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대경성(大京城)
모든 서버의 강자들만이 모인다는 마을.
마을 내에 경매장이 붙어있어 진귀한 물건들을 노리는 도둑들이 많은 곳이다.
내가 도둑이라 말한 자 중에는 플레이어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시스템에서 만들어낸 NPC들 또한 꽤 있으니.
오래된 건물들을 지나 경성역으로 보이는 곳에 도착하자 경비병에 내게 말했다.
“시장님은 이 안에 계십니다.”
“…… 감사합니다.”
게임을 처음 접하는 자라면 역 안에 시장이 있다고?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간판을 보는 순간 왜 그런지 알게 된다.
겉모습만 경성역일 뿐 이곳은 청사로 쓰고 있는 건물이다.
[경성 청사]
서로를 마주 보고 있는 군인을 지나가려 하자, 그들이 총을 X자로 그어 내 앞을 막았다.
“어떤 일로 오셨습니까?”
“시장님을 만나러 왔습니다. 허가증은 여기 있고요.”
“…… 들어가시지요.”
청사 안으로 들어오자 외관과는 전혀 다른 내부를 가진 건물이었다.
호텔이라고 불러도 될 만큼 호화스러운 로비에 세계 전역에서 모인 플레이어들이 곳곳에 있었다.
유럽, 아메리카, 아시아, 아프리카.
내가 상대하지 못할 만큼 강한 자들이 널려있었다.
아이템만 보아도 최소한 마의 일곱 번째 라운드에서만 구할 수 있는 것들을 가졌으니 말이다.
‘언제 게임을 시작한 놈들일까.’
나는 놈들의 행색을 살피며 조용히 시장실을 향해 계단을 걸어 올라갔다.
다른 플레이어의 시선이 우리를 향하고 있다.
그래도 나는 당당하게 올라갔다.
이 안은 피케이 허용 지역이 아니기에 안전하니 말이다.
터벅. 터벅. 터벅. 터벅.
그래도 놈들이 신경 쓰였는지 내 걸음이 부자연스러웠다.
피케이가 허용되지 않더라도 그들의 오러는 느껴졌다.
그들의 기를 느끼기만 했는데도 손끝이 떨렸다.
마이클이 내 어깨를 주무르며 말했다.
“천재 킴. 긴장하지마요우.”
“…… 오케이.”
내가 방긋 웃어 보였다.
계단의 끝에 도착하자 호랑이가 그려진 커다란 나무문이 보였다.
나는 노크를 한 후 있는 힘껏 밀고 들어갔다.
끼이이이익.
남색 정장에 두꺼운 시가를 물고 있는 뚱뚱한 남성이 나를 반겼다.
“오호호호. 어서 오시게나!”
처음 봤는데 반갑게 맞아주는구나.
“안녕하세요.”
“자네가 김천재 군이지? 내 김준철 소령에게 이야기를 많이 들었네.”
“…… 그래요?”
“그렇지. 드디어 나타난 ‘여는 자’라면서 엄청나게 기뻐하더군.”
“뭐….”
드르륵-
시장이 서랍을 열어 사진 두 장을 꺼내더니 내게 보여주었다.
“자, 여기 있네.”
“응? 이게 뭔가요.”
“이걸 찾으러 온 것이 아닌가? ‘여는 자’로써 열어야 하는 문들 말일세.”
여는 자.
스토리를 진행하다 보면 특정한 인물만이 문을 열 수 있게 되어있는 장소들이 있다.
그게 바로 나다.
아니, 이 게임의 플레이어다.
나는 사진에 나타나 있는 장소들을 보았다.
“…… 어딘지 알겠습니다. 사진은 다시 넣어두세요.”
“호호호호. 가져가지 않아도 괜찮겠나?”
“예. 아직 그곳에는 갈 수가 없어서요.”
“으흐음….”
나는 시장실 안에 있는 책장을 들여다보며 그에게 말했다.
“시장님.”
“말하게나.”
