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화
게임의 난이도가 미쳤다.
내가 모르는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으니, 김준철의 오러 사용은 그렇다고 치고.
게임 초반의 보스인 장유마저 능력치가 대폭 상승했다.
겨우 세 번째 라운드의 중간 보스가 오러 사용자와 대등한 힘으로 맞서 싸울 수 있을 정도라니?
허허……
‘앞으로 펼쳐질 모든 이벤트를 절대 얕보면 안 되겠구나.’
장유가 육중한 몸과는 맞지 않는 속도로 움직였다. 탱탱볼처럼 방안을 미칠 듯이 튕겨 다니며 김준철을 공격했다.
김준철도 그에 질세라 검에 오러를 담아 모든 공격을 막아냈다.
캉!
강철에도 부서지지 않는 장유의 몸, 재질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굉장했다.
수십, 아니 수백 번의 격을 주고받았는데도 큰 상처 하나 없었다.
놈이 자세를 가다듬으며 김준철에게 소리쳤다.
“왜 실종의 원인이 나라고 생각하는 거지?”
“이 증거들을 보고서도 그런 말이 나오는 것인가?”
“…… 증거?”
장유의 얼굴을 보니 정말 모르겠다는 눈치였다.
“…… 개자식, 모르는 척하는 네 얼굴을 보니 역겹구나.”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군.”
“모른다고? 봐라! 네 놈의 서재에서 찾은 그 날의 증거들을.”
잠시 전투가 멈추었다.
김준철이 뒤로 한 걸음 물러나더니 주머니에서 찢어진 종이 한 장을 꺼내어 그에게 펼쳐 보였다.
“보아라. 이름, 출생, 나이, 혈액형. 네 놈이 사람들을 상대로 실험한 기록.”
“이게…?”
“아직도 시치미를 뗄 생각인가? 네 놈이 어떤 실험을 했는지까지 전부 적혀있는데 말이야!”
장유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 때문인지 김준철이 더욱 열을 받았다.
조용히 방의 뒤편까지 도착한 나는 갈색 머리 좀비 녀석의 머리채를 잡아 쇠 철창 밖으로 끌어냈다.
-키에에에엑!
돌연변이 좀비 특유의 근력으로 발버둥을 쳤지만 벌써 19레벨에 도달한 내게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가만히 있어 이 새끼야.”
놈의 비명을 들은 장유가 뒤로 돌았다.
“뭐 하는 짓이냐!”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내 귀를 찔렀다.
나는 좀비 녀석의 목에 식칼을 가져다 대고 장유에게 말했다.
“닥쳐. 아들 모가지 날아가는 꼴 보기 싫으면 움직이지 말고.”
“아, 아들아!”
“움직이지 말라고 했다. 한 걸음만 더 다가와도 순간 이놈 목 날아가.”
장유가 입을 어버버버 거리며 손을 뻗었다.
“네, 네놈들. 나보고 어쩌라는 거냐. 대체 나보고 어쩌라는 거냐고!”
“그대로 가만히 있어.”
“부, 부탁이야. 제발 그 아이만은 건들지 말아줘.”
나는 식칼을 좀비의 목에 가져다 댔다. 살짝 그어 내리자 새빨간 피가 흘러내렸다.
전신이 썩어버린 좀비의 피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붉은 액체가 말이다.
“…… 장유. 눈 똑똑히 뜨고 봐라. 지금 네 아들 몸에서 흘러내리는 피.”
“자, 잠깐만. 하라는 대로 하마. 너희들이 하라는 대로 할 테니 제발 그 아이는 죽이지 말아줘.”
“피를 보라고!”
장유가 당황스러운 얼굴로 손사래를 쳤다.
“아, 알았으니깐 진정하고 그 손 치워.”
나는 갈색 머리 좀비의 머리를 더욱더 강하게 눌렀다.
-키에에엑!
“시끄럽고 네 아들을 제대로 보라고! 좀비가 이렇게 신선한 피를 가지고 있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나?”
“그건….”
“그리고. 지금 네 아들의 모습이 정말 인간이라고 생각하나?”
장유가 갈색 머리 좀비를 슬쩍 보더니, 눈을 내리깔았다.
“부탁이야. 녀석이 곧 우리 아들을 낫게 할 수 있는 약을 만들 거야. 지금 네 눈에는 좀비처럼 보이겠지만. 금방 돌아올 수 있을 거라고.”
그 녀석?
나는 김준철을 보며 고개를 살짝 끄덕인 후 다시 말을 이었다.
“녀석이라는 게 누구지?”
“…….”
“누구냐고. 빨리 말하지 않으면 이놈 목 떨어진다.”
“…….”
날이 목을 살짝 긋자, 그가 입을 열었다.
“자, 잠깐. 집사다. 집사. 우리 저택에서 일하고 있는 집사.”
김준철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장유를 바라보았다.
