할 수 있는 스켈레톤 병사는 넘쳐난다.

누가 배신을 하든지 말든지.

강한 힘을 가지고 있든지 말든지.

상관없다.

스토리의 흐름과는 상관없이, 이번 라운드의 공략법은 이미 만들어져 있으니깐.

카바타가 뒤늦게 내 작전을 깨닫고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이런! 모두 스켈레톤을 향해 불화살을 날려라! 놈들은 불에 약하다!”

그의 부하가 대답했다.

“그럼 성문이 불타서 요새가 위험해집니다!”

“아….”

오크 병사들이 드워프와 엘프를 상대했던 것처럼 끓는 기름을 붓고 화살을 쏘아댔다.

나는 무한한 마나를 이용해 쓰러지는 스켈레톤 병사를 계속해서 일으켜 세웠다.

병사 전부 드워프와 엘프의 장비를 그대로 착용하고 일어나서 그런지, 공격력과 방어력이 평소보다 좋았다.

콰직. 콰지직.

성문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나는 팔짱을 끼고 성문이 무너지는 것을 보았다.

콰직. 콰지지직.

성문의 내구력이 어느 정도 내려가자 가웨인이 나섰다.

“주군, 제가 처리해도 되겠습니까?”

“…… 그래. 스켈레톤 병사는 네가 지휘하도록 해라.”

“예. 맡겨 주십시오.”

가웨인이 성문 앞으로 가더니 엑스칼리버를 크게 휘둘렀다.

부웅-

검이 문에 닿지는 않았다.

그저 풍압이 공간을 뒤틀어 문을 밀어냈다.

쾅!

성문이 산산이 조각나며 땅에 쏟아져 내렸다. 그 안으로 전투 준비 태세의 오크들이 보였다.

‘……’

오크 요새 안으로 박혀있는 통나무 위, 실비아의 머리가 보였다.

‘아저씨’라고 하며 실실 웃는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 후우.”

밤하늘이 연회를 끝내듯 끝없이 쏟아지던 유성우가 멈추었다.

나는 담배를 하나 꺼내 물었다.

치직. 치지직.

쓰읍. 푸후-.

“박규환, 가웨인.”

둘이 동시에 대답했다.

“예.”

“말하십시오.”

“…… 찢어.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새끼들, 전부 찢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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