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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화

마법사 놈이 주문을 읊조렸다.

나는 녀석의 입에 침을 뱉었다.

퇘엣!

“악! 이 미친 새끼가!”

놈이 벽을 밀어내며 강하게 발버둥을 쳤다. 마법사의 근력으로는 내 손을 뿌리칠 수 없었다.

마치 그래플링에 강력한 격투기 선수가 일반인을 상대로 가지고 노는 것처럼 차이가 났다.

실랑이가 안 통하는 것을 알게 된 마법사가 다시 주문을 외우려 했다.

나는 침을 모으는 것처럼 혀를 굴렸다.

-카악!

마법사가 주문을 멈추고 나를 째려보았다.

“빌어먹을 새끼.”

“퇘엣!”

또 한 번의 침이 녀석의 이마에 명중했다.

마법사가 불쾌한 표정으로 고함을 질렀다.

“으아아아!! 이 또, 라, 이. 새끼야! 조센징. 너 조센징 맞지?!”

“…….”

대답은 하지 않는다.

쓰레기와 이야기를 나눌 만큼 내 마음에 여유가 있지 않기 때문이다.

손아귀에 강하게 힘을 주어 마법사의 팔목을 꺾었다. ‘우드득’ 소리와 함께 놈의 뼈에서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악!”

외마디로 신음을 흘렸다.

나는 부러진 팔을 놓고 주먹으로 놈을 두드려 패기 시작했다. 절대로 그냥 죽이면 안 된다.

지금까지 놈에게 당한 한국인 플레이어가 몇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아침에 내가 본 장면은 영원히 잊을 수 없을 정도로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똑같이 해주어야 한다.

목덜미를 잡아 상체를 숙이게 만든 후, 권투 선수가 어퍼컷을 날리듯 놈의 얼굴을 계속해서 때렸다.

“사, 살려…. 살려주세-”

퍽!

“제발….”

마법사가 피범벅이 된 얼굴로 울며 빌었다.

나는 대답 없이 놈을 노려보며 다음 행동을 취하였다.

우선 마법사의 몸을 벽으로 밀어붙인 후.

부웅-

발차기로 얼굴을 가격했다.

쾅!

벽이 갈라지며 녀석의 얼굴이 박혔다. 만화의 한 장면처럼 깔끔하게 들어갔다.

놈의 빨간색 게이지가 빠르게 깎여 절반도 남지 않았다.

생명력에 비해 외관이 심하게 손상된 상태인데. 죽었다고 봐도 될 정도의 모습이었다.

나는 놈의 다리를 잡아서 밖으로 끌어냈다.

쓸려 나온 돌조각과 시멘트 가루가 땅에 쏟아져 내렸다.

코에 손을 가져다 대어 보니, 아직 멀쩡히 숨이 붙어있었다.

그렇지만 도망가거나 마법을 사용할 정도로 움직일 만큼은 아니었다.

“이게…. 끝이…. 아니다….”

“…….”

“나를 살려… 준다면…. 너를 돕도록…. 하겠다….”

“일본 플레이어를 배신하겠다는 말인가?”

“그…. 래….”

나는 놈을 보며 씨익 웃었다.

“정말이야?”

“정말…. 이다….”

“그래? 그럼 정말 배신을 할 것인지 아닌지 한번 봐보자고.”

“…… 뭐?”

마법사가 걸어 나온 방문을 열자 여러 가지 고문 도구들이 보였다.

역시 ‘멸망의 땅’ PC 버전과 똑같은 설명의 도구들이 즐비해 있었다.

나는 그중 제일 큰 상자를 밖으로 가지고 나왔다.

끼익. 끼익. 끼이익.

상자 안에 수 십, 아니 수 백 개의 못이 안쪽으로 박혀 있었다.

어제 내가 보았던 한국 플레이어를 고문하던 도구다.

마법사가 내게 손을 빌며 고개를 조아렸다.

“제발 이것만은….”

“…… 들어가.”

* * * * *

쿠궁. 쿠궁. 쿠궁. 쿠궁.

마법을 사용하지도 못할 정도로 빠르게 상자를 흔들었다.

-사, 살려. 살려주십. 제발. 크흐윽….

열심히 상자를 흔들던 나는 마법사 놈의 생명력을 보고 행동을 멈추었다.

죽기 일보 직전이다.

나는 피투성이가 된 일본 마법사를 밖으로 끄집어내었다.

“허억…. 허어억….”

놈이 개처럼 혀를 내밀고 울어댔다. 얼마나 볼썽사나웠는지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이렇게 불쌍한 표정을 짓는 것은 연기가 아니라 타고난 처량함이다.

