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화
삼 일.
우리가 ‘정복자의 무덤’의 길을 외우고, 적들의 근무 패턴과 행동반경을 파악하는 데 걸린 시간이다.
첫째 날은 숨어서 이동하며 지도와 성내 길의 일치도를 확인했고.
둘째 날은 일본 플레이어와 군인들의 전력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했다.
마지막 셋째 날.
한국인 플레이어들이 잡혀있는 감옥을 둘러보던 중 나는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하고 말았다.
김치 냉장고만 한 네모난 상자에 못을 수없이 많이 박아넣고 그 앞으로 한국인 플레이어를 끌고 갔다.
얼굴이 퉁퉁 부은 아저씨가 손을 빌며 일본 플레이어에게 빌었다.
“제발! 제발 살려주십시오.”
마법사로 보이는 일본 플레이어가 로브의 후드를 벗었다.
머리 위로 빨간색 해골 마크가 있었다. 타 국가의 플레이어를 백 명 이상 죽여야 얻을 수 있다는 그 ‘빨간 해골’ 말이다.
기껏해야 스무 살 초반? 나이도 얼마 되지 않아 보이는 청년이 아저씨의 머리를 발로 걷어찼다.
퍽!
“닥치고 안으로 들어가라고.”
“크윽…. 저, 정말 모릅니다! 제발!”
“너희 조센징들은 거짓말을 입에 달고 살기에 믿을 수가 없어. 정말 아는지 모르는지 한번 봐보자고.”
마법사가 눈짓하자 군인 NPC들이 상자 안으로 아저씨를 넣었다.
“아아아악, 제발!”
상자 안으로 들어간 아저씨는 조금만 움직여도 못에 찔렸다.
이어 군인들이 상자의 문을 닫고.
끼이이이익.
“제발 살려주십-”
양옆에서 힘껏 흔들었다.
쿠궁. 쿠궁. 쿠궁.
“아, 아악. 제, 제발. 제발! 제발 살려줘. 살려달라고!! 이런 X발 살려줘!!”
상자가 좌우로 움직일 때마다 남성이 중심을 잃고 쓰러지며 못에 찔렸다.
어디서 피가 난다고 할 것도 없이 순식간에 온몸이 피범벅이 되었다.
처음에는 비명과 함께 욕설을 내뱉던 남성. 시간이 지나자 ‘크윽’ 이라는 신음만을 흘렸다.
아저씨 머리 위에 있는 생명력 게이지가 조금씩 깎여갔다.
빨간색 게이지가 회색으로 변하기 직전, 마법사로 보이는 자가 아저씨를 상자 안에서 꺼내더니 구둣발로 배를 짓눌렀다.
“허어억.”
“정말 모르는가 보군.”
“저…. 정말…. 모릅….”
“쓸모없는 새끼.”
마법사 남성이 아저씨의 머리를 향해 손바닥을 펼치더니.
“파이어볼.”
화염구를 날렸다.
화르르르르륵!
“크아아아아악!”
2 서클 마법인 파이어볼의 크기가 머리만큼 큰 것으로 보아 놈의 숙련도가 상당히 높은 놈이다.
얕보면 안 되겠다.
다행인 것은 나 혼자 이곳에 왔기에 녀석의 정신 나간 행동을 참아낼 수 있었지.
정우가 왔었더라면 벌써 튀어 나가서 놈과 싸웠을 것이다.
‘상성이 안 좋아서 이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둠을 따라 좀 더 깊은 지하로 내려가자 사람들을 거꾸로 매달아 놓고 물고문을 하는 장소와.
펜치로 손톱과 발톱을 뽑아내고 입에 오물을 쏟아붓는 미친 짓거리를 하는 곳이 나왔다.
이게 사람이 할 짓인가?
NPC들은 그저 플레이어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모든 고문을 주최한 자들은 플레이어. 게임의 시스템이 만들어낸 AI가 아니라 진짜 사람이라는 말이다.
“빌어먹을 새끼들.”
모든 것을 전부 확인한 나는 분노에 치를 떨며 감옥 밖으로 나갔다.
* * * * *
<그날 밤>
가늘게 내리던 빗줄기가 점점 빠르게 내리며 굵어지더니.
