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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화

좀비 하우스에서의 일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잘 풀리지 않았다.

히든카드라고 생각했던 우귀는 포획하지 못했고.

죽은 기사의 시체는 자신들이 추모한다며 회수해갔다.

리 커우러나의 형마저 개조된 몸이라 리바이브 주문이 통하지 않았으니.

시간만 날렸다.

“후우.”

그곳에서 획득한 소환 수라고는 일반적인 스켈레톤 네 마리.

그마저도 올라오는 길에 열 받아서 주문 해제를 시켰다.

일반적인 스켈레톤 따위는 아무 데서나 구할 수 있으니 말이다.

숙소로 돌아온 나는 정우와 대화를 나누었다.

“그래서 우귀는 없었고. 개조 좀비만 있었다?”

샤워를 마친 나는 수건으로 헝클어진 머리의 물기를 닦아내며 대답했다.

“어. 내일부터는 메인 이벤트가 시작될 텐데 완전 꽝이야.”

“지금 쓸 수 있는 애들은 총 몇 명 데리고 있는데?”

“박규환 한 명. 아무 놈이나 잡아서 숫자만 늘리는 거라면 요 앞 사냥터에서 서른 마리는 만들 수 있어.”

“…… 장유 저택은 인원 제한이 있잖아? 아무나 데리고 들어가면 안 될 텐데.”

정우의 말이 맞다.

네 번째 라운드의 메인 이벤트인 ‘장유의 저택’ 이벤트에서는 한 그룹당 제한된 인원만 입장이 가능하게 해놓았다.

물론 메인 이벤트라 다른 그룹이 합류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그룹내에 인원은 정해져 있었다.

총 열 명.

플레이어를 제외하면 내가 데리고 들어갈 수 있는 소환수는 총 여섯 마리다.

중요한 이벤트에 쓰레기 같은 놈들을 데리고 가보았자 적들에게 발각될 확률만 높아질 뿐.

없는 게 나을 만큼 일반적인 소환 수는 이제 쓸 수 없다.

정우가 침대에 편히 눕더니 내게 물었다.

“요 앞마당에서는 조합할 만한 애들 없고?”

“글쎄. 내가 좀비 하우스에서 테스트해보니깐, 시스템상 강해진 놈들도 내 밑으로 들어오면 약해져.”

“…… 보정이 풀린다는는 말이지?”

“어. 원래 힘으로 돌아오더라고.”

“초반 몬스터들은 못 쓰겠네.”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잡을 수만 있으면 스콜피온이랑 바실리스크 조합을 데리고 다닐 텐데.”

“야, 스콜피온은 잡을 생각 하지 마라. 아까 다 같이 도전해봤는데 생명력 조금 남으면 그냥 땅굴 파고 도망가버리더라.”

“쫓아가서 잡으면 되잖아?”

“그건 컴퓨터로 할 때나 그랬지…. 너 빛이 하나도 안 보이는 땅굴에 들어갈 수 있냐? 그것도 몬스터가 기다리고 있는 곳에?”

내가 담뱃불을 붙이며 쓴웃음을 지었다.

치직. 치지직.

쓰읍.

푸후-

“못할 게 뭐 있어? 까짓거 뒤지는 거밖에 더하겠어?”

“그럼 네가 해봐라. 진짜 스콜피온이 만든 구멍 보면 오금이 지린다니깐. 조오온나 새까매.”

“리 커우러나를 보내지 그랬어?”

“걔가 스콜피온을 어떻게 잡겠냐. 이제 막 십 레벨인데.”

마정우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내가 피우고 있던 담배를 채갔다.

쓰읍.

푸후-

“너는 담배가 어디서 자꾸 생기는 거냐? 잡화점에 들러서 샀어?”

“아니. 김준철이 줬던 거 계속 피는 중이야.”

“얼마나 남았는데?”

나는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내어 확인했다.

“세 대. 내일은 잡화점 한번 들러야겠다.”

“…… 뭐하러 내일까지 기다려? 지금 내려가서 맥주 한잔하고 잡화점 다녀오자.”

“유소라랑 마이클은?”

“냅 둬. 하루종일 사냥하느라 피곤해서 자고 있을 거야.”

“…… 오케이.”

* * * * *

혹시나 모를 상황에 대비하여 갑옷을 챙겨 입느라 정우가 늦게 나오게 되었다.

먼저 나갈 준비를 마치고 펍으로 내려오자 혼자 맥주를 마시고 있는 유소라가 보였다.

몇 잔을 마셨는지 모르겠지만, 붉게 달아오른 그녀의 얼굴이 쓸쓸하고도 고독해 보였다.

