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화
우리를 안내하러 나온 집사를 따라 저택 안으로 들어가자.
휘황찬란한 샹들리에와 미술품들이 우리를 반겼다.
자신을 이 저택의 집사라고 말하는 삐쩍 마른 할아버지가 안경을 고쳐 잡으며 내게 말했다.
“저희 의뢰에 관한 이야기는 전달받으셨습니까?”
“예. 저택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계속 사라지신다고요?”
“맞습니다. 이번 달에 취직한 사람만 하더라도 벌써 여섯 명째인데 말입니다….”
집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를 따라 제일 안쪽에 있는 방으로 들어가자 접견실로 보이는 곳이 나왔다.
왕의 알현실이라고 불러도 될 만큼 호화스러웠다.
웅장한 공간에 각종 무기를 벽에 걸어놓았다. 크기로 보아 사람이 사용하는 무기는 아닌 것으로 보였다.
내 몸보다도 컸으니 말이다.
입구부터 펼쳐져 있는 레드 카펫 위에는 빨간 꽃송이들이 흩뿌려 있었으며. 카펫의 양옆으로는 금붙이로 만든 장식품이 줄지어 있었다.
터벅. 터벅. 터벅.
레드 카펫의 끝에 도착하자 왕좌라고 생각될 정도로 멋들어진 의자에 앉아 있는 저택의 주인이자.
거인족이라고 불러도 될 만큼 거구의 남성.
‘장유’가 우리를 반겼다.
“어서 오시게.”
그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중세시대 쇠 갑주로 둘러싸고 있어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투구의 이마에 그려져 있는 염소 모양 마크가 눈에 띄었다.
나는 고개를 숙여 정중하게 인사한 후 말을 이었다.
“김천재라고 합니다. 뒤에 있는 자들은 저와 함께 움직이는 자들이고요.”
“오호라. 전부 믿음직스러워 보이는구나.”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우리에게 다가왔다. 얼굴을 인식하려 했는지 한 명 한 명씩 훑어보았다.
“이 처자는 미모가 출중한데. 어디 우리와 함께 일해볼 생각이 없는가? 내가 독신이어서 말이야. 하하하!”
음흉한 목소리.
유소라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나는 장유와 유소라 사이로 손을 뻗어 그를 밀어냈다.
“사람을 구하시는 것이라면 직업 길드에 의뢰해 주시지요.”
“뭐?”
찰나의 순간이지만 그의 투구 안으로 살짝 보이는 눈을 읽어냈다. 석연찮은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렸다.
나의 행동이 불쾌했음을 나타내는 표정이었다.
‘…… 역시. 이 괴물 자식.’
다만 그도 장사에 출중한 인물로 묘사되어서 그런 것인지. 곧장 웃는 목소리를 내었다.
“하하하하. 내가 초면에 실례를 범한 것 같구만.”
“…… 의뢰에 대해서 다시 설명해주시겠습니까? 의뢰를 맡긴 당사자에게 직접 듣는 것이 저희 일의 원칙이어서요.”
“그럼 그럼. 의뢰… 는 간단하네. 우리 집에서 고용한 자들이 자꾸 실종되고 있다네.”
“…….”
장유가 무거워 보이는 갑주를 이끌고 자리로 돌아갔다.
철컥. 철컥.
“사실 실종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네. 일할 사람들이야 다시 구하면 되니깐 뭐….”
“그럼 뭐가 문제죠?”
“문제는 군인들이야. 실종되는 원인이 우리 집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
나는 일부로 의아한 표정을 지어 그를 보았다.
“군인들이 뭐라고 말하던가요?”
“그…. 김준철 소령인가? 뭔가 하는 자가 집을 둘러보고 가더니. ‘사람 한둘 어디에 박아 넣어도 찾을 수 없겠군.’이라고 하더군. 이게 무엇을 뜻하겠나? 나를 의심한다는 거지.”
“군인 쪽에서는 실종 원인을 당신에게 있다고 본다는 말입니까?”
“그렇지. 게다가 이 마을 안에 이상한 소문까지 퍼져버리는 통에 일할 사람도 구해지지 않고 있어.”
