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침대에 누워 있는 내 눈꺼풀이 감겨온다.
세크리파이스를 치료할 방법은 찾지 못했다.
마이클 X신 같은 놈이 저주를 치료한다고 내 몸에 신성 주문을 쓰는 바람에 생명력마저 깎여 버렸다.
“후우.”
“김천재, 괜찮냐?”
“괜찮겠냐. 내일 출발하기 전까지는 이대로 쉬고 있어야 할 것 같아.”
마정우가 낄낄거리며 담뱃불을 붙였다.
치직. 치지직.
쓰읍. 푸후-
“아니, 마이클 그 새끼는 왜 너한테 ‘성자의 축복’을 사용했대?”
“스킬 설명에 악의 기운을 없앤다고 적혀 있었다잖아. 스벌- 진짜 뒤질 뻔했다.”
정우가 이를 꽉 깨물며 웃었다.
“크크크큭.”
“웃지 마, 이 새끼야. 나 진짜 뒤질 뻔했어. 눈앞이 노래졌었다고.”
“알았다. 알았어. 세크리파이스 지속 시간이 어느 정도지?”
나는 부풀어 오른 핏줄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해수욕장에서 해파리에게 쏘인 것처럼 보랏빛으로 변하는 부위가 점점 넓어졌다.
“짧으면 삼십 분. 보통 두 시간. 시전자 레벨이 높으면 이틀 정도까지가.”
“걸린 지. 네 시간이 넘었으니 너랑 싸운 놈도 보통 플레이어가 아니었겠네.”
“…… 기습했는데 그 짧은 순간에 반응한 거 보면. 나보다 강할 거야.”
정우가 담배 연기를 길게 내뱉으며 비꼬듯 말했다.
“오호라. 네크로맨서의 신화라 불리는 김천재보다 강하다?”
“어쩔 수 없지. 우리보다 먼저 게임을 시작한 것 같은데.”
나는 상체를 일으켜 세워 침대에 기대었다.
“나도 한 대만.”
정우가 담배 한 개비를 꺼내어 내 입에 꽂아 주었다.
“여기.”
“땡큐.”
“그래서 경성은?”
나는 담뱃불을 붙인 후 길게 들이마셨다.
치직. 치지직.
쓰읍.
천천히 연기를 내뱉으며 히죽 웃어 보였다.
푸후-
“우리보다 강한 놈들이 득실대더라.”
“얼마나 강해 보였는데?”
“레벨로 치면 오십에서 육십 정도? 평균으로 치면 사십 정도.”
“따라잡지 못할 정도는 아니네….”
똑. 똑. 똑.
누군가 우리 방문을 노크했다.
정우가 도끼를 들고 문앞으로 다가가 구멍을 확인하였다.
“…… 유소라?”
“소라씨? 무슨 일이지.”
“나도 모르지. 우선 열어준다?”
“어.”
끼이이이이익.
문을 열어보니 유소라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서 있었다.
“아, 안녕하세요. 정우씨.”
“소라씨, 무슨 일이에요?”
“…… 마이클씨가 제 방에 다녀가셨는데. 천재씨가 크게 다쳤다고 해서요.”
“아…. 하하.”
정우가 야릇한 눈빛으로 나와 유소라를 번갈아 보았다.
손만 괜찮았었어도 머리통을 한 대 쳐주는 건데.
나는 짜증을 참기 위해 그대로 눈을 감았다.
유소라가 고개를 살짝 내밀어 나를 확인하더니 말을 걸어왔다.
“천재씨 괜찮으세요?”
“예. 저는 괜찮아요.”
“많이 다쳤다고 하셔서. 혹시 제 능력이 도움이 될까 해서 왔어요.”
“…….”
유소라의 능력?
생각해보니 주사 외에는 유소라가 어떤 스킬을 받았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다가갔다.
“소라씨. 전직하실 때 삼형 주사 말고 어떤 스킬 받으셨어요?”
