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화
좀비 시체 속에 숨어있던 나는 사람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붉은 십자가가 그어져 있는 투구. 은으로 만든 짤막한 단검과 창.
마지막으로 갑옷과 방패에 새겨져 있는 황금 팔콘 문양.
철컥. 철컥.
기사 세 명이 나타났다.
모두 좀비 하우스 입구에서 보았던 자들이다.
그들이 개조 좀비를 포착하더니 상체를 낮추어 전투 자세를 취하였다.
커다란 원형의 방패를 몸에 바짝 밀착시키자 상체와 하체가 전부 가려졌다.
“뭐, 뭐야 저건?”
“조, 종현아, 처음 보는 형태의 좀비다.”
“…… 보통 놈이 아닌 것 같군.”
창을 들고 있는 저자의 이름이 종현인가?
제일 앞장서 있는 자의 투구를 보니, 다른 기사들과는 다르게 깃털이 하나 달려 있었다.
아까는 투구를 쓰고 있지 않아서 몰랐는데 그룹의 리더를 뜻하는 것 같다.
그가 방패를 높게 들더니 성기사들만 사용할 수 있다는 신성 주문을 외웠다.
“성스러운 방패.”
[신성한 기운이 플레이어의 방패를 감싸 안습니다.]
종현의 방패에서 노란빛이 뿜어져 나와 몸을 감싸 안았다.
그의 양옆으로 서 있는 두 명의 기사도 동일한 주문을 외웠다.
한 그룹 내에 같은 직업의 클래스를 갖는 것은 보기 드문 일인데.
모두 성기사를 선택한 것으로 보아 안전한 사냥을 선택한 플레이어들 같았다.
그러니 신성 주문에 약한 ‘언데드 몬스터’가 모여있는 이곳을 사냥터로 지정한 거겠지.
뭐-
저놈을 만난 이상 안전하지는 않지만.
-쿠웨에에에엑!
개조 좀비가 느린 걸음으로 그들의 주위를 돌았다.
서로의 힘을 탐색하려는 것 같은데, 나는 그들의 폼새만 보아도 누가 강한지 알 수 있었다.
길어봤자 오 분 이내.
세 명의 기사들이 개조 좀비를 상대로 버틸 수 있는 시간이다.
‘어떻게 하지.’
개조 좀비는 플레이어가 Z 바이러스에 감염된 형태로, 인간 사냥시 레벨 업을 한다.
즉, 놈이 저기 있는 세 명의 기사를 잡고 레벨 업을 할 경우.
우리를 구출하러 온 박규환보다 더욱 강해지게 될 수도 있다.
“…….”
‘어디보자.’
[남은 마나: 39]
이곳에 있는 시체를 전부 일으켜 세워도 남을 만큼 마나는 충분하다.
하지만 넉넉한 마나에 비해 재료가 턱없이 부족했다.
사용할 수 있는 시체의 수는 다섯 개가 끝.
‘하아-.’
나는 머릿속으로 소환수 조합의 변수를 계속해서 굴려 보았다.
찰나라고 부를 정도로 잠깐의 시간이었지만, 좀비를 되살려내는 것은 아니라는 판단이 나왔다.
이런 등급 낮은 좀비들을 조합해봤자 쓰레기를 뭉쳐 새로운 쓰레기를 만드는 꼴이기 때문이다.
운 좋게 대형 좀비 조합이 나왔다고 하더라도, 이곳의 좀비 시체로는 7등급 이하의 조합만이 가능하다.
야생동물보다 약한 7등급 이하의 좀비 말이다.
그렇다고 시체 다섯 구로 놈을 상대할만한 스켈레톤을 소환하자니 너무나 큰 운이 필요했다.
다섯의 시체로는 로또 당첨 수준의 운이 따라주지 않는 이상 괜찮은 조합은 불가능하니깐.
‘…… 침착하자.’
유소라가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보았다.
‘당신이라면 이런 위급한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무언가가 있겠지.’라고 기대하는 눈빛이다.
“후우.”
나는 유소라의 얼굴 옆으로 바짝 붙어 그녀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게 속삭였다.
“소라씨.”
“네.”
“혹시 모르니 주사기 준비해주세요. 누른색으로.”
“…… 누른색? 아, 알겠어요.”
유소라의 주사기를 사용하게 되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개조 좀비와 기사들의 거리가 좁혀질수록 내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금방이라도 붙을 것 같으면서 서로 싸우지는 않았다.
오히려 저렇게 시간을 벌어준다면 나에게는 고맙긴 한데.
개조 좀비가 신중하게 움직일수록 기사들이 기고만장하게 큰 움직임을 보였다.
‘전장에서는 절대로 방심을 하면 안 되는데 말이야.’
기사들의 간격이 천천히 벌어졌다.
저러면 위험할 텐데.
라고 생각하는 순간.
기사들 주변을 빙글빙글 돌던 개조 좀비가 기이한 행동을 했다.
팟!
놈이 높게 점프를 뛰어 천장에 붙었다.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위액이 땅에 떨어졌다.
