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
장유와 내가 눈을 마주치는 순간 시간이 얼어붙었다.
[보스 발견]
[세 번째 라운드의 메인 보스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장유’의 기억 속에 있는 파편을 발동시켜 스토리 영상을 재현합니다.]
나는 몸을 움직여 보려 힘을 주었다. 물론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보기 싫다.’
눈앞에 안개가 낀 것처럼 하얗게 변하더니 신나게 놀고 있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무대 위에 커튼이 걷히듯 안개가 양옆으로 갈라지더니 내 시야가 넓어졌다.
영화에서 주인공이 유체이탈을 겪는 것처럼 내 영혼이 하늘을 날아다녔다.
“…… 그렇구나.”
나는 이 장면을 알고 있다.
PC로 멸망의 땅을 즐길 때 동화책이 넘어가는 것처럼 그림으로 보았던 스토리.
장유의 과거이다.
오우거만큼 커다란 덩치의 괴물이 아닌.
그저 퉁퉁한 동네 배 나온 아저씨였을 때의 그다.
와장창!
유리창 깨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대머리의 배불뚝이 아저씨가 야구공을 들고 저택의 마당에서 걸어 나왔다.
꼬마 아이 여럿이 공놀이를 즐기고 있었는지 다 같이 뭉쳐있었다.
꾀죄죄하고 다 찢어진 옷과 다 닳아 발가락이 보이는 신발.
광장 근처에 있는 고아원에서 자라고 있는 아이들이다.
그중 키가 제일 커다란 아이가 두려움을 느끼는 눈빛으로 장유를 보았다.
“죄…. 죄송합니다….”
장유가 야구공을 넘겨주었다.
“아이고! 아저씨는 어디 전쟁이 나서 포탄이 터진 줄 알았지 않았냐. 야구하고 있었니?”
“야구는 방망이가 없어서 못 하고…. 캐치볼 하고 있었는데…. 공이 거기까지 날아갈 줄 몰랐어요.”
“흐음. 우리 집까지 날아올 줄 몰랐다라…. 하여튼 창문이 깨졌으니 벌을 주어야겠구나.”
“버, 벌이요?!”
“그래.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지.”
장유가 저택 마당에 있는 야구 방망이를 들고 나오더니 허공에 붕붕 휘둘렀다.
“자, 공을 던진 아이가 누구니?”
갈색의 단발머리를 한 남자아이가 쭈뼛쭈뼛 걸어 나왔다. 눈에 고인 눈물이 한가득. 그는 이를 앙다물고 장유에게 말했다.
“저… 에요.”
보통의 아이였으면 무서워서 말을 하지 못할 법도 한데. 저 아이는 눈물을 글썽거리면서도 장유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오냐. 자 그럼 네가 벌을 받도록 하자. 손바닥 내밀어.”
“…….”
“뭐해, 손 안 내밀고?”
“…… 흐윽. 여, 여기요. 흐으윽….”
아이가 흐느꼈다.
장유가 무덤덤한 얼굴로 방망이를 크게 휘둘렀다.
부웅-!
바람 소리와 함께 휘둘러진 방망이의 속도가 이내 천천히 줄어들더니.
아이의 손에 사뿐히 안착했다.
탁.
“여기 있다.”
“응? 어?”
“벌이다. 아저씨가 방망이 줄 테니 이제 이 근처에서는 공놀이하지 말아라.”
아이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장유가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말을 이었다.
“요 앞은 돌아다니는 사람들도 많고. 집이 다닥다닥 붙어있어 공놀이하기가 좋지 않아. 아저씨가 그 방망이 줄 테니 공원에 가서 야구를 하렴.”
“어…. 야구 방망이…! 가, 감사합니다! 근데… 야구는 하지 못할 것 같아요. 공원에는 입장료가….”
“괜찮으니 공원으로 그냥 가봐라. 방망이에 적힌 글자 보이지? ‘JY.’ 그걸 경비원에게 보여주면 돈을 안 받을 거야. 그 공원은 내 소유지거든.”
아이들이 서로를 마주 보며 쑥덕거렸다.
-어? 우리 그럼 공원에 갈 수 있는 거야?
-와…. 거기가 저 아저씨 땅이라고? 아저씨 짱 부자네.
-저, 정말이에요 아저씨?
아이들의 시선이 동시에 장유를 바라보았다.
“그래. 그럼 가보려무나.”
갈색 머리의 아이가 눈물을 훔쳐내더니 방망이를 들고 크게 웃었다.
그들은 장유에게 머리를 숙여 인사한 후 자리를 떠났다.
“…… 신의 은총을.”
인자한 모습의 장유.
나는 턱을 괸 채로 그를 내려 보았다.
‘빨리 다음 컷으로 넘어가라.’
다시 화면이 하얗게 변했다.
수 초 후 안개 커튼이 열리며 다음 장면을 보여주었다.
Z 바이러스에 감염된 여인네가 비명을 지르며 달려와 장유의 팔뚝을 물었다.
콰직!
그의 아내다.
장유가 발버둥을 치며 그녀를 밀어내려 했지만, 아내의 근력은 보통 인간보다 훨씬 높았다.