“어. ‘치료’라는 기술이 있어요.”
치료(治療).
그저 생명력을 회복시키는 일반적인 기술이었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이 능력으로는 천재씨를 고칠 수 없나요?”
“예. 치료 스킬은 단순히 생명력을 회복하는 것이어서요.”
“아…. 저는 특성 때문에 치료가 가능할 줄 알았어요.”
특성?
생각해보니 세 번째 라운드의 메인 이벤트를 끝내고 모두 다 특성을 받았다.
“어떤 특성을 받으셨나요?”
“‘영혼 치료’라고 적혀 있는데. 설명에는 다친 영혼을 치료하는 물고기를 만듭니다. 라고 적혀 있어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사실 간호사와 함께 그룹을 이룬 적이 처음이라 그들의 능력에 대해 전부 알지는 못한다.
기본적인 필수 스킬만을 알고 있을 뿐.
“한번 사용해보실래요?”
“어…. 방 안으로 들어가도 될까요?”
“예.”
[‘유소라’ 플레이어의 출입을 허가합니다.]
유소라가 우리 방안으로 들어왔다. 그녀가 허공을 바라보며 조용히 주문을 외웠다.
“영혼 치료.”
[영혼 치료]
-지정 환자에게 맞는 영혼을 불러와 치료합니다.
유소라의 손안으로 맑은 물방울들이 모여들었다. 이어 수 십 마리의 작은 물고기들이 만들어졌다.
“닥터 피쉬?”
“어?! 그러네요. 이 물고기, 각질 갉아 먹는 아이들 아니에요?”
“그럴걸요.”
티비에서 많이 보았던 물고기다.
동남아 같은 곳에 여행 가면 발 마사지를 하는 곳에서 힐링한다며 닥터피쉬 테라피 받는 것을 보았었다.
유소라가 피아노를 치듯 손가락을 움직이자 물고기들이 날아와 내 팔에 달라붙었다.
보랏빛으로 변한 핏줄에 물고기들이 달라붙었다. 신기하게도 물을 흡수하는 스펀지처럼 놈들이 내 저주를 빨아들였다.
핏줄에 보라색이 사라질수록 닥터 피쉬의 몸 색상이 보라색이 되었다.
“…… 오!”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유소라가 내 얼굴을 보더니 방긋 웃으며 손을 더욱 크게 휘저었다.
마치 꼭두각시를 조종하는 곡예사 같았다.
몸에 있는 저주가 전부 사라지자 닥터 피쉬들이 유소라에게 돌아갔다.
[현 시간부로 ‘이량훈’님의 저주에서 풀려납니다.]
치료하는 모습을 보던 마정우가 입을 떡하니 벌리고 유소라에게 물었다.
“아니, 소라씨. 이렇게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어요?”
“아…. 저도 이런 능력인 줄 몰랐어요. 처음 써봐서….”
“굉장한데요?”
저주에서 풀려난 나는 몸을 움직여 보았다. 팔을 이리저리 돌려봐도 통증이 없었다.
저주를 삼킬 정도로 강한 치유 능력을 가진 치료 스킬이라.
유소라, 어마어마한 서포터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소라씨 고마워요.”
“뭘요. 이렇게라도 도움이 되어서 다행이에요.”
그녀가 수줍은 듯 고개를 떨구었다. 마정우가 얄미운 표정으로 손가락 하트를 만들었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유소라에게 말했다.
“그럼 내일까지 푹 쉬도록 하세요. 다음 라운드에는 아침 일찍 출발하게 될 거예요.”
유소라가 주먹을 쥐어 파이팅 포즈를 보였다.
“네엡!”
* * * * *
아침 일찍 일어난 우리는 잡화점에 들러 다음 라운드에 갈 채비를 했다.
[장바구니에 Z 바이러스 치료제를 1병 추가합니다.]
