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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인 더 아포칼립스-60화 (60/215)

60화

정우가 장비를 제작하는 동안, 나는 메인이벤트를 준비했다.

이곳의 지형은 이미 전부 외우고 있기에 오크 요새까지 가는 것은 그리 힘들지 않았다.

내가 알고 있는 오크 요새는 육군 중대 수준의 크기라고 알고 있었는데.

이곳은 달랐다.

사단급이다.

산 하나를 전부 요새로 사용하고 있다고 생각해도 될 만큼 컸다.

병력 또한 최소 만 명 이상.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오크가 요새를 가득 채웠다.

“…… 이걸 어떻게 이기라고.”

한숨이 절로 나왔다.

드워프와 엘프를 합쳐봤자 겨우 삼천 정도 일 텐데.

적은 그 세 배 이상의 수를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요새 탐방을 마친 나는 세계수 근처로 돌아와 휴식을 취했다.

“…… 나와.”

나무 뒤에 숨어있던 실비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떻게 알았어요?”

“향기. 네 몸에서는 꽃향기가 나서 모를 수가 없어.”

대부분의 엘프는 몸에서 꽃향기를 뿜어냈다.

향의 농도는 개인마다 다르지만, 실비아 같은 경우에는 아카시아 나무 바로 옆에 서 있는 것처럼 강한 향이었다.

그녀가 방긋 웃으며 총총걸음으로 다가왔다.

“여기요.”

실비아가 과일 바구니를 건네었다.

“…… 고마워.”

나는 실비아에게 바구니를 받으며 살짝 미소를 날렸다.

“오늘은 과일밖에 없어요. 오크들이 나흘째 계곡을 점령 중이라 당분간 물고기는 힘들 것 같아요.”

별이 쏟아지는 언덕에 온 지 어언 일주일. 그녀는 매일같이 나를 찾아와 먹을 것을 주었다.

이유를 물어볼 때마다 웃기만 해서 답답하기는 하지만.

덕분에 굶주리지는 않게 되었다.

“이 정도면 충분해.”

“그래요? 히히히히.”

그녀는 입꼬리를 활짝 올려 어린아이처럼 웃었다.

엘프족의 공주치고는 품격이 좀 떨어지기는 하지만, 그래도 친근하니 좋네.

“네가 여기 있는 것을 알면 어머니가 노발대발 하실 텐데?”

“괜찮아요. 잠시 산책 다녀왔다고 하면 돼요.”

“그래도 조심하도록 해. 숲은 위험하니깐.”

“네- 에!”

나는 피식 웃은 후 그녀가 준 과일을 크게 베어 물었다.

생김새는 사과와 같은데 꿀처럼 달고 진득한 액체를 가진 과일이었다.

“실비아.”

“네.”

“나는 네가 나를 왜 찾아오는지 모르겠다.”

“…… 그냥요. 그냥 같이 있고 싶어서요.”

“그냥 이라는 건 없어. 모든 행동에는 이유가 있지.”

실비아가 고개를 불쑥 들이밀었다.

“왜 없어요? 아저씨는 움직일 때마다 항상 이유를 붙여요?”

“…… 그렇지. 배고플 땐 먹고, 마려울 땐 싸고, 졸릴 때는 잔다.”

“오올-. 그럴듯한데?”

“아니, 그럴듯한 게 아니라 당연한 거야.”

“에휴…. 참 복잡하게 사시네. 저는 그냥 아저씨랑 같이 있고 싶어서 온 거예요. 엘프 헬름 안에 있으면 답답하니까요.”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엘프 헬름이 답답해?”

“당연하죠! 공주님 이거 하세요, 공주님 저거 하세요, 공주님 체통을 지키세요, 공주님 어쩌고저쩌고.”

“전부 너 잘되라고 하는 말이야.”

“예예, 그러세요. 저희 어머니랑 똑같은 이야기를 하시네요.”

어머니라….

“혹시 네가 나를 만나는 것을 아는 사람이 또 있니?”

“아뇨. 엘프 헬름에서는 몰래 나오기 때문에 아무도 몰라요.”

“흐음….”

그럼 다행이다.

혹시라도 누군가가 이 장면을 보고 여왕에게 말한다면 숲에서조차 쫓겨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저씨.”

“응?”

“밖에 세상은 어때요?”

“어떠냐니?”

“세계수 밖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냐고요.”

아, 그 말인가?

하긴 이쪽의 시선에서 보았을 때는 내가 온 곳이 밖이니깐 그럴 수 있다.

나는 턱을 만지며 그녀에게 대답했다.

“그냥. 이곳이랑 별 다를 바 없어.”

“에?”

“에는 뭐가 에야.”

“아니…. 밖에도 그렇게 재미없어요?”

“재미없어. 다른 점이라고는 내가 온 곳은 항상 전시 상황이라는 거지.”

실비아가 입술을 삐죽 내밀고 툴툴거렸다.

“그게 뭐예요….”

과일을 다 먹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긴, 인간이지.”

“인간들은 전쟁을 좋아하나요?”

