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화
엘프 헬름에 있는 동안, 자그마한 버섯 집에 머물게 되었다.
모든 플레이어가 똑같이 배정받는 집이라 할 말은 없지만.
그래도 큰 역할을 했는데 나는 조금 더 큰 집을 줘야 하는 거 아닌가?
“아이고….”
일어나니 머리가 천장에 닿는다.
잠시 쉬기 위해 건초더미 위에 누우니 실비아가 찾아왔다.
“아저씨!”
아저씨라는 존재는 이런 거구나.
스물 조금 넘은 나이에 아저씨라는 말을 계속 듣다 보니 어른이 된 기분이다.
“…… 왔구나.”
“뭐 먹었어요?”
“아니. 너는?”
“아뇨, 저도 아직 안 먹었어요. 아저씨랑 같이 먹으려고요.”
그녀가 사과와 개구리를 들고 있다.
“어….”
‘어’라는 말 밖에 나오지 않았다. 황소개구리의 뒷다리 요리 같은 것을 생각하면 안 될 크기였다.
사람 머리만 한 개구리.
어렸을 적부터 개구리를 싫어하던 나는 소름이 끼쳤다.
그나저나 엘프 헬름에 개구리가 살고 있다는 말은 처음 들어보는데.
“어때요? 맛있겠죠?”
“이걸 먹어?”
“네, 별미예요.”
“엘프들은 숲을 보호하지 않나?”
“보호하죠.”
“근데 개구리를 먹어?”
실비아가 개구리를 껴안고 펄펄 뛰었다.
“무슨 소리예요! 이 아이는 제 친구라고요. 먹으려고 가져온 건 이 사과고요.”
“아…. 난 또 뭐라고.”
개구리가 나를 보며 개굴거렸다. 너무나도 해괴망측하게 생겼다. 입맛이 뚝 떨어지는 모습이다.
“실비아, 사과는 너 혼자 먹어라.”
“왜요? 아저씨 배고프지 않아요?”
“내가 개구리 알레르기가 있어서 그런지 갑자기 배가 안 고프네.”
“그런 게 있어요? 알레르기인데 배가 안 고파진다고요?”
“그럴걸. 갑자기 식욕이 뚝 떨어졌어.”
나는 배 만지는 시늉을 했다.
“그럼…. 다른 거라도 가져다드릴까요?”
“됐다. 근데 저 개구리는 어디서 잡아 온 거냐?”
“폭포 근처에서요.”
“개구리가 폭포에 살아?”
“네, 근처에 살아요.”
엘프 헬름 근방에 개구리가 산다는 말은 처음 들어보았다. PC 버전에 없던 것이니 분명 이곳에서 추가된 생명체일 텐데.
몬스터가 아니라서 내가 신경을 못 쓰던 것인가?
하긴 무조건 다음 라운드로 가는 것에만 집중하느라, 서브 NPC의 대화는 듣지 않았으니.
자잘한 것까지 전부 기억하지는 못하겠지.
“폭포에는 개구리 말고 또 뭐가 살고 있지?”
“너무 많아서 하나씩 말하기는 힘들 것 같은데.”
“대표적인 것만 말해봐.”
“대표적인…. 곰?”
“곰이라. 그건 좀 먹을 만할 것 같은데.”
실비아가 눈을 부릅떴다.
“안 돼요! 곰은 이 숲을 지켜주는 수호 신중 하나예요.”
“곰이 수호신이야?”
“네! 그러니까 절대 먹으면 안 돼요!”
곰이 수호신?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수호신이라는 것은 대체로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지 않던가.
‘그렇다면….’
좋은 생각과 나쁜 생각.
하나씩이 내 머리를 스쳐 갔다.
“알았다. 곰은 먹지 않으마.”
“휴….”
나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실비아 너 지금 시간 널널하니?”
“네.”
“내가 옛날이야기 좀 꺼내도 될까?”
“옛날이야기?”
“그래. 네가 기분이 좀 안 좋아질 수도 있는 이야기.”
“…… 뭔데요?”
나는 조심스럽게 돈 비토의 머리를 꺼내어 실비아에게 보여 주었다. 오크 대장이 앞서 보여 준 머리라 그녀도 정체를 알고 있었다.
“비토의 유골인가요?”
재차 확인하는 그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해.”
실비아가 말없이 돈 비토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
“안 우네? 울 줄 알았는데.”
“……”
“안 울어?”
“제가 울었으면 좋겠어요?”
“아니. 울어도 안 울어도 상관은 없는데 의외여서.”
