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화
쿵! 쿵! 쿵!
누군가 아지트의 문을 두드렸다.
정하균이 고양이처럼 걸음 소리를 내지 않고 다가가 귀를 대었다.
“…… 누구냐.”
마정우가 대답해왔다.
“문 열어.”
“암호는?”
“그런 게 어딨어! 빨리 열어 힘드니깐.”
정하균이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철컹.
끼이이이익.
반쯤 열린 문틈으로 피투성이의 얼굴이 불쑥 튀어나왔다.
-크하아아악!!
정하균이 놀라서 뒤로 자빠졌다.
“아악!”
털썩.
마정우가 낄낄거리며 피투성이의 군인의 목덜미를 잡고 안으로 들어왔다.
“뭐해?”
“…… 뭡니까? 그 녀석은.”
“일본군. 심문하려고 데려왔어.”
“……!!”
-뭐야, 저놈? 어떻게 혼자 일본군을 잡아 온 거지.
-들킨 건 아니고? 고문당해서 일본 놈들에게 넘어간 건 아니겠지?
마정우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더니. 야, 김천재! 네가 시킨 일 전부 끝내고 왔다.”
나는 해맑게 웃으며 정우에게 다가갔다.
“위치는 전부 확인했고?”
“어. 군인들도 특정한 시간 외에는 거리에 돌아다니지 않는다더라.”
“왜지?”
“왜긴. 스펙터 그 새끼가 나타나니깐 다들 레벨업 하느라 바쁘겠지. 이 성에 있는 인구수가 이천 명 정도 된다는데. 한 번 뜰 때마다 몇백 명씩 죽지 않겠어?”
모든 라운드에 등장하는 꼬마 악마 스펙터.
우리가 이곳에 오기 하루 전 등장했었으니 놈이 등장하려면 못해도 열흘 이상이 소요될 것이다.
즉 다음 대항전이 이루어질 때까지 레벨이 낮아서 죽을 일은 없다는 것.
‘그래도….’
띠링!
[레벨이 증가하였습니다!]
내 머리 위에서 황금색 빛이 한 바퀴 돌았다.
마정우가 흐뭇하게 웃으며 나를 보았다.
“뭐야. 설마 자동 사냥 켜놨냐?”
“…… 어. 올 때 소생시켜둔 동물들. 전부 망자의 숲에서 대기 중이야.”
“하…. 좋네. 지금 경험치 배당이 20프로지?”
“그렇지. 내가 사냥한 경험치도 파티원한테 공유되니깐. 다 같이 업 할 수 있을걸?”
“공유 비율이 오십 프로였나?”
“육십. 나 네크로맨서잖아.”
마정우에게 잡혀 온 군인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이 빌어먹을 조센징들.”
만신창이가 되어 적진에 끌려왔는데도 저런 말을 할 수 있다니.
좋은 먹잇감이다.
나는 환하게 웃으며 쪼그려 앉았다.
“너 계속해서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
“시대가 어느 때인 데 조센징이라는 말을 해? 복장도 무슨 일제 강점기 시절 군인도 아니고. 되게 구닥다리다.”
“닥쳐라! 이 옷은 정복자님께서 친히 디자인하신 물건!”
한조 놈의 작품이구나.
퇘엣!
놈이 뱉은 침이 내 앞으로 떨어졌다.
“…… 그럼 심문을 시작하도록 하지. 고문일 수도 있으니 각오해.”
* * * * *
정하균이 지하실의 끝 쪽 방을 심문실로 내주었다.
나는 잡혀 온 일본 쪽 군인을 나무 의자에 앉히고.
양팔과 다리를 밧줄로 의자에 묶었다.
“놔라!!”
정우가 무거운 사슬갑옷을 벗어 땅에 던지더니.
쿵.
도끼를 어깨에 걸쳤다.
나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놈의 앞에 마주 앉았다.
털썩.
창고로 쓰던 방이라서 그런지 굉장히 어두웠다.
또옥. 또옥.
천장에서 물방울이 떨어져 내렸다.
방 안에 있는 것이라고는 의자 두 개와 놈과 나 사이에 있는 테이블이 끝.
테이블 위로 보이는 것은 흔들리는 조명 아래 잠깐씩 비치는 놈과 내 얼굴뿐이다.
“질문은 총 네 가지. 답변할 기회는 십 초. 제한 시간이 지나가면 그대로 벌이 주어진다.”
“지랄하지 마라. 내가 말할 것 같나?”
“…… 시작한다.”