“소문? 어떤 소문이요.”
“내가 사람들을 잡아먹는다나 뭐라나. 아니, 맛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사람을 먹겠나!”
장유가 혀를 차며 의자의 손잡이를 손바닥으로 쳤다.
탕!
이어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내뱉었다.
나는 대꾸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계속해서 아무 말이 없자 장유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서 내가 직접 실종 원인을 찾아. 해명하고 싶다네. 하. 참.”
“군인들이 의심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건 나도 모르지. 하여튼 시간 내에 실종자를 찾지 못하면 언젠가는 군인들이 내 집을 검문한다며 엉망진창으로 만들 거야. 그러기 전에 찾아야 하네.”
“…… 알겠습니다. 그럼 실종자 수색은 바로 들어가도 될까요?”
장유가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두 눈알을 굴리더니 집사에게 손짓했다. 그리곤 우리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속삭였다.
이어 대화를 마친 집사가 황급히 접견실 밖으로 뛰어나갔다.
장유가 헛기침을 몇 번 하더니 내게 말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나? 수색을 시작할 수 있도록 우리도 준비를 해야 해서 말이네.”
“예. 천천히 하세요.”
내가 뒤로 돌아 마정우를 보았다. 그가 발끝으로 땅을 툭툭 치며 검은 자국을 만들어 내었다.
마이클이 씹고 있던 껌을 조용히 뱉어 카펫에 짓눌러 밟았다.
유소라가 화장을 고치는 척하며 립스틱을 꺼내어 땅에 떨어뜨리더니. 줍는 척을 하며 기둥 아래 엑스 표시를 그렸다.
시간이 흐르자 집사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들어왔다.
그가 들어오자 장유가 자리에서 일어나 물었다.
“전부 끝냈는가?”
“예.”
“그래…. 그럼 이 자들이 수색할 수 있도록 열쇠 뭉치를 주게나.”
“알겠습니다.”
집사가 허리춤에 달린 열쇠 뭉치를 빼내어 내게 주었다.
나는 그에게 받은 열쇠뭉치를 들고 장유에게 말했다.
“그럼. 수색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 * * * *
접견실 밖으로 나오자 메인 이벤트가 시작되었다.
[시스템 메시지]
[메인 이벤트 발생!]
[난이도: A]
[보상: 직업 특성 개방 ]
-실종자가 사라진 원인을 찾아내시오.
우리는 각자 다른 열쇠를 하나씩 받고 흩어졌다. 실종자들의 단서를 찾으려면 임의의 장소에 나오는 물건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 명당 한 층씩.
유소라가 3층.
마이클이 2층.
정우가 1층을 맡았다.
내가 맡은 층은 저택의 끝인 4층이다.
터벅. 터벅. 터벅. 터벅.
계단의 끝에 도착한 주위를 둘러보았다. 커다란 공간에 두 개의 문이 있었다.
나는 순서대로 방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우선 저택의 주인인 장유가 머무는 침실.
끼이이이익.
건물의 외관에서 그의 성격이 드러나듯 화려한 물건들이 방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들어온 지 오 분도 안 돼서 실종자들과 연관된 단서를 찾았다.
독신이라고 말하는 자의 방에서 여성들의 물건들이 줄지어 나왔다.
남성의 방이 아니라 여성의 방이라고 할 만큼 말이다.
화장품은 기본이오, 누가 보아도 여성복이라 생각되는 옷들이 즐비해 있었다.
물론 독신이라고 하더라도 동거자가 있을 수 있다.
다만 그의 방에서 나온 것들이 예사 물건들이 아니었다.
그중 제일 눈에 띄는 물건은 노란 머리카락이 남아있는 머리핀.
성인의 것이라기에는 너무나도 귀여운 캐릭터 머리핀이었다.
“설마 어린아이까지….”
단서를 찾은 나는 장유의 방 안에 있는 서랍장들을 전부 열었다.
그저 그의 방에 있는 금품들이 목적이었다.
