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화
내 집보다 조금 더 작은 버섯. 초록 버섯 안으로 들어가니 무릎을 반쯤 굽히고 누워있는 조영기가 보였다.
“…… 김천재?”
“왜 그러고 있어요?”
“집이 작아서. 엘프 헬름에는 어떻게 들어왔지?”
“스토리 진행으로요. 이야기 좀 하게 잠깐 나와봐요.”
“그래.”
버섯 집에서 나온 조영기가 담뱃불을 붙였다.
치직. 치지직.
쓰읍. 푸후-.
나는 지금까지 겪은 이야기들을 그에게 해주었다. 그것을 믿든지 말든지 자유고, 목적은 내 부탁이었다.
조영기가 담뱃재를 튕기며 말했다.
탁. 탁.
“그래서, 너를 도와라?”
“예. 어려운 일은 아니고, 그냥 옆에서 보조만 해주면 돼요.”
“들어보니 너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인데, 혹시 함정을 파 놓은 거 아니야?”
“함정은 개뿔. 아저씨를 함정에 넣어서 제가 뭔 이득을 본다고.”
“나를 죽이려는 것일 수도 있잖아?”
“죽이려면 여기서 죽였어요. 어차피 여기서는 피케이 허용 지역이 아니어도, 현상금이 안 붙어요.”
“흐음….”
“할 거예요. 말 거예요?”
조영기가 눈썹을 찡긋거리더니 엄지와 검지를 붙여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였다.
“보수는?”
“…… 천 제니.”
“적지 않나?”
“산책 수준인데 천 제니면 많은 것 아닐까요? 돌발 상황이 생기면 제가 더 챙겨드릴게요.”
“…… 그래. 그럼 수락하도록 하지.”
나는 거래 창을 열고 선금으로 그에게 천 제니를 건네어 주었다.
[‘조영기’ 님이 김천재 플레이어로부터 천 제니를 받았습니다.]
조영기가 기분 좋은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그래서. 겨우 개구리 하나 때문에 나를 데리고 간다는 거지?”
“겨우 개구리라뇨. 흉악무도하게 생긴 거대한 양서류인데.”
“…… 그냥 큰 개구리잖아.”
“그렇게 볼 수도 있죠. 저는 개구리를 극도로 혐오해서…. 좀비보다 더 역겹거든요.”
“신기한 놈일세.”
나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공포 영화보다 바퀴벌레를 더 싫어한다고 생각해주세요.”
“…… 그렇게 말하니 바로 이해가 되긴 하네. 그래서 출발은 언제 할 건데?”
“바로 하도록 하죠. 위치는 제가 알고 있어요. 엘프 헬름에서 북쪽으로 조금만 올라가면-”
푸드득.
갑자기 머리 위에서 나뭇잎이 나풀거리더니 김연희가 떨어졌다.
쿵!
“나도 데려가!”
나는 어설픈 자세로 앉아있는 김연희에게 대답했다.
“…… 너는 왜?”
“엘프 헬름 안에만 있으니 심심해.”
“위험할 수도 있어. 숲에는 오크가 나와.”
“그럼 사냥도 하고 좋지. 맞죠, 영기 아저씨?”
조영기가 씁쓸한 표정으로 그녀를 보았다.
“연희야. 오크는 좀 위험해.”
“어차피 앞으로 살아남으려면 오크 정도는 상대할 줄 알아야 하잖아요?”
“그렇긴 한데-.”
“괜찮아요. 어차피 죽으면 죽는 거고! 살면 사는 거고! 다들 아직 안 죽어봤죠? 죽으면 게임처럼 다시 살아나려나?”
그녀가 가볍게 한 말이 내 뇌리에 강하게 박혔다. 정말 죽으면 게임처럼 다시 살아나려나?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너무나도 간단했다. 살아날 수 있었다면 지금까지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나, 또 다른 스토리가 진행되었을 것이다.
‘…… 잠깐만. 다시 살아나서 또 다른 스토리를 진행해?’
갑자기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나는 쓸데없는 생각을 버리려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곤 주먹을 힘껏 휘둘러 김연희의 복부를 때렸다.
퍽.
“허어억.”
그녀의 입에서 침이 흘러내렸다.
“죽는 건 이것보다 훨씬 아파. 그래도 갈 거냐?”
“흐윽…. 가, 간다고…. 이 미친놈아, 왜 배를 때려!”
그만두게 할 생각이었는데.
생각보다 끈기가 있었다.
“너 지금까지 제대로 된 싸움은 해보지도 않았잖아? 정말 괜찮겠어?”
“지이랄…. 내가 첫 번째 라운드에서 몇 명을 죽였는데….”
하긴 첫 번째 라운드에서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보통은 아니지.
김연희가 빠른 속도로 나이프를 꺼내어 내게 휘둘렀다. 나는 가볍게 피하며 그녀의 나이프를 손등으로 쳐냈다.
