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
잡화점에서 나온 정우와 나는 펍으로 돌아가며 대화를 나누었다.
게임 초반에 얻기 힘든 해골 갑주와 사신 낫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대단한데.
한 개에 백 코인 이상 응급 처치 약을 독점할 정도로 넉넉한 형편이 되는 플레이어라니.
“네크로맨서중에 나 말고 상위 랭커 플레이어는 한 명밖에 없지 않냐?”
“…… 김세진?”
“아, 맞네. 그 놈.”
“그 새끼 너하고 라이벌 관계 아니냐?”
유일한 내 라이벌.
멸망의 땅 내에서 랭킹 100위안에 드는 네크로맨서는 단 두 명이었다.
네크로맨서의 능력은 딱히 전투에 특출난 것도 아니고. 좋은 소환수를 얻지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역할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나 같은 천재 플레이어들은 다르지만 말이다.
나는 잡화점에서 사 온 빵조각을 입에 한 입 베어 물고 정우에게 대답했다.
“어. 아무리 생각해도 저 정도로 성장할 수 있는 네크로맨서는 그놈밖에 없어.”
“그건 네 생각이고. 랭킹 밖에도 잘나가는 놈들이 얼마나 많았는데.”
“랭킹 밖은 전부 어중이떠중이들이야. 열 번째 라운드 근처에도 못 왔잖아.”
“스토리 진행만 못 했지. 피케이에 날고 긴다는 놈들은 많았어.”
“그건 그렇지만….”
네크로맨서는 스킬 사용에 따라 두 가지 분류로 나뉜다.
저주를 주 무기로 사용하는 ‘저주 네크’.
소환을 주로 사용하는 ‘소환 네크’.
두 가지를 섞어서 사용하는 ‘하이브리드 네크’.
스킬 칸이 세 개로 한정되어 있으므로, 언젠가는 세 가지의 선택지 중 한 가지를 골라야 한다.
좋은 그룹에 선택되려면 그에 맞춰야 하니깐.
물론 나는 저주와 소환을 같이 사용하는 하이브리드 네크였다.
나를 남에게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남이 나에게 맞추도록 하는 것이 내 그룹의 전략이었으니깐.
정우 녀석이 팔자걸음으로 너털너털 걸었다.
“뭐, 아까 그놈이 김세진이 면 어때? 어차피 너를 알아보지도 못할 텐데.”
“…… 혹시라도 놈이 나보다 빨리 히든 피스들을 모을까 해서 그렇지. 지하에 우귀가 없었던 점도 자꾸 신경에 거슬려.”
“놈이 우귀를 가져갔을까 봐?”
“어. 우귀 정도야 뭐…. 이해가 되는데. 나머지 히든 피스까지 가져가면 우리 계획에 큰 착오가 생길 거야.”
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네 전투 스타일에 맞는 소환수가 없으면 힘들긴 하겠지.”
“우선 장유의 저택까지는 계획대로 움직이고. 다음 라운드로 넘어가기 전까지 남은 시간 동안…. 나는 소환수를 찾으러 다닐게.”
“마음대로 하세요. 김천재 선생님.”
* * * * *
날이 밝았다.
모든 준비를 마친 우리는 메인 이벤트를 진행하기 위해 임무 보급소를 향했다.
“잠깐!”
내 외침에 모두가 멈추었다.
보급소를 향해 걷던 나는 광장 분수대 앞에 멈춰 제니를 금화로 바꾸었다.
[5제니 사용]
[남은 제니: 5,290]
딸랑.
손바닥 위에 천사 문양이 새겨져 있는 금화 한 잎이 생겼다.
내 손위에 있는 금화를 본 마정우가 물었다.
“박규환 한 명만 데리고 가능하겠어?”
“해보려고.”
“무리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은데.”
“…….”
나는 입꼬리를 올려 씨익 웃었다.
광장 옆 시장으로 들어가는 길, 커다란 간판에 ‘임무 보급소’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동사무소같이 생긴 건물 앞에 처음 보는 플레이어들의 줄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아저씨, 아줌마들은 얼마 없고 대부분이 젊은 남성과 여성들이었다.
특이한 점이라고는 백발에 기다란 흰 수염을 가진 할아버지도 섞여 있었다는 점이다.
‘지팡이….’
지팡이를 쥐고 있는 할아버지의 손이 어색해 보였다. 평소에 사용하지 않던 물건을 쓰는 것처럼.
임무 보급소 앞에 도착한 우리는 조용히 임무 보급 줄에 합류했다.
먼저 온 플레이어들은 서로의 눈치를 볼 뿐 아무런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다.
상식적으로라면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 서로 힘을 합쳐 이 위기를 어떻게 넘겨볼까? 생각해볼 만도 한데.