나는 서랍장 안에 있는 물건 중 쓸만한 금붙이들을 전부 챙겼다. 제작 방어구를 만들 때 필요한 물건이기 때문이다.
서랍 몇 개만 열었을 뿐인데 코트 안 주머니가 두둑해졌다.
나는 마지막으로 장유의 침대를 한번 훑었다.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침대 밑을 비추었다.
치직.
침대와 지면 사이 어두운 공간이 환하게 드러났다.
나는 그곳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역시.”
침실 확인을 끝낸 나는 그의 방에서 나와 반대편에 있는 문을 열었다.
탁. 탁.
열리지 않는다.
열쇠 뭉치에도 이 방으로 들어가는 키는 없었다.
나는 손가락을 구부려 방문을 두드렸다.
똑똑똑.
“…… 계신가요?”
아무 대답이 없었다.
귀를 대어보니 안에서 무언가가 움직이는 것 같은데. 문을 열어주거나 내 신호에 응답해오지는 않았다.
‘잡았다.’
나는 라이터를 켜서 문손잡이에 열을 올렸다. 30초 정도 흘렀을까? 안에서 짧은 신음이 들렸다.
-윽.
문에 가까이 있던 누군가가 뒤로 물러서는 걸음 소리가 들렸다.
됐다.
이곳에서의 일은 끝났다.
볼일을 마친 나는 1층으로 내려와 미술품들을 구경하며 다른 그룹원들을 기다렸다. 각자 맡은 바의 역할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 * * * *
모두가 조사를 마치고 저택 1층에 모였다.
“모두 찾아온 단서들을 꺼내 보자.”
내가 먼저 실마리가 될 만한 물건을 꺼내어 보였다.
노란 머리카락이 엉켜있는 머리핀.
이어 마정우가 피로 물든 손수건을 저택 안에 있는 예배당에서 가져왔고.
목욕탕을 찾아갔던 마이클이 플라스틱 봉투에 여러 종류의 머리카락을 채취했다.
마지막으로 유소라.
서재에 대한 탐색을 맡은 그녀가 두 권의 책을 우리에게 보여 주었다.
한 권은 내가 부탁한 염소 얼굴이 그려져 있는 붉은색 두꺼운 책.
[죄의 서]
다른 한 권은…. 저게 뭐지?
“소라씨, 그 책은 뭐에요?”
“아, 저 책 찾다가 특이한 책이 있길래 가져왔어요.”
“…… 상형문자? 소라씨 이거 읽을 줄 알아요?”
“예? 아뇨! 상형문자 밑에 한글로 적혀 있잖아요.”
나는 책을 건네어 받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한글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유소라가 의아한 듯 내 얼굴을 보더니, 손가락으로 상형문자의 밑을 가리켰다.
“여기요, 여기.”
“…….”
안 보이는데?
그녀가 이 상황에서 장난을 치려는 것을 아닐 테고. 옆에서 대화를 듣던 마정우가 유소라에게 말했다.
“저는 안 보이는데요?”
“어? 이거 안 보이세요? 사자의 서라고 적혀있는 거.”
[사자의 서]
여는 자를 멸망의 땅의 끝으로 안내한다는 책이다. PC에서는 신의 집행자라 불리는 자들이 찾을 수 없는 곳에 숨겨놓았다고 들었는데.
그런 책이 왜 이곳에 있는 것인가?
진짜 사자의 서인가?
나는 유소라에게 책을 읽어볼 것을 부탁했다.
조심스럽게 사자의 서를 열더니 천천히 첫 줄부터 읽어내리기 시작했다.
“여는 자여, 앞으로 일어날 재앙을 이해하기 위해선, 아주 먼 옛날 이 대륙에서 일어난 잊힌 역사를 찾아야 한다.”
한 줄 읽었는데 벌써 졸립다.
나는 하품을 참아내며 그녀에게 말했다.
“…… 계속 읽어보세요.”
“이 책이 세상에 나왔다는 것은, 수천 년 전 지상에 찾아온 악마가 만든 재액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말.”
수 천 년 전?
유소라가 내 얼굴을 힐끔 보며 눈치를 살피더니 말을 이었다.