나는 그녀의 곁으로 다가가 말을 걸었다.

“소라씨.”

“어?! 천재씨.”

“왜 혼자 마시고 있어요?”

“…… 그냥요.”

“위험하니깐. 다음부터는 마이클이나 정우라도 불러서 같이 마시세요.”

그녀가 잔 끝을 손가락으로 빙빙 돌리더니 내게 말했다.

“위험한 건 어딜 가나 마찬가지 아닐까요. 세상이 이렇게 변해 버렸는데….”

“…….”

“천재씨는 어떻게 그렇게 태연하세요? 저는 미칠 것만 같아요.”

유소라가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혼자 펍에 내려와 이렇게 만취할 정도로 막 나갈 줄은 몰랐다.

“…….”

“아까만 하더라도 괴물이랑 싸워서 피가 터져 나오고. 팔다리가 잘려서 여기저기 널려있는데 개조 좀비? 라는 놈은 또 그걸 주워 먹고. 하아…. 우웩. 생각만 해도 역겨워요.”

“이해합니다.”

“눈앞에 좀비가 있는 것만으로도 돌아버릴 것 같은데. 하아…. 그 구역질 나는 냄새….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들…. 후우….”

그녀가 한숨을 쉬자 진한 알코올 냄새가 내 코끝을 스쳐 지나갔다.

어정쩡하게 서 있던 나는 대화가 길어질 것 같아 유소라 앞에 앉았다.

덜컥.

“…… 소라씨, 힘들어요?”

“힘들면 나를 버릴 건가요?”

“아뇨. 힘들다고 버리면 제 자신도 버려야 하는걸요.”

“…… 솔직히 천재씨는 제 처지를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아요. 여기서 일어나는 일들을 전부 경험해 보셨다면서요?”

경험해 보았다.

물론 PC 안에서.

무언가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PC로 멸망의 땅을 미리 경험해 보았어도. 괴물들을 만났을 때 아무 감정 없이 게임 캐릭터처럼 싸울 수 있는 건 아니다.

“소라씨, 많이 취하신 것 같은데 우선 방에서 좀 쉬세요.”

유소라가 풀린 눈으로 나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테이블 위에 있는 잔을 세어보니 열 개가 넘었다.

“저희. 이대로 가면 전부 살 수 있는 건가요? 아니 우리는 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거죠?”

“…… 어디로 간다고 확실하게 말씀드리기는 어렵습니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나.

그녀의 질문에 나는 많은 생각을 하였다.

게임을 이대로 진행된다면 내가 아는 곳을 한 바퀴 돌아 다시 이 ‘황폐한 마을’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그 후에는?

나도 모른다.

정우와의 대화에서 한 가지 단서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 모든 것이 꿈이라면.

아니, 신의 장난에 의해 만들어진 가상의 세계라면.

멸망의 땅: 라스트 게임에 접속할 때 항상 나오는 문구에 답이 있었다.

[‘여는 자’가 문을 열면.]

[떠난 자리로 다시 돌아온다.]

여는 자는 플레이어를 말하는 것일 테고. 떠난 자리라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내 성격상 그냥 가만히 앉아서 죽을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소라씨. 방에 데려다드릴게요.”

“딸꾹. 내 몸에 손 대지 말-”

털썩.

유소라가 정신을 잃고 그대로 테이블 위에 쓰러졌다.

나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의식을 확인한 후 담배를 한 대 입에 물었다.

치직. 치지직.

쓰읍.

푸후-

‘…….’

씁쓸하다.

게임에 이렇게까지 적응하지 못하는 자를 그룹에 넣고 동행해야 한다는 사실에 말이다.

하지만 내가 ‘여는 자’가 되려면 유소라를 동행 시켜야 한다.

왜냐고?

그녀는 극히 낮은 확률로 정해지는 초록 눈을 가진 케릭터.

여는 자의 동료라고 시스템이 정해준 플레이어기 때문이다.

앞서 PC로 멸망의 땅을 플레이 할 때. 정우와 나는 시스템이 말해주는 ‘초록의 눈’을 가진 자라는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었다.

이곳에 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PC에서는 케릭터의 눈이 너무나도 작아 색상을 볼 수가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첫 번째 라운드가 시작되었을 때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모든 플레이어의 눈의 색이 특성에 따라 다르게 보이니 말이다.

내가 ‘여는 자’의 영역에 도달하려면 그녀를 데려가야 한다. 초록 눈을 가진 다른 플레이어가 나오기 전까지는 그녀가 동행해야 한다는 말이다.

