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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화

망루의 불이 꺼진 이후로 대륙 전체가 시끄러워졌다.

드워프들은 협곡을 무대로 오크와의 전쟁을 선포하였고.

그에 따른 여파로 엘프 헬름이 하루에 한 번씩 오크 부대에 공격당했다.

다섯 번째 라운드에 참여한 플레이어들은 각자의 이익을 위해 움직였으며,

우리 그룹은 어느 한쪽 편에 서지 않고 계획해 놓았던 일만 진행하였다.

나는 메인 이벤트가 시작될 동안 박규환을 이용해서 드워프 협곡에 있는 마정우와 연락을 했다.

아이템 제작을 마치는 대로 이번 라운드를 끝내기로 했었는데.

그 준비가 끝나간다는 연락이 왔다.

“…… 슬슬 움직여볼까.”

나는 종이쪽지를 찢었다.

그리곤 세계수를 통해 트롤 부대를 이쪽으로 불러왔다.

-크에에에엑!

X 바이러스에 감염된 보랏빛 트롤. 나는 그들을 이끌고 엘프 헬름으로 향했다.

가는 길, 오크가 보일 때마다 전부 잡아 죽였다. 그들과의 대화는 없었다.

소통할 필요가 없으니깐.

내게 쫓겨 궁지에 몰린 오크 한 마리가 절망적인 표정을 지었다.

“트, 트롤이면 우리와 동맹 관계가 아닌, 크아아악! 사, 살려줘!”

콰직!

내 수하에 있는 트롤 한 마리가 오크의 목을 물어뜯었다.

-키에에엑.

피로 얼룩진 얼굴의 트롤이 나를 보았다.

“…… 잘했다, 가자.”

엘프 헬름에 가까워지자 함성이 들려왔다. 두 마디 음이 일정한 가격으로 들려왔다.

-우! 어! 우! 어!

-오늘이야말로 엘프들을 끝장냅시다!

-그래요. 오르쿠 대장, 이 녀석들만 없으면 드워프들도 시간문제입니다.

숲을 가득 메우고 있는 오크 부대. 그들이 엘프 헬름을 둘러싸고 있었다.

투석기 따위의 공성 장비들을 가져온 것으로 보아 본격적인 전쟁을 치르려는 것 같은데.

겨우 이 정도 병력만 끌고 왔다고? 생각될 정도로 적은 인원이었다.

물론 엘프들에 비해서는 많지만, 전력을 다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대략 오백에서 육백 정도의 오크.

‘나머지 병력은 어디 있으려나….’

철갑옷으로 무장한 오크 중 제일 덩치가 큰 자가 앞으로 나왔다.

꽁지 머리에 커다란 도끼를 들고 있는 초록색 오크.

그가 머리 위로 주먹을 들었다.

“엘프 여왕은 들어라. 오늘부로 엘프 헬름은 우리 것이다!”

-우어!

엘프의 기사 단장인 블란트가 소리쳤다.

“오크들이여 돌아가라. 우리는 너희와의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

“…… 지랄. 쏴라!”

피융-

화살이 날아올랐다.

엘프 기사들이 방패를 들어 몸을 숨겼다.

투두두두두둑!

비처럼 쏟아지는 화살이 엘프 헬름을 덮었다.

화살 비가 멈추자, 블란트가 소리쳤다.

“발사!”

후방에 대기하고 있는 엘프 궁수들이 반격의 화살을 날렸다.

한 번, 두 번, 세 번.

오크와 엘프는 서로 화살 세례를 주고받았다.

블란트가 한숨을 내뱉었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엘프 헬름이 계속해서 파괴되니, 블란트 입장에서는 한시 빨리 해결책을 내놓아야 했다.

나는 멀리서 그들의 전투를 지켜보기만 했다.

아직 내가 나설 때가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칼로스!”

오크 대장이 소리치자, 꼽추처럼 허리가 굽고 네발로 걷는 오크가 달려왔다.

“부르셨습니까.”

“준비해라.”

“…… 예!”

그가 자신의 등에 매달린 통을 꺼내어 뚜껑을 열더니, 몸에 기름을 쏟아부었다.

싸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대장님! 준비됐습니다!”

“…… 좋아. 출발해라.”

“예!”

꼽추 오크가 철 투구를 쓰고 폭탄 하나를 움켜쥐더니 엘프 진영을 향해 달렸다.

몸을 보호하는 갑옷은 입지 않았다.

그저 낭심을 가리는 거적때기 하나만을 걸쳤을 뿐.

꼽추를 발견한 블란트가 크게 소리쳤다.

“1소대, 문을 지켜라!”

엘프 기사 중 발 빠른 몇이 화살을 피하며 앞으로 치고 나갔다.

그들은 망토를 흔들어 머리 위로 쏟아지는 화살을 막아내고. 엘프 헬름의 입구를 향해 달려오는 꼽추 오크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샥-

“크억….”

검날이 오크의 복부를 뚫고 들어갔다.

“이 이상은 못 간다.”