치지지직-
보통 액체가 아닌 것을 알게 된 기사들은 방패를 머리 위로 들었다.
“방패로 놈의 견제해!”
공격 준비를 마친 개조 좀비가 기사 중 한 명에게 시선을 꼽더니.
-쿠웨에에엑.
사냥감을 발견한 박쥐처럼, 번개 같은 속도로 기사들을 향해 뛰어내렸다.
부웅-
쿵!
개조 좀비가 전광석화 같은 속도로 두 명의 기사를 쓰러뜨렸다.
-키엑!
운 좋게 쓰러지지 않은 기사 대장이 성스러운 방패로 개조 좀비를 쳐내더니.
팍!
“정렬! 막아라!”
다른 이들을 일으켜 세웠다.
개조 좀비가 혀를 길게 내밀어 방패에 맞은 부위를 핥았다.
그리곤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다다다다다다!
정렬을 맞춘 기사들이 달려오는 개조 좀비를 향해 방패를 휘둘렀다.
부웅-
움직임과 반사신경이 야생 동물만큼 빠른 개조 좀비에게는 그들의 공격은 너무나도 느렸다.
개조 좀비가 가볍게 고개를 낮춰 첫 번째 방패를 피한 후.
이어서 날아오는 두 번째 방패를 손으로 쳐냈다.
탕!
세 번째 방패는 피하지도, 쳐내지도 않았다.
개조 좀비가 럭비 선수처럼 그대로 달려 나가 부하로 보이는 기사에게 몸통 박치기를 했다.
쾅!
기사와 개조 좀비가 서로 부딪친 자리의 반대 방향으로 날아갔다.
신성 주문 덕분인가?
다행히도 방패가 부서지기만 할 뿐 기사의 생명력은 그대로였다.
그의 머리 위에 있는 빨간색 게이지가 꽉 차 있었다.
그에 반해 개조 좀비의 생명력은 십 분의 일 정도 깎였다.
많은 양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방패를 잃은 만큼 충격을 제대로 주었다.
개조 좀비가 신음을 내며 일어나더니 주위에 널려 있는 좀비 시체의 다리를 집어서 씹었다.
놈이 좀비 시체를 섭취하는 동시에 생명력 게이지가 천천히 올라갔다.
최악이다.
그저 평범한 개조 좀비 플레이어가 아니라 게임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놈이었다.
방패를 잃은 기사가 단검을 양손으로 꽉 쥐었다.
그의 양옆으로 종현이라 불리는 기사 그룹의 대장과. 나머지 한 명이 방패를 높게 들었다.
개조 좀비가 씹어먹던 좀비의 다리를 땅에 던지더니.
-퇘엣!
그들을 향해 다시 달렸다.
-쿠웨에에엑!
방패를 잃은 기사가 정신을 집중하듯 눈에 힘을 주더니.
개조 좀비가 뛰어드는 순간 단검을 휘둘러 놈의 머리통을 뚫었다.
콰직!
“성공-.”
“키에엑!!”
개조 좀비가 뚫린 머리를 그대로 끌고 나아가 기사의 복부에 손톱으로 찌르기를 했다
쉬익-
팍!
두꺼운 쇠 갑주가 간단히 뚫리며 기사의 복부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크헉!”
“쿠웨에에엑!!”
“이… 이 새끼 왜 안 죽는….”
생각지 못한 좀비의 행동에 당황한 기사 그룹의 대장이 손을 떨며 공격을 머뭇거렸다.
나는 그들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뭐해!”
종현이 내 외침을 듣자 이내 정신을 차린 듯 성스러운 방패를 높게 들어 개조 좀비의 머리를 내리쳤다.
부웅-
팍!
“죽어!”
개조 좀비 녀석의 생명력 게이지가 조금밖에 깎이지 않았다.
신성 주문을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근력으로는 큰 데미지를 주지 못했다는 말이다.
개조 좀비가 땅을 박차듯 뒤로 날아올라 물러서더니 머리에 박힌 단검을 빼내었다.
-카아아악!!
놈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썩은 좀비의 시체를 다시 먹기 시작했다.
단검에 뚫려 커다란 구멍이 났던 놈의 머리통이 천천히 재생되기 시작했다.
개조 좀비의 머리 위에서 황금색 빛이 한 바퀴 돌았다.
녀석에게 당한 기사가 사망했나보다.
‘망할!’
극한의 공포 때문인가?
시선을 돌려 보니 남아있는 기사 두 명이 완전히 굳어 있었다.
입만 뻐끔거리며 놈이 재생하는 모습을 그저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X신들.’
왕궁 기사의 직위를 받은 놈들의 정신력이 겨우 이 정도인가?
제길.
저대로 두면 개조 좀비 놈이 기사들을 잡고 크게 성장할 것이다.
그럼 박규환이 이곳에 도착하더라도 유소라와 나는 놈에게 죽겠지.
직접 나서게 되지 않기를 바랬는데.
어쩔 수 없이 내가 나서게 되었다.
