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화
차카니, 아니 조영기의 주 직업은 마법사였다.
앞선 PC게임에서 그가 위기상황에 처했을 때마다 숨는 장소로 선택했던 그곳.
바로 여기다.
[대성당]
플레이어의 마나를 빠르게 회복시켜주는 곳이다.
모든 도시에는 성당이 있고, 그 도시에 맞게 크기가 설계되어 있다.
크기로 보아 명동성당 정도 될 것 같은데….
쿵.
나무문을 열고 들어갔다.
성당의 무지개 창문을 투과하여 들어온 빛이 단상에 있는 거대한 십자가를 비추었다.
뚜벅. 뚜벅. 뚜벅. 뚜벅.
“차카, 아니 조영기. 조영기 씨?”
내 목소리가 성당에 울리자 십자가 뒤로 툭 튀어나온 대머리가 보였다.
“누구냐.”
“김천재입니다.”
“……김천재?”
그가 얼굴을 내밀었다.
“어? 김천재!”
“역시 여기 계셨군요.”
조영기가 반가운 듯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야, 김천재. 너 어떻게 나를 찾아왔냐? 아니 내가 여기 있는지는 어떻게 알았고?”
“연희 씨를 만나서 아저씨 이야기를 들었어요.
“내 이야기를?”
“예, 병영 근처에서 헤어졌다길래 이 근처에 있는 건물들을 조사해봤고요.”
“오…. 그래? 일본 새끼들 감시가 보통이 아니었을 텐데?”
나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쯤이야 뭐…. 그나저나 몸은 괜찮으세요?”
“그래. 옷이 좀 찢어지기는 했는데, 그것 말고는 아무 문제 없어.”
“그럼 나가도록 할까요? 제가 다른 플레이어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쾅!
성당 밖에서 포탄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천장에 문제가 생겼는지, 잔재가 쏟아져 내렸다.
“뭐, 뭐야? 너 말고 다른 플레이어도 이곳으로 왔어?”
“아뇨. 여기는 저만 왔는데…. 아마 일본하고 중국 플레이어가 붙은 것 같아요.”
“……일본? 중국? 그놈들이 서로 붙었어?”
“예. 상황은 나가면서 설명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조영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성당 밖으로 나오자 일본군 NPC와 대립 중인 중국 플레이어들이 보였다.
탕! 탕탕!
NPC인데도 불구하고 플레이어와 동등한 대결을 펼쳤다.
높아진 난이도만큼 NPC의 수준도 올라가기도 했고, 중국 플레이어의 평균이 낮아서 만들어진 결과였다.
물론.
내게는 상대가 되지 않지만 말이다.
“차카니, 위로!”
나는 땅을 박차고 건물 위로 뛰어올랐다. 생각해보니 조영기는 주사를 맞지 않아 다리 근력이 이 정도로 뛰어나지 않은데.
무리한 요구를 했나?
라고 생각하는 순간 조영기가 주문을 외웠다.
“그라운드 웨이브.”
쿠구궁!
지면이 파도치듯 반동을 만들어 그를 건물 위로 던져 올렸다.
부웅-
조영기가 내 옆에 사뿐히 안착했다.
“어디로 가면 되지?”
“어?! 대지 마법?”
“그래. 왜?”
“열을 사용하는 계열의 마법사인줄 알았는데.”
“열? 혹시 이런거 말하는거냐.”
조영기가 손가락을 구부렸다 폈다 반복하자 빛이 번쩍였다.
“……혹시 속성 아이템?”
“그래. 뢰(雷) 속성의 힘을 가진 아이템을 발견했지.”
돌과 전기의 조합이라.
“……좋네요.”
일본군의 외침이 들려왔다.
-저기! 저기다! 저기 어제 도망간 조센징이 있다!
-빨리 무카이님과 노다님께 보고해!
-내가 갈게!
무카이와 노다?
“어스필드.”
