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절명의 순간.
검은 수트에 도깨비 가면을 쓴 자가 벽을 넘어 날아왔다.
박규환.
드디어 왔구나.
모두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개조 좀비 또한 강적의 살기를 느꼈는지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나는 개조 좀비가 방심한 틈을 타 조용히 주문을 외웠다.
“스켈레톤 소환.”
개조 좀비 밑에 깔려있던 시체에서 스켈레톤 병사들이 일어나 놈의 팔과 다리, 그리고 목을 잡았다.
“크에엑!”
발버둥치며 떼어내려 했지만. 동시에 다섯 마리의 스켈레톤을 단숨에 밀어내기에는 힘이 부족했다.
놈의 앞으로 떨어져 내리고 있던 박규환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대로 검을 휘둘렀다.
“일도양단(一刀兩斷)”
“키에에엑!!”
쉬익-
위에서, 아래로.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빠른 검격이 개조 좀비의 몸을 가르고 지나가,
콰광!
지면까지 박살내었다.
단 한방에 개조 좀비를 반으로 잘라냈다.
놈의 상체와 하체가 분리되었다.
“…… 잘했다.”
박규환의 활약을 본 기사 둘 이 감탄을 금치 못했다.
-마…… 말도 안 돼. 저런 괴물을 일격에 제압했다고?
-저 사람 군인 아니야? 군인이 어떻게 여기에……
개조 좀비의 몸에서 흘러내린 검붉은 피가 땅을 적셨다.
잘려 나간 도마뱀의 꼬리가 움직이듯. 개조 좀비의 하체가 힘차게 땅을 박차며 발버둥을 쳤다.
쿵! 쿵!
나는 고개를 돌려 놈의 상체를 보았다.
큰 상처를 입었음에도 놈의 체력 게이지가 반절 이상 남아 있었다.
-크에에에엑.
개조 좀비가 울부짖었다.
하체 없이 기어서 도망가는 모습이 호러 영화가 따로 없었다.
“…….”
어쩌려고?
어디로 가나 싶었는데 아까 내가 처리한 썩은 좀비의 시체 옆으로 가고 있었다.
그 앞에 도착한 개조 좀비가 우리의 눈치를 슬쩍 보더니.
만화 속 캐릭터가 커다란 고깃덩이를 먹는 것처럼. 좀비 시체의 다리를 크게 베어 물었다.
콰직!
우걱. 우걱.
‘저 상태에서도 회복이 되는 건가?’
놈이 시체를 먹은 만큼 잘려 나간 하체가 천천히 재생되기 시작했다.
역겹다
좀비가 시체를 먹는 것도 역겹지만. 놈이 플레이어 중 한 명이라는 사실이 더욱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게임에서는 캐릭터를 살리기 위해 하는 행동이라 이해가 되었지만.
실제로 저런 짓을 하다니.
꿀꺽.
마른 침이 절로 삼켜졌다.
더 이상 보기 싫었던 나는 시선을 돌렸다.
고개를 낮추어 유소라를 보니, 그녀 또한 자신의 손으로 눈을 가리고 있었다.
저런 장면을 계속해서 본다면 기억을 지우기 힘들겠지.
“후우.”
그나저나 저놈을 지금 만나서 다행이다.
녀석이 성장을 마친 상태에서 만났다면 내 힘으로는 절대 이길 수 없었을 것이다.
이번 전투도 방심한 틈을 타서 일격을 가한 것이지만.
‘멸망의 땅’을 플레이할 때도 저렇게 강한 힘과 높은 재생력을 동시에 가진 좀비는 보지 못했었다.
개조 좀비라고 해봐야 Z 바이러스에 감염된 인간이 또 다른 바이러스를 인체에 주입하여 돌연변이가 되는 것이니깐.
개조 좀비의 하체가 허벅지까지 재생한 것을 확인한 나는 박규환에게 명령했다.
“…… 놈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어.”
박규환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천천히 놈의 앞으로 걸어가 손목을 베어냈다.
쉬익- 샥-
“커허어억!”
이어 개조 좀비의 척추에 칼을 꽂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팍!
고통을 참지 못한 개조 좀비가 절규하듯 신음을 흘렸다.
“크허어어어….”
출혈이 커질수록 놈의 생명력 게이지가 천천히 떨어지는 게 보였다.
등 뒤에서 유소라의 구역질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녀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비위가 약한 유소라가 이 정도 했으면 충분히 잘 버텼다고 생각되니깐.
피비린내와 함께 고약한 악취가 코를 찔러댔다.
나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하나 꺼내 물고 놈의 앞으로 걸어갔다.
치직. 치지직.
쓰읍.
푸후-
하얀 담배 연기가 내 앞을 가렸다.
나는 박규환의 다리에 깔린 개조 좀비를 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대화를 할 수 있겠나?”
