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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화

김천재가 도시에서 나간 이후로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결전의 날은 다가왔고,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아지트에 있는 한국 플레이어 중 한 명이 나와 마정우에게 물었다.

“정말 저희 작전대로 될까요?”

“안 되면요?”

“그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포기하려면 미리 말씀하세요. 국가대항전에서 빼도록 할 테니까요.”

“…….”

질문했던 남성이 자리로 돌아갔다.

감옥에서 풀려난 김리아가 다가왔다.

“정우 아저씨.”

“왜요?”

“감염된… 분들은 다시 되돌리지 못하는 건가요?”

마정우가 답답한 듯 담배를 꺼내 물었다.

“예.”

“하….”

“Z 바이러스 치료제로는 X 바이러스를 없앨 수 없어요. 게다가 감염된 지 너무 오래돼서 돌이킬 수 없을 정도고요.”

“그럼 그 안에 계신 분들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삼 일 후 죽거나…… 좀비로 변해서 저희를 공격해오겠죠?”

“…….”

[시스템 메시지]

[앞으로 1시간 후 정복 게임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섯 번째 라운드에 속하는 모든 플레이어는 게임을 준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현 시간부로 한국 군부대가 ‘정복자의 무덤’ 도시 앞으로 소집됩니다.]

[현 시간부로 중국 군부대가 ‘정복자의 무덤’ 도시 앞으로 소집됩니다.]

[현 시간부로 일본 군부대가 ‘정복자의 무덤’ 성 앞으로 소집됩니다.]

시스템 메시지를 확인한 마정우가 크게 소리쳤다.

“그럼 다들 준비하도록 합시다!”

한국 플레이어들이 장비를 챙기기 시작했다.

마정우가 허공을 보며 넌지시 말했다.

“그룹.”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김천재’님의 플레이어 그룹」

-김천재: 나쁨(노랑)

-마정우: 양호(파랑)

-유소라: 양호(파랑)

-마이클 비치: 양호(파랑)

[양호(파랑): 생명력 90% 이상]

[보통(초록): 생명력 75% 이상]

[나쁨(노랑): 생명력 50% 이하]

[최악(빨강): 생명력 15% 이하]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늦지 마라, 김천재.”

* * * * *

네 번째 라운드의 메인 이벤트가 펼쳐지는 도시 앞으로 각 국가의 군대가 모이기 시작했다.

남쪽에는 김준철 소령이 이끄는 한국군.

서쪽에는 무협 영화에서나 볼법한 복장을 갖춘 중국군.

성 앞에는 일제강점기 시절 복장의 일본군.

마지막으로 북쪽 문에는 이번 라운드의 심판자라고 불리는 사나이가 나타났다.

부웅- 부웅- 부웅- 부웅-

검은 드래곤을 타고 있는 남성.

김정재.

그가 하늘을 날아 성의 꼭대기에 도착하자 도시 내에 있는 모든 플레이어가 도시 밖으로 강제 송환 되었다.

일본을 제외하고 말이다.

[도시 내에 대기 중인 모든 플레이어가 추방됩니다.]

팟!

각자 자신이 속한 국가의 위치로 이동하게 되었다.

한국 플레이어는 한국 군인 NPC가 있는 곳으로.

중국 플레이어는 중국 군인 NPC가 있는 곳으로.

일본 플레이어는 일본 군인 NPC가 있는 곳으로.

한국 플레이어가 도착한 곳에는 거인족들이 드나들 것만 같은 높은 철문이 굳게 닫혀있었다.

문지기는 사라졌다.

상황을 살피려는데, 중국 플레이어가 모여 있는 서쪽 문 앞 다리에서 난리가 났다.

본 게임이 시작되기도 전에, X 바이러스에 감염된 플레이어들이 같은 편을 공격하기 시작한 것.

크하악. 크하아아악!

-뭐, 뭐야 이 새끼들. 왜 피부가 보라색이야?

-아악! 내 어깨! 내 어깨! 이 좀비 새끼가 나를 물었어!

-어? 재는 왕차우링 아니야? 왜 으아아악!

역시 김리아에게 들은 대로다.

