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감옥 안으로 들어가자 벽에 기대어 졸고 있던 간수들이 일어났다.
경계가 삼엄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허점을 찌르기 좋다.
“흐아아암- 또 포로냐?”
내 오크가 대답했다.
“그래.”
허술해 보이는 통나무 감옥에 갇혀있는 엘프와 드워프들. 쇠고랑에 묶여 있어서 그런지 아무런 반항을 하지 못했다.
먼저 잡혀 온 포로들이 우리를 바라보았다. 나는 느슨해진 밧줄을 천천히 풀어 포박된 손을 움직일 수 있게 만들었다.
‘…… 세 명이라.’
간수들이 우리를 인도받기 위해 다가왔다.
그 순간.
나는 앞장선 간수의 목을 꺾어 부러뜨렸다.
뿌득.
이어 조영기가 좌측 간수를 엎어치기로 쓰러뜨린 후, 팔꿈치로 입을 내려찍었다.
콰직!
둔탁한 소리와 함께 오크의 송곳니가 땅에 떨어졌다.
“허어억.”
조영기가 놈의 머리를 잡고 전류를 흘려보내 정신을 잃게 만들었다.
이 모습을 본 우측의 간수가 어버버버 거리는 사이, 김연희가 녀석의 복부에 발차기를 먹여 벽에 붙인 후 입에 나이프를 집어넣었다.
“한 마디만 해봐. 혀가 잘려 나갈 거야.”
“어어억….”
“김천재! 이 새끼 어떻게 해?”
나는 남아있는 간수에게 다가가 말했다.
“살고 싶은가?”
“어억….”
“열쇠는 어디 있지?”
“어억.”
놈이 자신의 허리춤을 흔들어 쇳소리를 내었다. 나는 녀석의 허리에서 열쇠 뭉치를 뜯어냈다.
“김연희.”
“응.”
“죽여.”
“죽여? 열쇠 주면 살려준다고 하지 않았어?”
“살고 싶은지만 물어봤지. 열쇠를 주면 살려준다고는 안 했어.”
“…… 오케이.”
김연희가 오크 놈의 목을 그었다. 제정신이었다면 조금이라도 저항을 했을 텐데.
군기가 빠진 놈들이라 상대하기 쉬웠다.
다른 곳에 있는 오크들도 이렇게 멍청하면 좋을 텐데.
나는 감옥에 갇힌 엘프와 드워프들을 풀어주었다.
-가, 감사합니다. 여기서 풀어 나게 될 줄이야….
-신이시여, 드디어 구세주를 보내주셨군요.
-이제는…. 그곳에 가지 않아도 돼…. 나는 이제….
나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엘프 여성에게 물었다.
“그곳이라는 게 어딘가요?”
그녀는 대답을 망설이는 듯 내 눈치를 보았다. 그녀와 같은 감옥에 갇혀있던 다른 여성이 나와 어깨를 붙잡으며 내게 대답해주었다.
“카바타의 침실…. 이요.”
카바타의 침실.
“카바타의 침실이 어디죠?”
“산 중턱에 있는 큰 집이요…. 그 텐트….”
“그곳에 카바타가 있나요?”
“예….”
“거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요?”
“……”
어떻게 된 일인지 더 물어보고 싶었지만, 엘프 여성에게는 그럴만한 여유가 없는 것 같았다.
몸을 크게 떨어 나는 대화를 멈추었다.
“우선 도망가도록 하시죠. 조영기, 우리는 다음 장소로 이동하도록 하자.”
조영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이 자들을 먼저 탈출 시켜야 하는 거 아니야?”
“탈출하고 가면 늦어. 김연희, 네가 여기 있는 자들을 데리고 오크 요새에서 나가도록 해.”
김연희가 놀란 듯 눈을 부릅떴다.
“어…. 어?! 나 혼자?”
“그래.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 힘들 것 같은데.”
“할 수 있어. 걱정하지 말고 요새 밖을 향해 뛰어.”
“녀석들이 덤벼들면?”
“싸워야지.”
김연희가 침을 꿀꺽 삼켰다.
“나 혼자서?”
“못하겠어?”
“……”
조영기가 나와 김연희를 번갈아 보았다.
“김천재, 내가 탈출까지만 도와주고 다시 오도록 하지.”
“아까 말했잖아. 늦는다고.”
“김연희 혼자는 위험해.”
나는 짜증 섞인 어투로 대답했다.
“여기까지 왔으면 위험한 일도 감수해야지. 내가 보수도 넉넉하게 챙겨준다고 했잖아.”
“이렇게까지 위험할 줄은 몰랐지.”
“…… 그래서. 안 할 거야?”
“아니. 할 건데 순서를 조금 바꿔보자 이거지.”
“이제 와서 왜 이러는 거야? 아까 설명해줄 때는 알았다면서.”
“막상 오니 이렇게 위험할 줄은 몰랐어. 미안한데 작전을 좀 변경해줘.”
