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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화

내 발밑 반짝이는 마법진.

아니, 소환 주문진이라고 해야 하나?

붉은 문양이 날아간 자리에 남은 자국이 빛나고 있었다.

즉, 루시퍼를 이 세계로 부활시키는 주문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말.

[루시퍼의 부활 진행도: 67.2%]

나는 주문진의 한 가운데로 갔다.

“루시퍼. 미안하지만 이번 만남은 다음으로 미뤄야겠어.”

“…… 무슨 말이냐.”

“무슨 말? 이런 말.”

나는 주먹으로 땅을 내리쳤다.

쾅!

내 주먹 모양 그대로 땅이 깊게 팼다. 그 옆으로 실금이 거미줄처럼 뻗어나갔다.

게이트 밖으로 나오던 루시퍼의 이마에 핏대가 섰다.

“이 자식이….”

“오호라, 반응을 보니 이 방법이 맞나보군.”

“피하지 마라.”

“피한다고? 아니지. 나는 너를 피하는 게 아니라 상대하고 있는 거야. 억울하면 나와서 말해봐.”

다시 주먹을 휘둘렀다.

쿵!

실금이 벌어졌다.

그 안에서 붉은 액체가 흘러나왔다. 시큼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카바타가 의식을 행하기 위해 사용된 자들의 피인 것 같았다.

[*시스템 이상 발생 ]

[‘김천재’ 플레이어의 돌발 행동이 ‘멸망의 땅’ 서버에 충격을 주었습니다.]

[에러로 인해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합니다.]

‘응? 이게 아닌가.’

루시퍼의 반응을 보아, 이 방법이 확실한 것 같은데.

시스템 창을 보며 잠시 망설였던 나는,

털썩.

게이트 밖으로 나온 루시퍼의 발을 보고 다시 행동을 개시했다.

“김천재. 늦었다.”

루시퍼의 몸에서 사악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엘프 여왕에게 보여주고 싶다. 진짜 악한 자의 오라가 어떤 것인지를.

데스나이트의 갑주가 뿜는 파도같이 넘실거리는 검은 오라와는 다르게, 칼날처럼 날카롭고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는 놈의 오라.

같은 색상이지만 오라의 성향이 전혀 달랐다.

굳이 단어로 표현하자면 악함과 죽음의 차이랄까.

나는 루시퍼에게 중지를 날렸다.

“지랄, 늦지 않았어.”

[루시퍼의 부활 진행도: 78.9%]

쿵! 쿵! 쿵!

스켈레톤 병사들도 나를 따라 지면을 부수기 시작했다. 채석장에서 채굴하듯, 날붙이를 이용해 열심히 내려쳤다.

박살 난 땅이 조금씩 갈라지며 소환진의 형태를 바꾸었다.

나 또한 전력을 다해서 땅을 내리쳤다.

땅이 조금씩 깨져간다.

깨지는 속도만큼 루시퍼가 게이트를 통과하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이제 다리 하나 남았군.”

“…… ”

부서져라!

쿵!

나는 루시퍼 놈의 눈치를 보며 계속해서 땅을 내리쳤다. 갑주는 멀쩡할지어도 그 안에 있는 내 주먹에는 계속해서 대미지가 쌓였다.

피부가 찢어지고.

핏방울이 흘러내렸다.

그런데도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지, 느끼지 못했다. 온전히 내 모든 신경이 바닥을 부수는 것에 몰두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제발!”

쾅!

“깨지라고!”

쿠웅-.

[루시퍼의 부활 진행도: 91.5%]

놈의 부활 진행도가 높아질수록 내 심장이 더욱더 빠르게 뛰었다.

혹여나 루시퍼가 부활에 성공한다면 제일 먼저 죽는 것은 나일 테니.

쿵!

어떻게 하면 이 주문진을 단번에 없앨 수 있을까? 이렇게 조금씩 깨다가는 놈의 몸이 먼저 게이트 밖으로 나올 것이다.

누군가 옆에서 재촉하는 것처럼 촉박하게 느껴졌다.

슬쩍 보니 남아있는 놈의 한쪽 다리가 무릎을 넘어 정강이가 나오고 있었다.

곧 부활한다.

“……”

위기의 순간.

어렸을 적 보았던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중년의 사나이가 젓가락과 손 망치 하나를 들고 계곡에 나가서, 간단하게 바위를 부수는 장면.

그는 말했었다.

“모든 것은 급소가 있습니다! 자- 이렇게 빈틈에 젓가락을 넣은 후, 요렇게 때리면!”

팍!

“바위가 반으로 갈라지죠?”

중년의 남성은 아주 간단하게 바위를 반으로 갈랐었다.

그 당시에는 밥 아저씨의 그림 시간 같이 말만 쉽고 어려운 일이라 생각했는데.

