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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화

아기 드래곤의 송곳니.

멸망의 땅 초반부에서 구할 수 있는 아이템 중, 네크로맨서에게 최적화되어 있는 무기다.

모두를 데리고 서쪽 펍에 도착한 나는 ‘리 커우러나’를 소개해 주었다.

“정우야. 얘가 아까 말한 그 중국인이야.”

정우가 환하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반갑다.”

리 커우러나가 육중한 몸을 일으켜 세우며 마정우에게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네가 이곳에서 악명 높은 건달이라면서?”

“아니 건달까지는 아니고….”

“덕분에 숙소를 값싸게 얻었다고 들었는데. 앞으로 잘 부탁한다.”

“저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정우와의 긴밀한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는 나는 마이클과 유소라를 일인실에 데려다주었다.

수치상 나와 있지는 않지만 펍이 여관보다 생명력과 마나의 회복 속도가 높다.

심지어 체력도 빠르게 회복된다.

계단 위로 올라가자 줄지어 있는 방들이 보였다.

2층과 3층은 1인실, 4층은 2인실 숙소로 사용되었다.

물론 1층과 지하실은 술집이다.

방 안으로 들어온 나와 마정우는 옷가지를 풀어 헤치며 순서대로 씻었다.

“나 먼저 이 닦는다.”

“칫솔 있어?”

“어. 나무로 만들어진 거.”

“좋네.”

드디어 제대로 된 휴식이다.

조용한 곳에서 편안한 침대에 눕자, 욱신거리던 관절 통증이 멈추었다.

“후아! 침대가 이렇게 편한 거였구나.”

정우 녀석이 입에 칫솔을 물고 나와 내게 말했다.

“침대가 편한 것도 있지만. 마음이 편하니 진짜 쉬는 것 같다.”

“그러게. 어제 그 지하실에서의 하루는 좀….”

나는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내었다.

“한 대 필래?”

“어? 고급 시가? 어디서 났냐.”

“김준철 소령이 줬어.”

“좋지.”

양치를 마친 우리는 마주 앉아 담배를 한 대씩 태웠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는데 이만한 것이 없으니깐.

치직. 치지직.

쓰읍-

푸후.

안전한 곳에 있다는 안도감 때문일까? 담배 연기로 피비린내가 지워지자 웃음이 절로 나왔다.

담배를 피며 여태까지의 생각을 정리하던 나는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정우야. 너 스토리가 틀어진 건 알고 있지?”

“…… 그렇지. 내가 알고 있는 멸망의 땅하고 조금 다르네.”

“그게 문제야. 조금만 다르다. 차라리 크게 다르면 새롭게 공략을 할 텐데. 조금 다르니 생각했던 것과 다른 변수가 나오면 더 당황하게 돼.”

정우가 방의 창문을 열더니 밖을 쳐다보았다.

끼이이익.

“그래. 그래서 결국, 스토리가 왜 틀어진 걸까?”

“…… 처음에는 나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했는데?”

“…… 아닐 수도 있을 것 같다.”

“뭐?”

나는 담배를 깊게 들여 마신 후 천천히 내뱉었다. 생각을 정리하며 말하고 싶어 한 행동이었다.

하얀 연기가 내 얼굴을 가렸다.

담배 연기가 사라질 때쯤 머릿속 퍼즐이 맞춰지며 대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에 내가 루시퍼를 잡았었잖아.”

“그렇지.”

“거기서부터 잘못된 건 맞는데. 스토리의 큰 줄기가 바뀌게 된 건 다른 이유 때문인 것 같아.”

“그러니깐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아까 만난 ‘리 커우러나’. 이놈도 NPC로부터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고 들었대.”

“그래서?”

내가 손가락을 흔들어 창문을 닫으라는 신호를 보냈다. 혹시라도 이야기가 밖으로 새어나갈 것 같아서다.

달칵.

“말해.”

“튜토리얼은 지역별로 각자 흩어져서 진행된 게임인데. 겨우 나 하나 때문에 전체 스토리가 틀어진다? 이건 말이 안 돼.”

“그럼?”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은.”

나는 대답을 하기 전 잠시 말을 멈추었다. 정우는 내 말이라면 백 프로 믿기 때문에 정확하게 전달을 해주어야 할 것 같아서다.

“왜 자꾸 뜸 들이냐?”

“…… 미안하다. 다시 말할게.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은, ‘멸망의 땅: 라스트 게임’.”

“…… 나도 알아.”

“그 이후의 스토리야.”

정우 녀석이 콧구멍을 벌렁거렸다. 담뱃재를 땅에 툭툭 털어내더니 거울 앞으로 가서 콧수염을 다듬었다.

“그런 거였냐. 그래서 5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거고?”

“아마도. 우리가 지하실에 있을 때 출현했던 구울 기억나?”