[장바구니에 담배 한 갑을 추가합니다. ]
[장바구니에 비상식량 ‘초콜릿 바’를 세 개 추가합니다.]
어차피 다음 라운드까지 두, 세 시간이면 충분히 도착한다.
이 정도면 아무 문제없을 것이다.
잡화점에서 나온 나는 마지막으로 분수대에서 천사의 동전을 몇 개 챙기고 운세를 보았다.
나는 연속으로 동전을 열 번 던져올려 분수대 중앙에 떨어지게 했다.
이곳으로 다시 되돌아오려면 한 참 걸릴 테니, 최대한 긴 운세를 봐두어야지.
핑그르르르르!
퐁당!
동상이 빛을 내었다.
[이달의 운세: 서쪽에서 떠오르는 태양과 동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그대를 날아오르게 한다.]
서쪽에서 태양이 떠오른다.
동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나를 날아오르게 한다.
“…… 서쪽과 동쪽이라.”
볼일을 전부 마친 나는 ‘폐허가 된 도시’의 남쪽 문으로 나와 리 커우러나에게 작별 인사를 하였다.
“리 커우러나. 다음 라운드로 오기 전에 내가 부탁한 일들 잘 끝내놔.”
리 커우러나가 군인처럼 경례를 하며 내게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그의 등 뒤로 대머리 두건 부대가 복명복창하였다.
-알겠습니다!
“…… 위치는 알고 있지? 고블린 하우스.”
“예. 최대한 많이 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그럼 우리 먼저 네 번째 라운드로 이동하도록 할게.”
“조심히 가십시오. 저희도 금방 따라가도록 하지요.”
우리가 오프로드 지프 차량에 탑승하자 리커우러나 일행이 손을 흔들어 주었다.
[세 번째 라운드 클리어]
[현 시간부로 ‘폐허가 된 도시’ 내에서의 일일 임무가 불가합니다.]
[다음 도시로 출발해주시기 바랍니다.]
운전석에 탑승하게 된 나는 열쇠를 돌려 차량에 시동을 걸었다.
우르르릉! 콰과광!
배기량이 높은 차량이라서 그런지 천둥이 치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그럼 간다!”
부릉!
우리가 타고 있는 지프 차가 힘찬 배기음과 함께 출발했다.
정우가 좋은 차를 구입한 덕분에 다음 라운드로 가는 길이 사막임에도 불구하고 큰 문제없이 이동할 수 있었다.
[‘페르아 사막’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차 뒤로 박규환이 대호를 타고 쫓아오고 있다.
호위를 맡은 기사처럼 우리를 지키며 말이다.
태양 아래 달리는 우리의 양옆으로 모래 먼지가 흩날렸다.
전속력으로 십 분 정도 달리자 끝이 없어 보이는 넓은 초원 위로 수많은 동물이 보였다.
뿌우우우우-!
코끼리가 코를 흔들었다.
“천재 킴! 동물들이 쫓아와요우!”
“동물?”
키햐아아아악!
Z 바이러스에 감염된 하이에나 무리가 우리를 쫓아오고 있었다.
‘…… 그렇지.’
“다들 차 꽉 잡아!”
나는 브레이크를 강하게 밟으며 핸들을 돌렸다.
끼이이이익.
마정우가 내게 소리쳤다.
“뭐, 뭐야?!”
“다음 라운드로 가기 전에 잠깐 해야 할 일이 있어서.”
“어? 뭔데.”
“…… 준비. 전투 준비.”
나는 차량에서 내려 박규환과 대호에게 명령했다.
이 주변에 있는 모든 바이러스 감염체들을 사냥할 것을.
* * * * *
사냥이 끝났다.
“리바이브.”
내 한마디에 주변에 있는 동물들 열아홉 마리가 일어났다.