결국 폭풍우가 찾아왔다.
모든 준비를 마친 우리는 쏟아지는 폭우에 발소리를 감추며 이동하기 시작했다.
투두두두두두-
건물과 건물 사이.
좁은 골목을 미로 찾듯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감옥으로 가는 제일 안전한 길을 선택했다.
내 뒤로 스무 명 정도 되는 플레이어가 따라붙었다.
물론 우리 그룹원도 전부 말이다.
남쪽 감옥은 우리가.
북쪽 감옥은 정하균과 김리아의 그룹이 맡기로 했다.
감옥 근처에 도착한 나는 작전을 전달하였다.
“적을 상대할 때 절대 망설이지 마세요. 여기까지 왔을 정도면 모두 숙련된 플레이어. 적들을 상대로 판단이 느리면 죽습니다.”
머리가 반쯤 벗겨진 저격수 플레이어가 내게 물었다.
“저희는 반대편 건물에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폭우 속에서도 저격이 가능한가요?”
“그럼요. 여기 모인 자들은 전부 중급 저격수들입니다. 적이 움직이지만 않는다면 사격하는 데 아무 문제없습니다.”
“…… 그럼 잘 부탁하겠습니다.”
열 명의 저격수 부대가 우리에게 목례를 한 후 반대편 건물로 뛰어갔다.
누가 활의 민족이 아니랄까 봐, 한국인 플레이어의 대부분이 원거리 무기를 사용하는 직종이었다.
절반이 떠난 후 나는 시계를 보았다.
“…… 10시. 들어가자.”
일본군 막사에서 취침 소등을 하는 시간.
시간에 딱 맞춰 도시 전체를 밝히고 있는 불의 반 이상이 꺼졌다.
앞으로 두 시간 동안은 근무 교대가 없기에 적의 상부에 보고될 일이 없다.
이 녀석들만 잘 처리하면 말이다.
다다다다다다!
감옥의 문지기들이 달려오는 우리를 보았다.
-뭐, 뭐지 저거?
-안 보여. 사람인가?
-아 몰라. 그냥 쏴!
감옥 입구를 지키는 군인 NPC 중 한 명이 나를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멈춰! 다가오면 쏜다!”
“…… 쏴라.”
탕! 탕!
비를 뚫고 날아온 총알이 내 몸에 맞았다. 코트에 구멍을 내며 파고든 탄이 피부 위에서 빠르게 돌았다.
따끔거렸다.
그게 끝이었다.
박규환과의 능력치 공유로 전사만큼 단단해진 몸과 빠른 움직임.
녀석들은 내 상대가 되지 않는다.
빗속을 빠르게 질주한 나는 감옥 입구를 지키는 NPC 두 놈의 목을 잡아 쓰러뜨렸다.
철퍽!
놈들이 물웅덩이에 쓰러지며 목에서 바람 새는 소리를 내었다.
땅에 얼굴이 처박힌 일본군이 발버둥 쳤다.
탕!
총성과 함께 군인의 머리가 터졌다.
이어 그의 머리에서 붉은 액체가 흘러나와 물웅덩이를 적셨다.
뒤로 돌아보니 반대편 건물에 대기 중인 저격수가 총구를 내밀고 있었다.
‘…… 실력 하나는 굉장하구나.’
정우가 뒤늦게 달려와 짜증을 내었다.
“야 김천재! 첫 스타트는 내가 끊는다니깐.”
“이건 NPC잖아. 플레이어는 너 줄게.”
“NPC나 플레이어나…. 우선 알았어. 안으로 들어가자.”
나는 고개를 끄덕인 후 감옥의 문을 열었다.
끼이이익.
문을 열자 소름이 돋을 만큼 강한 한기가 뿜어져 나왔다.
마치 들어오지 말라고 원령[怨靈]이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
늦은 밤인데도 불구하고 감옥 안에서 사람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자인지 여자인지는 모른다.
너무나도 힘없고 가녀린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사, 사…. 살려주세요.
정우의 얼굴이 붉어졌다.
쉽게 흥분하는 타입이라 이렇게 될 줄 알았다.
우리는 빠른 속도로 안을 향해 뛰었다.
“마정우, 너는 1층을 맡아. 나는 지하로 내려가도록 할게.”
