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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화

메인 이벤트를 끝낸 우리는 펍에 모여 거하게 밤을 즐겼다.

리 커우러나가 맥주잔을 들고 책상 위로 올라가 소리쳤다.

“간베이!”

우지끈.

책상다리가 무너지며 리 커우러나가 떨어졌다.

와장창!

그의 머리 위로 맥주가 쏟아졌다.

-대장님 뭐 하시는 겁니까? 하하하하!

-아이고, 책상 물어줘야겠네. 어이 주인장! 이것도 내 앞으로 달아놔!

리 커우러나가 몸을 일으켜 세우며 환하게 웃었다.

“아이고 허리야. 주인장 여기 한 잔 빨리 추가! 오늘은 내가 쏜다!”

모두가 즐겁다.

여기서 지내는 내내 표정이 좋지 않았던 유소라도 리 커우러나의 무리와 시끌벅적 떠들며 이 시간을 즐겼다.

나는 의자에 기대어 앉아 담뱃불을 붙였다.

치직. 치지직.

쓰읍.

푸후-

“짠?”

내가 맥주잔을 들자 정우가 따라 들었다.

“짠.”

캉!

맥주잔끼리 부딪치며 경쾌한 소리를 만들어 내었다. 나는 맥주를 단숨에 마신 후 입에 담배를 물었다.

“후우. 다들 신났네.”

“안 신나겠냐. 네 덕분에 다들 살아남을 수 있는 희망이 생겼는데. 특성까지 얻었으니 이제 어중이떠중이 놈들은 상대도 안 될걸?”

“…… 그렇지.”

응?

갑자기 공기가 차가워지며 모든 이의 대화가 끊겼다.

살기는 아니지만 묘한 기운이 가게 안을 가득 메웠다. 정우가 도끼의 손잡이를 잡았다.

나는 담배를 천천히 들이마시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 드디어 활동을 개시한 건가.”

[시스템 메시지]

[‘폐허가 된 마을’ 내에 스펙터가 돌아다니기 시작합니다.]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펍 밖에서 투명한 몸을 가진 꼬마 아이 한 명이 닫혀있는 문을 투과하여 들어왔다.

정적이 흘렀다.

곰돌이 인형을 껴안고 있는 꼬마가 가게 안을 둘러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없나?”

그의 한마디에 모두가 숨을 죽였다.

나는 하얀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꼬마에게 말했다.

푸후-

“꼬마야. 여기 네가 찾는 사람은 없다.”

“없어요?”

“그래. 그리고 여긴 네가 올 만한 곳이 아니야. 나가.”

“…… 네.”

스펙터가 새초롬하게 웃더니 밖을 향해 걸었다.

또각. 또각. 또각. 또각.

놈의 구두 소리가 펍의 문 앞에서 멈추었다.

“잠깐만?”

스펙터가 천천히 뒤로 돌아.

가게 안에 있는 플레이어들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놈의 눈이 붉은색으로 변했다.

나는 용의 송곳니를 쥐고 놈이 시선이 향하는 곳을 보았다.

유소라다.

“저분은 왜 여기 있는 거죠?”

유소라가 어벙벙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응? 딸꾹! 꼬마야, 누나가 왜?”

“당신은 멸망의 땅 안에 있으면 안 되는 존재인데요.”

“내가? 너 무슨 소리를 하는 거니.”

“…… 당신. 데려가야겠습니다.”

스펙터가 제자리 뛰기를 하듯 다리를 구부리더니 높게 날아올랐다.

놈의 몸이 종이비행기처럼 가볍게 허공을 갈랐다.

나는 소리쳤다.

“마이클 저 새끼 막아!”

마이클이 주머니에서 권총을 빼 들더니 유소라의 옆으로 붙었다.

“홀리 싯.”

탕!

신성 주문이 들어간 탄환이 스펙터를 향해 발사되었다.

빛나는 총알은 그대로 스펙터의 몸을 뚫고 지나가 천장에 박혔다.

쿵.

순식간에 유소라 앞에 도착한 스펙터가 그녀의 얼굴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흐음.”

놈이 요정처럼 허공을 둥실둥실 날며 머리를 긁적였다.

“아, 아니다. 이분은 플레이어였구나.”

아무것도 모르는 유소라가 환하게 웃으며 스펙터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어린아이를 대하듯 말이다.

“응? 너 뭐라는 거니.”

“내가 착각했네. 어쩜 이리 똑같이 생겼지.”

“꼬마야. 내가 누굴 닮았어?”

“…… 아니에요.”