군인의 머리 위로 ‘설정’이라는 글씨가 반짝였다.
[시스템 메시지]
[NPC와의 비밀 대화 기능이 활성화됩니다.]
[대화의 지목 상대는 ‘김천재’플레이어의 질문을 거부할 수 없습니다.]
웃음이 절로 나왔다.
경성에서 시장에게 받았던 특성이 발동되었다.
초수나 중수 플레이어들은 전혀 모르는 금화의 활용도. 내게는 너무나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일본 플레이어가 입을 꾹 닫고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녀석의 얼굴에 담배 연기를 천천히 내뱉으며 물었다.
푸후-
“첫 번째 질문. 한조라는 놈이 오늘 오전 우리와 싸웠는데. 아직 살아있나?”
“……”
놈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포박을 풀어보려 손과 발을 거세게 흔들었다.
대답할 생각이 없나 보다.
그런데도 절로 입이 열어졌다.
NPC들의 입을 강제로 열게 하는 내 특성이 놈을 움직였다.
“하, 한조님은….”
부웅-
바람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쾅!
“크아아아악!!”
마정우가 갑자기 도끼를 내리쳤다. 군인의 왼쪽 팔이 잘려 나갔다. 나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정우를 보았다.
“뭐, 뭐야. 아직 말하는 중인데?”
너무 놀라서 가슴이 크게 뛰었다. 두근거림이 머리까지 전달되는 것 같았다.
두근. 두근.
정우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답은 내가 알고 있어. 한조는 아직 살아있다.”
이 녀석도 여기 오더니 제정신이 아니구나.
“…… 그, 그래? 다음부터는 미리 말하고 휘둘러. 깜짝 놀랐잖아.”
“아! 미안하다. 크크크, 시간 아까우니깐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자.”
심문하는 놈이 NPC여서 다행이다. 플레이어를 이런 식으로 다뤘다가는 나중에 가서 어떤 말을 들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크으으윽…….
군인이 입에서 침을 질질 흘리며 신음을 내뱉었다. 잘려 나간 놈의 손에서 흘러내린 피가 땅을 적셨다.
비릿한 피 냄새가 방에 진동했다.
“…… 대답할 수 있겠냐?”
“크으윽….”
머리 위에 생명력 게이지를 보니 죽기 일보 직전이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자고 있는 마이클을 깨워 심문실로 불렀다.
“마이클. 힐 좀 해줘.”
“힐? 오케이.”
마이클이 허리춤에서 권총을 꺼내며 방 안으로 들어갔다.
끼이이이익.
“헬로우! 제패니즈.”
“크윽…. 너는 뭐냐. 응? 아니 조센징이 아니잖아.”
“준비되었습니까? 가볍게 시작하도록 하겠읍니다.”
철컥.
장전하는 소리가 들리자 겁에 질린 일본 군인의 동공이 흔들렸다.
“미, 미친놈들. 나를 정말 죽일 셈이냐? 대 일본제국의 군인인 나를? 감당할 수 있겠나?!”
“오케이. 오케이. 한 방에 끝내드릴게요우.”
“뭐, 뭘 한 방에 끝내?”
마이클이 놈을 안심시키기 위해 혀를 날름거리며 씨익 웃었다.
“…… 저스트, 힐.”
차가운 총구가 이마에 닿자 일본 군인의 표정이 갑자기 굳었다.
“…… 저스트 킬?”
일본 군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놈이 의자를 뒤로 끌며 도망가다 옆으로 자빠졌다.
쿵!
“자, 잠깐만. 말할게. 말하면 되잖아? 크으윽…. 팔이….”
“고통은 한순간. 이거 맞으면 안 아파진다.”
“고, 고통?! 잠깐만. 잠깐만요. 이러지 말고 아까 그 조센징 데리고 와.”
어둠 속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내가 한 발자국 앞으로 걸어 나왔다.
긴장해서 내가 방 안에 있는지도 모르고 있었나 보다.
마이클이 쓰러져 있는 일본 군인에게 다가가 권총을 겨누었다.
“…… 천재 킴. 쏴요우?”
“제발…. 제발 쏘지 마. 부탁하마. 전부 대답한다고. 쏘지 말라고!”
일본 군인이 충혈된 눈으로 핏대를 세우며 입을 떨었다.
그의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이 땅에 떨어져 피에 섞였다.
이러려고 한 게 아닌데.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일본 군인에게 물었다.
“그럼 심문을 다시 시작하도록 하지. 마이클, 나가 있어.”