최약체로 불리는 일본 플레이어들이 게임에서 매번 이길 수 있던 이유.

바이러스를 이용한 단체 감염.

적국의 포로들을 바이러스 실험체로 삼은 후, 저런 식으로 공격했다지.

역시 비열하고 더러운 놈들이었다.

중국 플레이어의 대부분이 벌써 공황 상태다.

그러나 그들 중 몇은 이 상황이 익숙했는지 감염된 플레이어들의 목을 베어 빠르게 처리했다.

마정우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역시나 한국 포로 중에도 감염된 자들이 몇 있었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도끼를 휘둘러 놈들을 처리했다.

콰직!

“모두 피에 닿지 않게 조심해!”

피부가 보라색으로 변한 자들이 대략 열댓명.

마정우가 움직이자 군대도 움직였다.

김준철 소령이 검을 휘둘렀다.

부웅-

팍!

그는 잘라내지 않고 검등으로 감염 플레이어들을 날려 보냈다.

X 바이러스에 감염된 좀비의 몸이 붕 뜨더니 협곡 밑으로 떨어졌다.

-키에에에에엑!!!

김준철이 마정우에게 물었다.

“천재 씨는 무사하신지요?”

“예.”

“……다행입니다.”

김준철이 할 말만 하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성 전역이 고요하다. 정적이 흘렀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서로 눈치를 보며 침만 꿀꺽 삼켰다.

협곡 밑에서 괴물들의 소리가 들려왔다. 숲에서도 알 수 없는 기이한 소리가 들렸다.

도시 밖에 모인 플레이어 모두가 긴장이 역력한 표정이었다.

마정우가 계속 숲 쪽을 쳐다보았다.

“김천재….”

[앞으로 10초 후 이번 라운드의 메인 게임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10

9

8

7

.

.

.

.

.

0

[현 시간부로 다섯 번째 라운드의 메인 이벤트가 시작됩니다.]

[공격: 한국, 중국(도전자)]

[방어: 일본(정복자)]

[공격팀은 ‘정복자의 무덤’이라 불리는 도시 안, 성의 꼭대기에 국가 깃발을 꽂도록 하시오.]

[방어팀은 적국의 깃발이 성 꼭대기에 꽂히지 않도록 지켜내십시오.]

[제한 시간: 120분]

팡!

폭죽 터지는 소리와 함께 김준철 소령의 손에 태극기와 태극 무늬 완장이 만들어졌다.

모두의 머리 위에 국가 마크가 생겨났다.

콰쾅!

성 입구를 막고 있던 철문이 굉음을 내며 열렸다.

김준철이 마정우를 보았다.

“이 완장은 누구에게 드리도록 할까요?”

마정우가 완장을 받으려 손을 뻗었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다시 거두었다.

“천재가 오면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럼 천재 씨가 올 때까지 대기하고 있도록 하겠습니다.”

도시 안에서 굉음이 들려왔다.

쾅!

벌써 중국과 일본이 붙은 것 같다.

마정우가 소리쳤다.

“모두 저를 따라오세요!”

한국 플레이어들이 그의 뒤를 따라 성안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도시 안으로 들어가자 이곳저곳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와 우렁찬 함성 소리가 들려왔다.

모두가 빠른 걸음으로 성을 향해 나아갔다.

결의에 찬 눈빛.

지금까지 참아왔던 놈들에 대한 감정을 풀 수 있는 기회였다.

김준철이 마정우에게 물었다.

“천재씨는요?”

“……아직.”

그들은 최대한 천천히 움직였다. 이 모든 계획의 시작과 끝은 전부 그의 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성 근처에 도착하자 전투중인 양 나라의 플레이어들이 보였다.

일본군이 성을 지키기 위해 고전분투하고 있었다.

입구에 사무라이를 배치하고 창문을 통해 소총을 쏘아댔다.

중국 측에서는 방패 병들을 앞에 배치하고, 그 뒤로 몸을 숨겨 천천히 앞으로 진격하고 있었다.

쿵! 쿵! 쿵! 쿵!

그들이 전열에 맞춰서 움직이는 발걸음에 땅이 울렸다.