굳이 구출하지 않아도 되는 NPC들 때문에 작전을 망치고 싶지는 않다.
나는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안 돼. 작전 변경은 없어.”
“…… 그럼 저들을 전부 죽이자는 거야?”
“내가 죽이자고 했나? 작전대로 진행하자고 했지.”
“그게 그 말이잖아. 연희 혼자 어떻게 오크 요새 밖까지 저들을 데리고 가?”
“나는 그 점까지 고려해서 너희들에게 이 작전을 제안한 거야. 이제 와서 못한다고 하면 어떻게 하자는 거지?”
“……”
포로로 잡혀 있던 드워프 중 한 명이 내게 말했다.
“자네들이 말하는 작전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걱정하지 말고 출발하게나.”
“…… ”
“어차피 우리는 전부 죽을 목숨이었어. 카바타를 처리하러 온 것이라면, 그대로 진행하도록 해.”
입으로는 괜찮다고 하지만 그의 몸은 떨리고 있었다.
나는 한숨을 내뱉으며 작게 속삭였다.
후우-.
“스켈레톤 비둘기, 출격해라.”
모두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김천재, 스켈레톤 비둘기라니?”
“……”
수 초 후 감옥 밖에서 오크의 포효 소리가 들렸다.
-우워어어어!
도착했구나.
나는 용의 송곳니를 강하게 잡아 쥐며 조영기에게 말했다.
“조영기, 마지막으로 선택할 기회를 주지. 포로와 돈. 둘 중 하나만 고르도록 해.”
“……”
“돈, 포로. 둘 중 뭐야?”
조영기가 눈알을 굴렸다.
돈과 엘프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지 알 기회였다.
“돈.”
차카니 답다.
결국 돈인가.
조영기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돈을 포기하도록 하지.”
“돈…. 을 포기한다고?! 네가? 목숨보다 돈이 먼저인 대머리가?”
“그래, 아무래도 내 사랑 엘프들을 이대로 둘 수는 없어.”
PC게임에서도 엘프에 대한 집착이 그렇게 강하더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알았다. 그럼 포로들을 데리고 오크 요새 밖으로 나가도록 해.”
“…… 너는?”
“나는 혼자서라도 다음 작전을 진행하러 갈 거야.”
“죽을걸.”
“내가?”
“그래, 네가.”
나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 그럴 일은 없으니 걱정할 필요 없어.”
“네가 강한 것은 알고 있지만. 군단을 상대로 혼자 싸울 수는 없어.”
틀린 말은 아니다, 플레이어 혼자서 오크 군단을 상대하는 것은 무리니깐.
“싸우지 않으면 되지.”
“…… 응?”
“내가 말했잖아. 이곳에 온 목적은 단 하나, 카바타라는 녀석이 진행하고 있다는 ‘의식’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서라고.”
“…… 알았으니깐. 금방 돌아올 테니 무리하지 말고 있어.”
나는 손을 저었다.
“됐어, 돌아올 필요는 없고. 포로들이 오크 요새 밖으로 나가면 네 능력으로 입구나 닫아줘.”
“입구를? 너는 어떻게 하게?”
“그건 알아서 할 테니 걱정하지 말고. 그리고 앞서 약속한 두 번째 작전의 보수는 없어.”
“…… ”
“네가 선택했으니 그렇게 알고. 엘프와 함께 도망가도록 해.”
대화를 마친 나는 감옥 밖으로 나왔다.
오크 요새 위로 묘기를 부리듯 날아다니는 스켈레톤 비둘기가 있었다.
기름에 흠뻑 젖은 스켈레톤 비둘기와 그 위에 타고 있는 스켈레톤 폭탄병.
메인 이벤트 때 쓰려고 했는데, 아쉽지만 지금 쓰게 되었다.
빌어먹을 조영기 자식.
“낙하.”
비둘기들이 날개를 접고 빠르게 떨어져 내렸다. 프로 야구 선수의 공만큼 빠른 속도로 말이다.
쉬유우우웅-
폭탄병이 신난 듯 두 팔을 흔들었다.
-키에엑! 키엑!
쾅!
불꽃이 치솟아 올랐다.
콰광!
이곳저곳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어둠이 내려 캄캄했던 오크 요새가 환하게 비쳤다.
가죽 천막과 나무로 된 막사가 활활 타올랐다. 검은 연기가 치솟아 오르고, 오크들이 불을 끄기 위해 황급히 움직이고 있었다.
-불이다! 불이야! 적의 기습이다!!
-엘프인가? 아니지! 놈들은 숲에 불이 옮겨 붙을까 봐, 할 수 없는 전략이다. 드워프다! 드워프가 쳐들어왔어!
-어이 너, 빨리 오르크스 님하고 카바타 님에게 보고해!
나는 조영기에게 빨리 나갈 것을 요구했다.
“멈추지 말고 요새 밖까지 달려!”
그가 주변 상황을 보더니, 포로와 함께 오크 요새의 입구로 달렸다.
“김천재, 나중에 보도록 하지.”