사건이 발생한 지 시간이 꽤 나 흘렀지만, 그녀의 성격상 눈물을 흘릴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
눈물만 글썽거렸다.
“…… 울지 않기로 했어요.”
“잘했네. 나는 징징대는 아이는 좋아하지 않거든.”
“아이 아니거든요. 근데…. 옛날이야기라는 건 뭐예요?”
나는 벽에 등을 기대었다.
“그 친구, 돈 비토에 관련된 이야기인데 할 수 있겠어?”
“…… 못 할 이유가 있나요?”
“쿨하네.”
실비아가 붉어진 눈을 비비며 말했다.
“슬프지만, 지금은 말 할 수 있어요.”
“그럼…. 한 가지만 물어보자.”
“말하세요.”
“너. 돈 비토와 세계수 앞에서 만나기로 한 날.”
“…… 네.”
“그날 너는 무엇을 하고 있었지?”
* * * * *
<드워프 협곡>
용광로 앞에서 수많은 드워프들이 제련을 하고 있었다. 모루 위, 붉게 달아오른 쇳덩이를 망치로 강하게 내려친다.
캉!
땀 범벅이 된 드워프 한 명이 완성된 물건들을 커다란 모루 위에 줄지어 놓았다.
“여기, 주문한 물건 전부 완성됐네.”
마정우가 사슬 갑옷을 벗어 던지더니 황금 갑주를 건네어 받았다.
“고맙군, 저 갑옷은 서비스야. 쓰고 싶은 곳에 써.”
“오오! 좋아. 수리해서 팔면 가격 좀 받을 수 있겠군. 나머지 물건들은 직접 들고 갈 건가? 많아서 혼자는 힘들 텐데.”
“아니, 전부 내 뒤에 있는 자들이 착용하고 갈 거야.”
드워프는 자신이 준비해놓은 물건들을 하나씩 가져다주었다.
[커다란 황금 도끼]
[푸른빛이 맴도는 도검]
[은빛 단화와 장갑]
[미스릴 군복]
마정우가 황금 도끼를 들며 유소라와 마이클에게 아이템을 배정해 주었다.
은빛 단화와 장갑은 유소라에게.
“천재가 소라 씨 신발 좀 바꿔주라고 하더라고요. 그 장갑은 소라 씨 스킬을 더욱 강하게 해줄 거예요.”
“아…. 감사합니다.”
유소라가 단화와 장갑을 착용했다. 마정우가 그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소라 씨, 천재가 말한 일은 전부 처리했어요?”
“사자의 서요?”
“예.”
“글자가 표시된 곳까지는 거의 다 읽었어요.”
“잘했어요. 그럼…. 마이클, 너는 저 군복 입어. 네가 부탁한 대로 불교 마크도 넣었어.”
부대 마크가 붙어 있어야 할 자리에 불교 문양을 넣어 주었다.
마이클이 군말 없이 새 군복으로 갈아입었다. 미스릴 군복으로 갈아입은 마이클이 팔 벌려 뛰기와 발차기를 하며 몸을 움직여 보았다.
“오우, 뻐킹 라이트! 가벼워요우!”
“미스릴 광석으로 만들어진 옷이라 웬만한 공격은 이제 먹히지도 않을 거야.”
“미스릴 광석?”
“그냥 단단한 금속이라고 생각해.”
“단단한 금속? 이 옷은 부드러운데.”
미스릴로 만든 옷이라 생각되지 않을 만큼 얇고 가벼운 의류.
최상의 대장장이라 불리는 드워프의 기술력으로 만든 물건들이었다.
“그게 바로 드워프의 제련 기술이야.”
“드워프…. 대단해요우.”
아이템 배급을 마치자 드워프의 왕, 드니로가 그들을 찾아왔다.
“마정우!”
“오, 드니로.”
“아이템 제작은 끝났나?”
“당신이 특별 오더를 내려준 덕분에 빠르게 끝낼 수 있었어.”
“허허- 나도 자네 덕분에 협곡을 지켰으니, 샘샘이구만.”
“샘샘? 그런 말은 또 누가 알려줬어.”
드니로가 검지로 마이클을 가리켰다. 마이클이 이빨이 전부 보일 정도로 환하게 웃었다.
“…… 계곡에는 가봤어?”
“그래! 자네가 말한 대로 정말 오크들이 엘프 헬름에서 우리 쪽으로 오고 있더군.”
“처리는 잘했고?”
“그렇지. 그…. 김천재라고 했었나? 자네 친구가 우리를 도와주었어.”
마정우가 씨익 웃었다.
“다행이네. 죽은 오크들은 어떻게 처리했지?”
“어떻게 하냐니?”