개조 좀비 녀석이 성장하도록 그냥 둘 수 없으니.
나는 숨을 크게 들여 마신 후 기합을 넣으며 좀비 시체를 들어 올렸다.
“이거나 먹어라!”
잠깐이지만 개조 좀비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곡선을 그리며 날아간 썩은 좀비의 시체가 놈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털썩.
나는 유소라에게 소리쳤다.
“소라씨, 지금이에요!”
“예.”
유소라가 허공을 보며 속삭였다.
“나와라, 누른 자의 피를 담은 바늘이여.”
잘 익어 노랗게 변한 은행나무 잎 색상의 빛이 유소라의 손안에서 휘몰아치더니 노란색 홀로그램 주사기가 만들어졌다.
나는 유소라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녀는 이런 상황이 익숙해졌는지 망설임 없이 바로 주사를 놓았다.
치이익.
누른색 액체가 혈관을 타고 천천히 내 몸 안으로 들어왔다.
강풍이 몸속에서 휘몰아치는 것처럼 전신이 흔들렸다.
몸이 허공에 붕 뜨는 기분이었다.
한 마리의 새가 되어 날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될 정도로 몸이 가볍게 느껴졌다.
[‘유소라’ 플레이어로부터 누른 피를 수혈 받았습니다.]
[옥황상제의 호위 무관이자, 권렴대장의 자리에 있었던 금신나한(金身羅漢)의 힘이 활성화됩니다.]
[활성화 시간: 30분]
“…… 이 정도면 되려나.”
손을 슬쩍 뻗어 좌우로 흔들어 보았다. 눈이 따라잡기 힘들 정도로 빠른 움직임이었다.
프로 권투 선수의 주먹만큼 빠르게 느껴질 정도다.
내가 주먹을 휘두른 자리에 잔상이 남는다.
개조 좀비와 싸우기 위해 주변 지형을 눈에 확실하게 익혔다.
꼬불꼬불하게 이어진 길을 막고 있는 회색 벽돌과 시멘트 천장.
쓸만한 지형지물이라고는 높게 솟아오른 벽밖에 없었다.
나는 아기 용의 송곳니를 굳게 잡고 유소라에게 말했다.
“소라씨. 저한테서 떨어지세요.”
유소라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상체를 숙이고 천천히 움직여, 기사들이 있는 곳으로 자리를 피했다.
개조 좀비 녀석의 표적이 기사에서 나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놈의 시선이 나를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키에엑….
개조 좀비가 입에서 초록색 액체를 질질 흘리며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다.
놈의 얼굴을 보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후우.”
나답지 않게 승패를 알 수 없는 싸움을 하게 되다니.
‘어쩔 수 없지.’
진퇴양난[進退兩難].
이 상황에서 빠져나갈 방법을 만들어낼 사람은 나밖에 없다.
천천히 다가오던 개조 좀비 녀석이 갑작스럽게 속도를 높이며 달려왔다.
두두두두두두.
-키엑!
나는 놈이 최대한 가까이 붙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팟!
뛰어드는 순간 빠른 발을 이용해서 옆으로 피했다.
한 끗 차이였다.
유소라의 능력이 없었다면 놈의 공격에 목이 잘려 나갔을 것이다.
피했다고 생각한 놈의 손톱이 내 턱 끝을 그어 생채기를 만들었으니 말이다.
쾅!
개조 좀비 녀석이 내가 등지고 있던 벽에 머리를 부딪쳤다.
무너질 정도는 아니었지만 금이 갈 정도로 강하게 말이다.
“쿠에에엑.”
입에서 초록색 액체를 쏟아냈다.
놈이 정신이 없는 틈을 타, 나는 용의 송곳니를 휘둘러 놈의 머리를 강하게 내리쳤다.
팍!
온 힘을 다해서 내려친 것인데, 개조 좀비의 생명력 게이지를 보니 손톱만큼 닳아 있었다.
내 공격력으로는 놈에게 아무런 데미지도 줄 수 없다는 건가.
“제길….”
개조 좀비가 신음을 내뱉으며 손을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부웅-
닿지는 않았지만 위협적으로 느껴질 만큼 빨랐다.
터벅.
나는 다시 벽을 등졌다.
침착하자.
침착하자 김천재.
좀만 더 기다리면….
-전격(電擊)
응?
잘못 들었나? 싶을 정도로 아주 작은 목소리였다. 이어 멀지 않은 곳에서 누군가 달려오는 발걸음이 들렸다.
빠르면서도 가벼운.
“…… 왔구나.”
다다다다다다다다-
팟!
검은 수트를 입은 도깨비 한 마리가 내가 서 있는 벽 뒤에서 뛰어올랐다.
그의 손에 쥐어져 있는 은빛의 검날이 반짝였다.
모든 이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나는 그를 바라보며 조용히 속삭였다.
“목표물 지정. 적을 처리해라.”
천천히 들어 올린 내 검지가 개조 좀비를 가리켰다.
[박규환(이)가 ‘김천재’님의 명령을 인지합니다.]
-일도양단(一刀兩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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