일반 좀비였으면 그가 아내의 손을 뿌리칠 수 있었을 텐데.
그의 아내는 희귀한 확률로 변한다는 돌연변이 좀비였다.
장유의 팔뚝을 물어뜯은 돌연변이 좀비가 갑자기 기이한 소리를 내며 자신의 머리채를 붙잡았다.
“크하아아악! 도, 도망. 빨리 도망가. 여보, 크학!”
“여, 여보!”
“도망… 가라고. 크하아아악….”
“바이러스가 어떻게 여기까지…. 왜 하필 당신한테….”
“제발…. 제발…. 도망가라고….”
“흐윽……. 여보….”
장유의 눈에서 눈물방울이 떨어져 내렸다. 한 방울씩 떨어지던 그의 눈물이 벽을 타고 흘러내리는 빗줄기처럼 빠르게 흐르기 시작했다.
“제발…. 크학. 여보….”
“아, 안 돼. 나는 당신 버리고 못 가겠어.”
“부탁이야…. 크하아아악!”
그의 아내는 이내 정신을 잃은 듯 피로 물든 입으로 울부짖으며 다시 장유를 공격했다.
장유는 그녀의 공격을 피하지 않고 그대로 껴안았다.
“신이시여. 제발!”
콰직!
어깨를 물렸다.
그는 더는 반항을 하지 않고 눈을 꾸욱 감았다. 비명조차 지르지 않았다. 그저 고통을 감내하고 있을 뿐.
모든 것을 내려놓은 것 같았다.
나는 가까이 날아가 그의 중얼거림을 들었다.
“신이시여. 크윽. 부디 저희를 좋은 곳으로 보내주- 크흑.”
장유가 계속해서 신음을 흘리며 신을 찾았다. 그의 종교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믿음이 굉장한 사람이었다.
‘…….’
부웅-
바람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갈색 머리의 소년이 커다란 촛대를 휘둘러. 돌연변이로 변한 장유의 아내를 내리쳤다.
팍!
정확하게 뒤통수에 맞았다.
장유의 아내가 그대로 쓰러졌다. 근력은 강해졌을지 몰라도 변이를 마치지 않은 그녀의 몸은 인간과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희미해지는 시야 속 장유가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다.
그는 어릴 적 장유가 입양한 동네 꼬마 아이.
갈색의 단발머리 꼬마 김도현이다.
“아, 아버지!”
“도현아….”
도현이라고 불리는 자가 달려와 장유를 껴안았다. 장유는 피에 젖은 손으로 소년을 밀쳐내었다.
“도망가라. 아빠는 이미 늦었어.”
“아니에요. 의, 의사 선생님을 부르면 될 거예요.”
“이 병은 백신이 없어서 의사도 고치지 못해. 쓸데없는 말 하지 말고 옮기 전에 빨리 이 집에서 나가!”
도현이 쓰러져 있는 그의 엄마를 옆으로 치우더니 장유를 업어 들었다.
“아버지. 저는 아버지를 버리고 갈 수 없어요. 세상에 버려진 저를 선택해주신 분이잖아요.”
“도현아….”
장유를 업고 한 걸음 떼는 것조차 힘들어 보이는 소년. 그는 온 힘을 다해 장유를 저택 밖으로 데려갔다.
“하아…. 하아….”
문밖에 도착한 김도현은 손에 힘이 풀려 장유를 떨어뜨리고 만다.
털썩.
아직 중학생 또래로 되어 보이는 소년이 아버지를 먼 곳까지 업고 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죄, 죄송해요.”
“아니다….”
장유가 흐려지는 정신을 놓지 않으려 이를 꽉 깨물었다.
지금 이 상태로 좀비가 되어 버린다면 자기 아들까지 감염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철컹! 철컹!
저택 입구에 있는 쇠창살이 크게 소리를 내었다.
“괜찮으십니까?!”
고개를 돌려보니 이 저택의 집사가 서 있었다.
물론 집사가 되는 것은 이 이후에 이야기지만 말이다.
집사가 담벼락 넘듯 철창을 넘어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곤 도현이의 옆으로 서서 쓰러져 있는 장유의 상태를 보았다.
“이건….”
도현이 대답했다.
“바, 바이러스에 감염되신 것 같아요. 죄송한데 의사 선생님을 좀 모셔다 주실 수 있으신가요? 부탁하겠습니다!”
집사가 엄지손가락으로 자신의 입술을 닦아내더니 말을 이었다.
“…… 내가 의사다.”
“…… 예?! 정말인가요?”
“그래.”
“서, 선생님. 혹시 저희 아버지를 치료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집사가 장유의 상처를 훑어보며 대답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늦지 않아서 가능할 것 같구나. 지금 당장 치료를 시작할 수 있도록 수건과 칼을 좀 가져다주련?”
도현이 빠르게 일어났다.
“알겠습니다. 다녀올-”
크하아아악!!
저택 안에서 달려 나오는 돌연변이 좀비, 장유의 아내가 보였다.
기절했던 그녀가 정신을 차리고 달려오는 것이었다.
