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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인 더 아포칼립스-44화 (44/215)

44화

[시스템 메시지]

[네 번째 라운드를 시작합니다.]

쏟아지는 빛을 뚫고 들어왔더니.

어둠이 다시 찾아왔다.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어두운 것은 아니었다.

그저 초저녁 해가 지는 중이라 생각될 정도.

다만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는 먹구름과 천천히 떨어져 내리는 비가 땅을 척척하게 적시고 있었다.

[‘김천재’님의 그룹]

[앞으로 진행될 ‘멸망의 땅’ 네 번째 라운드의 스토리 흐름을 선택해주세요.]

A. 승리를 쟁취할 때까지 네 번째 라운드에 머문다.

B. 승패와 관계없이 이벤트 종료 후 다음 라운드로 진행.

첫 번째 루트는 다음 라운드로 넘어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지만 커다란 보상을 가지고 있고.

두 번째는 마을 안에 숨어있기만 하더라도 다음 라운드에 도착할 수 있는 최단 루트다.

나는 A를 선택했다.

이량훈 녀석이 척준경을 데리고 간 이상.

나는 이곳의 보상을 꼭 가지고 가야 하기 때문이다.

“A를 선택한다.”

[시스템 메시지]

[모든 플레이어가 스토리 흐름의 선택을 마쳤습니다.]

[선택지- A]

부릉!

끼이이이익.

자동차가 결계에 막혔다.

숲에서 성까지 이어진 돌로 만들어진 다리가 있다.

외길의 양옆으로는 깊은 구멍이 있었고.

그 안으로는 협곡으로 보이는 곳에 하얀 안개가 가득 차 있었다.

우리는 차를 숲 앞에 세워놓고 돌다리를 따라 안으로 걸었다.

터벅. 터벅. 타다닥!

유소라가 비에 젖은 돌을 밟고 삐끗했다. 그녀의 중심이 흔들리며 다리 밑쪽으로 휘청거렸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아당겼다.

팍!

“조심해요. 떨어지면 죽어요.”

유소라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죄…. 죄송해요.”

안개가 가득 차 있어 그저 협곡으로 보이지만. 이 밑에는 돌연변이 괴물들의 서식지대.

-키햐아아아악!!

절벽 밑에서 기이한 소리가 들려왔다. 유소라가 겁먹은 얼굴로 내 쪽으로 바짝 붙었다.

“뭐, 뭐에요?”

“바이러스에 감염된 괴물들이요.”

“…… 저 밑에 괴물들이 있어요?”

“예. 아주 많이.”

마이클이 유탄 발사기에 빛을 모으더니 다리 밑을 향해 쏘았다.

펑!

빛이 번쩍이는 순간 수십, 아니 수백 마리의 돌연변이 괴물들이 우리 눈에 들어왔다.

잠깐이지만 놈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여태까지 보지 못한 종류의 괴물들이 이 밑에 즐비했다.

고블린, 트롤, 오우거.

현실에서는 볼 수 없는 몬스터라는 존재들이다.

그들마저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몸이 보랏빛으로 변이되었다.

-키하아아악!

-키야악.

-크허어얼.

마이클의 유탄에 맞은 돌연변이들이 비명을 질러댔다.

“…… 천재 킴. 저놈들 안 죽는데요우?”

“보통 놈들이 아니니깐. 저놈들하고는 싸울 생각 하지 마. 사람이 감염된 것하고는 전혀 달라.”

“아…. 알겠어요우.”

마이클이 다리 밑을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우리는 조심스럽게 걸어 돌다리의 끝에 도착했다.

안개 때문에 멀리서는 보이지 않았던 성의 윤곽이 드러났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돌연변이 괴물들이 ‘폐허가 된 마을’까지 넘어오지 못하게 막고 있는 철옹성[鐵甕城].

[‘정복자의 무덤’ 지역에 입장하셨습니다.]

중세시대 성처럼 보이는 이곳은 한국, 일본, 중국 플레이어가 전부 모이는 곳이다.

다음 라운드로 넘어가기 위해 세 나라의 플레이어들이 끊임없이 싸우는 장소.

마정우가 도끼의 손잡이를 꽉 쥐며 내게 물었다.

“정면 돌파?”

“…… 아니. 조사가 끝날 때까지는 몸을 사리도록 해.”

“오케이.”

네 번째 라운드부터는 계획 없이 행동하면 분명 죽게 될 것이다.

유토피아라 불리는 세 번째 라운드와는 위험도가 전혀 다르다.