캉.
나이프가 튕겨서 땅에 박혔다.
“느려. 암살자면 네크로맨서보다는 빨라야지.”
“으…. 영기 아저씨! 이 사람 좀 혼내줘요!”
조영기가 두 손을 들었다.
“못 이겨. 놈은 나보다 강해.”
“그래도요!”
“못 이길 싸움은 하는 게 아니야. 뭐…. 보수가 많다면야 해볼 수도 있겠지만.”
김연희가 눈을 번뜩였다.
“만 제니. 이 사람 혼내주는데 만 제니 어때요?”
“만 제니에 목숨을 걸고 싶지는 않다. 십만 정도면 생각해볼게.”
“그런 돈이 저한테 어디 있어요!”
“그러니깐 그냥 참아. 없으면 참는 거야.”
“으….”
나는 김연희의 등을 툭 친 후 조영기에게 말했다.
“바로 가도록 하죠. 시간 끌어서 좋은 거 없으니.”
“그래. 김연희는 내가 돌보도록 할 테니 같이 가게 해줘.”
“…… 마음대로. 대신 죽어도 책임 못 져요.”
조영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 * * * *
엘프 헬름 근처에 있는 폭포를 찾아왔다. 실내 수영장 정도 크기에 고여 있는 맑은 물. 그 위로 떨어지는 거대한 폭포가 머릿속까지 시원해지는 소리를 내었다.
솨아아아-.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실비아가 말한 곰이 어디 있는지 찾기 위해서다.
먹지 않기로 하지 않았냐고?
응.
먹지는 않기로 했다.
안 먹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닌가.
“추가적인 보수는 곰 한 마리 발견할 때마다 오백 제니. 생사유무는 상관없어.”
조영기가 대답했다.
“개구리는?”
“약속한 대로 보이는 즉시 죽여. 내 눈앞에 띄지 않게 해줘.”
“…… 알았다. 그럼 수색을 시작하도록 하지.”
조영기와 김연희가 폭포 주위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새보다 큰 잠자리와 수박만 한 무당벌레가 곳곳에서 튀어나왔다.
무슨 종인지는 모르겠지만 폭포 근처에 돌아다니는 개미의 크기가 강아지만 했다.
나는 대호를 타고 느긋이 걸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
뭐지?
폭포 쪽에서 알 수 없는 기운이 느껴졌다. 강한지 약한지 모르겠지만 살아있는 자의 기는 아니었다.
네크로맨서만이 알 수 있는 영혼의 힘.
‘…… 폭포 안에 뭐가 있나?’
생각 도중 멀지 않은 곳에서 폭포 쪽으로 다가오는 오크 무리가 보였다. 수는 대략 열댓 명. 나는 조영기와 김연희를 데리고 수풀에 숨었다.
폭포 소리가 아니었다면 녀석들에게 들킬 뻔했다.
뭐- 들켜도 큰 이상은 없겠지만, 그래도 필요 없는 전투는 하고 싶지 않았다.
보고가 들어가면 이 근처에 오크들이 몰려올 테니깐.
조영기가 내게만 들릴 정도로 속삭였다.
“트롤 부대를 투입 시켜.”
“안 돼. 트롤은 따로 임무 수행하는 중이야.”
“임무 수행?”
“어.”
최대한 빠른 레벨 업을 하기 위해 다시 네 번째 라운드로 돌려보냈다.
네크로맨서의 생명은 레벨이나 마찬가지니깐 말이다.
“그나저나 너 왜 자꾸 나한테 존댓말 했다가, 반말했다가 하냐?”
“…… 그럼 이 기회에 말을 놓도록 하지.”
“응? 아니 누가 놓으래.”
“만난 지 벌써 한 달이 넘었는데. 이 정도면 놓을 때도 됐잖아?”
조영기가 미간을 찌푸렸다.
“너 몇 살인데?”
“서른.”
물론 거짓말이다.
“서른? 생각보다 나이가 많네.”
“당신은?”
“스물아홉.”
스물아홉?
세상에 온갖 풍파를 다 겪고 노년기에 들어가도 될 것 같은 얼굴이 스물아홉이라고?
“스물아홉?”
“그래.”
“…… 노안이네.”
“고생을 좀 했다능.”
“뭐라고?”
“젊었을 때 고생 좀 했다고.”
나이만 보자면 지금도 충분히 젊은 것 같은데….
“여튼, 말을 놓도록 하자. 괜찮지?”
“…… 그래. 네가 형이니 나야 손해 볼 건 없지.”
나는 입술을 앙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래.’
폭포 근처로 온 오크들이 창을 부여잡고 고인 물에 떨어지는 폭포에 창질을 시작했다.
파악!
물고기를 잡으려는 것 같은데 실적이 좋지 못했다. 우리가 지켜보는 동안 단 한 마리도 잡지 못했으니 말이다.