“…….”

나는 의자에 걸터앉아 하얀 담배 연기를 길게 뿜었다.

유소라가 마시고 있던 맥주를 한 모금 마시자 그녀 때문에 답답하게 느껴졌던 가슴이 시원해졌다.

아무 말 없이 쓰러진 유소라를 지켜보고 있자 리 커우러나가 다가왔다.

뚜벅. 뚜벅. 뚜벅. 뚜벅.

“무슨 일 있으십니까?”

“…… 아니.”

“여기는 저희 애들이 항상 지키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십쇼.”

“고맙다.”

지금 보니 리 커우러나의 부하들이 펍 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처음 보는 플레이어들도 섞여 있었지만, 위협이 될 것 같은 인물은 없었다.

뒤늦게 내려온 마정우가 테이블 위에 쓰러져있는 유소라를 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데?”

“뭐긴. 혼자 술 마시고 쓰러졌어.”

마정우가 유소라의 뒤통수 옆으로 주먹 휘두르는 시늉을 하였다.

부웅-

“때려서 기절시킨 건 아니고?”

“내가 여자를 왜 때려. 헛소리하지 말고 잡화점이나 다녀오자.”

“소라씨는?”

“리 커우러나가 여기 있으니깐 괜찮을 거야. 정 불안하면 마이클 부르고.”

나는 리 커우러나를 불러 유소라를 맡겼다.

스무 명이 넘는 부하를 데리고 있는 데다가 모두 직업을 가질 수 있을 정도로 레벨이 높아졌으니.

누군가가 기습하더라도 어중이떠중이 같은 놈들에게 당할 일은 없을 것이다.

펍에서 나온 나는 마정우와 함께 잡화점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펍 주변은 그래도 유동 인구가 있어 불빛이 꽤 나 있었는데.

골목을 두 개 정도 지나쳐 오자 달빛이 없었다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깜깜한 길이 펼쳐졌다.

싸구려 랜턴이라도 하나 사 올 걸, 잡화점이 멀지 않은 곳에 있었음에도 길을 찾기 쉽지 않았다.

마정우가 투덜거리듯 내게 말했다.

“야. 어딘지 모르겠다.”

“이 근처야. 간판만 잘 확인해봐.”

“시이- 벌. 뭐가 보여야지 확인을 할 텐데. 어? 어! 야 저기 아니야?”

그가 검지로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 나무로 만들어진 간판에 네잎크로바가 그려져 있었다.

“맞네. 너 밤에도 잘 본다?”

“잘 보기만 할 것 같아?”

나는 실실 웃으며 정우의 등을 툭 친 후 잡화점을 향해 걸었다.

끼이이익-

문을 열자 빛이 새어 나왔다. 다행히도 이곳의 NPC들은 잠을 자지 않는 것 같았다.

“계십니까.”

나는 최대한 작게 외치며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가 가게 안으로 발을 들이자 백발의 할머니가 레이스가 달린 앞치마를 흔들며 뛰쳐나왔다.

“아이고! 이 시간에 웬 손님이람?”

“안녕하세요. 담배가 다 떨어져서 왔는데, 지금 살 수 있을까요?”

“그럼. 어떤 거로 줄까?”

“빨간 거 육 미리로 주세요.”

“빨간 거 육 미리…. 몇 개?”

“한 갑만 주세요. 어차피 또 올 거예요.”

많이 사놓고 싶지만 사냥을 시작하면 주머니가 넉넉하지 못하기에 담배로 채울 수가 없었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정우 녀석도 한 갑만 샀다.

계산을 마치고 잡화점을 나오려는데 방어구 상점에서 보았던 네크로맨서가 보였다.

나와 같은 직업을 가진 자인데.

복장이 굉장히 눈에 익어 그가 기억에 남았다.

해골 갑주에 사신 낫.

내가 멸망의 땅에서 고집했던 의상과 같았다.

물론 외형적인 면에서만 말이다.

‘내 코스프레인가?’

신화 등급의 아이템을 가진 나와는 다르게 그의 해골 갑주와 사신 낫은 잘해봤자 레어 등급.

날의 빛깔과 갑주의 재질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다만 게임 초반부에 저 정도 아이템을 얻었다는 것만으로도 보통 플레이어는 아닐 텐데.

그가 나를 힐끗 보더니 잡화점 안쪽에 있는 의약품 코너에서 라면 봉투만 한 응급처치 약을 전부 구입했다.

단 하나도 남기지 않고 말이다.

“…… 정우야.”

“왜?”

“너 혹시 저 사람 알고 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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