“알았어.”
안쪽으로 이어진 좁은 길목을 지나자 천장이 높은 원형의 공간이 나왔다.
양옆으로 한국인들이 갇혀 있는 수십 개의 철창이 보였다.
나는 정우와 마이클, 그리고 연합원들에게 1층을 맡긴 후 유소라와 함께 지하로 내려왔다.
또각. 또각. 또각. 또각.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유소라의 구두 소리로 가득 채워졌다.
“…… 소라씨. 나중에 그 신발 바꿔야 할 것 같아요. 밑창이 단단해서 땅이 울려요.”
“…… 네. 신발을 벗을까요?”
“아뇨. 지금은 괜찮아요. 다만 다음 작전 때는 위험할 것 같아서 신발을 바꿔야 할 것 같아요.”
“아….”
“이번 일이 끝나면 제가 하나 구해드릴 테니 신경 쓰지 마세요.”
“어어…. 고마워요.”
유소라가 방긋 웃었다.
과연 저 미소는 가식적일까 진심이 담긴 것일까.
그녀의 모든 행동이 신경 쓰인다.
두 번째 라운드가 끝날 때, 정우가 내게 넌지시 던진 말.
유소라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왜 갑자기 그 이야기가 떠올랐는지 모르겠지만 모든 신경이 그녀에게 꽂혔다.
이렇게 중요한 상황에서 말이다.
나는 침착하게 표정을 가다듬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소라 씨. 발밑이 미끄러우니깐 조심하세요.”
유소라가 속삭이듯 말했다.
“네….”
“그렇게까지 조용히 말하지 않아도 돼요. 어차피 여기까지 온 이상 작전은 성공이니까요.”
“그래요?”
“예. 제가 발소리에 대해서 말한 건 다음 작전 때 안전하게 이동하려고 말한 거예요.”
“아….”
계단의 끝에 도착한 나는 토치에 불을 붙여 주위를 밝혔다.
-키아아악!
기이한 소리에 좀비인 줄 알고 비춰보니 고문을 받던 자가 눈이 부셔 낸 소리였다.
“크으으윽. 누, 누구야 이 시간에. 고문은 하더라도 잠은 자게 해줘야 할 것 아니야?!”
배짱이 두둑한 사내다. 아니 여성이다?
여자 목소리다.
고문을 당하면서 저런 말을 당당히 할 수 있다니.
나는 가까이 다가가 포로의 얼굴을 보았다.
“…… 뭐야.”
철창 안에 있는 여성이 내 얼굴을 보더니 반가운 목소리를 내었다.
“어? 어?! 어!! 김천재!”
세 번째 라운드에서 헤어졌던 김연희다.
차카니를 따라가서 안전한 곳에 있을 줄 알았는데 왜 감옥에 있는 거지?
“네가 왜 여기 있지?”
“어? 뭐…. 잡혀 왔지.”
“잡혀와? 너 혼자?”
“응.”
“차카니는? 아니 조영기씨는?”
김연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몰라. 같이 싸우다가 사라졌어.”
“조영기가 전투 중에 혼자 도망갔다고?”
“아, 아니! 그건 아니고…. 영기 아저씨가 후퇴 명령을 내렸는데. 내가 더 싸우려다가 잡혔어….”
죽어도 싸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야? 그 표정 뭔데?!”
“아무것도 아니야.”
“하…. 어? 저번에 그 이쁜 언니도 같이 있네. 언니 안녕!”
유소라가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손을 삐걱삐걱 흔들었다.
어색한 움직임이 마치 로봇 같았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유소라는 김연희를 굉장히 싫어한다고 했었다.
여우 같다나 뭐라나?
“김연희, 거기서 꺼내줄 테니 내 부탁을 좀 들어줘야겠다.”
“…… 무슨 부탁인데?”
“어려운 건 아니고. 그냥 이 건물 안에서 열쇠를 하나 찾아주면 돼.”
“열쇠?”
“감옥 열쇠.”
김연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계약성립.”
“그럼 꺼내주마.”
나는 철창의 쇠를 붙잡고 온 힘을 다해 양옆으로 밀었다.
끼익. 끼이이이이익.