“알았으니깐 빨리 달리라고!”
“그, 그래. 모두 따라와!”
조영기와 함께 포로들이 뛰었다.
그들을 발견한 오크 전사가 소리쳤다.
-포로들이 탈출했다!
-아이 X발! 불을 지른 것도 저놈들이구나.
-저 새끼들을 잡아라! 죽여도 상관없으니 잡아!
오크들의 시선이 분산되었다. 나는 이틈을 노려 오크 요새의 안쪽을 향해 달렸다.
개개인의 신체 능력은 강력하지만 이끄는 대장이 없으면 오합지졸 수준의 병력.
겨우 요새의 입구가 공격받았을 뿐인데 전역이 아수라장이 되었다.
쿠웅-! 쿠웅-!
땅이 흔들렸다.
멀리서 입구를 향해 걸어가는 거인 오크가 보였다. 거목이 걸어온다고 해도 될 정도로 큰 키의 사내였다.
내가 아는 다섯 번째 라운드, 메인 스토리의 최종 보스이자 오크 족장의 비밀 무기.
[오르쿠스]
악마가 넘겨준 바이러스로 무장한 괴물이다.
나는 잠시 오크 천막 뒤에 몸을 숨기고 놈을 보았다.
지금까지 본 그 누구보다 머리 위에 있는 생명력 게이지가 길었다.
가로줄이 두 개.
정해져 있는 크기 안에서 생명력을 표기할 수 없어 나눈 것으로 보인다.
오르쿠스가 포효했다.
-쿠워어어어어!!
그의 외침을 들은 오크들이 복명복창하듯 같이 포효했다.
-쿠워!
기세가 올랐다.
오합지졸처럼 보이던 오크들이 정신을 바짝 차리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르쿠스가 도망가는 조영기를 보더니 크게 소리쳤다.
“인간!”
공기가 흔들릴 정도로 쩌렁쩌렁한 목소리였다.
잠깐이지만 조영기가 걸음을 멈추고 뒤로 돌아 그를 보았다.
익숙한 얼굴이라 당황하지 않겠지? 생각했는데.
조영기의 얼굴이 굳었다.
‘간이 작아….’
나는 날아다니는 비둘기 중 한 마리를 오르쿠스의 얼굴을 향해 낙하시켰다.
쾅!
“크허얼-!”
오르쿠스가 눈을 움켜잡았다.
나는 그대로 오크 요새의 안쪽을 향해 뛰었다. 이곳에서 시간을 지체해 봤자 좋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카바타의 방을 확인하기도 전에 모두 정신을 차리면 나조차도 위험해지니….
다다다다다다다-
검은 갑주 덕택에 내 모습이 어둠 묻혔다.
오크들이 내 발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을 때는 이미 지나간 후였다.
그 정도로 빨랐다.
마치 밀림의 동물처럼 말이다.
오크 요새의 입구에서 끝까지 도달하는 시간은 5분이 채 되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들어 이곳에서 제일 커다란 건축물을 보았다.
나무로 만들어진 집이 아니라 거대한 천막이었다.
앞서 본 텐트 같은 천막이 아니라, 지금 당장 대형 서커스단이 와서 공연해도 될 정도로 어마어마한 크기였다.
“…… 여긴가.”
나는 조심스럽게 천막 안을 들여다보았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게임 안에서는 이 안으로의 진입이 허용되지 않아 보지 못했는데.
이곳에는 결계가 없었다.
‘…… 위험하다.’
비릿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바람을 타고 희미하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가슴 깊숙이 들어온다고 생각될 만큼 짙었다.
시큼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강한 피 냄새와. 그 뒤에 따라오는 좀비의 악취.
이 안에 무엇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의식’이라 불리는 행위가 보통 일이 아닌 것은 알게 되었다.
과연 이 안에 무엇이 있는 것일까.
나는 천막 앞에 서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들어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가슴이 크게 뛰었다.
본능적으로 위험하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후우-.”
다른 동료들이 있었어도 이렇게 망설였을까? 아니면 나 자신을 믿고 그냥 들어갔을까.
머뭇거리는 사이 눈앞에 파란 창이 하나 날아왔다.
[오크 족장 ‘카바타’의 천막에 들어가시겠습니까?]
[YES/NO]
시스템이 선택지를 만들어 줄 정도로 비중 있는 곳이라는 말인가.
“……”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PC게임 시절 정우와 함께 새로운 스토리에 도전할 때도 이런 적이 있었다.
겨우 게임이었을 뿐인데, 알 수 없는 몇 가지 일들 때문에 앞으로 나가는 것을 겁내는 상황.
그때마다 나는 정우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야 별거 없어. 그냥 해보자.]
“…… ”
그래.
별거 없을 것이다.
그냥 해보자.
[YES]
[‘카바타’ 천막의 첫 번째 도전자가 되셨습니다.]
[현재 인원: 1/10]
[오크 요새의 족장이 당신의 도전을 환영합니다.]
‘…… 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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