[소환 목록]
-Ⓛ박규환(군인) 1/1 : 대기 중
-대호(동물) 1/1 : 대기 중
-하이에나(동물) 9/9 : 대기 중
-코끼리(동물) 2/2 : 대기 중
-기린(동물) 4/4 : 대기 중
-코뿔소(동물) 4/4 : 대기 중
‘스켈레톤은 나중에….’
동물들을 전부 확인한 나는 다시 지프 차량에 탑승했다.
철컹.
앞자리에 같이 탄 정우가 내게 물었다.
“대비 하나는 철저하네.”
“그게 내 장점이니깐. 자, 그럼 갈까?”
나는 고개를 돌려 뒷자리에 타고 있는 마이클과 유소라를 확인한 후 다시 시동을 걸었다.
쿠르릉.
천천히 액셀을 밟자 동물들이 줄지어 우리를 따라왔다.
동물의 왕국이 따로 없었다.
중앙 평원에서 힘 좀 쓴다고 하는 동물들이 전부 모여 움직이니 다른 녀석들은 가까이 올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이동 중 마이클이 크게 소리쳤다.
그가 어제 다녀왔던 경성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경성!”
마정우가 그의 손가락을 잡아 내렸다.
“저긴 안 갈 거야.”
마이클이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아이 원트 커피.”
“커피는 다음 라운드가 끝나면 원 없이 먹게 해줄 테니 좀 참아.”
“오케이.”
경성의 겉모습을 보던 유소라가 조용히 속삭였다.
“저기는….”
길게 말했는데 듣지 못했다.
엔진음 때문에 뒷말이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뭐라고 말을 했을까?
시답잖은 말 같다고 생각한 나는 다시 운전에 집중하였다.
경성을 넘어 한참 동안 달리자 황토색 땅을 기점으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투둑. 투두두두둑.
고개를 들어 보니 황토색 땅이 시작되는 지점부터 검은 먹구름이 하늘을 가리고 있었다.
[‘망자들의 쉼터’ 지역에 입장하셨습니다.]
나는 천천히 차의 속도를 줄이며 모두에게 말했다.
“모두 정신 차려. 여기서부터는 몬스터들이 갑자기 공격해올 수 있으니깐.”
끼익. 끼익.
와이퍼가 비를 밀어내는 소리가 일정하게 들렸다.
정우가 고개를 꺾어 뼈 소리를 내더니 창밖으로 주변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더 음침하네.”
“그러게. 비 때문에 앞이 잘 안 보여.”
“오른쪽은 내가 보고 있으니깐 걱정하지 말고. 마이클! 너는 왼쪽 잘 봐. 괴물들이 공격해오는지.”
마이클이 권총을 손에 쥐고 고개를 끄덕였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습하고 음침하다.
나무들이 점점 많아지더니 곧 거인들이 살 것 같은 숲이 되었다.
이제는 나뭇잎으로 하늘이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거세게 내리던 비가 나무에 가려져 수그러들자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두운 밤 시골길을 달리는 것처럼 헤드라이트가 비추는 곳만 말이다.
정우와 마이클, 유소라가 손전등을 켜서 창밖을 비추었다.
수풀 사이에 숨어 우리가 지나가는 것을 지켜보는 괴물들이 보였다.
-키야아악!
땅을 기듯이 사족 보행으로 걷고 있는 구울과. 단단한 근육질 몸으로 형광색 연기를 입으로 내뿜고 있는 가스트.
싸울 생각이 없는지 우리에게 붙지는 않았다.
계속해서 나아가자 숲의 반대편에서 빛이 들어오는 게 보였다.
다음 라운드로 넘어가는 게이트다.
나무로 만들어진 문 안에서 영혼들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목표 지점이 얼마 남지 않는 것을 확인한 나는 엑셀을 꽉 밟았다.
“간다.”
부릉!
깊은 터널을 지나 출구로 나오듯 어둠을 뚫고 게이트로 들어왔다.
눈앞이 번쩍였다.
[시스템 메시지]
[네 번째 라운드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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