“그냥 그대로 계곡에 두고 왔나?”
“…… 흘러내려 간 놈들은 쫓아가지 않고. 덤벼드는 놈들은 전부 죽였다네.”
“죽인 후에는?”
드니로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죽인 후에는 계곡에 던져놨지. 아마 동물들의 먹이가 되었을 거네.”
“…… 그래? 천재가 어떻게 하라고는 하지 않았고?”
“아무 말 없었네.”
의외라는 듯한 마정우의 표정.
그는 푸른빛의 도검을 드니로에게 건네어 주었다.
“이것 좀 천재한테 전해줄 수 있나?”
“이 검을?”
“어. 우리는 지금 그쪽으로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라서.”
“…… 알았네. 더 전달할 물건은 없나?”
“없어. 그나저나 전쟁 준비는 잘 되고 있어?”
드니로가 방긋 웃었다.
“그럼. 내일이면 완벽하게 준비가 끝나네.”
“우리는 언제 참전하면 되는 거지?”
“내일모레, 어둠이 오면 언덕에 별이 쏟아질 거네. 그때 시작하도록 하지.”
“…… 좋아.”
* * * * *
<오크 요새>
피투성이의 오크 무리가 요새 앞에 도착했다. 그들 중 대부분은 몸에 화살이 박혀 있거나 큰 상처가 있었다.
수는 대략 오백.
댐의 방류로 떠내려간 덕분에 살아남은 오크와 전장에서 도망간 자들이었다.
비틀거리는 그들의 앞으로 해골 지팡이를 들고 있는 늙은 오크 한 마리가 다가왔다.
“어떻게 된 일이냐?”
피투성이의 오크 중 한 명이 앞으로 나와 대답했다.
“카바타 님…. 죄송합니다. 적에게 당했습니다.”
“적? 너희들이 엘프에게 당했다고?”
“…… 아닙니다. 드워프 그리고 인간입니다.”
늙은 오크가 지팡이로 땅을 쳤다.
쿵.
“인간이 왜…?”
“저희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인간 네크로맨서가 트롤 부대를 끌고 와서 저희를 공격했습니다.”
“트롤 부대?”
“예. 보랏빛 몸을 가진 트롤 부대였는데, 계속 베어내도 재생하는 괴물이었습니다.”
“계속 재생하는 괴물이라….”
카바타가 등을 보였다.
“그래서, 엘프 헬름은?”
“…… 죄송합니다.”
“자네는 죄송하다는 말 밖에 할 줄 모르나?”
“…….”
“오르쿠 대장은 어디 갔나?”
피투성이의 오크가 대답을 망설였다. 카바타가 지팡이 끝으로 땅을 툭툭, 치자 눈치를 보며 대답했다.
“오르쿠 대장은…. 방금 말씀드린 인간 네크로맨서에게 당했습니다.”
카바타가 놀란 듯 눈을 부릅떴다.
“뭐?! 오르쿠가 인간에게?”
“예…. 어둠의 기운을 내뿜는 인간이었는데, 아까 말씀드린 그 네크로맨서입니다.”
“네크로맨서가 어둠의 기운을 내뿜었다고?”
“그렇습니다. 과거, 저희를 공격했던 그 악마들과 비슷한….”
악마 이야기가 나오자 요새에 모인 오크들의 표정이 전부 굳었다.
카바타는 생각에 잠긴 듯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다른 오크들이 눈치를 보며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카바타 님…?”
“아! 잠깐 생각 좀 했네. 그래서 살아남은 자들은 이게 끝인가?”
“예….”
“후우-. 우선 모두 치료하도록 해라. 치료가 완료되면 오르크스에게 보고하도록 하고.”
“알겠습니다.”
피투성이의 오크들이 요새 안으로 들어갔다.
오크라기에는 덩치가 매우 큰, 오우거에 가까운 자가 다가와 카바타에게 물었다.
“카바타 님, 인간 중에 오르쿠를 상대할 수 있는 놈이 있습니까?”
“…… 나도 모른다. 다만 어둠의 기운을 사용한다고 했으니, 보통 놈은 아니겠지.”
거인 오크가 손가락으로 턱을 쓸었다.
“제가 처리하고 오도록 할까요? 간 김에 엘프 헬름도 처리하고-”
“아직이야. 앞으로 이틀 후, 별이 쏟아지는 밤. 이 땅의 모든 생명체가 우리 밑으로 들어오게 될 테니 기다리도록 하게나.”
“…… 알겠습니다.”
“그럼 결전의 날까지. 모든 준비를 완벽하게 해놓도록.”
로그인 더 아포칼립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