사이가 좋지 못한 나라 간의 대항전이기에 그만큼 치열한 전투가 이루어지니 죽을 확률도 높다.

‘뭐-.’

루트 B를 선택했다면 숨어만 있어도 다음 라운드로 갈 수 있지만.

나는 A를 선택했으니….

-띠링!

내 머리 위에 해골 마크가 나타났다.

정우도 마이클도 유소라도.

전부 머리 위에 PK 마크가 생겨났다.

[PK 허용 지역에 들어오셨습니다.]

[현 시간부로 플레이어 간의 살인을 허용합니다.]

[PK 등급에 따른 어드밴티지가 생기니 열심히 싸워 주십시오.]

이제부터는 살인이 일어나도 NPC가 개입하지 않는다.

성문을 지키고 있는 NPC 앞에 도착한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 정우야. 설마 일본 새끼들이 여기 먹은 거냐?”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군의 군복을 입고 있는 군인 한 소대가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그들 중 콧수염을 기른 자가 앞으로 나와 내게 물었다.

“*^@##@^*?”

뭐라는 거야?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NPC가 머리를 긁적이자 시스템 메시지가 나타났다.

[시스템 메시지]

[언어 동기화 완료]

“어디서 오셨습니까?”

“폐허가 된 마을에서 왔습니다.”

“어느 나라 소속이시지요?”

“대한민국.”

“오호라. 조센징.”

조센징?

마정우가 욱해서 앞으로 치고 나가려 했다.

나는 그를 가로막으며 뒤로 돌아가라는 신호를 보냈다.

‘침착해야 한다.’

나는 심호흡을 크게 한 후 일본군에게 대답했다.

“안으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출입 허가증은?”

“여기 있습니다.”

김준철 소령의 서명이 되어있는 출입증을 보더니, 군인들이 길을 열어주었다.

“현재 이 성의 주인은 대 일본 제국이므로 조심하도록 해라.”

NPC의 말투가 싹수없게 변했다.

나는 고개를 살짝 흔들어 인사를 한 후 성안으로 들어왔다.

* * * * *

비가 멈추지 않는다.

천천히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머리가 다 젖어 미역처럼 내려왔다.

가로등이 없었으면 건물의 간판이 보이지 않았을 정도로 어두웠다.

게임 내에서는 중세시대 성이라고 해서 엄청나게 깔끔하게 표현되어 있었는데.

여기는 정말 멸망의 땅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어두운 분위기가 났다.

“여, 김천재.”

“왜?”

“성 위에 깃발 보이냐?”

고개를 들어 성의 꼭대기를 보니 욱일기가 달려 있었다.

“미친놈들.”

“내가 가서 태우고 올까?”

“혼자 가면 네가 태워질걸.”

“같이 가면 되잖아.”

“적이 몇 명인 줄 알고?”

“하…. 여기 중국 플레이어들도 있을 텐데. 왜 저 꼴을 가만히 보고 있는 거지?”

나는 욱일기에 총 쏘는 시늉을 하며 대답했다.

“보고 있을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겠지.”

“…… 역겹다.”

“됐어. 저 깃발은 내가 곧 바꿀 거니깐 신경 쓰지 마.”

숙소를 찾아 걷는 내내 골목골목에서 살기가 느껴졌다.

다른 플레이어들이 눈에 보이지는 않는 것으로 보아 숨어서 우리를 지켜보는 것 같은데.

성 전역이 어둡고 안개가 껴있어 방어적인 태세로 걷는 것밖에 할 수가 없었다.

우리가 ‘폐허가 된 마을’에서 오전에 출발했으니. 시간상 분명 점심일 텐데, 하늘에 빛이 한 점도 없었다.

내 귀가 쫑긋거렸다.

터벅.

“…… 정우야.”

“어?”

“전투 준비.”

내 한 마디에 정우가 빠르게 자세를 낮추고 주위를 확인했다.

“마이클 후방 경계!”

“후, 후ㅈ-”

“후방! 백!”

“아 후방!”

마이클이 권총을 빼내더니 후방을 조준하며 경계했다.

유소라가 정우 옆으로 딱 붙었다.

“무, 무슨 일이에요?”

“…… 제 옆에서 떨어지지 마세요.”

.

.

.

.

.

.

터벅. 터벅. 터벅. 터벅.

“아……. 안녕하세요.”

골목 반대편에서 안개를 뚫고 누군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두근. 두근. 두근. 두근.

내 심장이 크게 뛰었다.

적인가. 아군인가.

이 마을에서 혼자 움직일 만큼 간이 커다란 플레이어가 있다니.