“그건 나도 모르겠다.”

“아저씨도 전쟁을 좋아해요?”

전쟁을 좋아하냐는 질문에 헛웃음이 나왔다.

“…… 아니. 좋아하면 내가 여기 있겠니.”

“하긴…. 제가 어머니께 말씀드려볼까요? 아저씨는 좋은 네크로-”

나는 실비아의 말꼬리를 잘랐다.

“아니, 괜찮다. 네 몸이나 잘 챙겨.”

“…… 아저씨.”

“또 왜?”

“오늘 이곳에서 회담이 있는 거 아세요?”

“회담?”

실비아가 세계수에서 오백 미터 정도 떨어진 장소를 손으로 가리켰다.

통나무를 잘라서 만든 의자에 돌로 만들어진 기다란 테이블이 있었다.

‘설마?’

“오늘은 드워프 협곡의 왕과 저희 어머니가 모노아크 대륙에 평화를 위해 회담을 하는 날이거든요.”

“…… 언제 하는지 알고 있니?”

“해가 세계수의 머리와 같은 지점에 뜰 때 해요.”

나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앞으로 한 시간 이내에 해가 세계수의 머리 위로 올라온다.

“그럼 곧 한다는 거잖아?”

“네.”

아니 이 양반아!

그걸 이제 말해주면 어떡하냐고.

[시스템 메시지]

[앞으로 60분 후 별이 내리는 언덕의 정상에서 엘프/드워프 회담이 시작됩니다.]

[다섯 번째 라운드의 신규 플레이어는 전원 소환될 예정이니 준비해주시기 바랍니다.]

“실비아.”

“응, 아니 네.”

“빨리 엘프 헬름으로 돌아가.”

“왜요?”

“위험하니깐. 망루까지 데려다줄 테니 기사들하고 같이 돌아가도록 해.”

나는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

“아, 아저씨. 무슨 일 있어요? 회담 때문이에요?”

“그래.”

“회담이 왜요?”

“너와 내가 같이 있는 것을 다른 이들에게 들키면 우리 둘 다 난처하게 돼.”

“왜요?”

나는 걸음을 멈추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너희 어머니는 나를 싫어하니깐. 아니, 네크로맨서를 싫어하니깐. 서로 조심해서 나쁠 필요 없어.”

대화의 내용이 뭐랄까….

사랑의 도피처에서 몰래 만나는 싸구려 로맨스 같다.

그녀에게 아무런 감정도 없는데 말이다.

내가 실비아에게 느끼는 감정은 식사를 받는 고마움 뿐.

그녀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인간에 대한 호기심.

“…… 알았어요.”

“숲에서 쫓겨나면 내가 난처해져서 그래. 이해해라.”

“내일도 여기 있으실 거예요?”

“아마도. 잠깐…. 내일부터는 이곳으로 오지 마라.”

“또, 왜요!”

나는 실비아의 어깨를 툭툭 쳤다.

“위험해서 그래. 내가 곧 엘프 헬름으로 갈 테니 거기서 기다리도록 해.”

“아저씨는 엘프 헬름으로 못 들어오잖아요?”

“들어갈 방법이 생각났어. 네가 도와주기만 하면.”

“…… 뭔데요?”

[‘실비아’가 당신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 합니다.]

좋았어.

이제 그녀는 내 부탁을 거절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그녀의 귀에 속삭였다.

“그게 말이야….”

* * * * *

태양이 세계수 위로 떠올랐다.

모든 플레이어가 세계수 근처로 강제 소환되었다.

대충 세어보니 서른 명 정도.

네 번째 라운드에서 먼저 떠났다는 고티는 보이지 않았다.

마정우가 내게 눈인사했다.

나도 눈인사로 대답한 후 세계수 위에 몸을 숨겼다.

시간이 흐르자 플레이어들이 회담 장소로 자리를 옮겼다.

나는 그들과 거리를 두고 멀리서 쳐다보았다.

-쿵! 쿵! 쿵! 쿵!

먼저 도착한 종족은 키는 작지만, 기골이 장대한 종족.

[드워프]

드워프 진영에서 ‘철컹철컹’ 갑주 흔들리는 소리와 함께 찾아온 병력이 언덕의 반을 메웠다.

그들 중 황금 왕관을 쓰고 있는 드워프의 왕이 통나무에 앉아 턱을 쓰다듬었다.

“듀발, 듀우 발!”

성경처럼 두꺼운 책을 들고 있는 드워프가 뛰어왔다.

“부르셨습니까.”

“오늘 회담이 끝나는 대로 이곳에 모인 전원, 바로 격전지로 이동할 수 있도록 준비하게나.”

듀발이 난처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 엘프들이 가만있을까요?”

“가만히 있지 않으면 어쩌려고? 우리도 참을 만큼 참았어. 더는 오크들의 노략질을 견딜 수가 없네.”

“그래도 엘프와 평화의 망루에 약속한 이상, 서로 합의한 내용은 지켜야 할 텐데요….”