“키에에엑….”
“대답하지 못한다면 그냥 죽일 수밖에 없어.”
“키에엑….”
개조 좀비가 아니라 그저 일반적인 좀비 플레이어였다면 뱀파이어로 만들어 줄 수 있었을 텐데….
응?
가까이서 등을 보니 검은 피부 안으로 건달들이 하는 것 같은 무지막지한 문신이 보였다.
용쟁호투(龍爭虎鬪)
용과 호랑이가 대결하듯 서로 뒤엉킨 그림이었다.
“…….”
용과 호랑이?
거리가 가까워지자 개조 좀비가 갑자기 크게 몸을 흔들었다.
입을 크게 벌린 것으로 보아 나를 공격하려 했던 것 같다.
죽어가는 와중에 엄청난 정신력이다.
나는 놈에게 물리지 않도록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난 후 다시 대화를 시작했다.
“너, 생명력 게이지가 빠르게 떨어지는 것을 보니 곧 죽게 될 거야. 네가 살아있을 수 있는 시간은 길어봤자 오 분이다.”
“키에엑!”
“그리고. 등에 문신을 보니 네가 누군지 알 것 같은데. 너 혹시 이곳에 같이 온 동생이 있나?”
개조 좀비가 입을 닫고 고개를 들어 내 얼굴을 보았다.
내 말에 수긍하는 것인지 지쳐서 발버둥을 멈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대화할 준비가 되었다.
“네 동생의 이름을 말해볼까?”
“…….”
나는 담배를 길게 들여 마신 후 놈의 얼굴을 향해서 뿌렸다.
푸후-
“리 커우러나. 네 동생의 이름이야. 맞지?”
시간이 멈춘 듯 놈의 몸이 그대로 굳었다.
살짝 벌어진 입술이 놈이 얼마나 당황했는지를 나타냈다.
문신을 보고 혹시나 해서 말해본 것인데.
몬스터에게 잡혀갔다던 그의 형이 이곳에 있을 줄이야.
나는 침착한 목소리를 내며 말을 이었다.
“길게 말하지 않으마. 네 동생은 현재 나와 같이 활동하고 있다.”
“…… 키에에에….”
“믿고 안 믿고는 네 판단에 맡기도록 하지. 다만 죽기 전에 네 동생에게 도움이 될 정보를 주고 싶다면…. 간단한 질문 몇 가지만 할 거야, 원한다면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여라.”
개조 좀비가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나는 담배를 천천히 태우며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물론 정상적인 대화를 바란 것은 아니었다.
그저 내 질문에 상응하는 간단한 응답.
놈이 고민에 빠진 듯 잠시 눈을 감더니. 결국 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간단하게 질문 세 가지만 하도록 하지. ‘예’를 말하고 싶을 때는 눈을 한 번 깜박이고. ‘아니오’를 말하고 싶을 때는 눈을 두 번 깜박이면 돼.”
개조 좀비가 눈을 한번 깜박였다.
“첫 번째 질문. 너를 이렇게 만든 자를 알고 있나?”
개조 좀비가 눈을 한 번 깜박였다.
“…… 좋아. 내가 천천히 이름을 부를 테니깐. 그 사람이 나오면 눈을 깜박이도록 해.”
나는 개조 좀비에 연관되어 있을 만한 놈들을 머릿속에 정리한 후 천천히 이름을 불렀다.
“오지명. 손재근. 윤동민. 주기환. 임영진. 노효-”
깜빡.
응?
“임영진? 임영진이야?”
오 박사의 연구소 직원이자 물류 운반을 담당하고 있는 그가 개조 좀비를 만들어내는 악마였다니.
개조 좀비가 고개를 좌우로 강하게 흔들었다.
깜박깜박.
“어? 아니야? 그럼…. 노효만?”
개조 좀비가 눈을 부릅떴다.
깜빡.
“…… 그런 거였나.”
노효만.
김준철의 오른팔이자 19공수여단의 작전 과장.
군인으로서의 능력이 떨어져, 각종 비리에 상사에게 잘 보이려고 아부에 능통한 쓰레기 같은 놈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녀석의 머리로는 절대로 혼자 할 수 없는 일인데. 노효만 말고 또 다른 자는 누구지?”
개조 좀비가 눈을 깜빡이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예, 아니오.’로 대답하라고 해놓고 주관적인 질문을 던졌다.
나는 생각을 정리한 후 다시 질문했다.
“미안하다. 다시 질문할게. 노효만과 관련된 다른 인물도 알고 있나?”
깜박깜박.
후우-
하긴, 납치된 놈이 모든 것을 알 리는 없지.
아쉽지만 이 질문은 여기서 끝내도록 해야겠다.
개조 좀비의 생명력 게이지가 거의 다 끝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두 번째 질문을 하도록 하지. 너를 납치한 사람도 노효만인가?”