지금 내게는 마지막 희망이 되었다.

나는 비슷한 강도를 가진 물체의 급소를 알고 있고, 젓가락과 망치를 대신할 물건까지 가지고 있다.

‘…… 아직 기회가 있다.’

[루시퍼의 부활 진행도: 97.1%]

나는 앞서 죽은 오크 족장, ‘카바타’의 지팡이를 갈라진 바닥의 틈새에 끼워 넣었다.

‘이게 젓가락이고.’

팍!

그리곤 다큐멘터리의 아저씨가 했던 것처럼. 망치가 젓가락의 끝을 내려치듯, 내 주먹으로 지팡이의 끝을 내리쳤다.

부웅-

“이게 망치다!”

쿵!

지팡이가 깊숙이 박혔다.

지면은 박살나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바위는 위와 아래의 크기가 제한되어있는 물체.

이 바닥은 맨틀을 뚫고 나아가 지구 반대편에 도착하지 않는 이상 끝이 있다고 말하기 힘든 두께였다.

“아….”

지구는 쪼갤 수 없지.

X발.

내가 뭔 짓을 저지른 거냐.

절망이라는 단어가 내 머릿속을 지배했다.

천재라는 놈이 이렇게 어이없는 일을 저지르다니.

일 분 일 초가 매우 급한 이때 말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정우에게 묘비명이라도 미리 부탁할걸.

[김천재, 향년 23세의 나이로 루시퍼에게 사망해 이곳에 잠들다.]

따위의 글귀가 적히겠구나.

아니지, 묘비도 없으려나. 놈에게 당한다면 온몸이 갈가리 찢겨 흔적조차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말없이 루시퍼를 바라보았다. 녀석의 몸이 벌써 거의 다 나왔다.

이제는 놈을 상대로 싸우는 수밖에….

라고 생각하는 순간,

콰지직- 콰직!

운도 실력이라는 말이 맞는가.

천운이라고 해야 할지, 내가 위치를 잘 노린 것인지.

마지막으로 내지른 일격에 갑자기 땅이 무너져 내렸다.

뉴스에서나 보던 싱크홀처럼 소환 진의 중앙이 내려앉았다.

쿠구궁!

소환진에서 뿜어져 나오던 빛이 멈추었다.

문양이 뒤틀리고, 빛이 조금씩 꺼져갔다.

휘몰아치던 게이트의 속도가 점차 느려지며 루시퍼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크아악!”

다행히도 루시퍼의 몸 전체가 나오기 바로 전이었다. 놈의 발목이 아슬아슬하게 게이트에 걸렸다.

[루시퍼의 부활 진행도: 99.8%]

‘…… 살았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곤 루시퍼를 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어떻게 하지? 이번에도 내 말대로 된 것 같은데.”

허세였다.

나를 안심시키기 위한 허세.

심장이 터질 것 같이 뛰었지만, 루시퍼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 제길.”

루시퍼가 한숨을 쉬며 방 안을 둘러보았다. 나는 놈의 모습을 비웃으며 배를 잡았다.

“오랫동안 이곳으로 넘어오려 준비한 것 같던데.”

“……”

“실패했지만 수고 많았다. 이제 꺼져라.”

[‘메인 스토리’ 진행 중 알 수 없는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이곳에서 일어난 일이 단순한 개인 임무가 아니라 메인 스토리로 여기는 것인가.

플레이어가 한둘도 아니고 최소 몇 십 명이 모여있는 다섯 번째 라운드에서?

“…… 죽이네.”

생각만 하려 했던 말이 입 밖으로 나왔다.

루시퍼가 내 말을 듣더니 격양된 목소리로 소리쳤다.

“이 빌어먹을 자식! 곧, 조금만, 조금만 있으면 나올 수 있었는데!!!”

루시퍼의 몸을 감싸고 있는 검은 가죽이 액체로 변하기 시작했다.

살이 녹아내리자 뼈가 분리되며 땅에 떨어졌다. 놈이 신음을 뱉으며 저항하려 했다.

무의미한 행동.

얼마 지나지 않아 놈의 팔과 다리가 분리되고. 힘을 잃은 갈비뼈가 날개처럼 양옆으로 펼쳐지며 안에 있는 장기가 쏟아져 내렸다.

투두두둑.

놈을 소환하기 위해 사용된 매개체들이다.

마지막으로 남은 루시퍼의 얼굴이 지면에 가로로 누워. 광기 어린 눈으로 나를 보았다.

“다음에는 이렇게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비아냥거리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지.”

“그 누구보다 고통스러운 나날을 만들어주마.”

“마음대로 하세요.”

“이곳에는 너를 기다리는 자들이 많으니 심심하지는 않을 거야.”