스펙터의 눈이 다시 붉은색을 잃고 투명해졌다.

그가 나를 힐끔 보더니 입꼬리를 올려 웃으며 가게 밖으로 날아갔다.

스펙터의 존재를 아는 플레이어 모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아!

리 커우러나가 맥주에 젖은 머리칼을 털며 신음을 뱉었다.

“흐어. 아니 스펙터 저 새끼는 왜 하필 오늘 돌아다니고 지랄이래?”

-그러게요 대장님. 저번에 저희 그룹에 있는 진 차이펑을 데려갔잖아요.

-진차이펑만 데려갔냐? 진 소우춘도 잡혀갔어.

한 달짜리 코스에 두 번의 스펙터가 출현했다는 말은 최소한 10-15일 단위로 놈이 움직였다는 것이다.

“…….”

나는 유소라의 옆으로 가 그녀를 위아래로 훑었다.

‘누구랑 헷갈린 거지?’

모르겠다.

그녀와 닮은 NPC가 있었나?

기억에 없다.

유소라가 수줍은 듯 블라우스를 끌어 내렸다.

“왜, 왜요?”

“…… 아니에요.”

“혹시 제가 뭘 잘못했나요?”

“아니에요. 방금 그 꼬맹이가 소라씨하고 누가 닮았다길래. 한 번 봤어요.”

“…… 저 더 마셔도 돼요?”

“…… 예.”

리 커우러나 일당이 다시 가게 안을 시끌벅적하게 만들며 신나는 분위기를 조장했다.

-간베이!

-대장! 간베이가 뭐에요? 건배지. 건배! 김천재 플레이어님을 위하여 건배!

캉!

나는 놈들을 보며 싱긋 웃었다. 이어 자리로 돌아와 마정우에게 물었다.

“소라씨를 닮은 NPC가 있었나?”

“아니. 내가 아는 선에서는 없어.”

“…… 그렇지?”

스펙터가 무심코 던진 말 중 내 머리에 거슬리는 문장이 있었다.

[어쩜 이리 똑같이 생겼지.]

[멸망의 땅 안에 있으면 안 되는 존재.]

누구를 닮았고. 닮았다는 사람은 왜 있으면 안 되는 존재인가.

내 표정이 굳자 정우가 어깨를 툭 치며 잔을 밀었다.

“야, 한 잔 더?”

“…… 콜.”

즐겁게 술을 즐기던 나는 새로 생긴 시스템 창을 확인했다.

[특성]

▷영혼의 고리(능력치 공유)

-리더 소환 수 1인에게 영혼의 고리를 걸어 능력치를 공유합니다.

[(플레이어+소환 수)/2=보정치]

네크로맨서가 얻을 수 있는 특성 중 최고라 불리는 세 개 중 하나를 얻게 되었다.

나는 박규환을 리더 소환 수로 지정하여 영혼의 고리를 사용하였다.

[소환 목록]

-Ⓛ박규환(군인) 1/1 : 대기 중

상태 창을 확인해보니 모든 능력치가 1.5배 증가하였다.

●상태창

이름: 김천재

직업: 네크로맨서

레벨: 20

생명력: 340/340

마나: 83/83

체력: 22+20 공격: 24+19

방어: 21+8 속도: 22+30

[스킬 창]- 미리 보기 닫음

스테이터스의 한계가 99인데 벌써 사십에서 오십에 가까운 능력치를 얻게 되었다.

“…… 정우야.”

“왜?”

“내일은 다음 라운드로 갈 준비 해야 하는 거 알지?”

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차는? 몇 대 구입해야 하냐.”

“네 명이니깐 한 대면 충분하지.”

“그럼 내가 차 사러 다녀올 테니깐 너는 볼일 보고 있어.”

“…… 오케이.”

* * * * *

날이 밝았다.

[시스템 메시지]

[일일 임무 ‘???’ 등급 완료]

[보상으로 ‘네크로맨서 전용 스킬 북’이 지급됩니다.]

나는 임무 보급소 직원에게 스킬 북을 전해 받았다.

펼쳐보니 여러 가지 스킬들이 적혀 있었다.

-소환

-저주

-마스터리

“…… 선택.”

[‘스켈레톤 마스터리’ 선택.]

[현 시간부로 김천재 님의 모든 스켈레톤 소환수들이 한 등급 높은 단계를 가지게 됩니다.]

[ex. 하급->중급->상급->최상급->]

임무 보급소 직원에 내게 물었다.

“금일의 일일 임무도 보급해드릴까요?”