나는 놈의 머리채를 잡아들며 속삭였다.

“이렇게 하면 뭐라도 실토할 줄 알았는데. 아무 말도 없는 걸 보니 너는 쓸모가 없어서 안 되겠다. 그냥 죽어라.”

“허어억…. 제발….”

“제발? 너는 제발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살려줬나?”

“…… 부탁…. 하겠습니다.”

“그런 건 신에게나 하도록 해.”

나는 원뿔 모양의 뿔피리를 반대 방향으로 잡았다.

뾰족한 면이 밑으로 오도록.

이어 온 힘을 다해 놈의 두개골에 휘둘렀다.

부웅-

마법사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빌어먹을 조센징!”

콰직!

소리와 함께 내 뿔피리가 놈의 두개골을 뚫고 들어갔다.

비명도 나오지 않았다.

도깨비 머리에 뿔이 거꾸로 달린 듯한 모습이었다.

눈을 뜰 수도 없을 정도로 큰 고통. 마법사가 몸을 떨며 뒤로 자빠졌다.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마법사의 생명력 게이지가 완벽한 회색으로 변했다.

[시스템 메시지]

[‘김천재’플레이어님이 일본 국가 소속의 플레이어 ‘야스다’님을 처치하였습니다.]

[서버 최초로 ‘붉은 해골’ 마크 플레이어 처치에 성공하셨습니다.]

[‘붉은 해골’ 머더러 처치에 의한 PK 포인트 보너스로 +101 포인트를 얻습니다.]

내 머리 위에 해골이 하얀색에서 붉은색으로 변했다.

단 한 번의 싸움으로 말이다.

[‘붉은 해골’ 마크 발동.]

[PK 포인트, 아이템 거래소가 오픈됩니다.]

[도시에 위치한 각종 상점에서 사용이 가능한 화폐입니다.]

상대방 플레이어를 처리하면 10%의 머더러 포인트를 빼앗아 온다.

즉 내게 죽은 마법사 놈은 최소한 천 명 이상의 플레이어를 죽였다는 말.

“…… 많이도 죽였네.”

나는 쓰러진 마법사의 소지품을 확인하였다. 제일 먼저 라이터와 담배가 나왔다.

“좋아.”

이어서 지갑이 나왔다. 마법사의 지갑은 현금이 두둑하게 차 있었다.

주민등록증을 보니 99년생의 남성이었다.

“이옥한이라….”

나는 이옥한의 지갑에서 동전을 꺼내어 입에 꽂아주었다.

저승길로 가는 노잣돈.

나를 원망하지 말아라.

“리바이브.”

* * * * *

이옥한의 시체가 일어났다.

녀석을 영입하게 된 덕분에, 내 소환수들의 힘 균형이 어느 정도 맞게 되었다.

※ 신규 영입: 이옥한(마법사)

레벨: 21

생명력: 970/970

마나: 540/540

체력: 37 공격: 12

방어: 11 속도: 20

▶파이어볼 (마나 소모: 20)

-시전자의 최대 마나에 비례해 강력한 화염구를 만들어 발사합니다.

▶마나 쉴드 (마나 소모: 100)

-남은 마나의 X0.8배로 데미지를 흡수합니다. 물리적인 공격와 마법, 전부 적용됩니다.

나는 이옥한을 내 앞으로 불렀다.

“꿇어.”

“…….”

털썩.

“이름은?”

“이옥한.”

“나이.”

“22세.”

“현재 소속은?”

“김천재님의 소환수입니다.”

나보다 레벨이 높거나 비슷한 놈을 소환수로 만들면 충성도가 낮아 대화로 저항하기 마련인데.

이옥한의 기존 레벨은 나보다 많이 낮았나 보다.

아무런 반감 없이 내게 대답해왔다.

“한국인 플레이어 중 너와 긴밀하게 연락을 하던 자가 있나?”

“…….”

“다시 묻도록 하지. 한국인 플레이어 중 네게 연락을 하는 자가 있었나?”

알고서 물어본 것이다.

있다.

확실하다.

삼일 간 이 도시를 조사할 때 분명 밀정으로 생각되는 자가 이곳에 오는 것을 보았다.

식량을 구하러 간다며 나가더니 이 감옥으로 왔었다.

이옥한이 우물쭈물하며 입술을 모으더니 내게 대답했다.

“예.”

“그의 이름은?”

“그의 이름은….”

* * * * *

<북쪽 감옥>

기습을 준비한 한국인 플레이어들이 검은 망토를 뒤집어썼다.

쏟아져 내리는 빗속을 달리며 감옥 앞으로 갔다. 이상하게도 경비병은 있지 않았다.

-뭐지? 왜 경비병들이 없지.

