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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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화

김연희가 열쇠를 찾아왔다.

나는 감옥을 돌아다니며 안에 갇혀있는 플레이어에게 물었다.

“우리 연합에 들어오겠나?”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모두가 동일했다.

[예.]

당연한 선택이었다.

이곳에 갇혀 일본군의 포로가 되어 고문을 받다 죽느니.

잘못되더라도 감옥 밖으로 나와 놈들과 싸우다 죽는 게 낫다.

나는 감옥에 있는 플레이어들을 차례차례 구출한 후 감옥 밖으로 나왔다.

“…… 차카니는 없구나.”

차카니는 잡히지 않았다.

다른 감옥에 있을 수도 있겠지만, 녀석의 실력으로 잡혔을 리는 없다.

“천재야.”

“왜?”

“저기 건물 위에서 토치를 흔드는데?”

나는 고개를 들어 우리 앞에 있는 건물을 보았다.

한국 연합의 저격수들이 대기하고 있는 곳이다.

8자로 토치를 흔들고 있었다.

“비상 신호? 8자로 흔드는 건 적이 오고 있다는 건데.”

“적이? 어디서.”

“그건 나도 모르지. 우선 몸을 숨기도록 하자.”

우리는 한국 연합을 이끌고 최대한 가까운 골목에 숨었다.

적이 어디 있는지 몰라, 멀리 이동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다다다다다다!

갈색 로브를 쓴 자가 말을 타고 달려와 감옥 앞에 멈춰 섰다.

나는 쓰레기통 뒤에 숨어 조심스럽게 그의 행색을 살펴보았다.

“…… 저 녀석인가.”

북쪽 감옥의 주인.

놈이 후드를 벗었다.

이옥한과 똑같이 생긴 마법사가 있었다. 남쪽과 북쪽을 맡은 간수가 쌍둥이라더니 정말이었구나.

그의 뒤를 따라 백여 명 가까이 되는 일본군이 도착했다.

감옥 앞에 도착한 그들은 조심스럽게 주변을 둘러보더니 건물 안으로 수색조를 보냈다.

‘…… 정하균의 그룹은 실패한 건가.’

북쪽으로 향했던 한국 연합은 작전에 실패했나 보다.

아니면 놈들이 이곳에 올 수 없으니 말이다.

“제길.”

놈들이 움직였다는 말은 상부에도 연락이 닿았다는 말인데.

‘….’

육참골단(肉斬骨斷)

이렇게 된 이상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해야겠다.

나는 일부로 벌떡 일어나 그들을 보았다.

주위를 수색하던 일본군 플레이어가 나를 발견하고 소리쳤다.

-적군 발견!

촤르르륵 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속도로 놈들이 총구를 사방으로 겨누었다.

나는 소리쳤다.

“이옥한!”

탕! 탕!

놈들이 우리가 숨어있는 곳을 향해 소총을 발사했다.

그들 중 몇은 검을 꺼내 들고 방어적인 자세를 취했다.

혹시나 있을 적의 기습에 대비하는 것 같았다.

나를 제외한 모두가 자세를 푹 숙여 어둠에 몸을 숨겼다.

내 소환수로 변한 이옥한이 일본군을 향해 달렸다.

그의 얼굴을 확인한 일본 플레이어들이 사격을 멈췄다.

-어? 저건 이옥한 교도관님 아니야?

-맞아. 왜 저기서 나오시는 거지.

-자, 잠깐. 목에 역십자 마크. 설마….

이옥한이 속삭였다.

“파이어볼.”

쾅!

쏟아지는 빗속,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잠깐이지만 주변이 환하게 비쳤다.

일본군들이 그의 공격을 피하고자 허둥지둥대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이, 이옥한님. 저희입니다! 저희라고요!

이옥훈이 나섰다.

“모두 비켜라!”

그가 이옥한을 향해 손을 뻗었다.

“아이스 볼.”

쉬이이익-

참외만 한 얼음 조각이 비를 가르며 날아가 이옥한을 맞추었다.

콰지직! 소리와 함께 몸이 얼어붙었다.

이틈에 나는 보급받은 토치를 안 주머니에서 꺼내어 불을 붙였다.

타닥. 타닥. 치지지직!

내가 토치를 Z 모양으로 흔들었다.

빌딩 위에 대기하고 있던 저격수들이 총구를 밖으로 내밀었다.

“…… 끝을 내자.”

탕!

일본군 한 명이 그대로 쓰러졌다.

털썩.

적군의 시선이 빌딩을 향했다. 하지만 대처하기에는 이미 늦었다.