게임 속 이 세계가 당연하다는 듯 플레이어들끼리 경계하는 모습이 참 우스웠다.
“뭐….”
나 또한 저들을 경계하며 거리를 두고 있으니 뭐라 할 처지는 아니었다.
경쟁.
누구보다 먼저 성장하지 않으면 죽게 될 것을 알고 있는 자들이니 이런 행동도 이해가 갔다.
세 번째 라운드부터는 루시퍼가 주기적으로 움직일 테니 말이다.
“김천재. 뭔 생각을 그렇게 하냐?”
“…… 이 상황이 웃겨서. NPC도 아닌데 다들 말없이 눈치만 보고 있는 거 봐.”
“냅둬. 어차피 루시퍼 뜨면 하위 랭커들은 전부 죽잖아?”
“뭐…. 그렇긴 한데. 그냥 이 상황이 웃기다고.”
우리가 세 번째 라운드에 찾아온 이후로부터 지금까지 루시퍼가 나오지 않았다.
아니,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루시퍼의 심복이 이곳을 찾아오지 않았다.
멸망의 땅에서는 정해진 시간이 흐르면 일정한 수의 플레이어를 골라서 죽이는 절대 무적의 존재가 돌아다닌다.
마치 유령처럼 혼만이 돌아다녀 인간의 힘으로는 상대할 수 없는 자.
게임 내에 플레이어 성장을 촉진하기 위해 만들어진 시스템.
물론 여기 있는 플레이어들이 서로 모른척하며 정보를 공유하지 않는 이유도 그 때문.
남이 죽어야 내가 살아남을 수 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잘못하면 우리도 죽을 수 있겠네. 먼저 온 사람 중에 일 년 코스를 선택한 플레이어도 있을 거 아냐?”
“뭐…. 우리 정도면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여기 모여있는 플레이어만 봐도 전부 우리 밑이야.”
나와 마정우가 주위를 훑었다.
그의 말이 맞기는 했다. 전부 레벨이 낮아 보이는 데다가 어정쩡한 아이템을 가지고 있었다.
소가죽으로 만든 갑옷이라던가. 날이 무뎌 보이는 단검. 나무로 만든 투구.
초보자들이 착용하는 아이템들이 대부분이었다.
멸망의 땅의 초보들.
“한 라운드에 몇 프로 정도가 그놈 먹이가 됐었지?”
“십 프로. 백 명이면 열 명 죽어.”
“생각보다 많네.”
“많든지 말든지. 어차피 우리만 죽지 않으면 되잖아?”
“뭐…. 그렇긴 하지.”
우리만 죽지 않으면 된다.
과연 이 말이 맞는 것일까? 아닐까?
솔직하게 나는 최대한 많은 플레이어가 다음 라운드로 넘어갔으면 좋겠다.
아니, 다음 라운드가 아니라 앞으로 계속 진행했으면 좋겠다.
살아남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후반부가 더욱 쉬워질 테니깐.
-다음 분 들어오세요!
어느덧 내 차례가 돌아왔다.
보급소 안으로 들어온 나는 직원에게 손바닥을 내밀어 지문을 보여주었다.
“일일 임무 완료 확인차 왔습니다.”
“예. 확인하도록 하겠습니다.”
정장을 입은 남성이 내 손바닥에 스캔 기기를 찍더니 컴퓨터를 두드렸다.
타닥. 타다다닥.
[시스템 메시지]
[일일 임무 ‘C+’ 등급 완료]
[보상으로 경험치와 함께 500 제니가 지급됩니다.]
머리 위에서 황금색 빛이 한 바퀴 돌았다.
“수고하셨습니다. 더 처리하실 용무가 있으신지요?”
“새로운 임무를 받고 싶은데요. 장유의 저택 지역에서 시작되는 임무면 좋겠어요.”
“장유의 저택이라. 난이도는 어느 정도로 생각하시는지요?”
“C등급 이상이요.”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면 선택 가능한 일일 임무 창을 띄워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잠시만요. 이거….”
나는 주머니에서 금화 한 개를 꺼내어 직원에게 건네어 주었다.
보급소 직원이 주위를 슬쩍 훑더니 눈치를 보며 주머니에 금화를 넣었다.
“제게 주시는 건가요?”
“예. 금화를 가지고 있으면 운이 찾아온다더군요. 선생님도 천사의 은혜를 받길 기도합니다.”
“…… 감사합니다.”
“뭘요.”
[시스템 메시지]
[임무 보급소 직원이 김천재 플레이어의 행동에 감사함을 느낍니다.]
[직원은 당신을 위해 더욱 좋은 임무를 찾으려 노력할 것입니다.]
그가 컴퓨터로 무엇인가를 검색한 후 파란색 커다란 버튼을 누르자 내 눈앞에 홀로그램 창이 나타났다.