-단체로 화장실에 간 것도 아닐 텐데 말이야.

-혹시 안에 무슨 일이 생겨서 들어간 거 아냐?

정하균이 주위를 둘러보더니 모두에게 들리도록 명령했다.

“진입한다!”

상황이 의아했지만, 모두가 안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지금이 아니면 다시 이곳에 진입할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두두두두두두두!

어두컴컴한 감옥을 달려서 안으로 들어갔다. 넓은 공간이 나옴과 동시에 양옆으로 줄지어 있는 철창들이 보였다.

어둠 속 커다란 물체의 형상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한국인 플레이어들이 천천히 걸어 감옥의 중간으로 가자.

창! 창창창창!

천장에서 조명이 켜지며 그들을 비추었다.

-어? 뭐, 뭐야!

-악! 눈이 부셔서 아무것도 안 보여!

-가, 감옥이 전부 비어있어. 어떻게 된 거지?

머리 위에서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짝짝짝짝!

이어 일본 플레이어들의 비웃음이 들려왔다. 감옥의 2층에서 한국인 플레이어들을 내려보고 있었다.

-멍청한 놈들. 함정인 줄 모르고 달려드는 꼴을 보니 우습구나.

-푸하하하! 저 새끼들 표정 좀 봐.

한국인 플레이어들이 모두 무기를 꺼내 들었다.

-제길 함정이었나!

김리아가 주머니에서 나뭇가지를 한가득 꺼내어 땅에 던졌다.

“대지의 정령이시여 내게 힘을 주-”

팍!

누군가 김리아의 목덜미를 당수로 내리쳤다. 그녀가 앞으로 고꾸라지며 뒤를 보았다.

“저…. 정하균….”

털썩.

한국인 플레이어들의 시선이 모두 정하균에게 쏠렸다.

-리더! 뭐 하는 거야?

-리아야. 리아야. 정신 차려봐 리아야!

-설마….

정하균이 입꼬리를 올려 비열한 미소를 지었다.

“미안하다.”

-이런 X발!

촤르르르륵!

2층에서 던진 그물이 한국인 플레이어들을 덮었다. 정하균은 알고 있었는지 미리 밖으로 몸을 던져 피했다.

그물 안에서 한국인 플레이어들이 욕을 계속해서 뱉어냈다.

정하균은 이마를 붙잡고 그들을 내려보며 사악한 웃음을 내뱉었다.

“크하하학. 하학. 아- 이 바보 같은 새끼들.”

-정하균 이 개 새끼야!!

-설마 네가 밀정일 줄이야…. 이 쓰레기 같은 놈.

“예- 예-. 너희들 혹시 이중간첩이라고 알고 있냐?”

그물 안에 갇힌 플레이어 중 몇은 날붙이를 사용해서 줄을 끊어 보려 했다.

강철을 엮어서 만들었는지 일반적인 칼로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터벅. 터벅. 터벅. 터벅.

일본 플레이어 한 명이 정하균의 앞으로 걸어 나왔다.

갈색 망토를 쓰고 있는 자였다.

후드를 벗자 마법사로 보이는 젊은 남성의 얼굴이 보였다.

“…… 정하균.”

“오! 이옥훈.”

“왜 이거밖에 없지?”

“미안하다. 계획이 틀어졌다.”

“뭐?”

정하균이 미안한 듯 괜히 히죽 웃으며 대답했다.

“이번에 온 김천재라는 놈. 그놈이 한국 연합의 반을 데리고 남쪽 감옥으로 갔어. 출발하기 전에 갑자기 계획을 바꿔서 내가 막을 수가 없었어.”

“…….”

“어…. 어차피 그곳에는 당신 동생이 있잖아? 괜찮을 거야.”

이옥훈이 주먹을 쥐었다. 그의 손 위로 파란 기운이 모이는 것처럼 보이더니 권투 글러브같이 생긴 장갑 모양으로 차갑게 얼어붙었다.

“너 왜 반말이냐?”

“…… 응?”

“왜 반말이냐고.”

정하균이 괜히 웃으며 그에게 대답했다.

“아니…. 같은 간부끼리 반말 좀 하면 어때. 얼굴 좀 풀어.”

“웃긴가?”

“응?”

“계획에 실패해놓고 웃기냐고.”

정하균의 입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 아니.”

“멍청한 놈.”

부웅-

이옥훈의 주먹이 정하균의 머리를 내리쳤다.

팍!

둔탁한 소리와 함께 정하균의 머리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털썩.

“머저리 같은 놈. 이래서 조센징들은 가까이하면 안 된다니깐. 전원 집합! 즉시 남쪽 감옥으로 이동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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