“어. 그 미친 재생력의 몬스터?”

“그렇지. 그런 재생력을 가진 놈이 세 번째 라운드에서 나올 것 같아? 평균 플레이어 레벨이 10인 세 번째 라운드에서?”

정우가 담배를 입에 물었다.

쓰읍-

푸후.

“그 녀석 중상급 또는 상급 정도 몬스터였지?”

“어.”

“우리가 알던 멸망의 땅이었으면. 열 번째 라운드쯤에서 나올만한 놈이네.”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본래대로라면 열 번째 라운드, ‘블레이 소택지’라 불리는 곳에서 나오는 언데드 몬스터가. 어제 본 구울 만큼의 재생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가라앉은 어조로 그에게 말했다.

“이게 무엇을 뜻하는지는 너도 알고 있지?”

“후…. 그렇지. 결국 5년이라는 시간 동안 몬스터들도 성장했다는 거잖아.”

“그렇지. 5년.”

5년간의 성장.

멸망의 땅 후반부에서나 나올법한 몬스터들이 초반부에 나타나고 있다.

그 말인즉슨, 어느 시점부터 시작되는지 모르겠지만. 게임의 난이도가 기존보다 올라갔다는 것.

플레이어는 이제 시작인데 몬스터들은 5년을 앞서갔다.

그 갭을 메꿀 수 있는 플레이어는 극히 소수일 것이다.

정우가 끌끌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스토리가 틀어진 이유는 몬스터들이 강해져서다. 이건가?”

“아니지. 몬스터가 강해졌는데 스토리가 왜 틀어져. 아 물론 틀어질 수도 있긴 한데. 그게 주원인은 아니지.”

“그럼?”

“…… 너 스토리의 어느 부분들이 틀어졌는지는 알고 있냐?”

정우가 머리를 긁적였다. 생각한다기보다는 알고 있지만 정리해서 말하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쓰읍.

푸후-.

“일일이 따지자면 다 말할 수 없을 것 같은데. 크게 보자면 시간과 NPC들의 대사 정도려나?”

나는 비에 젖은 신발을 벗어 던지며 그에게 대답했다.

“그렇지! NPC들의 대사.”

“그게 왜 스토리를 바꿨다는 거지?”

“왜 대사가 바뀌었을까?”

“글쎄. 그걸 알면 내가 게임 운영자지. 너는 왜 바뀌었는지 알아?”

“어. 두 번째 라운드에서 세 번째 라운드로 넘어올 때. NPC들은 기존의 스토리보다 4년 이상을 여기서 더 보냈다고 했잖아?”

“그렇지.”

“그동안 그들이 뭘 했을 것 같아?”

정우가 손뼉을 쳤다.

찰싹!

“…… 오케이. 그 말이구나.”

경험자여서 그런지 역시나 눈치가 빠르다.

플레이어가 없는 시간 동안 몬스터만 성장했을까?

당연히 아니다.

5년이라는 시간 동안 NPC도 계속해서 성장해왔다.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갔는지 모르겠지만 상식적인 범위에서는 그들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그에 따라 추가적인 스토리 흐름을 생성했을 것이다.

우리가 아는 멸망의 땅 보다 더욱더 넓은 이야기가 있다는 말이다.

똑. 똑. 똑.

누군가가 방문을 두드렸다.

내가 담배를 입에 물고 문 구멍을 통해 밖을 보았다.

“…… 마이클?”

“천재 킴! 밥 먹으러 안 가요우?”

“소라 씨랑 먼저 내려가 있어. 금방 갈게.”

“오케이.”

마이클의 머리 위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벌써 씻고 나왔나 보다.

“마이클 저놈은 왜 저렇게 빠른 거냐? 벌써 씻고 나온 것 같은데.”

“군인이잖아. 그나저나 5년이라는 공백이 NPC하고 몬스터를 전부 성장시켰다면. 우리도 그만큼 성장할 시간이 필요한 거 아니냐? 여기서 열흘만 머무는 건 위험할 것 같은데.”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아니. 이 게임은 먼저 치고 나가는 사람이 후반을 독점하게 될 거야.”

“…… 뭐?”

“화신 김정재. 그 녀석이 초반 스토리에 등장했잖아.”

* * * * *

담배를 다 태운 우리는 비에 젖은 옷을 전부 벗어두고 가운만 걸친 채 펍으로 내려왔다.

먼저 내려온 마이클과 유소라가 펍의 메뉴판을 확인하며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천재 킴! 몽키 정우!”

나는 리 커우러나를 같은 테이블로 부른 후 자리에 앉았다.

“마이클, 먼저 시키지 그랬어?”

“뭘 먹어야 할지 몰라서요우.”