“…… 마음대로 하시라고요. 이제 꺼져주시기 바랍니다!”

용의 송곳니가 번쩍였다.

콰직! 소리와 함께 뾰족한 면이 루시퍼의 두개골을 뚫었다.

펄펄 끓는 주전자처럼 연기가 쏟아져 나왔다. 무광의 검은색 페인트가 기체가 되어 날아가는 것 같았다.

“김천재…. 언젠가는….”

마지막 말을 끝내지 못하고 놈의 형체가 사라졌다.

순간적으로 긴장감이 풀리며 다리에 힘이 쭈욱 빠졌다. 동공이 크게 흔들리고 마른 침이 절로 삼켜졌다.

“…… 끝난 건가?”

나는 루시퍼의 머리통을 이리 때려보고 저리 때려보았다. 마지막에는 반응 없는 놈의 머리뼈를 박살냈다.

혹시라도 부활할까 싶어서였다.

“후우….”

진짜 끝이다.

* * * * *

임무가 끝났는데도 새로운 시스템 메시지가 뜨지 않았다.

이렇게 끝낸 스토리에는 보상이 적용되지 않는 것인가? 아니면 아까 말한 ‘서버 충격’ 때문에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것인가.

스켈레톤 병사를 데리고 천막 밖으로 떠나려 하자 빨간색 창이 하나 나타났다.

[*자동 복구 시스템이 가동됩니다.]

시공간이 일그러지는 것처럼 주변이 휘몰아쳐 보였다.

[서버 관리자가 예기치 못한 오류로 인해 유저들에게 죄송하다고 합니다.]

10초 정도 지나자 다시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보이며 원상태로 돌아왔다.

[현 시간부로 서버는 정상 가동되며 모든 라운드의 스토리 진행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 나는?”

[시스템 메시지]

[운영진 중 1명이 당신을 지켜봅니다.]

[쓰러져있는 루시퍼와 천막 안의 상태를 확인 중…….]

중간 과정은 보지 못했다는 건가?

[운영진이 당신의 행동에 놀라움을 표시합니다.]

나는 방긋 웃었다.

[1인 도전자가 루시퍼를 혼자 상대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버그 플레이어로 판단합니다.]

“뭐요? 아니 제대로 확인하고 말해요. 내가 무슨 버그를 썼다고 그럽니까?”

[운영진이 당신의 로그 활동 내역을 확인합니다.]

[공격, 공격, 공격 또 공격]

[백 번 이상의 공격 횟수가 확인됩니다.]

[운영진이 정말 루시퍼를 혼자 상대했냐고 묻습니다.]

[YES/NO]

로그 내역에는 어떻게 싸웠는지에 대한 기록이 남지 않았나 보다. 그저 내 행동을 단순히 기록했을 뿐.

나는 당당하게 대답했다.

“…… YES. 혼자 상대했어요.”

거짓은 없다.

혼자 상대했다.

내가 한 행동이 정당한 행동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고의적으로 오류나 오작동을 일으킨 것은 아니니 앞서 시스템이 말한 ‘버그 플레이어’라고 부르기에는 무리가 있다.

‘우긴다면 어쩔 수 없지만.’

갑과 을.

을의 처지인 나는 조용히 운영진의 대답을 기다렸다.

하지만 이 대답이 운영진과의 마지막 대화였다.

“……”

파란색 창이 떴다.

타자를 치는 소리와 함께 글자들이 하나씩 눈앞에 떠올랐다.

[‘김천재’ 플레이어의 카바타 천막 솔로 도전의 성공을 축하합니다.]

[보상으로 ‘고대 유물’이 잠들어 있는 장소를 탐색할 수 있는 레이더가 제공됩니다.]

삐빅. 소리와 함께 홀로그램 레이더가 눈앞에 나타났다. 항공모함에서 사용할 것 같은 정교한 레이더였다.

이어 흥분한 남성의 목소리가 내 귀에 들려왔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도전자, ‘김천재’ 플레이어의 활약이 전 서버에 알려집니다!]

손발이 오그라들 것 같은 대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기분을 째질 정도로 좋았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었다는 것은 그 누구도 아직 이 도전을 성공시키지 못했다는 것.

‘멸망의 땅’에서 처음으로 숨겨진 임무를 성공시켰던 그 날과 같은 떨림이 느껴졌다.

희열.

전율.

쾌감.

세 가지 단어가 머릿속에 나열되며 나의 시대가 오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제부터 나는 최강의 네크로맨서!’ 칭호를 획득합니다.]

[소환 레벨이 +1 증가합니다!]

[소환 레벨 ‘7’ 달성]

[하수인의 공격력과 방어력, 체력이 소폭 증가합니다.]

“…… 그래, 이 정도는 돼야 라스트 게임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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