“악마의 부활을 허락하면 그를 막을 방법은 사라진다. 여는 자여, 악마가 완전히 부활하기 전에 다시 봉인하도록 해라. 내 그 방법을 이곳에 기록해놓겠다.”
그녀가 첫 번째 페이지에 적힌 문구를 다 읽었는지 다음 장으로 넘어갔다.
나는 손을 뻗어 그만 읽을 것을 권했다.
“여기까지만 읽도록 하죠.”
“…… 네. 이 책은 필요 없을까요?”
“아뇨. 잘 가져왔어요. 정말 필요한 책이에요.”
내가 마정우를 보았다.
정우도 나를 보며 끄덕였다.
초록의 눈을 가진 자.
‘시스템이 말한 여는 자의 동료라는 게 이런 의미였구나.’
유소라가 큰 건을 해내었다.
나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유소라가 기분 좋은 듯 해맑게 웃었다.
“다행이네요. 글자가 반짝여 보여서 가져온 건데.”
“글자가 반짝여 보였어요?”
“네.”
“…… 그렇군요. 여튼 잘하셨어요. 우선 저택 이벤트부터 마무리 지으러 가죠.”
대화를 마친 나는 집사를 찾아가 열쇠 뭉치를 되돌려 준 후 저택에서 나왔다.
단 하나의 열쇠를 몰래 빼낸 다음 말이다.
[‘장유의 저택’ 후문 열쇠 획득]
* * * * *
저택에서 나온 우리는 마을 내에 있는 군부대를 찾아가 김준철 소령을 찾았다.
때마침 식사를 위해 부대에 돌아왔던 그와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김준철 소령이 자신의 사무실로 우리를 데려가 비밀 면담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
탁.
내가 머리핀을 직사각형의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소령님. 이게 무엇인지 아시겠나요?”
“…… 머리핀 아닙니까?”
“예.”
김준철이 눈썹을 으쓱거리더니 머리핀을 들어 꽂혀있는 노란 머리칼을 빼내었다.
“노란 머리를 가진 여성의 것이군요.”
내가 눈짓하자 정우가 피에 물든 손수건을 올려놓았다.
김준철이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건 또 뭔가요?”
“뭐로 보이세요?”
“뭐…. 피에 젖은 손수건?”
“예. 마이클, 그것도 꺼내.”
“알겠어요우.”
마이클이 가방에서 플라스틱 백을 꺼내어 보여 주었다.
검은색. 갈색. 노란색. 백색.
여러 가지 색상에 각기 다른 길이를 가진 머리카락 뭉치가 나왔다.
김준철 소령이 머리카락 뭉치를 보더니 머리를 긁적였다.
“천재씨, 죄송한데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지 모르겠습니다.”
“…… 소라씨. 그 책 꺼내주세요.”
유소라가 ‘죄의 서’를 꺼내어 김준철 소령에게 건네어 주었다.
책을 건네어 받은 김준철이 몇 페이지 읽었다.
김준철이 화가 난 듯 콧구멍을 벌렁거렸다. 그가 울긋불긋해진 얼굴로 책을 테이블 위에 던지더니 이를 꽉 깨물었다.
“이 책은 어디서 구하셨습니까?”
“장유의 저택이요.”
“…… 이 물건들도?”
“예.”
“이 새끼가….”
김준철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김천재 선생님. 역시 대단하시군요. 저희 수색대가 두 차례 동안 시도했는데도 찾지 못한 증거들을…. 정말 감사합니다!”
김준철이 내게 고개를 숙였다.
[시스템 메시지]
[‘김천재’ 플레이어를 향한 김준철의 신뢰도가 상승합니다.]
“뭘요.”
“그럼…. 장유의 저택으로 즉시 특공조를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담담한 얼굴로 김준철에게 말했다.
“소령님 잠시만요. 작전은 점심시간 이후에 시작해주시겠어요?”
“…… 원하신다면 그렇게 할 수 있지만. 왜인지 알 수 있을까요?”
“…… 직접 보고 싶어서요. 놈의 마지막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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