조영기가 다시 주문을 외우자 땅이 솟구쳐 올라 벽이 생기며 놈들을 가로막았다.
-저 자식이 또 마법을 썼어!
-초, 총을 쏴. 이 거리면 맞출 수 있을 거야!
탕! 탕!
신난 조영기가 그들을 향해 중지를 흔들었다.
“비웅신들. 이거 나 쳐드세요!”
나는 조영기의 옷소매를 잡아끌었다.
“가자고요.”
“아, 그래.”
우리가 뒤로 돌아 도망가려는데.
-못 간다.
-그래 못 간다!
두 명의 사나이가 길을 막아섰다.
조영기가 이빨 사이로 바람 새는 소리를 내며 눈을 찌푸렸다.
“무카이…. 노다….”
“저놈들이 무카이와 노다야?”
“……그래. 너도 알고 있나?”
“어. 보통 놈들이 아니라고 들었어.”
무카이와 노다가 쌍둥이 인형처럼 대답했다.
“형, 저 대머리 조센징은 내가 잡을게.”
“알았어, 그럼 저 올백 머리 조센징은 내가 맡도록 하지.”
팟!
놈들이 우리를 향해 뛰었다.
검을 사용할 때는 얼마나 빠른 움직임을 보일지 모르겠지만. 달리는 속도는 형편없었다.
“영기 아저씨, 내가 오른쪽 놈을 맡을게.”
“그럼 내가 왼쪽 놈을 맡으마.”
지붕 위에서 대결이 시작되었다.
거리가 좁혀지자 무카이가 검을 뽑았다. 라고 생각하기도 전에 내가 먼저 송곳니로 놈의 머리를 내리쳤다.
팍!
“악!”
놈이 중심을 잃고 뒤로 쓰러졌다.
나는 입꼬리를 올려 웃으며 놈을 보았다.
“뭐야? 별것도 아니잖-”
갑자기 배가 따끔했다.
고개를 내려보니 옷이 횡으로 잘려 나갔다. 피가 흘러 복부를 적셨다.
어떻게 된 거지?
분명 놈은 검을 뽑지도 못했는데, 어째서 내 옷이 찢어진 걸까.
다행인 것은 상처가 깊지 않았다는 것.
내 회복력으로 피를 멈출 수 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손으로 상처를 한 번 훑어내자 피가 멈추었다.
“제법이네.”
“몸이… 잘렸을 텐데?”
“잘리기는. 벌써 다 나았는데.”
“뭐?! 보아하니 네크로맨서인 것 같은데. 방어력이 그렇게 높다고?”
나는 그저 웃었다.
박규환과의 능력치 공유와. 유소라의 주사 덕분에 얻게 된 방어력이지만. 조용히만 있다면 녀석이 알아챌 리 없었다.
삐빅.
녀석의 허리춤에 달린 무전기가 반응했다.
-병영에 대기 중인 인원은 전원 서쪽 감옥으로 이동하도록 해라. 우물쭈물하지 말고 서두르도록!
무카이가 무전기를 들었다.
삐빅.
“무카이입니다. 현재 위험도 상(上)의 조센징들이 있어서 처리하고 이동하도록 하겠습니다.”
-됐고, 빨리 감옥으로 이동해라. 한시가 급하다.
“……여기 있는 조센징 중 한 놈은 한조님이 찾으시던 놈입니다.”
갑자기 무전이 끊겼다.
무카이와 노다가 전투를 멈추고 경계 태세로 전환했다.
놈들이 다시 덤벼들려는 순간 무전기가 켜졌다.
-……무카이?
“예.”
무전기에서 한숨이 먼저 흘러나왔다.
-후…. 두 번 말하게 하지 마라. 지금 그놈들을 잡는 것보다 감옥을 사수하는 게 더 중요해.
“하지만-”
-하지만이라는 것은 없다. 지금은 중국 놈들에게 감옥을 지키는 게 먼저다.