“제가 왜 여기에 왔는지 알고 계신가요?”
“…… 글쎄. 나는 김준철 소령에게 부탁을 받고. 이 사진을 가져가기 위해 온 줄 알았는데.”
“뭐, 그런 것도 있고. 제가 확인해야 할 곳이 있어서요.”
시장이 내 옆으로 다가와 물었다.
“확인?”
“예. 박물관하고 경매장 출입증을 좀 얻고 싶은데. 받을 수 있을까요?”
“출입증쯤이야 어렵지 않네만. 박물관에는 왜 가려고 하는 거지?”
나는 책장에 꽂혀있는 역사책 한 권을 꺼내 들고 그에게 말했다.
“…… 잊혀진 역사에 대해서 알고 싶어서요.”
시장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신의 책상 앞으로 돌아가 종이에 무언가를 적었다.
“잊혀진 역사라. 하긴 과거를 잊은 자에게 미래란 없지. 자 여기 있네, 내 서명이 들어간 출입증. 이것만 있으면 여기서 못 가는 장소는 없을 것이야.”
“감사합니다. 아, 이거 드릴게요. 폐허가 된 마을에서 가져온 물건인데. 행운이 깃든다고 합니다.”
나는 5제니에 구입한 천사의 황금 동전을 그에게 건네어 주었다.
시장이 동전을 받더니 환하게 웃으며 좋아했다.
“고맙군!”
[‘경성 시장’님의 호감도가 증가합니다!]
[NPC와의 비밀 대화 기능이 오픈됩니다.]
[중앙 평원의 숨겨진 던전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 * * * *
청사에서 나온 나는 박물관으로 이동했다.
경성 우편국을 모델로 삼아 만든 이 박물관은.
‘멸망의 땅’ 역사를 전부 기록하고 있는 장소다.
나는 박물관 안으로 들어와 팜플렛을 받은 후, 가장 오래된 기록이 있는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마이클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과거의 물건들을 보았다.
“천재 킴. 공룡 뼈들이 엄청 많아요우. 어?! 저건 라이언! 엘레펀트!”
“마이클, 제발 좀 닥쳐. 시선 끌리는 짓 좀 하지 말라니깐.”
마이클이 정색했다.
“저 박물관 처음 옵니다.”
“…… 그럼 조용히 즐겨. 부탁할게.”
“알겠어요우!”
공룡 뼈하고 동물이라….
나는 이어진 길을 따라 제일 안쪽의 한국 역사가 기록되어 있는 곳에 도착했다.
찾았는데, 못 찾았다.
이게 무슨 개 소리냐고?
전설의 무인이 있어야 할 장소는 있는데 그 안이 텅 비어 있었다.
“뭔데?”
여기까지 왔는데 없다니.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마이클이 나를 보며 어깨동무했다.
“천재 킴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뉘. 나도 좋아.”
“아, 뭐라는 거야! 여기 없잖아.”
“음? 뭐가 없어요우.”
“척준경. 여기 있어야 할 척준경의 시체가 없다고.”
“척준경이 뭡니까?”
척준경.
고려 최고의 무인이자 한국의 소드 마스터라 불리는 그의 시체가 사라졌다.
누구냐.
분노가 머리끝까지 올라왔다.
나는 짜증을 내며 이마를 붙잡았다.
“하….”
글로벌 서버라고 하더라도 척준경을 데려갈 수 있는 사람은 우리나라 플레이어뿐이다.
타국의 물건은 건드리지 못하게 되어있으니 말이다.
나보다 이 땅에 먼저 발을 들인 네크로맨서.
누군지 모르겠지만 그 녀석이 숨겨진 캐릭터들을 하나씩 데려가고 있다.
‘…… 스토리의 흐름을 바꿔서라도 녀석을 추격해야 한다.’
나는 화를 식히며 마이클에게 말했다.
“…… 마이클. 경매장으로 이동하자.”
“경매장?”
“옥션.”