[‘김천재’ 플레이어 전용]
[‘장유의 저택’ 일일 임무 선택 화면]
-멸망의 땅을 지키는 사람 (난이도 B+)
-멸망의 땅을 움직이는 사람 (난이도 S-)
-대저택 살인 사건 (난이도 B+)
-진실을 아는 자의 행방 (난이도 ??)-
절로 웃음이 나왔다.
혹시나 해서 동전을 주어본 것인데, 숨겨진 임무가 내 눈앞에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일일 임무 목록의 맨 밑에 있는 란을 선택하였다.
삐빅.
[진실을 아는 자의 행방]
[난이도: ???]
[보상: ???]
[설명: 그날의 진실을 아는 자를 찾도록 하시오.]
득과 실, 양면의 동전같이 두 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는 비밀 임무.
임무의 난이도가 올라가는 대신 막대한 보상을 받을 수 있다.
나는 임무 창을 보며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 감사합니다. 덕분에 좋은 임무를 찾게 되었네요.”
“아닙니다! 일일 임무 보급소는 항상 열려있으니 언제든지 찾아주십시오.”
마지막 인사는 NPC의 정해진 대사였다.
일이 잘 풀려서 그런지 그럼에도 기분이 좋았다.
나는 상태창을 확인한 후 마이클과 정우에게도 같은 절차를 밟도록 시켰다.
물론 그들은 금화를 가져오지 않았기에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난이도 B+의 ‘대저택 살인 사건’.
내가 임무와 연계되어있는 임무로써, 현재 받을 수 있는 임무 중 경험치를 가장 많이 얻는 선택지다.
정우와 마이클이 순서대로 임무를 받았다.
마지막으로 어제 술에 진탕 취했던 유소라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비틀거리며 보급소 직원에게 다가갔다.
“일일 임무 완료. 후우…. 확인차 왔습니다.”
보급소 직원이 술 냄새 때문인지 불쾌한 표정으로 코를 쥐어 잡았다.
“확인하도록 하겠습니다.”
유소라의 손바닥 지문을 스캔하자 컴퓨터에서 ‘삐빅!’ 하고 크게 소리가 났다.
“어? 이게 왜 이러지.”
유소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요?”
“시스템 오류가….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보급소 직원이 컴퓨터의 타자를 열심히 치며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시스템 에러를 처리해보려 하는 것 같은데 뜻대로 되지 않는 것 같았다.
-뭐야? 갑자기 컴퓨터가 먹통이 됐는데?
-제 컴퓨터도요! 왜 이러는 거지.
-상황실에 연락해봐.
NPC들이 소란스러워졌다.
갑작스러운 시스템 에러 때문인지 더 이상 진행이 되지 않는 것 같았다.
“고객님. 죄송한데 오후에 다시 방문해주시겠습니까? 현재 전산 오류로 진행이 되지가 않네요.”
“오후에요? 오후 언제요?”
“지원팀이 이곳으로 오고 있으니…. 점심시간 지나서 바로 오시면 될 것 같습니다.”
나는 유소라의 어깨를 툭 친 후 어깨를 끄덕였다.
“…… 알았어요. 그럼 점심시간 끝나고 다시 오도록 할게요.”
“죄송합니다. 오후에 다시 뵙도록 하겠습니다.”
어차피 우리가 진행할 스토리는 밤에 진행되기에 일일 임무를 늦게 받더라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시간이 없으니 우선 움직이게 하자.
* * * * *
임무 보급소에서 나온 우리는 그대로 ‘장유의 저택’을 찾아갔다.
광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떨어져 있는 파란색 건물.
호텔이라고 불러도 될 만큼 웅장한 크기에 ‘멸망의 땅’에서 영웅이라 불리는 인물들의 조각상들이 줄지어 있었다.
앞장선 내가 저택의 초인종을 눌렀다.
띵- 동-.
인터폰이 켜졌다.
-누구세요?
“안녕하세요. 보급소에 저택 확인 요청하셨죠?”
-네. 맞는데요.
“보급소에서 보내서 왔습니다. 잠시 들어갈 수 있을까요?”
덜컹.
쇠문이 열렸다.
-들어오세요.
나는 저택 안에서 주의해야 할 점에 대하여 마이클과 유소라에게 설명해준 후 저택 안으로 향했다.
“그럼 들어갑니다. 둘 다 절대로. 이 집 안에 있는 물건은 건들지 말아요.”
“알겠어요우!”
“알았어요. 화장실은 써도 될까요? 제가 토를 할 것 같아서….”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 예. 갑시다.”
내 키보다 두 배 이상 높은 나무 문의 손잡이를 당기자 경첩 쓸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끼이이이이익-
이어 손을 놓자 빠르게 닫히며 커다란 소리가 났다.
쿵.
시작이다.
이번 라운드의 메인 이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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