쇠봉이 마찰음을 내며 천천히 휘어졌다. 어린아이 한 명 겨우 지나갈 정도의 구멍.
그곳을 김연희가 요가하듯 몸을 꺾어 나왔다.
“야호! 와, 아저씨 힘 진짜 세네? 네크로맨서 맞아?”
“후우-. 맞아.”
김연희가 휘어진 쇠봉을 만지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무슨 네크로맨서가 쇠봉을 휘어…. 차력사야?”
나는 그녀의 등을 떠밀었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빨리 열쇠 찾아. 열쇠는 아마 1층에 있는 간수 중 누군가가 가지고 있을 거야. 1층에는 우리 그룹이 대기 중이니 가서 도움을 받도록 해.”
“어….”
“열쇠를 찾으면 내게 돌아오도록 하고. 할 수 있겠어?”
“당근빠따!”
김연희가 뒤로 공중제비를 돌더니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녀를 보낸 나는 유소라와 함께 다시 감옥 안쪽으로 걸었다.
이 건물의 담당 플레이어이자 고문을 즐기는 미친놈이라서 그런가?
걷는 내내 철창 안에 갇힌 사람들이 힘없는 눈빛으로 땅을 보고 있었다.
마치 선택 받지 않기 위해 눈길을 피하는 것처럼.
“…… 소라 씨.”
“네?”
“멈추세요. 도착한 것 같습니다.”
지하 감옥의 끝에 도착하자 단단해 보이는 두꺼운 철문이 보였다.
여기저기서 포로들의 한숨 섞인 이야기가 들려왔다.
구석에 앉아 있는 노인이 우리의 대화를 듣더니 입을 열었다.
-다, 당신은 혹시 한국인?! 살려주십시오! 제발 부탁하겠습니다. 여기서 나가게만 해주신다면 제가 가진 제니를 전부 드리겠습니다.
젊은 청년이 철창을 손가락으로 치며 말했다.
-저는 더한 것도 할 수 있습니다. 짐꾼이 되겠습니다. 선생님 제발 구해주세요!
영화배우같이 뛰어난 얼굴을 가진 여성이 땅을 기어 철창에 붙었다.
캉!
“살려, 살려주세요. 하아…. 이제는….”
그녀의 다리를 보니 화상을 입은 것처럼 불타 있었다.
나는 검지를 들어 입술 위에 가져다 대었다.
“살고 싶으면 모두 조용히 있어요.”
모두가 내 신호를 이해한 듯 입을 닫고 숙연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뚜벅. 뚜벅. 뚜벅. 뚜벅.
나는 주먹으로 철문을 쳤다.
쿵! 쿵! 쿵!
조금 기다리자 안에서 답이 들려왔다.
-누구냐.
“…… 문 열어.”
-뭐라고?
“빨리 문 열라고. 이 머저리 같은 새끼야.”
놈은 내 목소리를 모르고 있다.
나는 저놈 목소리를 알고 있다.
적과 나의 차이는 단 하나뿐이었다. 상대방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것과 없는 것.
철문 안에서 대답해오던 젊은 목소리를 가진 자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어디서 X 같은 놈이 나를 오라 가라 해?! 너 누구야!
나는 문 앞으로 한 걸음 더 다가갔다.
“나오면 알겠지?”
-허허…. 그래 이 새끼야. 너 내가 누군지 모르는 것 같은데. 새로 온 초병이지?
“글쎄.”
-……주둥이 잘못 놀리며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마. 거기 딱 기다려!
빠른 걸음으로 가까워지는 발걸음이 들렸다.
터벅. 터벅. 터벅. 터벅.
끼이이이이익-
문이 천천히 열렸다.
로브를 입은 자의 얼굴이 틈새로 보였다.
나는 순간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대로 손을 뻗었다.
팍!
놈의 양쪽 손목을 잡았다.
나는 힘으로 적을 제압하며 벽에 붙였다.
팍!
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아악! 이거 안 놔? 너 누구야? 놔! 놓으라고 이 X 같은 새끼야!”
성인이 어린아이를 제압하듯 힘의 차이가 컸다.
나는 놈의 손목이 부러질 듯 강하게 잡으며 귀에 속삭였다.
“천벌을 내려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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