중국군 숫자가 많은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성앞을 가득 메울 줄은 몰랐다.

최소한 천 명 이상.

죽은 만큼 새로운 플레이어들이 도착했나보다.

피유우우우웅-

성 위에서 미사일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쾅!

성으로 진격하고 있는 중국 방패병 사이에 떨어졌다.

-으악!

포탄이 터지자 대열의 균열이 생겼다. 그것도 잠시, 다른 중국인들이 빠르게 들어와 벌어진 자리를 채웠다.

“김천재, 빨리 좀 와라…….”

마정우는 직감했다.

이번만큼은 중국쪽에서 성을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수의 차이가 너무나도 컸기 때문이다.

전투를 지켜보던 마정우가 소리쳤다.

“전투 준비!”

그의 명령을 하달받은 한국 연합의 플레이어들이 무기를 들었다.

-아직 천재씨가 오지 않았는데 싸웁니까?

-말씀해주신 작전하고 다른데요.

“작전은 상황에 따라 바뀝니다. 우선 중국 측에서 성을 먹지 못하도록 방해해야 해요.”

상황을 지켜보던 김준철이 마정우 말에 힘을 실어 주었다.

“천재씨가 오기 전에 성을 빼앗기면 모든 것이 끝납니다. 전쟁에서 여러 사람의 의견이 섞이면 패배하게 되니, 그의 말을 따르도록 하지요.”

마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렇게 하도록 하지요. 현재 중국측에서는 성의 입구를 뚫기위해 전사들만이 움직이고 있을 뿐. 궁수와 마법사는 대기하고 있습니다.”

그는 손가락으로 중국 부대의 뒤편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저기 대기하고 있는 궁수와 마법사들만 처리하더라도 놈들의 기세를 제압하는데 큰 도움이 될 거예요.”

김리아가 물었다.

“중국 사람들하고는 싸울 필요 없지 않아요? 일본 병사들을 상대하고 있는데요.”

“그 후에는? 중국이 저 성을 먹을텐데?”

“아…….”

“우리 목표는 평화가 아니야. 저 성을 차지하는 거지.”

* * * * *

마정우가 도끼를 들고 달렸다.

그의 뒤를 따라 한국 연합의 플레이어들이 따라갔다.

방심하고 있는 중국군의 뒤를 쳤다. 전방의 적만을 경계하고 있던 중국의 궁수와 마법사들이 갑작스런 공격에 당황했다.

-뭐, 뭐야! 저 새끼들 어디서 튀어나온거야.

-아니, 왜 한국인들이 저기서.

-아악! 사, 살려줘!

마정우의 입에 미소가 띄워져 있었다.

너무나도 쉽게 놈들의 뒤를 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멈추어라.”

울림통이 큰 목소리가 들렸다.

푸른 도포를 입은 긴 머리의 남성이 날아와 검을 휘둘렀다.

샥-

캉!

마정우의 도끼와 그의 도검이 허공에서 부딪혔다.

“……네가 중국 리더냐?”

“그래. 네가 한국 리더인가 보구나.”

푸른 도포의 사나이가 마정우의 팔뚝을 보았다.

“완장은?”

“없다. 나는 리더가 아니거든.”

“……리더는 어디있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그가 도끼를 밀어내더니 검을 거두었다.

“방해하지마라. 우리는 너희와 싸우기 위해 온 것이 아니다.”

“싫다면? 우리도 저 성을 먹어야겠는데.”

“어림없는 소리. 너희 힘으로는 놈들의 문도 뚫지 못해.”

“해보지 않으면 모르지.”

둘 사이에 팽팽한 기류가 흘렀다.

푸른 도포의 사나이가 코웃음을 쳤다.

“겨우 그 병력으로?”

“…….”

“지금 우리 측 병사들은 천 명이 넘는다. 전부 20레벨 이상인 자로 말이야.”

“그래서?”

푸른 도포의 사나이가 마정우를 무시하듯 내려 보았다.

“소국은 소국에 맞는 행동을 하도록 해라. 필요 없는 피를 흘리지 않도록 하는 게 좋을 거야.”

“…….”