거리가 가까워지자 그, 아니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망토를 쓰고 있는 피투성이의 여성. 그녀가 우리 앞으로 천천히 걸어오다 그대로 땅에 쓰러졌다.

털썩.

그녀를 지켜보던 유소라가 앞으로 달려 나갔다.

“괜찮으세요?!”

나는 유소라의 팔목을 잡아 그대로 멈춰 세웠다.

“멈춰.”

“뭐 하시는 거예요.”

“…… 죽기 싫으면 멈추라고요.”

나는 쓰러져 있는 여성의 머리 위를 보았다.

짙 노란색의 해골 마크.

최소한 30번 이상 살인을 경험한 여자다.

PK 허용 지역에서는 한순간의 실수가 죽음으로 이어지기에 절대 방심하면 안 된다.

그녀의 소매 안에 독이 발려진 단검이 숨겨져 있을 수도 있고.

입안에 마비 침이 숨겨져 있을 수도 있다.

그 외에도 상대방을 제압하는 방법이 많으니 조심해야 한다.

내가 정우에게 눈짓하자 마이클과 함께 쓰러진 여성을 살펴보았다.

마이클이 권총을 겨누고.

정우가 옷을 벗겨 확인했다.

“…… 천재야. 이 여자 아무것도 없어.”

“그래?”

나는 주변을 경계하며 쓰러진 여자 옆으로 다가갔다.

“…… 총에 맞은 건가?”

“아니. 날카로운 무언가에 찔린 것 같은데. 칼은 아닌 것 같아.”

“칼은 아니라고?”

“검날로 찔렀다기에는 상처가 너무 작아.”

정우가 로브를 걷어 피로 젖은 복부를 보여주었다. 커터 칼로 찔렀나? 싶을 정도로 상저가 정말 작았다.

게다가 상처의 깊이가 깊지 않다.

“…… 뭐로 찌른 거지?”

“나도 모르지.”

잠시 고민되었다.

이 여자를 살려준다고 해서 우리가 얻을 이익은 전혀 없기 때문이었다.

나는 비에 젖은 머리를 뒤로 쓸어넘기며 잠시 생각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추적자는 보이지 않았다.

설령 있다고 하더라도 빗소리에 걸음 소리가 묻혔을 것이고. 네 번째 라운드까지 올 정도의 실력자면 들키지 않을만한 곳에 벌써 몸을 숨겼을 것이다.

천재. 천재! 천재!! 김천재!!!

“야, 김천재!”

“어? 아 미안. 잠깐 생각하느라.”

“어떻게 할 거냐고. 이 여자 데려가? 짐만 될 것 같은데.”

“…… 한국인일까?”

“모르지. 직업은 알겠는데.”

“직업? 뭔데?”

마정우가 그녀의 주머니에서 나뭇가지 하나를 꺼내어 보여주었다.

“드루이드.”

“…… 데려가자.”

* * * * *

투두두두두두-

우산이 소용없을 정도로 빗줄기가 점점 굵어졌다.

스산한 기운이 성 전역을 감싸 안고, 어둠에서 움직이는 것이 편한 자들이 활발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콰르릉!

어두운 도시 위로 번개가 내리쳤다.

번쩍임과 동시에 건물 위를 뛰어넘으며 빗속을 달리는 다섯 명의 검은 옷을 입은 자들이 보였다.

검은 두건으로 머리와 입, 코까지 전부 가리고 있는 정체불명의 남성들.

그들이 김천재 일행이 있는 여관의 옥상에 도착했다.

“대장. 어떻게 할까요?”

“숨이 붙어있나?”

부하로 보이는 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 얌전히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밧줄을 타고 외벽을 정찰한 검은 복장의 남성이 대장으로 보이는 자에게 말했다.

“놈들이 사층 스위트 룸에 모여 있습니다.”

“실력자로 보이는가?”

“아닙니다. 잘 해봐야 레벨이 이십 정도일 겁니다.”

“…… 잠시 대기.”

검은 복장의 남성 중 이마에 별 마크를 달고 있는 사내가 무전기를 켜고.

툭. 툭.

손가락으로 신호를 보내자.

삐빅.

무전기 건너편에서 가느다란 미성의 남성 목소리가 들려왔다.

-송신자 누구인지?

콰르릉!

다시 한 번 번개가 내리쳤다.

옥상에 있는 검은 복장의 남성들이 전부 비쳤다.

이마에 별 마크를 한 남성이 두건을 내리자 귀신이라 불러도 될 만큼 날카롭고 강인한 얼굴이 보였다.

“…… 한조. 사이코 한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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