“…… 노 힐?”
“노 힐. 나가.”
“또 나가? 오케이.”
마이클이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권총을 허리춤에 다시 집어넣었다.
* * * * *
고문, 아니 심문이 끝났다.
결국 일본 군인은 불구가 되어 버렸다.
정우 말로는 일제 강점기 시절 우리나라 사람들이 겪은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며.
부웅-
팍!
“크하아악! 내 방울!”
“닥쳐. 아직 한 쪽 남았어.”
그분들의 한을 풀어야 한다고 했다.
‘…….’
고문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던 나는 심문실 밖으로 나왔다.
“나 먼저 나가 있는다.”
“어. 나는 다 끝나면 나갈게.”
“적당히 해. 어차피 NPC잖아.”
“NPC라서 더 화가 나. 이런 캐릭터가 있다는 것 자체가.”
“…… 맘대로 해.”
끼이이익.
쿵.
문 앞에서 대기하던 정하균이 내게 물었다.
“끝났습니까?”
“…… 예. 설명해 드릴 테니 이곳에 있는 분들을 전부 모아주시겠어요?”
정하균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손뼉을 치며 플레이어들을 모았다.
“다들 모여봐!”
나는 그들을 향해 심문 결과를 말해주었다.
주요 시설이랄 것은 딱히 없었고.
신경 써야 할 만한 것은 그저 일본 쪽 플레이어였다.
예상하지 못한 능력들을 가진 자들이 섞여 있었다.
“우선 제일 조심해야 할 주의할 인물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첫 번째는 닌자 직업을 가진 사이코 마코토. 일본에서만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이라더군요.”
-사이코 마코토! 그 새끼 정말 위험하지.
-우리 그룹원도 그놈한테 단방에 목이 잘려 나갔어.
“다음은 자칭 사무라이. 라고 하지만 실상은 그저 검객의 직업을 가진 ‘다나카 군키치’.”
-다나카 군키치? 못 들어봤는데.
-그 한조가 한국인 사냥할 때. 중국인들 사냥하던 그 녹색 군복 입은 놈 아니야?
-맞아! 잡혀가는 중국인들이 군키치, 군키치 라고 떠드는 거 들었어.
나는 헛기침을 해서 다시 시선을 모은 후 말을 이었다.
“군키치라는 자는 300인 베기로 유명한 밀리터리 오타쿠라고 합니다. 아마도 이놈이 옛 일본 군복을 다시 끄집어낸 것 같아요.”
정하균이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쾅!
“미친놈이군.”
“…… 그럼 마지막으로 조심해야 할 자는…. 아니 자들은. 군키치와 같이 행동하는 두 명의 남성. 무카이와 노다입니다.”
다들 무카이와 노다를 모르는지 그들이 누구냐고 수군거리기만 했다.
“자자- 조용. 무카이와 노다는 군키치와 같이 움직이는 자입니다. 둘 다 군키치와 같은 검객 직업을 가지고 있고. 특이한 점은 둘이 항상 같이 다닌다는 것이에요.”
김리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둘이 같이 다녀요?”
“그건 나도 모르겠는데.”
“아….”
“하여튼 조심해야 할 인물들은 여기까지. 주요 시설이나 놈들의 움직임 같은 것은 여러분이 저희보다 더 잘 아실 거예요.”
정하균이 내게 물었다.
“밀정, 밀정은 없다고 합니까?”
나는 모여있는 플레이어들을 천천히 훑어본 후 정하균에게 대답했다.
“…… 예.”
“그, 그런가요?”
“예. 앞서 말씀해주신 무기 거래 사건은 아마 우연의 일치인 것 같습니다.”
정하균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다행입니다. 이곳에 있는 분들은 다들 오래 알고 지낸 사이인데. 혹시라도 밀정이 나올까 싶어 걱정했습니다.”
“…… 그래요?”
“예. 오랫동안 알고 지낸 동지를 죽이기는 어려우니까요.”
동지?
“…… 그렇군요.”
나는 책상 위에 펼쳐진 지도를 보며 정하균에게 물었다.
“대항전까지 앞으로 열흘. 시작하기 전까지 저희가 해야 할 일이 있어요.”
“해야 할 일? 뭡니까?”
“…… 총 56명의 플레이어.”
“56명?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내가 식칼로 지도 위를 찍었다.
쿵!
“포로로 잡힌 한국의 플레이어들. 전부 구출해야겠습니다. 위치는 전부 파악해놨으니 작전을 짜도록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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