꼽추 오크가 자신의 몸에 박힌 검날을 더욱 깊이 박아 넣으며 씩 웃었다.

“오크 로드를 위하여!”

피융-

팍!

멀리서 날아온 불화살이 꼽추 오크에게 명중했다.

화르르르르륵.

불이 몸 쪽으로 옮겨붙더니,

콰광!

폭발음과 함께 불꽃이 치솟아 올랐다.

세계수 뿌리에 구멍이 나며 엘프 헬름으로 들어가는 새로운 입구가 생겼다.

함성과 함께 오크가 쏟아져 들어왔다.

엘프들이 적을 막기 위해 맞서 싸웠다.

-꺄아아아악!

-아, 안돼. 우리 엄마를 데리고 가지 마!

-정령 신님….

기사단 뒤에서 꽃무늬 셔츠의 대머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스 웨이브.

지면이 요동을 치며 파도 형상을 만들더니, 그대로 오크들이 만든 구멍 쪽으로 쓸려갔다.

쿠궁!

단단하게 뭉쳐진 흙이 구멍을 막았다.

“이 빌어먹을 오크 새끼들이!”

차카니가 모습을 드러냈다.

뒤이어 김연희가 뛰어와 전투에 합류했다.

“감히 신성한 엘프 헬름에 더러운 오크들이 오다니. 죽어라!”

[엘프 측 플레이어 전원 합류]

[메인 이벤트의 첫 번째 스토리가 진행됩니다.]

[스토리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 플레이어의 움직임이 일시적으로 제한됩니다.]

엘프 헬름 전역에 결계가 쳐졌다.

모든 플레이어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전투가 잠시 멈추고 오크 대장이 앞으로 나왔다.

“엘프들의 여왕이여. 지금이라도 이곳에서 떠난다면 목숨만은 살려주도록 하지.”

숲속에서 샬로트의 목소리가 울려서 들려왔다.

“이곳은 오래전부터 엘프들의 땅이었습니다. 떠날 수 없습니다.”

“이제는 우리 땅이다.”

“같이 공존하면 되지 않습니까?”

“아니, 말도 안 되는 소리. 어둠과 빛이 같이 공존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

오크족의 대장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나는 분명 오래전부터 경고했다. 이 땅을 떠나라고. 그런데도 떠나지 않은 엘프들에게는….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

“오크 족장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 당연한 것 아닌가. 나는 그분의 명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그분과 대화를 할 수 있는지요?”

“아- 니. 카바타 족장님께서는 엘프와의 대화를 원치 않으신다.”

“…… 저희는 평화를 원합니다.”

“우리는 전쟁을 원한다.”

[엘프 여왕과 오크 대장의 협상이 결렬되었습니다]

[두 종족은 현 시간부로 전시 상태에 돌입하게 됩니다.]

쿵!

“엘프 여왕, 지금 내 목에 걸려있는 이 해골이 누구 것인지 알고 있나?”

오크 대장이 자신의 목에 걸고 있는 해골바가지를 보여주었다.

“…… 모르겠군요.”

“돈 비토. 돈 비토의 머리다.”

“비…. 토?!”

엘프 헬름이 술렁였다.

이야기를 듣던 실비아 공주가 나무집에서 뛰쳐나왔다.

그녀는 고풍스러운 백색의 드레스가 아닌, 전장의 기사와 같은 가죽 갑옷과 망토를 입고 있었다.

다다다다다-!

“네 이놈!”

블란트가 빠르게 달려가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놔요!”

“공주님, 진정하셔야 합니다.”

“놓으라고!”

“도발에 넘어가시면 안 됩니다. 그게 바로 저놈들이 원하는 상황-”

쾅!

세계수 방향에서 굉음이 들려왔다. 검은 연기가 높게 치솟아 올랐다.

연기의 모양이 회오리처럼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오크의 대장이 연기를 확인하더니 두 눈을 부릅떴다.

“제길.”

그가 분한 얼굴로 엘프 헬름을 크게 둘러보더니 퇴각 명령을 내렸다.

“퇴각! 전원 드워프 협곡으로 이동하도록 한다! 엘프 여왕이여, 내일 다시 보도록 하지.”

엘프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기사단장 블란트는 그의 행동을 믿을 수 없다는 듯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오크들이 한 둘씩 숲속으로 사라졌다. 병력이 많은 터라 빠르게 이동하지는 못했다.

샬로트가 떨리는 목소리로 오크 대장에게 물었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그 머리, 정말 돈 비토의 것입니까?”

“…… 그래.”

실비아가 이를 바득바득 갈며 오크 대장을 쳐다보았다.

블란트가 그녀의 귀에 속삭였다.

“오크들의 더러운 거짓말입니다. 믿지 마십시오.”

“……”

“저자의 말이 진실이라면, 제가 목숨을 걸고서라도 찾아오도록 하겠습니다.”

[돌발 임무 발생!]

[엘프 헬름을 습격한 오크 부대를 추격한다.]

[YES/NO]

[*현 시간부로 모든 플레이어의 움직임이 허용됩니다.]

두 가지의 선택지가 나왔다.