“옥션! 베리 굿.”
나는 박물관에서 나오며 사라진 물건들이 있나 계속해서 확인했다.
동물의 사체나 뼈 같은 것은 그대로다. 그렇다면 녀석 또한 필요 없는 소환수는 들이지 않는 타입.
나와 같은 전투 스타일을 가진 네크로맨서일 가능성이 크다.
다른 점이라고는 놈이 먼저 이 게임을 시작했다는 것.
“…… 하아.”
혹시 모르니 한 번 해볼까.
나는 땅에 손을 가져다 대고 주문을 외웠다.
-리바이브.
##
[개체 선택]
-티라노 사우르스 / 2마리
-트리케라톱스 / 4마리
-브라키오 사우르스 / 1마리
-프테라 노돈 / 3마리
##
‘……’
저게 진짜 공룡 뼈였어?
다큐멘터리에서 본 박물관에 있는 뼈들은 그저 모형이라고 들었는데.
게임 속에서는 진짜 뼈로 인식을 하다니.
아니, 그보다 저놈들이 내 소환 목록에 나오는 이유가 뭘까?
박물관 안에 있더라도 뼈는 서버 공용이라는 뜻인가.
”….”
어차피 저렇게 큰 소환수들은 데려가지도 못한다. 박물관을 부수고 나갈 수도 없는 모양이니 말이다.
-후우.
이렇게 멀리 와서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하게 되다니.
그래도 혹시나 하는 경우에 대비해서 두 번째 차선책을 생각해놓기를 잘했다.
척준경급은 아니지만 이 마을 안에는 굉장한 놈이 한 마리 남아 있으니깐.
* * * * *
경매장에 도착했다.
이곳만 현대 문물을 받아들인 것처럼 11층 높이의 빌딩이 서 있었다.
경성을 그대로 재현했을 때, 원래대로라면 조선 총독부가 있어야 할 자리지만.
운영자 중 한 명이 강력히 반발하여 삭제한 건물이라 들었다.
나는 경매장 안으로 들어가 오늘 진행할 물품 목록을 보았다.
“…… 뭐. 이 정도 선에서 만족해야겠네.”
나는 경매의 마지막 물품인 열 번째 품목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마이클이 천천히 글자를 읽었다.
“백두산 홀앙이?”
“…… 어. 백두산 호랑이.”
과거 우리나라에서 돌아다녔다는 호랑이 중 대호(大虎)라고 불리는 놈의 시체를 박제해놓은 물건이다.
“가자, 마이클.”
“알았어요우.”
시간을 보니 곧 있으면 경매가 시작할 것 같았다. 나는 마이클과 함께 경매장의 안으로 들어가 제일 뒤쪽에 자리를 잡았다.
오고 가는 플레이어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터벅. 터벅. 터벅. 터벅.
익숙한 얼굴의 플레이어 한 명이 내 앞으로 지나갔다.
‘…… 저 녀석.’
해골 갑주에 사신 낫을 들고 있는 저자.
폐허가 된 마을에서 보았던 네크로맨서다.
이어 백발의 할아범이 지팡이를 짚으며 들어왔다. 저자 또한 폐허가 된 마을에서 보았던 검객.
종현이라는 자와 같은 그룹에 속한 노인이다.
강력해 보이는 플레이어들이 줄지어 들어왔지만, 딱히 눈에 띄는 자는 없었다.
사람들이 자리를 메우자 단상 앞에 서 있는 말총머리 여성이 경매 때 사용하는 ‘의사봉’을 들었다.
탕! 탕! 탕!
“현 시간부로 경매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갑자기 입에 자크가 채워진 듯 입술을 뗄 수 없게 되었다.
눈앞이 번쩍이더니 경매의 룰이 적힌 두꺼운 책 한 권이 내 앞에 나타났다.
나는 책을 펼쳐 경매의 룰을 보았다.
‘…… 오케이.’
내가 알고 있는 경매의 룰과 똑같다.