-빰빠라밤!
어딘가에서 높은음의 트럼펫 소리가 들려왔다.
[숨겨진 스토리 발견!!]
[진행 중인 이벤트의 난이도가 S+등급으로 변경됩니다.]
[‘김준철’ 소령이 당신의 행동에 놀라움을 표시합니다.]
극히 소수의 플레이어만 알고 있다는 숨겨진 스토리를 발견했다.
나는 싱겁게 웃으며 장유를 바라보았다.
“집사가 좀비를 인간으로 되돌릴 약을 만들어 낸다고?”
“그…. 집사는 의사 출신이야. 지금은 우리 집에서 집사로 일하고 있지만.”
“…… 의사가 어떻게 백신을 만들어 내지? 항체 전문 박사도 아닌데 말이야.”
내 질문에 장유가 잠시 머뭇거렸다.
“……”
“정신 차려 장유. 너는 지금 그 놈 손에 놀아나고 있어. 그 녀석이 실험하고 있는 약은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좀비를 인간으로 만드는 약이 아니야.”
장유가 입을 떼었다 닫았다 반복하더니 마른 목소리로 대답했다.
“…… 거짓… 말. 그럴 리가….”
“잘 생각해봐. 상식적으로 좀비로 변해버린 네 아들을 다시 인간으로 되돌릴 수 있을 것 같아?”
“된… 다고 했는데….”
“몸이 전부 썩어버린 것은 물론이요, 갓난아이처럼 ‘어버버버’ 거릴 뿐 말도 제대로 못 해.”
“그건….”
“신도 아니고. 고작 시골 마을 의사가 신체가 다 썩은 좀비를 인간으로 되돌린다? 정부에서 날고 긴다는 박사들이 다 같이 연구해도 안 나오는 약을 겨우 의사 한 명이 만든다고?”
“그건….”
장유의 마지막 한 마디를 끝으로 방안에 정적이 흘렀다.
‘꼴깍’하는 놈의 침 삼키는 소리만이 들렸다.
때마침 좀비로 변한 장유의 아들이 기이한 소리를 내었다.
-크하아아가악!
나는 놈의 머리를 땅에 짓누르며 말을 이었다.
“그날. 너는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좀비로 변하지 않았지? 물론 괴물 같은 지금의 모습이 되었지만.”
“……”
“네가 Z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는데도 좀비가 되지 않은 이유가 뭔지 알아?”
“…… 모른다.”
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날의 기억은 전부 지워졌을 테니깐.
“기억할지 모르겠는데. 네가 아내에게 물려 좀비가 되기 직전. 집사 녀석이 네 어깨에 주사를 놓았었어. 물론 미완성인 Z 바이러스의 항체, 실험용 백신이었지만.”
내 이야기를 듣는 장유가 눈을 번쩍 떴다.
어떻게 이 사실을 알고 있었냐는 듯 말이다.
“…… 네가 그 일을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그건 알 필요 없고. 네게 붙어 있는 집사의 목적은 단 하나야.”
“집사….”
“네가 사업수완으로 모은 돈을 사용해. Z 바이러스의 대항마인 X 바이러스를 만드는 거지.”
장유가 독백했다.
“그…. 어…. 아….”
“다시 한 번 생각해봐. 아까도 말했지만 시골 의사가 혼자 연구한다고 좀비를 인간으로 만드는 약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아? 백신도 아니고?”
“아니…. 그….”
나는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좀비를 인간으로 만드는 약을 개발했다고 치자. 그 모습으로 다시 인간처럼 살 수 있겠나? 자네 아들과 함께 말이야.”
“…….”
“당신 아들, 어디를 가도 괴물이라고 불릴 거야. 평생을 손가락질 받을 것이고.”
장유가 갑자기 눈을 부릅떴다.
“아들과 함께라면 괴물이어도 상관없다.”
“당신은 상관없겠지. 당신 아들도 같은 생각일까? 그렇게 해서라도 계속 살고 싶을까?”
“…….”
“아니지. 이런 생각조차 들지 않을 거야. 떠난 당신 아내가 좀비로 변하기 전 했던 말들을 생각해봐.”
“…….”
나는 갈색 머리 좀비의 머리를 잡아들었다.
“잘 봐. 당신이라면 이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을 것 같아? 아닐걸, 나였으면 바로 죽여 달라고 애원했을 거야.”
장유가 시선을 내려 아들을 바라보았다.
좀비로 변한 아들이 입에서 초록색 액체를 토해내며 발버둥 치고 있었다.
-크헤에엑!
자신의 아비조차도 구별하지 못하고 공격하려 했다.
말 못 하는 야생의 짐승도 이렇게까지 기이한 모습을 보이지는 않을 텐데.
그 누가 보아도 사람이라고 부르기 힘든 상태다.