쿵!

땅이 크게 울렸다.

푸른 도포의 사나이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뭐지…….”

쿵!

다시 땅이 울렸다.

아니, 계속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거대한 무언가가 그들을 향해 오고 있음이 느껴졌다.

-뿌우우우우우우!

남쪽에서 코끼리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마정우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푸른 도포 사나이에게 말했다.

“어이, 너.”

“……?”

“준비해라. 우리 리더가 왔다.”

둥-! 둥-! 둥-! 둥-!

북치는 소리가 들렸다.

이어 멀지 않은 곳에서 동물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히이익. 히익. 히이이익.

다다다다다!

하이에나 아홉 마리가 골목에서 뛰쳐나왔다.

-컹컹! 컹컹컹!

“하, 하이에나? 저놈들이 왜 여기에…….”

마정우가 도끼의 손잡이를 강하게 쥐며 방긋 웃었다.

“글쎄다.”

달려온 하이에나들이 주변을 빠르게 돌아다니며 정찰을 했다.

이어 거대한 호랑이가 유유히 걸어왔다.

터벅. 터벅. 터벅. 터벅.

그 위에 타고 있는 남성.

김천재가 방긋 웃어 보였다.

“여어! 늦어서 미안하다.”

* * * * *

마정우가 손을 흔들었다.

“왜 이렇게 늦었어, 이 새끼야!”

“아, 미안하다. 준비를 좀 하느라.”

“하… 그래서. 준비는 다 됐고?”

“어. 봐봐.”

코뿔소 네 마리가 육중한 몸을 이끌고 골목에서 나왔다.

그 위로 리 커우러나와 부하들이 타고 있었다.

-반갑습니다!

-여러분들 또 뵙네요. 정우 씨 맞죠? 어이쿠, 맥주 대장 소라 씨도 있네요!

-저기 나랑 팔씨름하던 미국인도 있어!

마이클이 환하게 웃었다.

“할로우!”

-할로우 미국인!

리 커우러나의 부하들이 신났는지 북을 더욱 크게 쳤다.

두웅-! 두웅-!

코뿔소의 뒤를 이어 기린 네 마리가 건물 사이에서 목을 빼꼼 내밀었다.

기린의 등 뒤로 자그마한 스켈레톤 병사들이 엄청나게 많이 타고 있었다.

원숭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작은 스켈레톤 병사 말이다.

“김천재, 저건 뭐냐?”

“스켈레톤 자폭병. 저거 조합하느라 늦게 온 거야.”

“……별게 다 있네.”

나는 손가락으로 뒤따라오는 코끼리를 가리켰다.

“진격해라!”

쿵! 쿵!

코끼리가 걸을 때마다 땅이 울렸다.

상황을 지켜보던 김준철이 내게 다가왔다.

“천재씨.”

“오랜만이에요.”

“완장 여기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완장을 받아서 착용했다.

[국가의 리더로써 다섯 번째 라운드에 속한 ‘한국’ 플레이어들을 이끌어 주십시오.]

[대항전 승리 시, 리더 보상이 추가 지급됩니다.]

내 머리 위로 태극 무늬가 펄럭였다.

“모두 갑시다!”

나는 용의 송곳니를 크게 휘저었다.

리 커우러나의 부하들이 더욱더 힘차게 북을 쳤다.

둥!! 둥!! 둥!! 둥!!

-우오오오오오!!

-김천재님이 오셨다! 진짜로 돌아왔어!

-드디어…… 이번에는 다음 라운드로 넘어갈 수 있는 건가……

내 소환수와 한국 연합이 동시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땅이 흔들렸다.

탕! 탕탕!

우리를 경계하는 일본군의 총성이 들려왔다.

내가 나타나자 중국 플레이어들이 우왕좌왕했다.

푸른 도포의 사나이가 나를 향해 소리쳤다.

“네가 한국의 리더냐!”

“……그래.”

중국의 완장을 차고 있는 것으로 보아 보통놈이 아닌 것 같은데.

‘…… 가소롭다.’

대호에 타고 있던 나는 그를 내려다보며 손짓 했다.

“꺼져. 방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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