한국 연합이 벌써 이곳을 둘러싸서 도피로를 막았기 때문이다.

탕! 탕!

계속해서 총알이 날아왔다. 일본군들이 하나씩 쓰러졌다. 이옥훈의 명령이 떨어지지 않자 그들이 우왕좌왕했다.

-어, 어떻게. 아악! 내 손! 내 손!!!

-사…. 살려줘….

-교도관님 어떻게 합니까!

이옥훈이 주변을 둘러보더니 후퇴 명령을 내렸다.

“감옥 안으로 들어간다!”

일본 플레이어들이 빠른 속도로 감옥 안을 향해 달렸다. 우리는 굳이 따라가지 않았다.

지원군이 올 때까지 버티려는 놈들의 계략인 것을 알기 때문이다.

“상황 판단이 빠른 놈이구나.”

이곳에서의 볼일을 마친 나는 그대로 토치를 T자로 흔들어 철수 신호를 내렸다.

“돌아간다!”

* * * * *

절 밑에 있는 아지트로 돌아왔다.

나는 비에 젖은 옷을 벗어 의자에 걸친 후 머리를 털었다.

“제길. 정하균 그 새끼….”

마정우가 시큰둥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 새끼 대신 내가 거길 갔어야 했는데….”

“아니. 그럼 네가 일본 플레이어한테 당했을 거야.”

“…… 응? 내가?”

나는 소파에 기대어 앉아 담배에 불을 붙였다.

치직. 치지직.

쓰읍. 푸후-

“정하균, 그 새끼. 스파이였어.”

“…… 진짜냐? 설마설마했는데 하….”

“어. 저 마법사 놈한테 물어봤으니까 확실해.”

정우가 짜증을 내며 일어나 화풀이로 이옥한의 복부를 주먹으로 때렸다.

퍽!

“허어억……”

“아오. 이 망할 새끼. 근데 이 놈은 왜 이름이 한국인 같냐?”

이름이 한국인?

“…… 나도 모르지.”

그러게 이옥한과 이옥훈은 왜 이름이 한국인 같지?

머리를 굴려 보았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저 배신자라고 부르기에는 대화를 나누었을 때 너무나도 일본사람 같았기 때문이다.

“김천재.”

“왜?”

“그럼 우리 아지트를 옮겨야 하는 거 아니냐? 정하균이 스파이라면 여기로 적들이 들이닥칠 거 아니야?”

“그렇지. 이동할만한 장소도 물색해 놨으니깐 걱정하지 마.”

“…… 설마 거기냐? 어제 갔던 곳.”

“어. 우선 감옥에서 나온 사람들 배부터 채워주고 이동하자.”

“…… 오케이.”

나는 감옥에서 구출한 플레이어들을 한곳에 모았다.

“다들 배고프시죠?”

모두 눈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볼살이 홀쭉 들어간 게 스켈레톤이 되기 일보 직전이었다.

나는 안쪽 창고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그들에게 말했다.

“식사가 필요하신 분들은 저 방에서 가져다 먹도록 하세요.”

플레이어들이 눈에 불을 밝히며 식료품 창고로 달려갔다.

며칠간 쌓아뒀던 과일과 식료품들이 순식간에 바닥났다.

이럴 줄 알았으면 식량을 좀 더 모아두는 건데….

“마이클. 천사의 찬가 한 번 써줘.”

“찬가? 여기서요우?”

“응. 생명력이 높아야 상처도 빨리 치유되거든.”

“오우! 오케이.”

마이클이 유탄 발사기를 들고 신성 주문을 외우더니 천장을 향해 쏘았다.

쾅!

너무 가까웠다.

테러리스트를 제압하는 조명탄이라고 생각될 만큼 강한 빛이 방안에 쏟아져 내렸다.

눈이 부셔 앞이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이 깜짝 놀라 음식을 입에 물고 몸을 수그렸다.

-아악! 뭐, 뭐야.

-적의 기습이야?

-아…. 아니? 내 몸이. 상처가 낫고 있어.

빛이 사라지자 사람들이 환호했다.

좁은 공간 덕분인지 많은 빛을 쐴 수 있어, 모두의 생명력 게이지가 순식간에 회복되었다.

-우워어! 갑자기 힘이 솟아나!

-누가 이런 회복 주문을 쓴 거야? 굉장한데?

마이클이 입을 쫘악 찢어 웃었다.

소파에 기대어 휴식을 취하던 나는 손가락질로 김연희를 불렀다.

“꼬맹이.”

“…… 꼬맹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그래. 하여튼, 차카니는 어디에 있지?”