무카이가 내 눈치를 슬쩍 보더니 무전기에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감옥으로 즉시 이동하도록 하겠습니다. 야! 노다! 다 들었지? 감옥으로 이동하도록 한다.”
군키치라는 놈이 비선실세인가?
무카이 녀석이 쩔쩔맸다.
조영기를 상대하던 노다가 고개를 돌려 보았다.
“형. 정말로 갈 거야? 이 녀석들은 한조님이 찾으시던-”
“군키치님의 명령이야.”
“…….”
“바로 이동하도록 한다. 김천재, 조영기. 너희 둘은 운 좋은 줄 알아라.”
조영기가 그들을 향해 달려가며 소리쳤다.
“지랄하지 말고 덤벼, 이 쪽바리 새끼들아!”
“운 좋은 새끼들….”
“염병하지 말고 지금 덤비라고!”
조영기가 주문을 외우려 하는 순간.
무카이와 노다가 건물 아래로 뛰어내렸다.
“거기 서라고!”
나는 팔을 뻗어 조영기의 앞을 막았다.
“여기까지.”
“뭐? 비켜.”
“그만 하세요.”
“왜? 지금 가면 녀석들을 처리할 수 있어.”
“감옥 앞에는 일본 플레이어들이 전부 모여있어요. 위험해요.”
“…….”
“여기까지 왔으면 보통 실력자들이 아닐 텐데. 혼자 전부 상대할 수 있겠어요?”
조영기가 수긍하고 싶지는 않지만,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너. 나를 왜 찾아왔다고 했지?”
* * * * *
아지트로 돌아오는 길, 적진에서 마구 날뛰고 있는 마정우가 보였다.
무엇을 하러 왔는지조차 잊었는지 광전사 상태로 일본 플레이어와 중국 플레이어를 찢고 있었다.
“야, 마정우!”
내 외침에 그가 정신을 차렸다.
“어? 어!”
“차카니, 아니 영기 씨 찾았어! 돌아가자.”
마정우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 벌써?”
“벌써는 무슨. 빨리 가자.”
“아…. 조금만 더 하면 빨간 해골 달 수 있을 것 같은데.”
“나중에 해. 급한 거 아니잖아. 어차피 좀 있으면 주사기 적용 시간도 끝나.”
“…… 알았어.”
부웅-
정우가 크게 도끼를 휘두르자 적들이 물러났다.
-저 새끼 저거! 살려두면 안 될 것 같은데.
-닥쳐. 군키치님이 전원 감옥으로 오라고 하셨어. 놈들은 신경 쓰지 말고 이동하자고.
-맞아. 무카이님도 곧장 감옥으로 간다는 이야기 못 들었어?
전투가 잠시 멈추었다.
중국 플레이어들이 이틈을 타 뿔뿔이 흩어졌다.
일본군의 대장으로 보이는 자가 소총으로 하늘을 겨누었다.
탕! 탕!
총성이 울렸다.
“적들을 무시하고 전원 서쪽 감옥으로 이동한다!”
일본 플레이어들이 서둘러 이동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들이 서쪽으로 가는 것을 지켜보기만 했다.
일본과 중국이 서로 붙어 피해를 만든다면, 우리 쪽에서야 땡큐였다.
정우가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내며 우리에게 합류했다.
“어이 조영기 씨. 오랜만이유.”
“……며칠 못 본 새에 많이 컸구나.”
“키는 당신보다 내가 좀 더 컸지.”
“허허- 그래?”
둘이 서로를 보며 씨익 웃었다.
나는 그들을 데리고 다시 아지트를 향했다.
돌아오는 길목 길목에 일본 플레이어와 중국 플레이어의 전투 중인 모습이 보였다.
“마정우, 혹시 아까 싸울 때 특이한 점은 없었어?”
“특이한 점? 있었지.”
“뭐?”
“이번 라운드까지 온 플레이어치고는…… 너무 약했다?”