오 분 정도 흐르자 단상 앞에 서 있는 여성이 다시 의사봉을 휘둘렀다.
탕! 탕! 탕!
“경매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경매 물품은….”
경매가 시작되었다.
고대 전사의 무기, 일수도 있는 녹슨 검.
황제들이 애용하던 황금 잔.
보물섬의 지도.
바이킹들이 즐겨 먹는 기호 식품.
등등.
내게 필요 없는 물건들이 계속해서 나왔다.
탕! 탕! 탕!
드디어 경매의 꽃이라 불리는 마지막 차례다.
플레이어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이번 경매 물품은 대한민국, 백두산에서 서식했다는 호랑이.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라고 불리는 대호에 대한 입찰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팔짱을 끼고 경매 상황을 지켜보았다.
“시작 가격은 천 제니. 천 제니, 입찰하실 분 계십니까?”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손을 들었다.
천. 천 백. 천 이백. 천 사백. 이천.
미친놈들.
순식간에 이천 제니가 되었다.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제니는 칠천이 최선이다.
이 선에서 끝나야 할 텐데.
게임 내에서는 천오백 정도면 구입할 수 있는 물건이 이렇게까지 오르다니.
경매를 입찰하는 사람 중 해골 갑주를 입은 네크로맨서가 보였다.
저놈 또한 대호가 가지고 싶었는지 계속해서 손을 들었다.
놈이 두 배의 가격을 뜻하는 손가락 브이 표시를 머리 위로 들었다.
‘사천?’
사천이라는 가격이 전광판에 떠오르자 모두가 손을 내렸다.
입찰을 포기한다는 뜻이다.
해골 갑주의 네크로맨서 입에 미소가 띄워졌다.
나는 조용히 경매를 지켜보았다.
“사천! 사천백! 사천백 없으십니까? 최고가 사천. 세 번 외치고 마무리합니다. 사천. 사천. 사-”
나는 주먹을 쥐어 들었다.
의사봉을 치려던 경매사가 내 주먹을 보더니 환하게 웃으며 크게 말했다
“오천! 오천 나왔습니다.”
경매에 참여한 플레이어들이 뒤로 돌아 나를 보았다.
나는 그들을 내려보며 환하게 웃었다. 표정을 관리하기 위한 내 전략이었다.
나는 의자에 삐뚤게 앉아 손을 휘저었다.
경매사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경매를 다시 진행하였다.
“오천! 오천백 없으십니까?”
해골 갑주의 네크로맨서가 손톱을 물어뜯더니 손가락을 하나 들었다.
“오천백!”
오천백이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내가 주먹을 다시 한 번 들었다.
육천백.
해골 갑주의 사나이가 얼만큼의 제니를 가졌는지 모르겠지만.
단 두 번의 내 입찰 금액으로 놈의 기를 죽이기에는 충분했다.
나도 놈이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 모르지만, 놈도 내가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 모른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오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선을 놈이 원한다는 것.
놈이 딜을 하는 단위가 백 단위이기에 눈치챌 수 있었다.
경매사가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목소리를 더욱 높였다.
“육천백! 육천이백 없으십니까?”
해골 갑주의 네크로맨서가 눈을 부라리며 나를 째려보았다.
“…….”
내가 방긋 웃었다.
단 두 번의 입찰이었지만 내 확고한 입장을 보여주었다.
놈이 손을 내렸다.
내 승리가 확실해지는 순간이었다.
경매사가 주위를 스윽 보더니 다시 소리쳤다.
“육천이백 없으시면 마무리하겠습니다. 육천백, 육천백, 육천…. 백.”
탕! 탕! 탕!
“금일의 베스트 물품인 대호는 ‘김천재’ 플레이어님께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모두 축하해 주시기 바랍니다!”
경매장에 모인 플레이어들이 박수를 쳤다. 나를 축하해 주는 사람들과 부러워하는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모였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해골 갑주의 네크로맨서를 내려보며 씨익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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