“약속은 깨라고 있는 것이야. 벌써 오 년이나 지켰으니깐, 나는 할 만큼 했어.”

드워프의 왕, 드니로.

게임 속 설명과 완전히 일치한다.

자기 생각이 맞는다고 판단하면 틀린 일이라도 막무가내로 진행하는 사나이.

그들의 대화가 끝나기 무섭게 엘프 진영에서 기사단이 도착했다.

가죽 갑옷을 입은 그들이 망토를 휘날리며 일렬로 섰다.

엘프 여왕이 드워프 왕의 반대편에 앉았다.

“드니로, 오랜만이군요.”

“당신도 오랜만이야, 샬로트. 이렇게 갑자기 회담을 하자고 해서 미안하군.”

둘이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잘 지냈겠나? 오크 새끼들이 이렇게 날뛰는데 말이야.”

“…… ”

“오늘 회담을 주체한 이유는 알고 있지?”

샬로트가 손짓하자 돌로 만들어진 테이블 위로 나뭇잎들이 모였다.

“오크 때문이겠지요.”

나뭇잎들이 흔들거리며 천천히 이동하더니 모노아크 대륙의 지도로 바뀌었다.

“그렇지! 알고 있으니 대화가 빠르게 진행되겠구만.”

“……”

“엘프 헬름의 상황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들어서 알고 있네. 일주일에 한 번꼴로 오크들이 공격 온다면서?”

샬로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언제까지 그들을 두고 볼 생각인가?”

“…… 무슨 말이시죠?”

드니로가 손가락을 까딱이자, 그의 병사가 잘린 오크 머리를 들고 와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오크들. 점점 수가 많아지고 있어.”

“그래서요?”

“사냥을 시작해야지.”

“…… 또, 그 말씀이신가요.”

드니로가 혀를 찼다.

“또라니? 이보게 샬로트! 그들은 괴물이야. 우리의 평화를 위협하는 적이라고.”

“무력으로는 평화를 가져올 수 없습니다.”

“무력이 없다면 평화도 없지.”

“드니로-. 오크와는 대화로 풀어나가도록 해요. 저희가 노력하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대화할 생각이지? 그들이 이 대륙을 지배할 때까지 기다릴 생각인가?”

샬로트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 전에 대화가 끝날 것입니다.”

“전쟁이 먼저 다가올 것이네. 나는 더 이상 내 동족들이 죽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어.”

“조금만 참으십시오.”

“아니! 엊그제도 내 사촌 동생이 오크 놈 손에 갈가리 찢겨 죽었는데, 어떻게 더 참으라는 말인가?!”

“…… 진정하세요.”

“진정? 자네도 가족을 잃으면 그런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블란트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드니로 왕. 말이 지나치시군요.”

“지나치다니? 내가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니고! 평화를 가져오겠다는데 무슨 말이 지나쳐?”

샬로트가 블란트의 복부를 살며시 밀며 대화에 끼어들지 말 것을 당부했다.

“블란트, 네가 낄 자리가 아니다.”

“…… 죄송합니다, 여왕 폐하.”

“드니로. 당신 아들이 원한 것은 평화였습니다. 전쟁이 아니라요.”

“지금 평화를 찾아오는 방법은 전쟁밖에 없네. 오크들의 세력이 점점 커지고 있어, 이제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고.”

“…… 전쟁은 또 다른 전쟁을 낳습니다.”

“답답한 소리! 전부 죽어야 정신을 차릴 겐가? 자네 딸이 죽어도 그런 말이 나오겠어? 내 아들이 왜 죽었는지 알고 있잖아!”

드워프의 왕과 엘프의 여왕이 서로 말없이 바라보았다.

정적이 흘렀다.

드워프의 왕이 답답한 듯 한숨을 쉬더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샬로트, 우리는 전쟁을 준비하도록 하겠네.”

“안됩니다!”

“자네들이 원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움직일 거야.”

“전쟁이 시작되면 많은 희생자가 나올 겁니다.”

“자네들이 말하는 평화가 내가 생각하는 것과 같다면. 그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희생도 감수해야 해.”

“그…. 그건….”

드니로가 턱짓으로 협곡으로 돌아가라는 신호를 주었다.

듀발이 드워프 전사들에게 협곡으로 복귀할 것을 명령했다.

드워프들이 하나둘씩 세계수에서 떠나기 시작했다.

샬로트가 멍하니 그들을 바라보았다.

협곡을 향해 걷던 드니로가 등을 보인 채 크게 소리쳤다.

“오늘부로 우리 쪽 망루는 불이 꺼질 것이야. 그렇게 알도록 하게나.”

“드니로!”

“샬로트, 그동안 고마웠네.”

그렇게 드워프들이 전부 떠났다.

그들이 사라지는 것을 지켜본 엘프들이 한동안 회담 장소를 지켰다.

[시스템 메시지]

[현 시간부로 ‘오크 요새’의 공격이 활성화됩니다.]

[다섯 번째 라운드에 참여하신 모든 플레이어는 오크의 습격을 조심하도록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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