PC 버전에서는 없었던 새로운 임무.

다른 이들은 어떤 결정을 내릴까?

나는 차카니와 김연희가 선택지를 고를 때까지 기다렸다.

“……”

그들의 머리 위로 파란색 홀로그램 글자가 나타났다.

[NO]

현재 엘프 헬름에 머무는 모든 플레이어의 머리에 전부 NO라는 선택지가 보였다.

굳이 싸울 필요 없는 전투에는 참여하지 않겠다는 건가.

두세 명 정도는 도전할 줄 알았는데 아쉽군.

“…… YES.”

* * * * *

나는 내 수하에 있는 모든 병력을 데리고 오크 부대의 뒤를 추격했다.

그들은 엘프 헬름에서 드워프 협곡으로 이어진 계곡을 따라 움직였다.

산을 넘어가려면 오랜 시간이 걸리니, 지름길을 선택했나 보다.

-오늘은 계곡물이 낮아서 다행이야. 발목까지밖에 안 오네.

-그러게, 평소에는 허리까지 오잖아?

-물이 낮지 않았으면 산을 돌아가야 했을 텐데. 운이 좋군.

오크 중 한 명이 코를 킁킁거리며 대장에게 말했다.

“대장, 근처에서 드워프 냄새가 나는 것 같은데요?”

오크 대장이 귀를 쫑긋거렸다.

“드워프?”

“예.”

“바람에 드워프 냄새가 섞여 있는데, 멀지 않은 곳에 놈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 바람은 항상 협곡에서 불어오니. 그곳의 냄새를 가지고 왔겠지.”

“그렇다기에는 냄새가 너무 가까운데….”

피융-

탁.

화살 한 발이 오크 대장 앞에 떨어졌다.

이어 수풀에 숨어있던 드워프 전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더러운 오크 새끼들!”

미스릴 갑주와 방패. 그리고 두터운 워해머를 들고 있는 단신의 드워프 부대.

그들이 협곡으로 향하는 오크들 앞에 나타났다.

오크 대장이 자신 앞에 박혀있는 화살을 빼 들더니 드워프 전사에게 소리쳤다.

“죽고 싶어서 여기까지 왔나?”

드워프 중 황금 갑주를 입은 자가 앞으로 나와 대답했다.

“죽고 싶어서 왔겠나? 죽이고 싶어서 왔지.”

“드니로….”

오크 대장이 드워프 병력의 수를 대강 세어보더니 피식 웃었다.

그리곤 목에 걸려있는 해골을 들어 드니로에게 보여주었다.

“드니로, 이게 누구 머리인지 알고 있나?”

“머리뼈를 보아 우리 종족인 것 같군.”

“맞아. 누구 것 일 것 같나?”

“…… 글쎄다.”

“모르겠나? 자네와 연이 아주 깊은 사나이인데.”

“나와 연이 깊은…. 설마……?”

“껄껄껄껄! 돈 비토. 네 아들놈의 머리다.”

잠깐이지만 드니로의 동공이 흔들렸다.

오크 대장이 돈 비토의 머리를 혀로 핥더니 비꼬듯 말했다.

“드워프들은 죽음도 무서워하지 않는다면서? 이 녀석은 조금 다르던데 말이야.”

“……”

“이 녀석이 죽기 전에 뭐라고 했는지 알고 있나? 질질 짜면서 목숨만은 살려달라고 하더군.”

드니로가 호통을 쳤다.

“닥쳐라! 내 아들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나약한 전사가 아니었다.”

“그래? 허허…. 그럼 이번 기회에 증명해 보여라. 드워프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 한 가지만 물어보도록 하지. 네가 내 아들을 죽였나?”

오크 대장이 과거를 회상하듯 하늘을 보았다.

“그래, 멍청한 놈이 무기는 없고 꽃을 들고 다니더군.”

“…… 듀발.”

두꺼운 책을 들고 있는 드워프 병사가 드니로 옆으로 붙었다.

“부르셨습니까.”

“개방해라.”

“…… 옙!”

듀발이 허리춤에 있는 뿔피리를 불었다.

부우- 부우부우-!

촤르르륵-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숲에 강풍이 불어왔다.

멀리서 무언가 다가오고 있다.

[계곡의 상류 댐이 개방됩니다.]

‘뭐? ’

드워프 전사들이 방어적인 전술을 펼쳤다.

거북이 등껍질 같은 방패를 들고 계곡 위로 올라오는 길을 막았다.

오크 대장이 소리쳤다.

“뭘 하는 거냐.”

드니로가 대답했다.

“곧 알게 될 거다.”

스르르르르르.

계곡의 수위가 조금씩 높아졌다.

발목을 적실 정도였는데, 순식간에 정강이까지 올라왔다.

오크들이 드워프의 작전을 눈치를 챘을 때는 이미 늦었다.

머리보다 높은 물살이 그들을 향해 밀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크 대장이 소리쳤다.

“빌어먹을 드워프 새끼들이!”

“우리는 전사의 피를 가진 자. 엘프들과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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