깜박.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자가 노효만이라는 것이 확실해졌다.
누가 뒤에서 조종하는 것이 확실할 텐데 누구일까.
오지명 박사와 노효만 대위는 서로 죽이지 못해 안달이 났을 정도로 사이가 좋지 못하니.
오 박사는 아닐 테고….
대체 누구지.
“납치된 후 처음 도착한 곳이 여기였나?”
깜박깜박.
여기가 아니라고?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질문을 잘하기만 하면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낼 수 있을 것 같다.
개조 좀비를 만들어내는 놈이 누군지만 알아내면.
정우와 내가 마무리 짓지 못한 열다섯 번째 스토리의 열쇠를 찾을 수 있다.
나는 예상되는 지역을 신중하게 간추리고 놈에게 물었다.
“폐허가 된 마을 안인가?”
깜박.
좋아.
마을 안이라면 유추할 수 있는 곳은 딱 세 군데.
“동쪽 병원?”
깜박깜박.
“대 성당?”
깜박깜박.
그럼.
“설마 장유의 저택?”
깜박.
나는 혀를 내둘렀다.
장유의 저택이라면 어차피 메인 스토리를 진행할 때 들어가 있는 중요 장소.
모든 플레이어가 네 번째 라운드로 넘어가기 전, 한 번은 지나가는 지역이다.
목적지를 확실하게 알게 된 나는 마지막 질문을 넌지시 던졌다.
“…… 마지막 질문. 동생에게 네 존재를 알려도 돼? 이렇게 변했다는 것을.”
“…….”
동생 이야기가 나오자 개조 좀비가 고개를 떨구었다.
내가 이 질문을 한 이유는, 때로는 진실보다 거짓이 위안이 될 때가 있기 때문이다.
개조 좀비의 생명력 게이지가 회색에 가까워졌다.
죽기 일보 직전.
그가 천천히 고개를 들더니 눈을 깜박였다.
깜박.
깜박.
“…… 알았다. 편하게 가라.”
나는 박규환에게 신호를 주었다.
샥-
[‘개조 좀비도 무섭지 않아!’ 칭호를 획득합니다.]
[소환 레벨이 +1 증가합니다!]
[소환 레벨 ‘6’ 달성]
[하수인의 공격력과 방어력, 체력이 소폭 증가합니다.]
* * * * *
-수고하셨습니다!
리 커우러나의 부하들이 마정우의 양옆으로 늘어섰다.
건장한 체격인 그들이 동시에 고개를 숙이자, 마정우가 어둠 세계의 보스처럼 거만한 표정을 지었다.
“됐다. 정리나 하자.”
사냥을 마친 그들이 ‘페르아 사막’ 초입 사냥터에 몬스터들의 시체를 산처럼 쌓았다.
어떻게 이렇게 많은 몬스터가 한 곳에 있을 수 있냐고?
주한미군 특급전사인 마이클이 먼 곳에서 몬스터를 몰아오면.
다른 플레이어가 사냥하는 방식으로 주변에 있는 Z 바이러스의 감염체들을 전부 잡아냈다.
리 커우러나가 어디선가 플라스틱 통을 가져와 쌓아놓은 몬스터 시체에 기름을 붓더니.
촤락- 촤락-
불을 붙였다.
화르르륵!
다른 생명체들이 Z 바이러스에 되지 않도록 예방하는 행동이었다.
“아오. 이 더러운 새끼들.”
시체가 타오르며 검은 연기를 내뿜었다.
그의 행동을 보던 마정우가 기분 좋은 표정으로 말했다.
“수고 많았다. 시체를 태울 생각으로 기름까지 챙긴 걸 보니 준비가 철저하네.”
“아, 아닙니다! 수고는 정우 형님이 많이 하셨죠.”
“후우. 땀 날 정도로 사냥하니깐 나도 기분이 좋네.”
리 커우러나가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 내며 대답했다.
“저도입니다.”
“이제 돌아가자. 이만하면 충분하지?”
“예! 덕분에 저희 모두 스스로 사냥할 수 있을 만큼 성장했습니다.”
리 커우러나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의 부하들도 충분하게 사냥을 즐겼는지 만족 하는 눈치였다.
사냥을 마친 모두가 ‘폐허가 된 마을’로 줄지어 이동하기 시작했다.
바위 위에 앉아있던 나는 크게 손을 흔들며 그들을 반겼다.
“여! 마정우.”
“어? 김천재!”
“사냥은?”
“끝났어. 너 일일 임무는?”
“나도 끝났지.”
마정우가 어두운 안색의 유소라를 보더니 내게 속삭였다.
“무슨 일 있었어?”
“…….”
나는 리 커우러나의 얼굴을 슬쩍 본 후 정우에게 말했다.
“우선 마을로 돌아가자.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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