소년이 겁을 먹고 뒷걸음질을 쳤다.
“으어어어.”
집사가 허리춤에서 권총을 꺼내 들더니 돌연변이 좀비를 향해 총을 발포했다.
타앙-! 탕! 탕! 탕!
총에 맞은 돌연변이 좀비가 쓰러졌다. 집사가 마당에 꽂혀있는 삽을 들고 달려가더니 그녀의 목을 내리쳤다.
콰직!
목이 떨어져 나갔다.
극도의 공포로 인해 도현의 다리가 풀렸다.
털썩.
집사가 그를 보며 소리쳤다.
“빨리 수건을 가져오려무나! 아버지 살리고 싶지 않아?!”
“아, 예!”
도현이 떨리는 다리를 붙잡아 강제로 일으켜 세웠다. 이어 느릿한 걸음으로 저택 안으로 향했다.
그를 바라보던 집사.
도현이 저택 안으로 발을 들이는 순간 입꼬리가 길게 올라갔다.
집사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보였다.
이어 주머니에서 주사기 하나를 꺼낸 집사가 장유의 상처에 바늘을 찔러 넣었다.
푸욱-.
치이이이익.
집사가 혼잣말하였다.
“좋아. 이제 연구비는 문제가 없겠군.”
[스토리 영상이 종료됩니다.]
* * * * *
시점이 내 몸으로 다시 돌아왔다.
스토리 영상이 종료되며 멈추었던 시간이 다시 흘러가기 시작했다.
김준철이 손전등으로 머리 위를 비추었다.
무너져 내린 천장 사이로 괴물 같은 모습의 장유가 보였다.
그의 모습을 굳이 표현하자면 바이러스에 감염된 오크라고 부르고 싶다.
사람의 형체는 온데간데없고 흉물스러운 얼굴과 메마른 대지처럼 갈라진 그의 피부가 보였다.
장유가 우리를 내려 보았다.
“빌어먹을 자식들.”
탕!
총소리가 울렸다.
등 뒤에 있는 도깨비 가면의 사나이가 소총을 발포하였다. 장유의 심장 위치에 총탄이 명중했다.
탄이 그의 피부를 뚫고 들어가지 못하고. 뒤꽁무니가 전부 보이는 것으로 보아 깊이는 1센티 이내.
역시 골렘의 피부와 견줄 수 있다는 장유의 몸은 단단했다.
-뭐, 뭐야? 총이 안 통해?
김준철이 검 손잡이를 굳게 쥐더니 병사들에게 명령했다.
“올라간다!”
도깨비 병사 두 명이 서로 손을 마주 잡더니 무릎을 꿇었다.
김준철이 그들의 손을 밟는 순간.
부하들이 손을 위로 올려 쳐 그를 구멍 위로 올려 보냈다.
팟!
그가 뛰어오르는 반동을 이용해 검을 휘둘렀다.
부웅-
장유 녀석이 손바닥을 휘둘러 검 등을 쳐냈다.
탕!
단단한 금속끼리 부딪쳐 만들어 내는 소리.
인간의 손으로 낼 수 없는 소리다.
“여기까지 쫓아오다니.”
김준철이 공중제비를 돌더니 가뿐하게 땅에 착지했다.
탁.
“장유, 마을 사람들은 어디에 숨겨 놓았지?”
“……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
“시치미 떼지 마라.”
김준철이 머리핀과 머리카락 뭉치를 꺼내어 그에게 보여주었다.
“네 집에서 나온 물건들이다.”
“…… 그 자식인가.”
김준철과 장유가 대화를 나누는 동안 나는 허리춤에 넣어놨던 일회용 토치를 꺼내어 불을 붙였다.
치직. 치지직.
화르르르륵!
이어 도깨비 군인에게 위로 던져줄 것을 부탁하였다.
하나. 둘. 셋.
군인들이 헹가래를 치듯 나를 위로 던졌다.
김준철과 비교해 장비가 적었던 나는 날다람쥐처럼 가볍게 날아올랐다.
어둡다.
김준철이 손전등으로 비추고 있는 곳 말고는 동굴 깊숙한 곳처럼 완전한 어둠이었다.
나는 방의 안쪽을 향해 토치를 던졌다.
휘리리릭-
토치가 벽을 치고 땅에 떨어졌다.
탁.
주변이 아침처럼 환해졌다. 휴대용 손전등은 상대도 되지 않을 만큼 말이다.
장유의 등 뒤에서 기이한 소리가 났다.
-크하아아아악!
“……”
돌연변이 좀비다.
동물 우리 같은 쇠 철창 안에 갇혀있는 갈색 머리의 돌연변이 좀비가 보였다.
문이 열려있어 놈이 천천히 기어 나왔다.
다리를 절며 걷는 모습으로 보아 벌써 뇌까지 바이러스가 지배한 것이 확실했다.
인간의 언어는 구사하지 못하는데다가 온몸이 갈변했다.
장유가 우리를 막아서려는 듯 뒤로 천천히 물러서며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냈다.
“크흐으으윽…… 여기까지 온 이상…. 너희 전부 살아서 돌아갈 생각은 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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