“네가 약한 놈들만 골라서 상대했나 보지.”
“아니야! 아까 거기서 상대를 고르면서 싸울 수 있었겠냐?”
“…… 그래?”
적이 약하다.
그건 말이 되지 않는다.
게임의 난이도가 올라갔으면, 이곳까지 온 플레이어도 그만큼의 실력을 갖추었을 것이다.
결론은 하나다.
적이 약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강하다.
상대적으로 말이다.
돌아오는 길 높은 건물 위로 올라가 서쪽 감옥을 둘러보았다.
큰 전투가 벌어져 이곳저곳에 불이 치솟아 오르고 사람들의 비명이 들려왔다.
중국 플레이어의 목적은 감옥에 갇힌 자들을 구출하는 것이 확실하고.
그렇다면 놈들이 방심한 틈을 타서 기습하는 것이 더 좋았을 텐데.
중국 쪽에서는 왜 갑자기 정면 승부를 펼친 걸까?
그것도 서쪽 감옥만.
저렇게 싸우면 탈환에 성공하더라도 피해가 상당히 클 텐데 말이다.
‘…… 설마.’
우리 때문인가?
어젯밤 성공시킨 남쪽 감옥 기습 작전에 자극받아 움직인 것이라면.
정말 단순 무식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지만, 그 말이 어울리는 자들이다.
조영기가 턱을 쓸어 당기며 독백했다.
“오호라. 저 자식들 생각보다 똑똑한데? 눈을 서쪽으로 돌리고 동쪽으로 갈 줄이야.”
응?
나는 조영기가 바라보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일본 플레이어의 대부분이 서쪽 감옥으로 이동하자, 곳곳에 숨어있던 중국인 플레이어가 동쪽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모여든 중국 플레이어가 감옥을 향해 습격을 시작했다.
빈집털이.
나는 혀를 찼다.
“저 새끼들 뭐야? 영기 씨. 저놈들 언제부터 저기 있었어요?”
“나도 모르지. 숨어있다가 방금 나왔으니깐. 와- 근데 진짜 개미같이 많다.”
서쪽 감옥에 있는 중국인만 하더라도 오백 이상은 되어 보이는데, 서쪽에서도 저렇게 많은 플레이어가 나타나다니.
정말 놀라울 따름이었다.
정우가 놈들을 보더니 미소를 지었다.
“저 새끼들, 메인 이벤트가 시작하기도 전에 죽고 싶은가 본데?”
“그러게. 왜 저런 미친 짓을 하는 거지.”
“중국인이잖아.”
정우의 한 마디로 이해가 되었다.
그래, 저들은 중국인이다.
* * * * *
아지트로 돌아온 나는 조영기에게 지금까지의 상황을 전부 알려 주었다.
그리곤 그에게 제안했다.
한국 연합에 들어올 것을.
“……어때요?”
“나쁜 제안은 아니구나. 중국 녀석들을 혼내줄 수도 있고, 일본 놈들의 왕좌까지 찾아올 수 있으니.”
“그렇죠.”
“다만 실패하면, 우리 모두 죽는다는 게 문제인데….”
나는 지도를 손가락으로 툭툭 쳤다.
“지지 않습니다.”
“네가 그걸 어떻게 확신하지? 적의 수가 우리의 몇 배인데 말이야.”
“개미는 많아봤자 개미입니다.”
“……개미?”
“예. 원숭이는 많아봤자 원숭이고요.”
“……너는 뭔데?”
나는 한쪽 입꼬리를 올려 씨익 웃었다.
“호랑이요. 호랑이가 아무리 약해도 원숭이와 개미한테 지겠습니까?”
내 이야기를 들은 조영기가 담배를 뻐끔뻐끔 피우며 한참을 고민했다.
“너, 김천재라고 했었지?”
“예.”
“……김천재, 미안하지만 나는 따로 움직이도록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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