“아뇨. 오늘은 좀 쉬려고요.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보급소 직원이 싱긋 웃었다.

“아닙니다.”

보급소 밖으로 나오자 마이클이 내 옆으로 붙었다.

유소라는 술을 많이 마시는 바람에 숙소에서 휴식하기로 했고. 정우는 다음 라운드로 가기 위한 차량을 구하러 혼자 간다고 했다.

그래서 심심해 보이는 마이클이 나를 따라오게 된 것이다.

“천재 킴!”

“내일 출발해야 해서 시간이 없으니 오늘은 빨리 움직이자.”

“알겠어요우.”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건데. 나한테 신성 주문 사용하면 안 되는 거 알고 있지?”

마이클이 손바닥으로 총을 툭툭 치며 환하게 웃었다.

“예스.”

정말 알고 있는 건지 모르겠네.

이 마을 근처에서 얻을 수 있는 특수한 소환 수는 총 세 가지다.

우귀는 실패했으니 제외하고.

나머지 두 가지 중 하나는 ‘북부 등뼈 산맥’에 있는 예티 킹의 무덤을 찾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다음 라운드로 가는 길에 있는 ‘중앙 평원’에서 전설의 무인 중 한 명을 깨우는 것.

고민되었다.

오늘 하루 동안 두 곳 전부를 들르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

기왕이면 검술에 뛰어난 자들을 많이 영입해놔야 다음 라운드가 안전해진다.

그렇다면 선택지는 바로 여기.

고민을 끝낸 내가 마이클에게 말했다.

“…… 마이클. 가자.”

이번에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여 박규환을 대동했다.

마을의 남쪽으로 향하자 입구를 지키고 있는 경비병이 내 앞길을 막았다.

“허가증이 없으면 남쪽은 출타가 불가합니다.”

“여기 있습니다.”

나는 김준철 소령이 적어준 출입 ⦁출타 허가증을 보여주었다.

메인 이벤트를 끝내면 받을 수 있는 증서다.

확인 후 남쪽으로 나가자 황금빛 사막 위로 Z 바이러스에 감염된 여러 동물이 보였다.

박규환이 검 손잡이에 손을 올려놓고 앞장섰다.

몬스터들이 겁을 먹은 듯 양옆으로 갈라지며 길을 열었다.

본능적으로 그를 피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놈들을 무시한 채 앞을 향해 나아갔다.

한 시간여 계속해서 걷자 지면이 모래밭에서 단단한 흙으로 바뀌었다.

[북부 중앙 평원]

티비에서 보았던 사바나가 생각날 만큼 경관이 탁 트여있었다.

출현하는 동물들의 종류가 달라졌다.

기린, 코뿔소, 사자, 하이에나, 얼룩말.

목적지를 향해 걷는 동안 Z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은 동물들도 보였다.

지금 내 앞을 지나가고 있는 코끼리가 딱 그 경우다.

뿌우우우우-!

코끼리 발걸음이 땅을 울렸다.

쿵!

“…… 천재 킴. 여기 위험한 거 아니에요우?”

“닥쳐. 말하면 시선 끌리니깐 아무 말도 하지 마.”

“또 닥쳐? 오케이.”

해가 뜨기 전에 출발할걸.

넓게 펼쳐져 있는 평원 전체에 뜨거운 열기가 올라왔다.

마이클과 나는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내며 앞을 향해 나아갔다.

“…… 찾았다.”

지평선 너머로 돔 형태의 마을이 하나 보였다.

전설의 무인이라고 불리는 자가 잠들어 있는 곳.

나는 마을 입구를 지키고 있는 군인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십니까.”

폐허가 된 마을과 동떨어져 보이는 시대의 건물들.

걸어서 한 시간 반 정도의 거리일 뿐인데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온 것 같은 분위기의 마을이었다.

“누구냐.”

“여행객입니다.”

“여행객? 미안하지만 역병이 돌아 여행객은 마을에 출입할 수 없다.”

나는 김준철 소령이 만들어준 허가증을 꺼내어 그에게 보여주었다.

“여기요.”

“…… 어? 이건!”

“시장님은 안에 계신가요?”

경비병이 빠른 태세 전환을 보여주었다.

“…… 예. 안으로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경비병 두 명 중 한 명이 나와 우리를 마을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오래된 집들이 줄지어 있었다.

일제 강점기 이후의 서울을 본떠서 만들었다는 이 마을은 후에 진행되는 모든 스토리를 담당하는 곳으로써 엄청나게 중요한 장소.

대경성(大京城)

모든 서버의 플레이어가 모이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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