김연희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나도 모르지! 나는 감옥에 갇혀있었다니깐?”

“잡히기 전에 숙소를 잡았을 거 아니야?”

“아니. 우리는 들어오자마자 일본 플레이어들이 덤벼들어서. 이리저리 도망만 다녔어.”

“…… 그럼 어디 지역에서 돌아다녔는데?”

“그것도 모르지. 나는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는데.”

나는 지도를 꺼내어 그녀에게 보여주었다.

“대충 짐작 가는 곳이라도 찍어봐. 입구는 남쪽밖에 없으니깐 이곳으로 들어왔을 거고. 걸으면서 대충 주변 지형을 봤을 거 아니야?”

“뛰어다녔는데?”

“……. 그럼 뛰어다니면서 보았던 주변을 떠올려서. 지도 위에서 비슷한 곳 찾아봐.”

김연희가 지도를 보았다.

손가락을 가져다 대고 이리저리 둘러보더니 머리를 긁적였다.

“여긴가?”

“…… 여기라고?”

“응. 아마도 그런 것 같은데?”

곤란하다.

그녀가 손으로 가리키는 곳을 보니 ‘병영’ 근처였다. 이 근처는 일본군인 NPC들이 밀집해 있는 곳.

사실 제일 큰 문제는 이 땅에 있는 일본 플레이어 중 제일 강한 네 명 중 두 명이 그곳에서 대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의 왕으로 군림하고 있는 군키치의 부하.

무카이와 노다.

오늘의 사건으로 도시 내 경계가 심해졌을 텐데, 혹시라도 놈들에게 발각되면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다.

“정말 여기 맞아?”

“어. 여기 말고는 주변에 건물 많은 곳이 없잖아?”

“…… 후우.”

대화를 듣던 정우가 말을 이었다.

“차카니는 포기하도록 하자. 병영 근처까지 갔다가는 분명 놈들에게 꼬리를 잡힐 거야.”

“…… 안 돼. 포기하기에는 너무 큰 전력이야.”

나는 단호한 표정을 보였다.

“어차피 데려와도 그룹에는 안 넣을 거잖아?”

“그룹에 넣지 않더라도 우리 목적에 맞게 사용할 수는 있지.”

“목적에 맞는 다른 플레이어를 구하면 되는 거 아니야?”

“그런 플레이어가 안 나올 수도 있잖아.”

의견이 갈렸다.

우리는 때때로 이런 상황을 맞이한 적이 있었다.

마정우가 석연찮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내게 말했다.

“그럼 이렇게 하자.”

“…… 뭐?”

“너 지금 동전 있지?”

“…… 아!”

나는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었다. 그리곤 손바닥 위에 올려놓으며 정우에게 물었다.

“앞, 뒤?”

“앞.”

“그럼 난 뒤.”

핑그르르르르!

동전이 가볍게 날아올랐다.

턱 밑까지 올라왔던 동전이 그대로 떨어져 내 손목 위에 안착했다.

탁.

동전이 뒷모습을 보였다.

내가 이겼다.

“…… 뒤. 그럼 내 말대로 하는 거지?”

“아오 x벌. 나는 한 번도 이기는 적이 없냐. 운 존나게 없네.”

나는 괜히 히죽 웃으며 담배 한 개비를 그에게 건네주었다.

“필 거?”

“…… 어.”

치직. 지지직.

쓰읍. 푸후-

마정우가 뚱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손가락을 딱딱 튕기며 그에게 말했다.

“마정우.”

“왜.”

“차카니를 살려두면 앞으로 두고두고 쓸모가 있을 거야.”

“…… 그렇긴 하지.”

“기브 앤 테이크. 우리가 먼저 도움을 주고, 그다음에는 받자. 괜찮은 생각이지?”

“…… 말은 잘해요.”

마정우가 담배 연기를 내 얼굴에 뱉으며 뺨을 손가락으로 밀었다.

“후우. 이렇게 된 김에 다른 한국인 플레이어도 있나 한 번 찾아보자.”

“좋지.”

다다다다다!

누군가 계단을 빠르게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문구멍으로 밖을 보니 절 위쪽에서 주변 감시 역할을 맡은 한국인 플레이어였다.

그가 로브의 후드를 걷어 얼굴을 보이더니 문을 크게 두드렸다.

쾅! 쾅!

“문 열어! 빨리! 긴급상황이야!”

철컹.

문을 열자마자 그가 크게 소리쳤다.

“일본 새끼들이 이곳으로 오고 있어! 다들 피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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