“스테이크랑 감자튀김 좀 시키고. 음료수 하나씩 고르면 될 것 같은데.”

“채소는 안 먹나요우?”

“먹고 싶으면 샐러드 따로 시켜. 소라 씨, 소라 씨는 뭐 못 먹는 음식 있으세요?”

응? 지금 보니 첫 번째 라운드에서 챙긴 블라우스로 옷을 갈아입었다.

“블라우스. 잘 어울리네요.”

“아! 주셔서 고마워요. 마이클씨에게 들었어요. 저 주려고 챙겼다고.”

“…… 뭘요.”

유소라가 메뉴판을 보며 내게 대답했다.

“저는 편식 안 해요. 스테이크 제일 큰 거로 주문해주세요.”

유소라, 몸은 모델같이 삐쩍 말라서 엄청나게 처먹는구나.

아까는 맥줏값으로 오십 제니를 사용했던데.

500CC 한 잔에 5제니니깐 혼자 열 잔을 마셨다.

“그럼….”

손을 높이 들어 흔들자 여자 종업원이 달려왔다.

“주문하시겠습니까?”

“스테이크 큰 거로 다섯 개. 감자튀김 두 개. 맥주 다섯 잔.”

“스테이크… 다섯…. 더 시키실 건 없으시고요?”

“예. 배고프니깐 빨리 가져다주세요.”

“스테이크는 어느 정도로 구워 드릴까요?”

“전부 미디엄 레어로 구워주시고 마늘 소스 왕창, 국물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많이 넣어주세요.”

“알겠습니다.”

종업원이 돌아갔다.

리 커우러나가 고개를 숙여 내게 인사했다.

“잘 먹겠습니다.”

저번에 싸울 때는 정신이 없어서 인지하지 못했는데.

놈의 등 뒤로 커다란 용과 호랑이 문신이 보였다.

“문신이 있었네?”

“예. 저희 형이랑 똑같이 했습니다.”

“건달이었어?”

“아뇨! 그냥 동네에서 쎄보이려고 한 거예요. 문신이 있으면 삥 뜯기 쉽거든요.”

“…… 그나저나 리 커우러나. 너는 여기에 언제 온 거지?”

“십오 일 정도? 된 것 같습니다. 정확하게 날짜를 세어 보지는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요.”

“십오 일이라….”

정우가 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이야기를 진행 시키라는 말이었다.

“그럼 이곳에 관해서 잘 알고 있겠네?”

“뭐. 어느 정도는요.”

“혹시 내가 말을 편하게 하면 불편한가? 싫으면 존댓말로 해줄게.”

리 커우러나가 손사래를 쳤다.

“아뇨, 전혀요. 오히려 앞서 이곳에 왔던 플레이어들보다 훨씬 편합니다.”

“내 그룹원들이 우리 이야기를 들어도 괜찮지?”

“당연하지요.”

나는 표정을 밝게 바꾸며 그에게 말했다.

“그래. 그럼 뭐 좀 물어보자.”

“예.”

때마침 종업원이 맥주를 가져왔다. 취기가 돌면 이야기가 더 술술 나올 것이라 생각되어.

캉!

건배부터 했다.

“우선 마시자.”

모두가 기분 좋은 얼굴로 맥주를 마셨다.

-크아.

한 모금 크게 마신 나는 리 커우러나에게 말을 이었다.

“지금 너랑 활동하는 플레이어가 몇 명이지?”

“스물한 명입니다.”

“직업은?”

“가지각색이긴 한데 대부분이 기사 클래스입니다.”

“기사가 펍에서 플레이어들을 약탈하고 있어?”

“그건… 살아남기 위해서…. 방황하는 기사 정도로 생각해주시죠.”

“…….”

“저희가 이 짓을 하는 이유는 몬스터들이 너무 강해져 사냥할 수가 없기 때문이에요.”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몬스터가 강해져?”

“예. 벌써 그룹원이 둘이나 죽었어요. 그것도 소형 몬스터인 사막여우한테요.”

그 정도로 몬스터와 플레이어 간의 균형이 망가진 건가.

리 커우러나가 한숨을 길게 내쉬더니 말을 이었다.

“게다가…. 저랑 같이 이곳에 온 친형도 몬스터에게 잡혀갔습니다.”

“몬스터가 플레이어를 잡아갔다고?”

처음 듣는 이야기다.

플레이어를 납치해갈 정도로 지능이 높은 몬스터가 있다니.

“요 앞 ‘페르아 사막’에서 사냥 중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습니다.”

“…… 사막에서?”

“예. 아마 돌연변이 개미귀신이 만든 유사(流砂)에 빠진 것 같은데. 시체를 찾지 못해서 정확한 원인은 모르겠어요.”

이야기를 전부 들은 나는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앞으로 이 스토리를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 길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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