헛일만 하던 그들이 대화를 나누었다.
-아이 X발! 언제 물고기 잡아서 곰을 유인하냐.
-아니, 카바타 님은 왜 자꾸 곰을 잡아 오래?
-나도 모르지. 무슨 의식에 필요하다면서 잡아 오라고 하시잖아.
-아니 우리가 사제도 아니고 무슨 의식을 집행해? 식량도 넉넉한데 말이야.
들어보니 오크의 족장인 카바타를 의심하는 대화였다.
그나저나 놈들의 대화가 수상하다.
다섯 번째 라운드에서 오크들이 의식을 집행한다는 말은 처음 들었다.
보통 멸망의 땅에서 말하는 의식은 악마를 불러오는 행위.
설마 숨겨진 오 년의 시간 동안 카바타, 녀석이 악마 소환 주문을 완성한 것인가?
‘…… 큰일이군.’
이곳의 수호신이라 불리는 곰의 뼈를 모으는 것으로 보아 강력한 매개체가 필요한 것 같은데.
내 계획대로 스토리가 흘러가려면, 놈이 일을 저지르기 전에 막아야 한다.
오크들이 짜증을 내며 말을 이었다.
-쉿, 닥쳐! 언젠가 찾아올 수도 있는 악마들을 막을 방법을 찾으신다잖아.
-염병…. 정말 악마들을 처치할 방법을 찾을 수는 있는 걸까?
-그렇겠지. 혼자 그 악마들을 상대하고 우리를 이곳으로 인도하신 분이니깐.
-…… 나는 모르겠다.
카바타에 대한 신뢰가 바닥을 기고 있다.
오크 요새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겠지만, 저 정도 상태의 정신력이면 기세가 떨어진 게 확실했다.
“조영기.”
“왜.”
“오크 요새 탐색에 같이 갈 생각 있어?”
조영기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 나는 개구리를 상대하러 왔을 뿐. 오크 요새까지 가고 싶지는 않아.”
“성공 보수를 늘려줄게.”
“내가 돈에 움직이는 사나이 같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니 얹고 이번 라운드 히든 보상까지 공유해줄게.”
조영기가 내 얼굴을 보더니, 검지와 엄지손가락을 마주 잡았다.
“보수는 얼마지?”
* * * * *
나는 폭포 앞에 있는 오크 무리를 제압했다.
그리곤 세 마리의 오크를 부활시켜 내 소환 수로 들였다.
나무 넝쿨로 우리의 손과 발을 느슨하게 묶게 시키고,
노예를 끌고 가듯 일렬로 걸었다.
요새 앞에 도착하자 경비병들이 물었다.
“어어, 곰을 잡아 오랬더니 인간들을 잡아 왔어? 껄껄껄!”
내가 조종하는 소환수가 대답했다.
“곰은 없었어.”
경비병이 우리의 행색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인간들은 어떻게 잡았지? 저 두 녀석은 강해 보이는데 말이야.”
“…… 폭포 근처에서 사냥 중인 놈들을 기습했다.”
“그래? 너랑 같이 간 놈들은 어디 있고?”
“당했어. 이놈들한테.”
오크 경비병이 혀를 차는 소리를 내었다.
“쯧쯧쯧. 카바타 님은 지금 기분이 좋지 않으시니 우선 감옥으로 옮겨 놓고. 보고는 나중에 하도록 해.”
“…… 왜지?”
“오늘부터 언덕에 별이 쏟아지기 시작하잖아.”
별이 쏟아지는데 왜 카바타 기분이 좋지 않은 걸까.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겠지만 그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것은 확실했다.
내 오크가 대답했다.
“알겠다.”
우리는 고개를 푹 숙이고 오크 요새로 들어갔다.
입구를 지키는 경비병에게서 거리가 멀어지자 조영기가 속삭였다.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다고.”
김연희가 말을 이었다.
“이거 진짜 죽는 거 아니야? 너무 위험해!”
나는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무서우면 지금이라도 도망가도록 해. 늦지 않았어.”
조영기가 이빨 사이로 바람 새는 소리를 냈다.
츠읍.
“내가 오크 따위를 무서워할 것 같아?”
“좋네. 당신이 좋아하는 엘프들을 지켜줄 좋은 기회니깐…. 열심히 하도록 해.”
“…… 빌어먹을. 왠지 속은 느낌인데.”
김연희가 동의한다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나는 빙그레 웃은 후 고개를 살짝 들어, 오크 요새의 후방을 바라보았다.
-키에에에엑!
하늘에서 스켈레톤 새 한 마리가 날아와,
부웅- 부웅-
탁.
건물 위에 앉았다.
동물 가죽으로 만들어진 천막 사이로 떡 하니 놓여있는 커다란 통나무 감옥.
감옥에 가까워진 나는 땅을 보며 속삭였다.
“…… 다들 준비해. 감옥 안으로 진입하는 순간 작전을 실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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