아들을 바라보던 그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가 침을 꿀꺽 삼키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내 아들은 되돌릴 수 없는가?”
“신이라면 가능할지도.”
“빌어먹을…. 개 같은… 집사 이 X 같은 새끼….”
“정신 차려. 아들을 이렇게 만든 건 당신이야. 당신이 집사에게 속지만 않았어도 아들은 진즉에 편한 곳으로 갈 수 있었어.”
장유가 고개를 떨구었다.
“차라리 죽으면 편해질까?”
“좀비로 사는 것보다는 나을걸.”
나는 아들의 목을 발로 밟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든 후 그에게 말했다.
“편하게 보내줄 테니. 이제 아들과 함께 가도록 해.”
“…… 잠시 기도할 시간을 주겠나?”
“마음대로. 끝나면 말해.”
장유가 거대한 두 손을 마주 잡고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그가 기도하는 동안 내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치직. 치지직.
쓰읍.
푸후-
신앙심이 강한 인간은 너무나도 나약했다. 자신의 삶과 죽음조차 본 적도 없는 신에게 빌며 결정권을 넘기다니.
다른 사람은 어떻게 느낄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힘이 들 때, 종교가 마음의 안식처가 될 수는 있지만.
너무 깊이 빠지면 그 작은 세상에 갇혀 넓게 볼 수 없게 된다고.
장유가 내 생각과 딱 맞게 일치하는 그런 케이스다.
그러니 아들이 나을 수 있다는 결론을 미리 정해놓고 그에 합당한 일들을 끼워 맞춘 것이지.
잘못 끼워진 퍼즐처럼.
기도를 마친 장유가 무릎을 꿇더니 내게 말했다.
“나는 나쁜 아빠였나?”
“…… 그건 아들에게 직접 물어봐.”
“도현이가 대답하지 못하는 것쯤은 나도 알고 있다. 매일 대화를 시도해봤으니….”
나는 검지로 위쪽을 가리켰다.
“하늘에 가서 물어보라고.”
내가 담배 연기를 길게 뱉어 갈색 머리 좀비의 얼굴을 가린 후.
식칼을 크게 휘둘러 목을 베어냈다.
샥-
소설책에서나 보았던 ‘뎅겅’이라는 표현이 이런 느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순간이었다.
놈의 머리가 땅에 떨어졌다.
생명력 게이지가 단숨에 회색으로 변하며 갈색 머리 좀비의 숨통이 끊어졌다.
장유가 도현의 머리를 보더니 이를 꽉 깨물었다.
이어 자신의 목을 치라는 듯 고개를 푹 떨구었다.
“장유, 마지막으로 할 말은 없고?”
“없다. 그저 아내와 아들을 만나러 빨리 가고 싶군.”
“…… 올라가면 신이라는 자에게 좀 전해줘. 세상 참 X같이 운영하신다고.”
장유가 코웃음을 쳤다.
나는 식칼에 온 힘을 집중하여 놈의 미간을 향해 휘둘렀다.
괴물로 변한 놈의 유일한 약점.
부웅-
팍!
“크하아아아악!”
미간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장유가 이마를 부여잡고 고통에 발버둥을 치며 비명을 질러댔다.
나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나 놈이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보스 몬스터도 리바이브가 가능하면 좋을 텐데….’
몸이 빛나는 가루가 되어 바람에 흩날렸다.
이어 회전을 하며 내 몸속으로 들어왔다.
[시스템 메시지]
[‘장유의 심장’ 특성을 획득하였습니다.]
-체력이 두 배로 증가합니다.
[‘두 개의 심장을 가진 사나이’ 칭호를 얻습니다.]
내 머리 위로 황금색 빛이 한 바퀴 돌았다.
김준철은 기운이 다 빠진 듯 헛웃음을 내뱉으며 땅에 주저앉았다.
도깨비 병사들이 함성을 내뱉었다.
-허…… 정말 그 괴물을 쓰러뜨렸다고?
-김준철 소령님조차 이기지 못한 괴물을 단 한방에 보내다니……
-저 사람 대체 뭐야? 인간 맞아?
나는 입에 물고 있는 담배를 마저 다 피운 후 무전기를 켰다.
삐빅.
“마정우. 집사를 1층 중앙으로 데리고 오도록. 다시 전달한다. 집사를 데리고 나와.”
마정우가 미국 군인처럼 발음을 굴려 대답해왔다.
-롸져 댓.
삐빅.
김준철이 내게 물었다.
“천재씨, 저는 장유가 실종자들을 죽인 범인인 줄 알았는데…. 처음부터 전부 알고 계셨나요?”
나는 싱긋 웃은 후 그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글쎄요, 우선 가시죠. 진짜 범인을 잡으러.”
[메인 이벤트의 첫 번째 흐름이 완료되었습니다.]
[메인 이벤트의 두 번째 흐름이 시작됩니다.]
로그인 더 아포칼립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